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파시즘의 정의

종종 정독하는 역사학자 Bret Devereaux의 블로그에서 글 번역해봅니다. 기계의 도움을 받은 거친 초벌번역이니,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하신 분들은 위의 링크를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대선 1주일 남았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될 분들이 있다면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자에게 허락을 받았습니다)


오늘 한 번 파시즘의 정의를 살펴보고, 이런 질문을 해보려고 합니다 – 짐작하셨겠지만 – 과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후보가 파시스트냐란 질문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업 정치 평론가로 전향하겠단 선언도 아니고, 이 블로그 휴지기가 끝났단 소리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글은 제가 쓰고 싶었던 에세이이고, 지금 이 포럼 외에는 다른 곳에서 이걸 공개할 시간이 없었기에 여기에 발표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도널드 트럼프의 최근 공언들과 공약들때문에 시의성이 많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정치학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인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공약한 것을 실행하려 시도합니다 – 그리고 트럼프가 현재 공공연하게 공약하는 것들은 실로 암울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분석하려는 질문의 요지를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저는 미국 공화당이 파시즘당인지 묻는 것이 아니며 (대체로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당신이 파시스트인지 논하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당신이 그렇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파시즘이라는 이념을 통상 사용하는 용례 (‘내가 싫어하는 것’)보다 더 정밀하게 사용하여, 그 맥락에서, 도널드 트럼프 본인의 발언과 행동을 놓고 볼 때 그가 파시스트의 정의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게 단순한 슬로건이나 단문 형식의 구호를 넘어서서, 세부사항까지 검토한 긴 글 형식으로 말입니다.

당장 일부 사람들은 제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에 대해 분노하고 “네 바닥에 나오지 말아라”라고 요구할 것이란 것을 압니다. 이에 대해 저는 투키디데스의 말, 역사와 역사가의 목적이란 “미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과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며, 인간사에서 미래는 과거를 반영하지 않더라도 닮을 수밖에 없다” (투키디데스 1.22.4)을 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 바닥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세금 정책이나 장기적인 국가간 전략의 역사적 함의를 논하고 싶지만, 지금 치르고 있는 이 선거는 그런 부분이 쟁점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과거 이런 류의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듣는 것이 거북하고 듣기 싫다면, 폴리비우스의 답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간에게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에 대한 지식이다”(폴리비우스 1.1.1).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교정해야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Reichstag_fire

1933년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일반적인 대화에서 사우론 암흑군주와 같은 수준의 악의 대명사가 되었기에, 인간사와 우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탈신비화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악당의 모습으로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후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많은 징후가 있었지만, 그들은 뿔달린 괴물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마법사가 아닌 인간이었기에, 사람들이 왜 그토록 어리석게도 이들에게 권력을 맡겼는지 –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관련자들이 파멸에 이르렀는지 – 물어보는 것이 가치가 있습니다.

전간기 독일(즉, 바이마르 독일)의 정치는 복잡하고 불안정했으며, 이것을 모두 논의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것입니다. 제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몇 가지 사항입니다. 첫째, 히틀러가 결코 유권자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포퓰리스트 권위주의자들에게 흔한 일입니다 – 항상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통상 자신들의 지지자들만을 대변할 뿐이며, 이들은 거의 항상 과반에 미달하는 집단입니다. NSDAP(즉, 나치당)는 1932년 7월 선거에서 37%의 득표율을 얻었을 뿐이고, 11월 선거에서는 33%로 득표율이 떨어졌습니다. 두 선거 모두에서 나치당의 득표율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공화파 중도 정당들(사민당SPD + 중앙당; 7월 34%, 11월 32.3%)과 비슷했고, 좌파의 총합(사민당SPD + 공산당KPD, 비록 KPD는 모스크바의 지시에 따라 나치당 대신 SPD를 견제하는데 집중했지만)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1933년 3월, 나치 돌격대원들이 거리에서 정치적 반대자들을 공격하고 반대파 신문들을 폐쇄하고 있을 때조차도, 나치는 겨우 43.9%의 득표율을 얻었을 뿐입니다.1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인들의 과반수가 그의 목표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요 지도자들, 특히 프란츠 폰 파펜이 히틀러의 끔찍한 수사들을 잘 다스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자들 때려잡는 곤봉으로요. 나치당이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933년 초기에 그들은 극단적인 수사들을 좀 자제하는 모양새를 취했는데, 특별히 히틀러의 총리 지명을 위해 재계 지도자들과 협상하며 반기업적 수사를 죽였습니다. 반유대주의적 수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지만, 독일의 군주제지지 보수우파(폰 파펜은 ‘자유주의 보수주의자‘가 아닌 반反민주주의적, 반反공화주의자였습니다)가 참고 같이 갈 수 있는 수준까지 목소리를 죽였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죠.

