[scrap] 헝가리 주미대사의 반박과 재반박

지난 번 헝가리 포스트에 이어서 (이 글을 처음 보는 분들은 꼭 이 전 포스트를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쫌 길지만, 주미 헝가리대사의 반박문과 재반박문도 번역해봤다. 원래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는 법이니

헝가리 주미대사의 반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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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eppele씨 귀하:

귀하께서 뉴욕 타임스의 크루그먼 블로그에 공개하신 헝가리 정치상황에 대한 분석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헝가리 주미대사로서, 저는 만약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거나 오해의 여지가 있다면 이를 지적할 의무가 있습니다. 귀하의 기사에는 그러한 오류와 오해의 여지가 있기때문에, 다음과 같이 그 점들을 지적함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정당성(legitimacy)의 문제에 관해서입니다. 귀하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끌고 있는 현재 정부가 의회 내에서 절대다수의석을 차지하게 된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데, 헝가리의 현재 혼합 선거법이야말로, 왜 현재 제1야당인 사회당이 현 의석에서 상대적으로 큰 비율을 차지할 수 있는 근거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만약 헝가리 선거가, “혼합”선거제가 아닌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오로지 “승자독식제”에 의해서 치뤄졌다면, 현 사회당은 176개의 선거구 중 오로지 두 명의 의원을 배출했을 것입니다.

귀하가 비판하고 있는 새 선거법은, 바로 이 “혼합”선거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선거구 재조정은 헝가리와 같이 작은 국가로써 훨씬 더 적절한 의석수인 199석의 의석수로 현 386석의 의회를 조정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또한 과거 선거법에서 존재했던 비헌법적인 불균등 선거구를 재조정했습니다. 귀하께서 “새 선거구획은 피데스당을 제외한 그 어떠한 당도 사실상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게 획정되어 있다”라는 말은, 제가 보기에는 매우 성급하고 감정적인 반응으로 보입니다. 귀하께서 근거로 삼으신 씽크탱크의 숫자들은, 다른 씽크탱크의 계산과 다릅니다. 게다가 이 모든 씽크탱크들의 계산들의 약점은 유권자들이 과거와 똑같이 투표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점입니다. 이런 가정은 그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매우 위험한 가정이지만 특별히 지난 6번의 선거에서 5번이나 정부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더 그렇습니다. 정당들은 선거제때문에 이기거나 지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에 대해 다가가기를 실패했을 때 그렇습니다.

둘째로, 헝가리 유권자들이 2010년 선거당시 피데스당이 헌법에 상당한 정도의 개정을 할 줄 몰랐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헝가리의 주요 제 정당들 사이에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기존 헝가리 헌법 자체가 이 헌법이 임시 헌법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헌법학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누구든 그 필요한 의석수를 달성할 경우 헌법을 개정할 것이며 개정해야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귀하는 지난 정부 중 2/3의석을 점유했던 마지막 정부 – 90년대 중반 사회당/자유당 연합 – 이 실제로 헌법을 개정하고자 원했으며, 허나 두 정당이 어떻게 개정해야할지 합의할지 결정하지 못해 무산된 것을 아실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난 선거때 사회당은 이 점을 선거의 주요쟁점으로 삼아, 피데스당이 절대다수의석을 차지한다면 새 헌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한 바 있습니다. 사회당의 이러한 주장은 주요 매체들에서 비중있게 다뤄졌으며 피데스당은 이 점에 대해 결코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오르반 당수는 선거 당시: “적은 수의 다수석으로는 적은 변화밖에 못 이룹니다; 큰 승리는 큰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셋째로, 저는 귀하께 사법부와 사법부를 규정하는 법들에 대해 좀더 신중히 살펴볼 것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귀하는 법원이 정부에 점점 더 종속되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지만, 귀하의 주장은 “만약”이라는 가정법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모든 법은 잠재적으로 남용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허나 개혁의 결과가 그러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판사들의 전문가로서의 독립성과 그 양심을 의심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새로 임명되는 판사들에 대한 모욕일뿐만 아니라, 헝가리 전역에서 일하고 있는 수천명의 판사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바로 어제, 귀하께서 “기능적으로 죽었다”고 표현하신 – (역주: 그 인원이) 확장된 헌법 재판소는 미디어법의 새 형벌규정들 몇몇과 교회와 관련된 전체 법을 위헌판결 내린 바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판사들이 정치인들의 꼭두각시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결정들입니다.

비슷하게, 왜 귀하께서는 새 예산 위원회가 비-피데스 정부를 해산시키려고 가정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산 위원회는 그 부여된 임무, 즉 지난 잃어버린 8년간 사회당 정부가 했던 것과 같은 완전히 방만한 재정정책을 방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넷째로, 저는 특정 최고 기관장의 임기가 선거 주기보다 긴 것이 비민주적이라는 귀하의 암암리의 가정에 매우 놀랐습니다. 귀하도 아시다시피, 민주정에서 특정 최고 기관장의 임명시기를 선거주기와 불일치시킴으로써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또한 많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더불어, 귀하께서는 몇몇 사실관계의 오류를 저지르셨습니다. 감사원장의 임기는 기존 법이나 신법에서 모두 12년입니다 – 즉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예산위원회 위원장의 경우, 임기가 짧아졌습니다; 과거 법에서, 예산위회 위원장은 9년의 임기를 가졌지만, 신법하에서는 6년의 임기를 갖습니다.

저는 정당하고 사실에 기초한 비판은 받아들이지만, 경제학자로서 제 믿음은 사실이 항상 먼저 전제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실을 들여다보신다면 피데스당의 정책에는 항상 선의의, 악의 없는 설명이 있습니다. 귀하의 사실관계 오류와 편견은 사실을 아는 이들에게는 귀하 주장의 신빙성을 깎아먹을 것이며 귀하의 글을 읽는 대다수의 독자들처럼 사실관계에 익숙치 않는 많은 이들을 오도할 것입니다. 물론 저는 귀하께서 의도적으로 그러셨다고 보지 않습니다. 분명 변화의 속도와 깊이가, 귀하와 같이 헝가리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해온 사람들에게도 압도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허나 피데스당의 모든 정강정책에 대해 매순간 가장 악의적인 의도를 덧붙이는 것은 황색신문이나 하는 짓이지, 학자의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György Szapáry
헝가리 주미대사, 워싱턴 DC, 2011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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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가? (그 느낌을 음미해본 다음…) 이에 대해 사흘 뒤 Scheppele의 반박문이 Krugman의 blog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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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30일

Szapáry대사님께,

편지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항상 헝가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더 많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귀하께서 제가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라는 말씀을 해주셨기에,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선거제도와 관련하여: 제 선거제도에 대한 비판은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혼합제도에 대한 것이나 의회 의석수를 줄이기 위해 더 큰 선거구를 만들어야한다는 점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선거구들의 경계가 확정된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Haza és Haladás의 분석은 이 새로 확정된 선거구로는, 지난 3번의 선거들이, 구선거법 상으로는 두 번이나 다른 당의 승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피데스승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귀하께서는 다른 씽크탱크들이 이와 같은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유감스럽게도 그 결론에 이르지 않은 다른 분석결과를 본 바가 없습니다.

혹시 귀하가 언급하신 분석들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여쭤봐도 될지요? 또한 그 결과들이 Haza és Haladás가 그러한 것처럼, 온라인에, 사용한 방법론과 함께 공개될 수 있을까요? 만약 귀하께서 정말 이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을 제기하신다면, Haza és Haladás의 분석방법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는지 그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먼저 내놓으시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많은 집권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거구를 획정하기에, 피데스당이 그런 점에서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허나 저는 그 어떠한 나라에서도 선거법에 선거구를 획정하면서 그 변경을 위해 2/3의 의석수를 요구하며 처음에 그 선거구가 공정하게 획정되었는지를 판단하는 독립적인 기구 없이 그 경계가 획정된 예를 알지 못합니다. 이 두 가지 점에서, 헝가리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특이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귀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유권자들이 항상 생각을 바꾸며 게리멘더링된 선거구조차도 유권자의 큰 수준의 투표로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새로 획정된 선거구로는, 헝가리 정부는 1998년 피데스당이 처음으로 승리한 이래 단 한 번도 정권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구선거법하에서) 2002년 선거는 아슬아슬했죠. 하지만 (피데스당이 패배한) 2006년은 아슬아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선거에서조차 (신선거법으로는) 피데스당은 승리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정권교체가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유권자들의 투표행태 가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폭의 변화를 요구하기에 새로 획정된 선거구가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둘째로, 유권자들이 피데스당을 찍을 때 새 헌법에 대한 추인을 한 것인지 아느냐에 대한 문제에 대해: 귀하가 인정한 바와 같이, 피데스당은 결코 새 헌법을 제정하겠다고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르반 수상은 간접적으로 “큰 변화”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지, 헌법적 질서가 급격하게 변화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선거때 사회당에 대한 큰 심판분위기를 감안할 때, 많은 사람들이 리더십에 큰 변화를 원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 더 크게 바뀐다면 더 좋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허나 그 분위기가 다른 어떤 정당의 동의나 시민들이 정말로 그러한 헌법을 바라는지를 묻는 국민투표 없이 막 써도 된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만약 귀하께서 피데스당이 선거기간 중 헌법을 다시 쓰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근거를 갖고 계시다면, 제가 어디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지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1995년에서 1996년 사이 마지막으로 헌법개정 작업이 이뤄졌을 때 외부 전문가 고문이었기때문에 새로운 헌법 제정이 오랜동안 논의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1995년 당시, 새 헌법 제정절차가 시작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4/5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헌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또한 (헌법은) 제정절차가 시작되면 신헌법제정위원회는 의회 내 6개 정당 중 5개 정당이 제정에 찬성해야함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데스당이 작년 집권하자마자 한 첫 작업은 이 4/5 제한사항에 대한 헌법조문을 개정하여 야당의 지지 없이 맘대로 신헌법제정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피데스당의 헌법개정으로 신헌법 제정에 어떠한 야당의 지지도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이번 신헌법제정 작업이 지난 헌법제정작업과 구별되는 큰 차이입니다.

만약 지금 당장 새로운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진정한 공감대가 있다면, 왜 피데스 정부는 이 속전속결의 제정작업 전에 4/5룰을 제거했습니까? 피데스당이 이미 의회 내 68%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귀하께서 주장하시는대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면 12%의 다른 의원들을 동의하게 만드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왜 피데스당은 1995-1996년에 이미 밟아본 적이 있는, 제 정당의 절대다수의 찬성절차에 따라 제정작업을 진행하는 규칙을 폐지하셨습니까?

제가 보기에, 선거 전 유권자 또는 야당, 또는 그 점에 있어서 피데스당 자체로도 새 헌법제정에 대한 어떠한 꾸준한 요구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귀하께서는 피데스당이 헌법제정 절차를 시작할 당시 광범위한 지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여쭐 수 있겠습니까? 또는 현재 제정된 신헌법에 광범위한 지지가 있다고 볼만한 근거를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피데스정부가 정권을 잡은 후, 피데스당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절반이 지지를 거뒀습니다. 이것이 신헌법에 대한 지지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근거로 볼 수 없겠습니까?

셋째, 사법부와 관련해: 저는 헝가리 판사들에 대해 깊이 존경하며, 사실, 4년간 헝가리 헌법 재판소에 연구하면서, 지근거리에서 많은 존경할만한 헝가리 판사들을 봤습니다. 허나 사법부의 독립은 판사의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기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에 달려있는 문젭니다. 사법부에 대한 신법은 국가 사법 사무처장(head of the National Judicial Office) 일인의 판단에 의해 현재 일반법원에 있는 그 어떠한 판사들도 다른 법원으로 발령낼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이 새 체제에서 판사가 이러한 발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어떠한 절차가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귀하께선 국가 사법 사무처장이 이러한 발령을 내는데 있어서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절차상 아무런 요건 없이 이러한 발령이 가능하다면, 정치적이거나 또는 다른 부적절한 사유에 의해 발령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결코 헛된 망상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어떤 절차가 있습니까? 판사가 만약 정치적 이유에 의해 발령을 받았다고 믿을 때 어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헌법이나 사법부에 대한 법은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절차로 이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법이 이를 규정하고 있습니까? 다시 한 번, 이 지점에 대해 귀하로부터 제가 모르는 부분을 배우고 싶습니다만, 현재 있는 법으로부터 그 어떤 보장을 찾은 바 없습니다.

게다가, 오늘(2011년 12월 30일) 통과한 헌법부칙은 국가 사법 사무처장과 검사가 쟁점이 되는 재판을 나라 어느 법원에나 배당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헝가리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식으로 행정부가 재판에 간섭하는 것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기에, 저는 현 정부가 이를 아예 신헌법에 못박아버린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허나 만약 정치적인 관리들이 각 재판에 대해 어떤 판사로부터 판결을 받을지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사법부의 독립은 끝난 것입니다.

귀하의 정부는 이 새 체계가 재판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귀하 정부의 관리들께서 오로지 효율성이라는 관점을 가장 큰 기준으로 삼아 (재판이 빨리 끝날 것 같은 재판정, 즉 판사에게) 재판배당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도 정치적 영향을 배제하는 보호장치가 마련되어야합니다. 가장 빨리 재판을 해치우는 방법은 아예 증거를 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하고 신중하게 재판하는 과정은 시간을 요합니다. 만약 재판을 더 빨리 해치우는 판사들에게 더 많은 사건이 배당된다면, 사법판단의 질이 어떻게 될지는 명약관화한 것 아닙니까?

행정부 관리직인 사법 사무처장과 검사가 재판을 배당하는 것은 사법과정의 공정성 관점에서 다른 중요한 문제도 야기합니다. 만약 민형법상 피고가 재판부를 기피하고자 한다면 어떤 선택지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 재판배당에 대한 규칙이 1심뿐만 아니라 항소법원에도 적용된다면, 피고가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적인 판사를 만날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넷째: 선거주기보다 더 긴 임기를 갖는 고위직 임명과 관련하여: 네, 선출직보다 특정 비정치적 자리들이 더 긴 임기를 갖는다는 것은 민주정에서 흔한 일입니다. 허나 또한 이러한 고위직들이 여러 정당 사이의 협의나 다른 방식을 통해 임명되어 한 당이 이러한 고위직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의 반반을 각각 좌우파 정당으로부터 뽑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판소의 상원(senate?)은 항상 여야 동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고위직들은 연방의회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하며, 이 때 의회 소수당이 상당한 수준의 거부권을 갖고 있습니다. 헝가리에서, 구 헌법질서하에서는 이런 고위직이 일당에 의해 임명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들은 (의석 분포가 아니라 정당에 따른) 의회 내 주요 정당 다수의 지지를 받고나서야 2/3의석수에 대한 인준을 받았습니다. 피데스당이 집권 1년차에 한 것은, 이 첫 단계를 제거함으로써, 의회내 충분한 다수석을 점유하는 일당이 이제 다른 당의 지지없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재판소에 임명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긴 임기를 갖는 고위직을 다수 정당들의 합의나 다른 방식의 독립적인 균형을 보장하는 기구 없이 임명하는 다른 헌법체계를 알지 못합니다. 허나 제가 뭘 놓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모르지만 피데스당이 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 검사, 국가 사법 사무처장, 감사원장, 예산위원회 위원장, 미디어 위원장 또는 다른 긴 임기의 고위직을 임명하는데 있어서 야당과의 합의를 위해 노력한 적이 있습니까? 그 어떠한 신법이라도 위원회를 갖는 독립기구 (예를 들어 선거관리 위원회 또는 미디어 위원회)에서 상임위원에 여러 정당이 대표되도록 보장하도록 한 것이 있습니까? 다시 한 번, 저는 이런 점에 있어서 제가 놓친 것이 있다면 배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만, 기존 법이 이런 장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들을 대체하는 신법들에선 이런 장치들을 발견한 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실관계 오류 주장에 대해서: 귀하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단지 각 고위직의 임기를 정확히 나열했을 뿐입니다. 고위직들 중 일부는 말씀하신대로 변한 게 없고, 일부는 길어졌고 일부는 짧아졌습니다. 또한 일부 지위는 완전히 새롭고, 대부분의 자리는 그 권한이 이전보다 훨씬 강화되어 그 자리에 누가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모든 지위들의 임기가 길어졌다는 암시를 주었다면 그 점은 잘못이지만, 각 지위들이 더 큰 권한을 갖었다는 것 또한 분명히 강조하지 않은 것도 잘못인 것 같군요. 검사는 자신의 사건을 자기가 원하는 법원에 배당할 수 있습니다. 감사원장은 이제 훨씬 더 광범위한 조사를 할 수 있습니다. 새 예산위원회는 국회해산권의 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 예산안에 대한 거부권을 가졌습니다. 미디어 위원회 위원장은 주파수 배당에 대한 막강한 권한, 미디어법에 규정된 애매한 기준을 위반한 언론인들에게 엄청난 벌금을 때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국가 사법 사무처장은 완전히 새로운 직위로써 전체 사법부를 새로 조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새로운 권한,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자리들을 감안할 때, 귀하께서 집권당 소속이 아니라면 이 새로운 헌법질서가 공정하다고 느끼시겠습니까?

헌법질서를 바꾸는 것은 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매우 급진적인 것입니다. 이를 오로지 한 정당의 투표를 통해서 제안하고 제정하는 것은 헝가리가 현재 받고 있는 것과 같은 국제적 비판을 부릅니다. 만약 피데스 정부가 야당들과 함께 일해 진정으로 모두 공감하는 헌법에 이르렀다면, 저와 다른 이들이 이를 놓친 것일테지요. 저희가 정말 그저 놓친 것이라면 정말 기쁠 것입니다.

Kim Lane Schepp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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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사의 글로부터 무언가 기시감이.

지난 대한민국의 두 총선에서 “개헌저지선”이 화두였다. 우파의 이를테면 헌법 제119조에 대한 개헌요구가 떠오른다. 대한민국 헌법에 그나마 존재하는 견제, 균형 장치가 심지어 2/3의석 약간 모자르는 경우에도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눈에 따르면) 거의 망가졌는지 우리도 겪어본 바가 있다. (사실 이 글은 4년 연속 예산안 단독처리/날치기 기념 번역이다) 헝가리 임시 헌법이 국민투표조항이 없는 이유는 조심스럽게 추측해보면 아마 공산당일당독재체제에서 이행하면서 사회당의 농간(?)이 아니었나 싶다. 되도록 균형은 정당 사이에서 합의되는 체제로 할 것, 그래야 당시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게 아닐까.

헝가리 헌법개정 과정을 대한민국 헌법에 대입해보자면, 이 사람들은 먼저 집권해서 헌법 제128-130조를 개정해버리고, 그 다음에 지 맘대로 했단 얘기다. 헌법개정을 위해 국민투표가 존재하는 것이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앞으로 제안되는 모든 헌법개정안에도, 국민투표가 빠지면 무조건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소선거구제, 소선거구+비례대표 “혼합”제, 선거제 얘기하면 이런 얘기들 어디서나 흔한 고민들인가보다… 뒤늦게 노회찬의 나꼼수에서의 선거제 변경에 대한 발언들을 다시 곱씹어본다.