편한 핑계가 생기자마자 – 2월 제국의회 의사당 화재, 의회 회기가 아니었기때문에 정부 기능엔 아무런 영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던 사건이었지만, 이걸 기화로 히틀러는 먼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설득하여 제국의회 화재 칙령을 통과시켰고, 이를 통해 주요 정치적 자유를 중단함으로써 야당을 탄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칙령을 통해 KPD(독일공산당)와 SPD(사회민주당) 의원들을 많이 잡아가뒀습니다. 그 다음 1933년 3월 수권법을 제안하죠. 많은 야당의원들이 투옥된 상태에서, 통과를 위해선 보수 우파 가톨릭 중앙당의 지지만 있으면 되었습니다. 그는 중앙당의 존속 보장과, 가톨릭의 종교적 자유 보호, 자당 소속 공무원 직위 보장, 그리고 무엇보다 수권법은 비상한 상황에만 적용되는, 한시적인 법안이라는 점을 약속해서 법안 통과를 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그것도 거짓말이었습니다.

3개월 내에 모든 정치 정당들 – 그러한 보장을 받았던 중앙당을 포함하여 – 이 해산됐습니다. 첫 강제수용소는 그보다 빠른 3월에 설립했고요. 물론 ‘임시’ 조치들은 모두 영구화되었고, 일단 적들을 숙청한 후에는 그의 동맹자들도 숙청하기 시작했죠.

그보다 10년 전 벌어진 무솔리니의 권력 장악 과정은 물론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를 공유합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들의 집권 전까지 선거에서 성공적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이 참여했던 국민블록(Blocco Nazionale) 연합은 1921년 선거에서 겨우 19%의 득표율을 얻었을 뿐입니다. 대신, 1922년 10월, 무솔리니는 3만 명의 파시스트 무뢰배들과 함께 수도로 행진하여 정부 해산을 요구했을 때 당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부는 국왕(이탈리아는 당시 입헌군주제였습니다)에게 이 행진 해산 승인요청을 했지만, 빅토르 엠마누엘 3세 국왕은 파시스트들을 통제할 수 있고, 질서 회복과 사회주의자들 단속에 유용할 것이라고 믿어 이를 거부했고, 되려 무솔리니에게 정부 구성권을 줍니다.

이에 무솔리니는 의회에 자신에게 독재권력을 부여하는 법안 통과를 요구했습니다 – 딱 1년만이죠, 딱 1년만 전권을 주면 그 다음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집권한 후에 무솔리니는 자신의 파시스트 폭력배들인 검은셔츠단(Squadristi)의 폭력을 묵인했습니다. 자코모 마테오티(역주: 당대 이탈리아 사회주의 정치인)가 이 폭력을 고발했을 때, 그는 납치, 살해당했습니다. 무솔리니의 검은셔츠단에 대한 지지는 이들이 활개치며 반대파에게 폭력을 휘둘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테오티 살인자 중 세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무솔리니는 빅토르 엠마누엘 3세가 즉시 이들을 사면하도록 했습니다2. 폭력과 협박에 힘입어 다음 달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당이 선거에 압도적 승리를 보장하는 선거 제도 개정안, 아체르보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선거법안 통과를 위해 폭력과 협박을 동원했죠. 1925년 12월에 이르면, 무솔리니는 사실상 이탈리아의 민주주의 체제를 해체했고, 자신의 지위에 권력을 집중시키고 자신을 제거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두 가지 핵심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파시스트들은 다른 적(주로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하여 파시스트들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순진함 때문에만 권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보수 정치인들(미치 매코넬이나 린지 그레이엄 같은 유형)과 보수적인 기업 지도자들(일론 머스크 같은 이들)은 장래의 폭군이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고, 교육받지 못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러한 인물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통제할 수 있고, 더 ‘온건한’, 더 ‘기업 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리고 틀렸죠. 많은 이들이 자기의 어리석음에 목숨을 대가로 내놓아야했습니다(빅토르 엠마누엘 3세는 그의 왕좌로 대가를 치렀습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지도자가 되면서 폭군으로 변한게 아닙니다 – 처음부터 약속했던대로, 폭력적인 독재자가 되었고 – 그들의 나라를 완전하고 철저한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이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전혀 은밀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투쟁』은 대놓고 그런 소릴 하는 책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추종자들에게는 폭력을 약속하면서도 잠시 동맹을 맺는 이들에게는 말을 돌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권력만 주면 아무도 해치지 않겠다고(당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약속하는 파시스트를 경계하십시오 – 왜냐하면 그것은 물론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일단 이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들을 막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파시스트들이 민주적 절차와 법치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 그들은 집권 전에 이미 공개적으로 그렇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 일단 권력을 잡으면, 그들은 정부의 모든 권력을 자신들을 권력에 유지시키는 기구로 전환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하여 민주주의에서 독재로의 전환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22년 10월에 행진했고, 23년 11월에 선거법을 뜯어고쳤으며, 24년 12월에 이르러선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허울조차 버렸습니다. 딱 2년이 걸렸습니다. 히틀러는 더 빨랐죠: 1933년 1월에 총리로 임명되었고, 그해 3월까지 헌법상의 보호를 중단하고 아무런 근거없이 통치했습니다. 단 3개월에 일어난 일입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권위주의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순간은 권위주의자가 집권하기 **전**입니다. 일단 집권하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하고, 상당한 수준의 폭력 없이는 (그리고 상당한 폭력을 동원해도) 이들을 권좌에서 내리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바로 이 점때문에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됩니다. 대부분의 정치이념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결과로 판단하는 전략을 채택할 수 있습니다: “현 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한번 기회를 주고 그들이 더 잘하는지 두고보자. 만약 시원치 않으면, 다음에 다시 투표로 물러나게 하면 된다.” 하지만 파시스트와 다른 권위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다음 기회란게 없을 수 있기에 이 전략이 실패합니다: 파시스트들의 행동이 그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분명히 할 때쯤이면, 그들을 투표로 물러나게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시스트들이 말하는 것과 그들이 약속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고, 무엇보다 정치적 폭력과 권위주의에 대한 그들의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우파가 파시즘이란건 아닙니다 (좌파의 모든 것이 권위주의적 변형인 공산주의인 것이 아닌 것처럼요). 로널드 레이건은 파시스트가 아니었고, 조지 H.W. 부시나 조지 W. 부시, 존 매케인이나 밋 롬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자유주의 전통 내의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여기서 ‘자유주의’는 옛 제퍼슨-로크-워싱턴의 의미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은 파시스트가 아니지만, 걱정스러운 수의 사람들이 파시스트들과의 동맹을 통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프란츠 폰 파펜의 실수를 반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악마의 거래에서 승리하는 것은 오직 악마뿐입니다.