대한민국에선 우선 선거구 사이의 유권자수의 차이가 여전히 큰데다가 비례대표 의원수는 적어 도시 유권자수 중에 낭비(왜냐하면 소선거구여서 패배하는 유권자의 표는 다 “낭비”되니까)가 상당하기때문에 유권자들이 좀처럼 정치과정에 레버리지를 갖는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에, 압도적으로 한 쪽 정당에 유리한 지역구들 (호남/영남)의 경우에는 또다시 정당에 대해 유권자들이 갖는 레버리지가 적어지기때문에, 두 겹으로 유권자들이 정치과정에 소외되는 효과가 강한 것 같다(그게 정치불신으로 연결되고). 중대선거구제의 문제는 일본에서 익히 본 바이고…그런데 이 정치불신으로 국회의원 의석수를 줄여야한다는 얘기가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선호되는 모양인데, 이게 대표성의 측면에서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것 같다.

게다가 이 놈의 정치불신으로 작은 나라에 걸맞게 국회의원 의석수를 줄여야한다는 얘기(아마 헝가리 우파당의 “선의의, 악의가 없는” 구호가 아니었을까 싶다)가 대한민국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선호되는 모양인데, 이게 대표성의 측면에서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것 같다. (그나저나 헝가리 천만명에 대강 350명의 의회의원이었는데, 한국은 거의 5천만명에 299명이네. 이거 인구당 의석수 데이터가 어딘가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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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헝가리의 헌법 혁명 Hungary’s Constitutional Revolution

Krugman이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헝가리 얘기를 인용하길래, 뭥미했는데, 블로그에 프린스턴 동료의 글을 게시했다.

아래는 초벌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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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ugman.blogs.nytimes.com/2011/12/19/hungarys-constitutional-revolution/#more-27489

Kim Lane Scheppele

지난 주, “불황과 민주주의Depression and Democracy”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Paul Krugman은 헝가리의 “권위주의적 쏠림”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다. 그 칼럼의 소스 중 하나가 나로부터 나왔기때문에, 여기서 내가 왜 헝가리의 입헌주의와 민주주의가 위기상황인지 좀더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작년 봄철 치뤄진 자유롭고 공정한 총선을 통해 헝가리의 중도우파 정당인 피데스Fidesz는 53%의 득표율을 얻었다. 이 득표율은 헝가리의 현행 불균등한 선거법상, 68% 의회 의석수로 연결됐다. 이러한 압도적 과반수 (2/3 이상)을 바탕으로, 피데스당은 개헌의석수를 확보했다. 여당은 집권 1년차에 이 압도적 권력을 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이용하여 열 차례에 걸쳐 헌법을 개정했으며, 이윽고 2012년 1월 1일 발효될 신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 개정 및 신헌법 제정과정을 통해 정부의 견제와 균형원리가 무너졌으며, 사실상 현 여당이 바라볼 근미래에 걸쳐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법적 환경을 만들었다.

이 신헌법은 유럽연합 이사회의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일명 베니스 위원회 Venice Commission for Democracy through Law), 유럽의회, 및 미국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피데스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 새 헌법질서로 사법부가 제일 큰 타격을 받았다. 기존 거의 모든 법률의 헌법합치여부를 심사할 책임이 있었던 헝가리 헌법재판소는 세 가지 방식으로 무력화됐다. 첫째, 정부는 헌법재판관의 수를 늘렸으며 늘어난 재판관에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을 채웠다(루스벨트의 법원 장악 계획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 다음 이 재판소의 관할권을 제한하여 헌법에 열거한 권리들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세금과 긴축 프로그램과 같이 예산에 영향을 미치는 법률에 대해 심사를 할 수 없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헌소 요건을 강화하여 법률이 헌법과 합치되는지 심사가 어렵도록 했다. 더해, 개인은 일반 법원의 소송 과정을 모두 거쳐야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과거 단원제 의회제도에서 중요한 견제기능을 행사했던 헌법재판소는 이로써 기능적으로 사실상 죽었다.

일반 법관들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정부는 재판관의 은퇴연한을 70세에서 62세로 낮추고, 몇 개월의 유예기간밖에 주지 않았다. 200명 이상의 법관들이 1월 1일부로 법복을 벗어야하며, 이 중 사건 배당과 재판사무를 담당하는 재판소장들 또한 그러하다. 법원과 관련된 신법은 대법원장은 적어도 5년 이상 헝가리법원 경력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현 대법원장은 그의 재판경력 중 17년간의 유럽 인권 법원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1월 1일 또한 사임해야한다.

법원 관련법은 또한 새로 국가 사법 사무처(National Judicial Office)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기관은 실권자는 은퇴하는 법관의 후임법관을 임명하고 새로 임용되는 법관을 임명할 권한을 갖는다. 또한 아무 법관이나 임지를 옮길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 새로운 헌법 개정안 – 새로 만든 헌법에 대한 개정안이다! – 은 검사와 이 새로운 국가 사법 사무처 기관장이 재판할 판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정부가 원하는 법관을 자리에 앉히고, 원하는대로 인사이동시키고, 누가 어느 사건을 맡을지 결정할 수 있게 되면 끝장난거나 다름 없다.

유럽연합 정의, 인권 및 시민권위원회European Commission for Justice, Fundamental Rights and Citizenship 부의장인 Viviane Reding 지난 주 강력한 어조로 신법과 관련된 자료요청을 하며 즉각 회신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또한 “유럽연합 법률과 합치여부에 대한 의심이 가시지 않는 한 해당 입법안이 실행되지 않도록 확실히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대한 회신에서 헝가리 정부는 이 모든 변화는 개선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헝가리 정부는 신헌법질서를 브뤼셀의 강력한 경고에 불구하고 이행할 예정으로 보인다.

이 신헌법 체계에 따르면, 선거에 대한 법적 관리, 감독 체계도 바뀐다. 지난 선거 이전 규범은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는 5명의 위원은 정치적으로 다양해야하며 정부가 위원들을 선정하기에 앞서 야당과 협의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년 규칙이 바뀌어 매 총선거에서 선관위원도 함께 뽑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기존 선관위원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였으며 현재 선거관리위원회는 집권여당의 5인으로 채워졌다.

새 선거법은 의회 의원 선거지역구의 경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새 선거구획은 피데스당을 제외한 그 어떠한 당도 사실상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게 획정되어 있다. 권위있는 헝가리 씽크탱크가 새로 획정된 선거구를 바탕으로 지난 3번의 선거결과를 모의 실험해본 결과 피데스당이 지난 두 번 패배했던 선거까지 모두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모든 독립적 정치적 기구들이 타격을 입었다. 인권위원회, 개인 정보 보호 기구, 소수자 보호 옴부즈맨은 더 작은 기관으로 통폐합되었다. 검찰, 감사원 그리고 최근에는 중앙은행이 모두 새 법적 질서에 따라 정치적 영향에 노출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언론이 매일매일의 위협 속에 직면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강력한 일련의 언론 법안들을 통해 총리의 임명을 받은 9년 임기의 위원장을 비롯하여 피데스당 지지자로 채워진 미디어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모든 공공 및 민영언론들이 애매한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지 심사할 권한이 있으며 어떠한 언론사도 파산할만큼 벌금을 때릴 권한도 갖고 있다. 따라서 언론들이 자기검열하는 것이 이상치 않다. 이 언론체계는 유럽집행위원회 산하 통신위원회European Commissioner for Communications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으며, 이 밖에 UN의 반기문 사무총장을 비롯한 다른 기관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신헌법은 보수적 기독교 사회신조를 국가정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참고로, 헝가리에서 그 어떠한 종류든 교회에 출석하는 인구 비율은 21%에 불과하다. 태아는 임신부터 보호받는다(낙태금지). 결혼은 법률적으로 남자와 여자에 한한다. 헌법은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기독교의 역할을 인정하며”, “가족과 국가가 우리의 공존에 가장 중요한 두 축”이라 못박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신념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규정하는 새 법국가 공인 교단을 14개로 줄이며 348개의 다른 교단의 공인을 취소했다.

민주정에서 대중은 잘못하는 이들을 “갈아치우고” 여론의 지지를 받지 않는 정책을 변경할 수 있는 새 정부를 선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새 헌법 하에서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된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 – 자유로운 언론과 중립적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재 – 에 더해서, 새 헌법은 설사 다른 당이 작은 확률을 뚫고 선거에 승리했어도 피데스당이 통제할 수 있는 근거를 심어놨다.

새 헌법은 공공정책이 오로지 이후 의회의 2/3의 의석수에 의해서만 변경될 수 있도록 못박아놨다. 이제부터, 모든 세제 및 재정정책은 오로지 2/3의 압도적 다수를 통해서만 통과할 수 있다. 심지어 선거구 재획정조차 2/3의 압도적 다수결을 요한다. 만약 새 정부가 단순히 과반수로 구성된다면, 피데스 정부의 정책이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다. 근미래에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후임 정부들에 대해 피데스 정부는, 지금 임명하는 관리들을 통해 흔들 수 있다. 새 헌법은 검사의 임기를 9년, 감사원장은 12년, 국가 사법 사무처 9년, 미디어위원회 위원장 9년, 예산위원장 6년 등등으로 늘렸다. 각각의 자리는 피데스당 지지자들로 채워졌으며 이들은 현 정부의 임기가 한참 끝난 뒤에도 수사, 언론 위협, 공소, 법원인사를 할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작동할까? 한 가지 예로 족할 것이다. 신헌법은 새로 예산위원회를 만들었는데, 국가채무를 늘리는 그 어떠한 미래의 예산안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현재 헝가리 경제상황으로 볼 때 이는 그 어떠한 예산도 균형재정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는 어떤 경우에도 예산위원회가 거부권이 있다는 뜻이다. 이 예산위원회의 위원들은 6년 또는 12년의 임기를 갖고 현정부에서 임명되었으며, 의회가 2/3의 의석수로만 교체할 수 있고, 아니면 그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한편, 신헌법은 매년 3월 31일까지 의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한다. 만약 의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으면,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시행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후임정부의 제약은 명약관화하다. 새 정부가 예산안을 통과시키면 (예산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피데스당 지지자에 의해 비토당해 예산통과 기한을 지나면, (피데스당에 의해 임명된) 대통령은 의회해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적절한” 정부가 집권할 때까지 무한반복할 수 있다.

현 헝가리 정치지형상 피데스당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야당은 사회당 또는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로 극우 조빅Jobbik당이다. 작년 피데스당 선거승리 이전 입안된 법률에 따르면, 위헌정당은 해산당할 수 있다. 혹자는 피데스당이 조빅당을 이를 통해 해산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사실, 유럽제국(諸國)은 조빅당이 사라지는 것에 별로 상관 안 할지도 모른다. 각국이 제각기 극우당을 해산할 수도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피데스당의 라이벌인 사회당은 어떠한가?

제안된 헌법개정안에 따르면, 지난 공산주의 시절 공산당의 위법행위들이 헌법에 명시되며 공산정권 시절 범죄행위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삭제된다. 지난 공산당은 (이 개정안에 따르면) 범죄조직으로 취급받고 있으며 현재 야당인 사회당이 그 법적 후계자로 지목받고 있다. 법률적으로 말하자면, 이 헌법개정안이 뭘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다. 하지만 제1야당에게 아마도 별로 좋은 건 아닐 것이다.

피데스당은 이 헌법 혁명을 민주적 선거 이후 법적 절차에 따라 수행했다. 비록 피데스당이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헌법개정을 통해 이 모든 작업을 완수하였다고 하더라도 헝가리는 더이상 입헌적 민주정이라 부를 수 없다. 헝가리는, 폴 크루그먼이 말한대로, 권위주의로 미끄러지고 있는 것이다.

* 역주: 루스벨트는 뉴딜정책 당시 이에 대해 사사건건 위헌판결을 내리는 대법원에 대항하기 위해 대법관을 늘리고 종신직인 대법관 임기를 정하여 대통령 권한을 늘리려고 시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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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니, 진심으로 식은땀이 흐른다하나, 그런 느낌을 들었다. 과거 회귀형 투표라는 바람에 민주정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

순간, 한국은 그래도 그 정도로 막장스럽지 않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런 과거회귀바람이 거셌던 지난 대선과 총선 이후, 여당지지자들 사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 운운했던 기억이 났다. 인권위원회가 축소된 것이며, 언론이며, 정치과정, 검찰이며, 중앙은행이며, 방송통신위원회며, 예산날치기며, 정당이며, 지금 임명되는 모든 정부 관리들이며, 과연 얼마나 많이 다를까? 동양의 어느 나라 여당이 꿈꾸는 나라는 서방 정토의 어느 나라에 실재다

정치문화라는 것, 한순간에 “훅” 갈 수 있다는 것… 선악의 이분법이 되어가는 정치문화의 종착역은 어딜까?

한국은 개헌이 국민투표 절차가 필요하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야하는 건가? 하지만 버블이 다음 정권 즈음에 터지는 순간 어디로 갈지 진심으로 모르겠다.
p.s. :
서비스로, 위에서 언급된 조빅당(반 집시, 반 유대주의에다가 심지어 준군사조직까지 갖추고 있다)의 청년단체 조직 사진 하나. 이에 비하면 친박연대는 애들 장난이다.

p.p.s. :
참고로 2006년 지난 헝가리 총선에서 제1당은 사회당(MSZP, 190석), 피데스당(FIDESZ, 164석), 조빅당(JOBBIK)은 의석이 없었다. 그게 2010년 총선에서 사회당(-131석), 피데스(+99석), 조빅(+47)의 결과.

또 참고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대체 인권이며 입헌주의며 전통의 유럽연합 집행부는 뭘하고 있는 거였나요? 라고 묻는다면, 당시 헝가리가 순회의장국이었다고 한다 -_-;; 유럽연합, 더 높은 수준의 정치결사체로 빨리 가지 않으면 정말 막장으로 치닫겠다. 동북아시아만 문제가 많은게 아니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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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1:21-27

21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21-27 (개역개정)

21Therefore, get rid of all moral filth and the evil that is so prevalent and humbly accept the word planted in you, which can save you.

22Do not merely listen to the word, and so deceive yourselves. Do what it says. 23 Those who listen to the word but do not do what it says are like people who look at their faces in a mirror 24 and, after looking at themselves, go away and immediately forget what they look like. 25 But those who look intently into the perfect law that gives freedom, and continue in it—not forgetting what they have heard, but doing it—they will be blessed in what they do.

26Those who consider themselves religious and yet do not keep a tight rein on their tongues deceive themselves, and their religion is worthless. 27Religion that God our Father accepts as pure and faultless is this: to look after orphans and widows in their distress and to keep oneself from being polluted by the world.

James 1:21-27 (NIV)

“거울로 자기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 당시 거울은 동으로 만들어 희미하게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 이미지를 상상해서, 나를 돌아보면, 숨이 탁 막힌다.

“듣는 사람”(아크로아타이),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자”(드레스코스), 폐부를 찌른다. 기실 이렇게 타이프 치는 손에 재갈을 물리지 않은 것 아닌가.

큰 눈이 온다고 해서 새벽에 실험실에 왔다. 어서 정리하고 돌아가서 들어야할 때.

공부는 끝이 없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의 말을 읊던 사람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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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untry is not a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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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회사가 아니다

사업하고자 계획하는 대학생들은 대개 경제학을 전공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강의때 들은 것을 현장에서 이용하게 되리라고 믿지 않는다. 이 학생들은 근본적인 진실을 이해하고 있다: 경제학 수업들에서 배우는 내용은 사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역 또한 진실이다: 경영을 통해 배우는 것은 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가는 큰 기업이 아니다. 훌륭한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사고방식은, 일반적으로, 훌륭한 경제 분석가에게 요구되는 사고방식과 일치하지 않는다. 십억불을 벌어들이는 기업가가 6조불의 경제에 대한 조언을 구할 적합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라는 것이다.

왜 이 점을 지적해야할까? 기업가들이나 경제학자들이나 대개 매우 훌륭한 시인은 아니지 않는가? 그게 뭐 어쨌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기업가들을 차치하고도, 큰 돈을 번 사람들은 전체 국가를 더 부유하게 만들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간주한다. 사실, 이들이 하는 조언들은 대개 매우 심각하게 잘못된 조언들이다.

내가 기업가들이 멍청이라거나 경제학자들이 특별히 똑똑하다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만약 상위 100명의 기업가들과 상위 100명의 경제학자들을 모아놓은다면, 그들 중 가장 낮은 순위의 기업가들조차 가장 인상적인 경제학자들을 압도할 것이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경제 분석에 필요한 사고방식이 기업을 성공하게끔 하는 사고방식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이 차이점을 이해하고나서야, 좋은 경제분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고, 잠재력을 갖고 있는 기업가들이 훌륭한 경제학자가 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기업가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두 가지 예로 시작해보자: 먼저, 수출과 일자리 창출과의 관계가 첫째고, 둘째로 외자유치와 무역 수지와의 관계다. 두 문제 모두 국제무역와 관련된 것은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이기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국제무역이야말로 기업가들이 국가와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기업과 기업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쉽게 실수하는 분야이기때문이다.

수출과 일자리

기업가들은 국제무역과 국내 일자리 창출사이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점을 일관되게 오해한다. 첫째로, 미국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자유무역을 지지하기에, 국제무역이 증진되면 세계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데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최근에 합의된(역주: 우루과이 라운드에 따른 WTO체제성립을 뜻하는 듯) GATT체제 같은 자유무역협정들이 전세계 고용을 증진시킨다고 믿는다. 둘째로, 기업가들은 국가들이 이렇게 창출된 일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한다고 믿는다. 이 생각을 따라가면, 미국이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것이고, 반대로 수입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관점에 따르면 미국은 자유무역을 해야할 뿐만 아니라, 이 자유무역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창출된 일자리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춰야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들이 합리적으로 보이는가? 물론 그래보인다. 이 미사여구들은 지난 미 대선을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다음 대선에도 들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이 전세계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든가 (또는 자유무역의 이익이 일자리창출의 관점에서 나온다거나), 매우 성공적인 수출국가들이 무역적자에 놓인 국가들보다 낮은 실업률을 달성할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믿지 않는다.

왜 경제학자들은 기업가들이 보기에는 상식적인 생각들에 동의하지 않는가? 자유무역이 국제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은 명백해보인다: 무역이 증진된다는 것은 더 많은 수출이, 따라서 더 많은 수출과 관련된 일자리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한 국가의 수출은 다른 국가의 수입이기때문에, 수출로 번 돈은, 단순한 산술적 필요에 의해, 어떤 국가가 국내의 재화를 사는 대신에 수입에 돈을 쓴 양과 일치해야한다. 자유무역이 전세계 지출을 늘릴 것이라는 어떤 이유를 들지 않는 이상 – 그런 조건은 항상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 전세계 수요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위와 같이 산술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진실 너머에 보다 근본적인 질문, 전체적인 일자리를 제한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혹시 재화에 대해 불충분한 수요의 문제가 아닐까? 아주 단기적인 효과를 제외하곤, 분명히 아니다. 사실, 이렇게 수요를 증가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연방 준비은행(역주: 미국의 중앙은행)은 원하는만큼 돈을 찍어낼 수 있기때문에, 준비은행이 원할 때 경기 부양을 시킬 능력이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그렇다면 왜 준비은행은 항상 경제를 호황상태로 유지시키지 않을까? 왜냐하면 만약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 즉 너무 많은 일자리를 만들려고 한다면 —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들을 초래하고, 나아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여러가지 정당한 이유로 믿고 있기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에서 일자리수를 제한하는 것은 미국 경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수요 – 그것이 수출로든 또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 가 제한되기 때문이 아니라, 연방준비은행이 생각하기에 인플레이션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미국 경제가 필요로 하는 실업률이다.

이 점은 단지 가설이 아니다. 1994년동안, 연방준비은행은 7차례에 걸쳐서 이자율을 높였다. 그 공공연한 이유가 바로 경기 호황이 너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경기를 과열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 걱정했기때문에 경기를 냉각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점이 무역이 고용상황에 미치는 영향에 의미하는 바를 고려해보자. 미국 경제가 큰 수출 증가를 경험한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미국이, 중국이 2000억불어치의 미국 상품을 산다는 조건으로 노예노동에 대한 반대를 거둬들인다고 해보자. 연방준비은행은 어떻게 할까? 연방준비은행은 수출로 인한 경기팽창효과를 이자율을 올림으로써 제어하려고 들 것이다; 즉 수출과 관련된 일자리 증가는 크든 작든 이자율에 민감한 경제분야, 이를테면 건설업같은 분야의 고용 감소와 일치할 것이다. 반대로, 수입이 크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준비은행은 이자율을 삭감하는 것으로 대응할텐데, 그럼으로써 수입품과 경쟁해서 잃는 일자리는 대충 다른 경제분야의 일자리 증가와 일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이 전세계 수출액을 증가시키는 딱 그만큼 항상 수입액도 늘릴 것이라는 점을 무시하더라도, 자유무역이 미국 고용을 증진시킨다거나, 다른 제반 무역 정책, 이를테면 수출 진흥이 우리 경제의 총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미 상무부 장관이 외국을 돌아다니며 미국 회사들을 위해 수십억불어치의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해도, 그가 수출관련 일자리를 늘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설사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대강 비슷한 수의 다른 경제부문의 일자리를 줄이는데도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즉, 미국 경제가 수출을 증가시키거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식의 논리는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할 때 별로 효과가 없다. (내가 참석했던 기업 논의장에서 NAFTA가 미국 총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더니, 나와 함께 있던, NAFTA를 지지하는 논의자는 “이런 식의 말을 하니 왜 사람들이 경제학자들을 미워하는지 알만하군요!”라고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늘어난 수출 또는 줄어든 수입으로 얻은 일자리 증가는 눈에 보이는데 비해서 – 외국인들이 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수입상품과 경쟁때문에 폐업한 공장들의 노동자를 떠올려봐라 –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다른 효과들을 추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방 준비은행이 전체 미국 경제의 총고용에 대한 목표치와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수출입의 변화가 총고용에는 별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결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투자와 무역수지

두번째 예, 해외투자와 무역수지는 기업가들에게 똑같이 어려운 문제다. 수백 개의 다국적 기업들이 한 국가가 제조업 공장을 세우기에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연간 수십억불에 달하는 돈을 투자해서 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해보자. 이 국가의 무역수지는 어떻게 될까? 기업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이 국가가 무역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이 국가가 큰 무역수지 적자를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경제학자들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업가들의 답변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추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경영하는 회사를 생각하며, 사업들의 생산능력이 갑자기 확대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묻는다. 당연히 이 회사들은 덜 수입(지출)하고 더 많이 수출(생산)할 것이다. 같은 식의 일이 여러 산업부문에서 일어난다면, 경제 전체적으로 무역 흑자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경제학자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왜냐? 왜냐하면 무역수지라는 것이 전체 국제수지의 일부이고, 한 국가의 전체 국제수지 – 외국에 판매한 총액과 외국으로부터 사온 총액의 차이 – 가 항상 0이어야하기 때문이다[1] 물론, 국가가 무역수지 적자나 흑자를 기록하는 것은 가능하다. 즉, 한 국가가 상품을 판 액수보다 더 많은 상품을 사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인한 불균형은 항상 자본계정에 대응하는 불균형으로 맞춰야한다. 무역수지 적자에 놓인 국가는 자신이 외국에서 취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산을 팔고 있어야한다;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는 해외에서 순채권국이어야한다.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차를 구입한다면, 미국은 그 반대로 무언가를 팔아야한다; 그것이 보잉사 제트기일 수도 있지만, 또한 록펠러 센터일 수도 있고, 사실은, 재무성 채권을 판다. 이건 단순히 경제학자들이 갖고 있는 의견이 아니다; 이건 회계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결론인 것이다.

자, 그렇다면 큰 외자유치가 이뤄진 국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본이 유입되므로, 외국인들은 그 국가 주민들이 해외에서 취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산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바로 단지 회계상의 이유로, 그 국가의 수입액이 동시에 수출액보다 많아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큰 외자유입이 이뤄지는 나라는 반드시 무역수지 적자가 일어나야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회계일뿐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회사들이 공장을 지으면, 이들은 일부 수입제품들을 구입할 것이다. 투자 유입은 국내 호황을 야기할 수 있고, 이는 수입수요를 늘릴 수도 있다. 만약 그 국가가 변동환율제하에 있다면, 외자유입은 환율하락을 불러올 것이다; 만약 고정환율제라면, 그 결과는 물가상승으로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시나리오라도 그 효과는 수출시장에서 그 상품가격을 높이고 수입액을 증가시킬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무역수지에 대한 결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본유입은 무역수지 적자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최근 역사를 살펴보자. 1980년대에, 아무도 멕시코에 투자하는 이들이 없었고, 멕시코는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1989년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멕시코의 미래 전망을 높게 사고 큰 투자를 했다. 투자한 그 돈 중 일부는 멕시코에 세워진 새 공장을 위한 기자재를 수입하는데 쓰였다. 나머지는 국내 호황을 야기해 수입액을 증가시켰고 또한 페소화가 절상되도록 만들었다. 이 때문에 수출이 억제되고 많은 멕시코인들로 하여금 수입품을 사도록 부추켰다. 그 결과, 엄청난 외자유입은 거의 비슷한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를 낳은 것이다.

바로 그 이후 1994년 12월 페소화 위기가 왔다. 다시 한 번, 외국인 투자자들은 멕시코로부터 탈출했고, 이제 이야기는 정반대가 되었다. 불황은 수입감소로 이어졌고, 평가절하된 페소 또한 수입액 감소를 불러왔다. 한 편, 멕시코 수출은 증가해 약한 경제를 도왔다. 그 어떤 경제학자도 예상했겠듯이, 멕시코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 규모붕괴와 거의 비슷한 규모의, 멕시코 무역 수지 흑자가 이어졌다.

수출증진이 고용증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는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다는 말도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별로 인기있는 말이 아니다. 외국인 투자가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지는 각 가능성들은 이들에게는 의문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진짜 투자자들이 받은 돈으로 그만큼 수입기자재들을 살까? 어떻게 환율이 절상될지 알며,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출액이 감소하고 수입액이 증가하는 것이 얼마나 확실한 일인가? 기업가들의 의심의 근저에는, 자본유입은 반드시 — 그럴지도 모른다가 아니다 — 무역수지 적자를 수반해야한다는 회계 원리에 대한 몰이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위 예들에서 모두, 경제학자들이 옳고 기업가들이 틀리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왜 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설득력있는 논리들이 기업가들에게는 매우 일어나기 힘들거나 심지어 반직관적으로 보이는걸까?

이 물음에는 두 가지 답을 할 수 있다. 피상적으로 답하자면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기반하고 있는 원리들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아도 기업가들이 기업 경영을 할 수 있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좀더 깊이있는 답은 개별 사업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되먹임들이 경제 전체적으로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되먹임보다 정도도 약하고 또 종류도 다르다는 것이다. 두 가지 답들을 차례로 분석해보자.

마비된 지네의 비유

때때로, 아주 성공한 기업가가 그가 배운 바에 대해 책을 쓴다. 그 중 일부는 회고록이다: 제 자신이 겪은 것들을 통해 자신의 직업 성공 이야기를 하는 책들. 하지만 더 나아가 이 대단한 사람의 성공의 원리를 일반화하려는 대담한 시도들도 있다.

거의 예외없이, 첫번째 종류의 책이 두번째보다, 책 판매뿐만 아니라 비평가들의 평가라는 관점에서도 더 성공적이다. 왜냐? 왜냐하면 기업 지도자는 기업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개발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성공한, 특정한 상품전략이나 조직혁신을 찾아냄으로써 성공하기때문이다. 일부 큰 업적을 이룬 기업가들이 자신들이 아는 것들을 원리로 정리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지만, 이런 시도들은 거의 항상 실망스러웠다. 조지 소로스의 책은 독자들에게 어떻게 또다른 조지 소로스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워린 버핏은, 실제에 있어서는, 이른바 워린 버핏 투자법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사실, 성공적인 금융가는 금융시장의 일반 원리를 알아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특정한, 매우 개별적인 기회들을 포착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다.

나아가 현실에선 성공적인 사업가들이 종종 자신들이 하는 일들을 공식화하고 몇 가지 원리들로 정리하면서부터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성공적인 경영방식, 그 틀에 맞춰 행동하기 시작하는데, 기실 이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것은 (틀에 박히지 않은) 육감과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였기 때문이다. 마치 오래된 우화와 같다. 지네에게 어떻게 그 100개에 달하는 다리들의 움직임을 다 통제하냐는 질문을 하자, 지네가 이를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다시는 제대로 다리들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얘기 말이다.

허나 사람들 중에는, 기업가들이 일반 이론들을 정립하거나 그가 하는 일들을 설명하는데 능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들이 갖고 있는 능력 – 기회를 포착하고 사업이 직면한 도전들을 해결하는 능력은 국가 경제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미국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잘 정리된 논설이 아니라 바로 다음 뭘 해야할지에 대한 건전한 조언이 아닌가? 그 사업에 있어 일관되게 좋은 판단을 내린 사람이 대통령에게 국가 경영에 대해 좋은 조언을 주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가? 있다. 짧게 말하면, 국가는 큰 기업이 아니기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제일 큰 대기업과 국가경제 사이에 놓인 복잡성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경제는 1억 2천만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에서 제일 큰 고용기업, 제너럴 모터스(GM)의 200배에 달하는 규모다. 허나 이 200 대 1이라는 비율도 제일 큰 대기업과 국가 경제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모자라다. 수학자라면 큰 집단에서 가능한 수의 상호작용은 그 집단의 구성원의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할 것이다. 너무 신비주의적으로 갈 필요는 없지만, 미국 경제가 제일 큰 기업보다 어떤 의미에서 수백배가 아니라 수만배 더 복잡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심지어 초거대기업들도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특정 경쟁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한 기술이라든지, 특정 종류의 시장에 대한 특정한 접근법이라든지가 그런 예다. 이 때문에 거대기업들이 거느리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도 어떤 특정한 주제가 관통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국 경제는, 거대기업집단에서 보자면 궁극의 악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만 가지 완벽히 다른 사업, 분야들이 단지 국경선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묶여있기때문이다. 밀농사를 짓는 농부의 성공기가 컴퓨터산업에 적용되는데 도움이 될리 만무할뿐더러, 또 이 컴퓨터산업의 성공적인 전략은 아마도 요식업에 적용되기 힘들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복잡한 경제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단 말인가? 답은, 국가경제는 특정한 전략들이 아니라, 일반 원리들에 기초해서 운영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제문제를 살펴보자. 제대로된 정부라면 특정 개인들이나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매기거나 면세혜택을 주지 않는다. 대신에, 좋은 세제는 수년간에 걸쳐 재정 전문가가 개발한 일반적인 원리를 따라 수립된다 – 예를 들어, 대체 투자들 사이에 중립성(neutrality between alternative investment)라든지, 낮은 한계세율, 현재 소비와 미래 소비 사이에 최소한의 차별 등을 들 수 있다.

이게 왜 기업가들에게 문제란 말인가? 결과적으로 보자면 제대로된 기업경영에도 많은 일반원리들이 있지 않던가: 일관된 회계기준, 명확한 책임소재, 등등 말이다. 허나 많은 기업가들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상대적으로 방임적인, 현명한 경제 정책가의 역할을 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기업 경영가는 혁신적이어야한다. 기업가의 역할을 맡았던 사람에게 있어 국가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데 이런 혁신성이 얼마나 더 어렵고 — 또 불필요한지 — 깨닫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특정 산업을 진흥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제대로 된 기업수장이라면 회사의 미래에 꼭 필요한 사업분야를 찾는데 열심일 것이다; 기업수장이 투자결정을 개별 이익을 내는 사업부문의 관리자들에게 맡겨버린다면 그는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특정 산업목록을 정해 적극적으로 진흥해야할까? 경제학자들이 산업정책에 대한 이론적 비판들을 차치하고라도, 정부들이 중요산업을 결정하는데 얼마나 무능했는지 과거 역사가 증명해준다. 여러 시기에, 정부들은 철강, 원자력, 합성연료, 반도체 기억소자, 그리고 5세대 컴퓨터산업이 (역자주: 미국의) 미래의 유망한 산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물론, 기업들도 실수를 하지만, 평균적인 정부만큼 맞추는 확률이 낮진 않다. 훌륭한 기업가들은 자신이 속한 산업에 대해 잘 알고, 감각을 갖고 있기때문이다. 허나 이런 지식과 감각은 국가경제만큼 복잡한 체계에서는 그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더라도 갖기 힘든 능력이다. 정부가 특정 산업의 기업가만큼 선구안을 갖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여전히, 가장 좋은 경제 관리란 거의 항상 좋은 틀을 수립하고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라는 생각은 기업가들에게는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본능은 로스 페로(역주: 미국의 유명한 기업가)가 잘 정리한 바가 있다: “보닛(hood)를 열고 엔진을 고쳐야하지 않겠는가?”

학교로 돌아가기

과학계에서, “석학병”이라는 신드롬은 유명한 연구자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분야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하는데, 이를테면 화학자가 의학 전문가 행세를 한다거나 물리학자가 인지과학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똑같은 신드롬은 경제자문가로 발탁된 몇몇 기업가들에게도 명백하다: 이들은, 새 분야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려면 학교에 돌아가야한다, 즉 다시 공부해야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경제가 운영되어야할 일반원리들은 사업에 적용되는 원리들과 다르다. 더 이해하는 게 어렵다는 게 아니라, 다르다. 기업회계에 능숙한 기업가는 자동적으로 국가 수입계정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아는 게 아니다. 국가 수입계정은 기업과는 다른 것을 측정하고 다른 개념을 쓴다. 인력관리와 노동법은 같은 것이 아니다; 기업 재무 관리와 통화정책도 마찬가지로 다른 것이다. 기업가가 국가경제관리자 또는 전문가가 되고자 한다면 새로운 용어들과 개념들을 익혀야하고, 그들 중 일부는 필연적으로 수학적이다.

이 점은, 기업가들, 특별히 매우 성공적이었던 사업가들이 받아들이 어려운 점이다. 복잡다단한 한 산업에 정통하고, 이 산업에서 수십억불 규모의 기업을 운영했던 사람을 상상해보라. 경제정책에 대해 자문을 부탁받을 법한 이런 사람이 1학년 경제학 수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다시 복기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아니면 경제학자들이 쓰는 생소한 단어들과 개념들이 단지 젠체 하려는 학술용어며 기업 경영 경험만으로도 경제자문을 하는 데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겠는가?

당연히, 내가 앞에 제시한 예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은 후자가 더 그럴 법한 반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 경제분석이 기업경영과 다른 개념들,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요구한단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효과적인 기업경영에 요구되는 사고방식과 경제분석를 가르는 더 깊은 차이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사업전략 과 경제분석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것이다: 가장 큰 사업이라할지라도 그 환경이 개방형 시스템이라면, 점점 커지는 세계무역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큰 틀에서 폐쇄형 시스템이기때문이다. 기업가들은 경제학자들보다 폐쇄형 시스템에 대해 사고하는 데 익숙하지가 않다.

여기 폐쇄형 시스템과 개방형 시스템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몇 가지 경제 바깥 예들을 제시하고자한다. 이를테면 고형폐기물을 들어보자. 매년, 평균적인 미국인은 약 500kg에 달하는, 재활용하거나 태워없앨 수 없는 쓰레기를 만든다. 그 쓰레기는 어디로 가나? 많은 지자체의 경우, 딴데로 실어보낸다. 내가 사는 동네의 경우 모든 주민들은 사립 폐기물처리 서비스를 이용해야하며, 지자체 자체 매립지는 없다. 따라서 이 폐기물 처리업체는 우리가 내는 수수료 중 일부를 매립지를 보유한 다른 지자체에 내고 우리가 쓰레기를 그 매립지에 버릴 수 있는 권리를 사야한다. 그 뜻은 내가 사는 동네 주민은 매립지가 구비된 다른 동네보다 쓰레기 처리 수수료가 높을 것이라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 지자체 정부가 선택한 것이다: 그 권역에 보기 불쾌한 매립지를 갖는 대신에 돈을 더 내겠다는 결정 말이다.

개별 마을에 있어서, 그건 선택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미국의 모든 시와 군이 같은 선택을 한다면? 우리가 이 쓰레기를 어딘가 딴 데로 보내버리기로 결정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쓰레기를 제3세계로 수출하지 않는 이상). 미국 전체로 보자면, 문자 그대로 “들어간 쓰레기만큼 나온다”라는 원칙은 성립한다. 국가 전체로 보자면 폐기물을 어디에 묻을지 결정할 수 있지만, 폐기물을 묻을지 말지를 결정할 순 없다. 즉, 폐기물처리 입장에서 보자면, 각 마을들은 개방형 시스템일지 몰라도 미국 전체로는 폐쇄형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든 예는 상당히 명백한 예다. 여기에 또 다른, 아마 덜 명백한 예를 들어보자. 일전에 나는 “주차 후 대중교통 이용(park-and-ride)” 출퇴근객이었다: 매일 아침, 나는 큰 주차장까지 운전해서 간 다음, 거기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 중심으로 출근했다. 불행히도, 이 주차장은 충분히 크지 않았다. 항상 꽉 차버려서 늦게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일터까지 운전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내가 약 8시 15분 전에만 도착한다면 항상 주차 공간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내 알아냈다.

이 경우, 출퇴근하는 각각의 개인은 개방형 시스템에 놓여있다: 그는 일찍 출근함으로써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허나, 출퇴근자 집단 전부를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주차공간을 얻기 위해 일찍 주차장에 온다면, 주차장은 더 빨리 찰 뿐이다! 집단으로서 출퇴근자들은, 적어도 주차문제에 한해서는 폐쇄형 시스템에 놓인 것이다.

이런 예들이 사업과 경제학 사이의 차이와 어떻게 연관된단 말인가? 사업은 — 심지어 매우 큰 기업들일지라도 — 일반적으로 개방형 시스템에 놓여있다. 이들은, 예를 들어 그들의 모든 사업부문에서 동시에 고용을 늘릴 수 있고; 투자를 동시에 늘릴 수 있으며, 모든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물론, 기업집단의 경계조정이 완전히 개방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알맞은 노동자들을 수월하게 끌어들이거나 충분한 자본을 끌어모을 수 없어서 기업확장에 애로사항을 겪을 수 있다. 기업수축은 이보다도 더 어려울 수 있다. 능력있는 고용인들을 해고하는 것은 망설일 것이기때문이다. 허나 몇 년에 걸쳐 시장점유율이 두 배가 되거나 반쪽이 나는 기업에 우리는 아무런 이상한 점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국가경제 — 특히 미국과 같이 엄청나게 큰 경제 — 는 폐쇄형 시스템이다. 미국 기업 전부가 향후 10년 안에 시장점유율을 두 배로 끌어올 수 있을까?[2] 아무리 그 기업경영이 향상된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그럴 수는 없다. 한 이유로, 세계 무역이 증가 일로에 있지만, 70% 이상의 미국 고용 부가가치는 판매업처럼 수출 또는 수입 경쟁과 관계가 없는 부문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산업들과 같은 경우, 미국회사 하나가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려면 다른 기업의 점유율을 끌어내려야한다.

세계 무역에 뛰어든 산업들의 경우, 미국 회사들 집단 전체로 보면 그 시장 점유율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이는 수출액을 증가시키거나 수입을 감소시킴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즉 시장 점유율의 증가는 무역 흑자를 가져올 것이고,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국가는 자본유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조금 계산해보면, 만약 평균적인 미국 회사가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5% 정도 끌어올린다면, 현재 순 자본수입국인 미국은 우리가 지금껏 보지 못한 규모의 자본수출국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게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면, 또한 미국 회사들이 아무리 경영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시장에서 총 점유율을 1-2% 이상 올릴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한다.

기업가들이 경제분석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이들이 개방형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는 데 익숙하기때문이다. 앞에서 든 두 가지 예로 돌아간다면, 기업가는 수출로 인해서 직접적으로 만들어진 일자리들을 보고 이야기에서 이 일자리증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더 높은 고용율이 더 높은 이자율을 부를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지 모르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고려사항으로 보일 것이다. 허나 경제학자들이 보기에는 고용이 폐쇄형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수출증가로 얻은 일자리들은, 마치 주차장에 일찍 도착해서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park-and-ride 출퇴근객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아서 얻은 것들이다.

무역수지에 외국 투자가 미치는 효과는 또 어떠한가? 기업가들은 외국투자에 의해 특정 산업부문에 미칠 직접적인 효과에 관심을 기울이지, 환율, 가격 등등에 대한 효과는 믿음직스럽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경제학자들은 허나 국제수지가 폐쇄형 시스템을 이룬다는 것을 안다: 자본유입은 항상 무역적자와 일치해서, 자본유입은 무역적자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영과 경제학에 있어서 되먹임(피드백)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왜 훌륭한 기업경영자가 경제학과 관련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왜 특정한 경제학적 아이디어가 다른 생각에 비해 인기가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다: 기업과 같이 개방형 시스템에 놓인 행위자는 경제와 같이 폐쇄형 시스템과 다른 피드백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이 개념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래와 같은 가상적이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다. 한 회사가 두 주요사업부문이 있다고 해보자: widget과 gizmo. 이 회사가 widget판매에서 예상치 못한 선전을 기록했다고 하자. 회사 전체에 미치는 판매증진 효과는 무엇인가? widget판매 향상이 gizmo사업에 도움이 될까 해가 될까? 많은 경우 답은 어떤 쪽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widget부문은 단순히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것이고, 회사 전체로는 더 많은 자본을 확충할 것이고, 그게 전부일 것이다.

물론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widget판매 증진은 gizmo사업에 몇 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쪽으로, 수익성 있는 widget사업은 gizmo사업 확장에 필요한 현금흐름을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부품사업에서 성공경험이 gizmo사업에도 적용될 수 있고, 또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R&D에 의해 두 부문이 다 혜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빠른 기업확장은 기업 내 자원 활용에 무리를 가져와 어느 정도 gizmo 사업부문의 희생의 대가로 widget사업부문으로 자원배분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허나 이런, 기업 내 한 부문의 성장이 간접적으로 다른 부문에 미치는 영향은 원리상으로도 불분명할뿐만 아니라 실제로 판단하기도 어렵다; 다른 사업들간 피드백은 그것이 시너지든 자원배분을 둘러싼 경쟁이든, 대개 불분명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주요 수출부문이 급속히 성장하는 국가경제를 고려해보자. 만약 이 부문이 고용을 늘린다면, 이는 다른 산업들의 희생을 대가로 하기 십상이다. 만약 이 나라가 자본유입을 줄이지 않는다면, 한 부문에서 일어난 수출증가는 다른 수출의 감소나, 또는 수입증가로 맞아떨어져야하는데,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회계상 수지균형을 이뤄야하기때문이다. 즉, 수출신장때문에 다른 산업부문의 고용과 수출에 매우 강한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이 일어나야한다. 사실, 이러한 음의 되먹임의 강도는 대략 총고용이나 무역수지향상 효과를 거의 지워버릴 수준이다. 왜? 고용과 수지는 폐쇄된 시스템을 이루기때문이다.

개방형 시스템인 산업계에서는, 되먹임은 항상 약하거나 거의 항상 불확실하다. 폐쇄형 시스템인 경제학의 세계에서는, 되먹임은 매우 강하고 매우 확실하다. 하지만 이게 차이의 전부는 아니다. 산업계에서 되먹임은 대개 양의 방향(positive)이다; 경제 정책의 세계에서 되먹임은 대개, 항상은 아니지만, 음의 방향(negative)으로 작용한다.

다시 한 번, 기업이 사업을 확장할 때 일어나는 결과와 국가경제의 그것과 비교해보자. 기업의 재무, 기술 또는 영업능력을 증진시키는 한 사업부문의 성공은 다른 사업부문 확장에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즉, 기업의 한 사업부문이 잘 나가면 다른 부문에서도 더 많은 인원을 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재화를 생산하고 파는 국가경제의 경우, 경제 분야 사이에 음의 되먹임이 일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 산업부문의 확장하면, 이는 다른 산업부문으로부터 자본과 노동력과 같은 자원을 뺏어간다.

사실, 경제학에서 양의 되먹임이 일어나는 예들이 있긴하다. 이런 예는 특정한 산업 내에서, 또는 연관된 산업들 — 특히 이 산업들이 지리적으로 집중되어 있다면 — 사이에서 대개 분명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 런던이 금융중심지로 부상한 것이나, 헐리웃이 연예중심지가 된 것은 양의 되먹임이 일어난 분명한 사례들이다. 그러나, 이런 예들은 대개 특정한 지역이나 산업들에 국한되어 있고, 국가 규모 수준의 경제에서는, 음의 되먹임이 일반적으로 더 강하다. 이런 식으로, 만약 특정한 산업 복합체만 놓고 본다면, 양의 되먹임이 일어나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경제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국부적인 양의 되먹임에 의한 효과는 다른 곳의 음의 되먹임들에 의한 효과를 넘어설 수 없다. 한 산업 또는 산업복합체로 끌어들인 추가 자원은 다른 곳, 즉 다른 산업들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가들은 강한 음의 되먹임이 작용하는 체계에 대한 개념에 익숙하지도 않고, 편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특히, 개개의 기업 관점에서는 그 효과가 미미하거나 불확실한 효과들 — 평균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수가 줄어든다든지 환율에 의해 외자가 증가한다든지 — 이 국가 경제 전체에 정책들을 적용할 때 누적되어 매우 중요한 효과들이 된다는 사실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통령은 뭘 해야하는가?

기업의 성공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필연적으로 — 그리고 옳은 일이기도 하다 — 재계 지도자들로부터 많은 문제들, 특별히 돈과 얽힌 문제들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전부는 조언을 구하는 쪽과 조언하는 쪽 모두가, 사업성공 경험이 경제정책을 세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에 대해 적절한 인식을 갖고 있으라는 것이다.

1930년, 전세계가 불황에 빠졌을 때, 은행가들은 금본위제를 지키는 정책조언을 했고 산업가들은 생산량 제한을 통해 가격을 올리는 정책을 지지했다. 이 때 John Maynard Keynes는 이런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보다 경제학적 분석에 따라 대규모 통화팽창을 통한 위기극복을 주장했다. “왜냐하면 —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 경제학은 기술적이고 어려운 학문이기때문입니다.”[2]

케인즈는 옳았다: 경제학은 어렵고 기술적인 학문이다. 좋은 경제학자가 되는 것은 좋은 기업가가 되는 것만큼 어렵다. (사실, 조금 더 쉬울 수는 있다. 경쟁이 기업가들의 만큼 치열하지는 않기때문에) 그러나, 경제학과 경영은 같은 주제가 아니고, 둘 중 하나에 통달했다고 다른 하나의 통달은커녕 이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기업가가 경제 전문가가 되는 것은 그가 군사전략가가 되는 것만큼 어렵다.

다음에 재계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 그들의 시각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 한 번 물어봐라. 이들이 이 주제에 대해 공부했을까? 전문가들이 쓴 얘기들을 읽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기업경영에서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아마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말들이 의미를 그들도 모를테니까.

[1] 여기에는 물론 두 가지 기술적인 예외가 있다. 하나는 “unrequited transfer”라고 불리는 것, 선물, 원조, 등등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 투자로 인한 이윤이나 이자지급이다. 두 가지 모두 말하고자 하는 요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2] 엄밀하게 말해서,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회사만으로 한정해야할 것이다. 미국 소재 기업이 외국 자회사들을 사들여서 세계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3] “1930년의 대공황”, Essays in Persuasion (New York: Norton, 1963)으로부터

0.

어쩔 수 없이 거의 매일 약 3-4시간 스크린이나 지면에 묶여있어야할 상황인데, 생산적인 일이 도저히 안 될 때 글을 읽곤한다. 최근에 그가 블로그에 언급한 13년 전 글을 접하고, 꽤 재밌는 내용인데 좀 찾아봐도 전문을 번역한 건 못 찾았다. (아마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번역해봤다.

1996년에 HBR에 쓴 크루그먼의 글이다. 제목으로 검색하면 바로 PDF를 구할 수 있으니 따로 링크를 걸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공부하는 분야가 아니므로 오역이 있을 것이고, 별로 매끄럽게 다듬을 시간도 없었으니, 좀 흥미가 생기신 분은 영문본(또는 어딘가 있을 국문본)을 보세요.

이 글을 보고, 모선배님의 다른 거시경제학자에 대한 평, “[...] Macroeconomist들에게서 종종 느껴지는 과도한 거만함이 예외없이 느껴져서…”라는 말을 곱씹는다. (그 거시경제학자의 글들도 종종 목격하지만, 느낌은 많이 다르기에)

아울러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쉘든을 좋아했다는 (참고로 난 이 씨리즈 좀 싫어한다) 얘기가 떠올랐다. 또 요즘 블로그에서 거의 주문처럼 외는 “liquidity trap”때문에 중앙은행의 능력이 역부족이라는 주장과 13년 전 미 중앙은행에 대한 평가가 오버랩됐고, 자본통제와 함께 중상주의적인 정책을 펼친다고 중국을 비난하는 글들이 떠올랐고 (중국만 그럴까?), 그의 경제지리학책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흠… 아마 이 번역한 이유도 무엇보다 그 이유일 것이다. 물론 경제자문의 문제가 아니지만.

p.s. : 전에 번역한 내용도 있었지만, 공개적으로 번역을 올리는 게 가능한 글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잘 살피시기를. (퍼가시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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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dow Scholar

http://chronicle.com/article/article-content/125329/

“From my experience, three demographic groups seek out my services: the English-as-second-language student; the hopelessly deficient student; and the lazy rich kid.”

이 곳에 와서, 아주 조금, 아주 뒤늦게 깨달은 것들은, 내가 한국대학에 입학하고서도 한참 뒤에서야 조금 느낀 것들이다. 차마 깨달았다고 말하기 부끄럽다. 다만 남들보다 좀더 수월했기때문에, 그런 딜레마들에 덜 걸렸을 뿐이다. 고개를 조금 숙일 줄 알게 될 때 즈음 되니 졸업할 때가 되어버렸다.

지금 타자를 치고 있으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럽다. 기억은 꼬리, 꼬리를 물고, …

실험이나 해야겠다. 어쩌면 진짜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공부를 시작해서, 무저갱에서 조금은 구원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과연 제대로 된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몹시 두려울 뿐이다. 그렇더라도 탐할 것 하나 없다는 것, 또 새기고 새겨야겠다.

허나 이러고 있을 시간에야말로, 적어도 가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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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imothy 6:3-10

0.5

옛날에 피츠버그를 들려 선배님을 뵙고 도심 야경을 보기 위해 언덕에 올라갔다. 야경은 장관이었다. 그 때 선배님께서 한 유리건물을 가리키셨는데 보니 많이 익숙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 건물이 맞다고 하셨다. 말인즉슨, 이 건물의 exact replica로 건축(설계)을 의뢰받았으니, 표절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얘기였다. 아마 건축가는 편했을 것이라고. 옛날에 그렸던 설계도면 그대로 써먹고도 일값을 받을테니.

사실 한국, 성내동의 그 건물은 뇌리에서 잘 잊혀지지 않는다. 그 건물이 접한 길을 따라 차를 타고 가면서 같이 가던 분께서 그 건물을 지은 사람처럼, 그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때문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또는 어려서 뭘 몰라서, 몇 마디 질문을 했었다. 건물의 높이가, 사람의 숫자가 아무런 척도도 될 수 없다는 금언을, 바로 옆 “부흥”하는 단체를 마주하며 매일매일 되새김질했을 법한 모임의 한 선생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 꽤 큰 충격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를 듣지못할만큼 크지도, 해결에 함께하지 못할만큼 작지도 않다”는 작은 구호가 담긴 간판이 있었다. 십몇년이 지나 내가 미국에 갈 때즈음, 내릴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바로 그 맘 때 즈음 내가 소속됐던 그 작은 모임도 드디어 ‘건축’을 시작했다.

뒷북이지만 어제 오늘 아래 본문을 읽으면서 윗글과, 그리고 옛날 생각들이 생각났다.
===

3If anyone teaches false doctrines and does not agree to the sound instruc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and to godly teaching,
4he is conceited and understands nothing. He has an unhealthy interest in controversies and quarrels about words that result in envy, strife, malicious talk, evil suspicions
5and constant friction between men of corrupt mind, who have been robbed of the truth and who think that godliness is a means to financial gain.
6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7For we brought nothing into the world, and we can take nothing out of it.
8But if we have food and clothing, we will be content with that. 9People who want to get rich fall into temptation and a trap and into many foolish and harmful desires that plunge men into ruin and destruction.
10For the love of money is a root of all kinds of evil. Some people, eager for money, have wandered from the faith and pierced themselves with many griefs.

3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4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그러 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7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 Timothy 6:3-10

p.s. : 이것 또한 교만이 되지 않기를. 하지만 마음이 아파와 기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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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bthumping, Chumbawamba

이런 음악이었다. 마지막 말대로, 실패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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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Orwell vs Aldous Huxley

http://www.recombinantrecords.net/docs/2009-05-Amusing-Ourselves-to-Death.html

사실, 둘 다 존재하는 세상이다.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에 따라.

Amusing Ourselves to Death by Stuart McMi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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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eep deprivation and recovery

여러가지 이유로 그로기가 되어서 한 주를 날리고 있는데 우연히 찾아보다가 이 몰아서 잠자기와 관련된 기사를 발견했다.

수험생을 비롯해서 밤샘을 밥먹듯이 하는 공대생+엔지니어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닐까 싶어 scrap한다. 그러고보면 예전 회사 다닐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밤 안 새던 회사 선배님이 멋있었다 – 배경설명으로, 내가 첫 출근한 날, 아침에 담배피는 회사선배들 만났는데 이미 며칠 밤샌 분들도 계셨음. fab-in날짜에 떨었던 기억에 갑자기 식은땀이…
http://www.nytimes.com/2009/11/03/health/03real.html
요지: 잠 제대로 못 자고 (3-5시간) 나면 골골하다. 그거 하루 늦잠잔다고 회복 안 된다. 일주일이 지나도 졸리지 않는데도 performance가 예전같지 않다(2003, 2008). 하지만 만약 잠 제대로 못 자기 전에 잠을 좀 많이 자놓으면 (10시간~) performance회복속도가 빨랐다(2009). 2009년 논문의 age group은 18-39세였는데, 어린 나이일수록 performance로 봤을 때와 “졸린 것을 인식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니까 어린 나이에 잠 덜 자면 객관적 performance는 떨어지는데, 정작 주관적으로 느끼는 졸림은 덜할 수 있다는 얘기. 2009년 논문을 급히 읽어보니, PER3를 비롯한 유전적인 차이로 인해 “밤샘”에 취약한 정도가 다른 결과들 중에 최소한 일부는 이전 잠습관이라든지에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아마 앞으로 그런 genetic epidemiology study도 나올 듯.

기사에서 인용된 논문은 pubmed에서 검색할 수 있다. (우리나라 언론도 이런 reference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무슨 리빙센스 기사말고…) 2008년 논문은 여기 인데 지금 학교 바깥이어서 접속에 어려움이…

[1] http://www.ncbi.nlm.nih.gov/pubmed/12603781 2003년 논문
[2] http://www.ncbi.nlm.nih.gov/pubmed/18533328 2008년 논문
[3] http://www.ncbi.nlm.nih.gov/pubmed/19294951 2009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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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목마르다.

아무도, 정말 아무도 없는 실험실, 빌딩에서 들리는 건 타자 소리밖에 없다.

타국생활하면서 사회생활의 범위가 무척 좁아졌다만, 그건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는 소수자들(외국인, 금주자, 직업상 반경1km 밖으로 못 움직이는 자 all above)에겐 매한가지의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감사히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셔틀을 놓쳐버렸다. 그냥 놓아버린다. 어차피 못 갈 것이었어.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기에, 이런 고독(?)은 별로 큰 일이 안 된다. 그저 제 식대로 즐기면 되는 노릇.

타국땅에 와서 어렴풋이 깨달은 건, 내 한 구석 내 안에 침잠하고 몰아치는 것을 못 견디는 뭔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들을 목격하고,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것이 요란한 소리든, 아니면 조용한 소리든, 이야기, 그런 것에 목마른 맘이 가끔 준동한다.

허나 남은 건 플라스크들과, 젤과, DNA와, 책들이다. 그저 책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귀기울이는 수밖에.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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