어떻게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시행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들을 들으시고, 그들이 한쪽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쪽 입으로는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한 청중에게는 폭력을 약속하고 다른 청중에게는 그들의 수사를 누그러뜨립니다. 하지만 자유의 전통 안에서 말하는 정치인들은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초에 폭력을 약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약속, 언론의 자유 중단 약속, 정치적 적들을 박해하겠다는 약속에 귀 기울이고, 그런 소리 하는 것들을 들을 때 정말 그럴 것이라고 믿으십시오.

https://en.wikipedia.org/wiki/March_on_Rome

자, 이제 우리의 주요 질문에 대해 논할 시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무엇을 약속하고 있으며 그는 파시스트입니까?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물론 전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가장 오래 재직한 비서실장(그리고 은퇴한 해병대 장군)인 존 켈리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트럼프의 정책이 시행되는 것을 보기 위해 일했고 아마도 그 중 많은 것에 동의했을 것입니다만, 도널드 트럼프가 파시스트이며 “확실히 독재자적 접근방식을 선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다른 전직 트럼프 보좌관들도 공감하는 입장이며, 트럼프의 전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턴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다만 볼턴은 트럼프가 진정한 파시스트가 되기에는 너무 우매愚昧하다고 덧붙였습니다(참고로 더 영리한 사람들이 무솔리니와 히틀러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었습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트럼프가 직접 선택한 국방장관으로 일한 제임스 매티스(역시 은퇴한 해병대 장군)는 그를 “우리 헌법을 조롱하는 자”라고 묘사했습니다. 그의 다음 국방장관인 마크 에스퍼도 이에 동의하며, 파시스트의 정의를 찾아보면 “트럼프가 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시절 합참의장이었던 마크 밀리는 그를 “뿌리 끝까지 파시스트”라고 묘사했습니다. 트럼프가 직접 선택한 전 부통령은 그를 지지하기를 거부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1월 6일에 제가 행사한 헌법상의 의무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트럼프가 펜스에게 선거를 훔치라고 요구했고 펜스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을 공손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실제로, 전례 없이 많은 수의 도널드 트럼프의 가장 가까운, 직접 선택한 보좌관들과 조언자들이 그를 지지하기를 거부했으며, 많은 이들이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위험하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습니다. 그 어떤 대통령에게 있어서도 그토록 가까운 참모나 관료가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트럼프의 참모들 중 거의 절반이 그렇게 거부했습니다.

물론, 남들이 하는 말을 어찌 믿겠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직접 선택한 사람들, 도널드 트럼프와 긴밀히 일한 사람들이라도요. 자, 도널드 트럼프 자신과 아마도 그가 선택한 부통령후보 J.D. 밴스가 한 말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해봅시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입니까?

정의가 필요하겠죠. 파시스트란 무엇인가. 이 정의가 의미가 있으려면 파시즘은 “내가 싫어하는 정치”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여러 정의가 있지만, 우리는 영어 사전의 간단한 정의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a populist political philosophy, movement, or regime (such as that of the Fascisti) that exalts nation and often race above the individual, that is associated with a centralized autocratic government headed by a dictatorial leader, and that is characterized by severe economic and social regimentation and by forcible suppression of opposition

"(1) 국가와 종종 인종을 개인 위에 높이는 포퓰리스트적 정치 철학, 운동 또는 체제(파시스티와 같은)로, (2) 독재적 지도자가 이끄는 중앙집권적 독재 정부와 연관되며, (3) 엄격한 경제적·사회적 통제와 (4) 반대파의 강제 진압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우리는 트럼프의 수사와 그의 약속들을 이러한 관점들에 비추어 평가할 수 있습니다:

  1. 국가와 종종 인종을 개인 위에 높임

-> 해당됨

  1. 독재적 지도자가 이끄는 중앙집권적 독재 정부와 연관됨

-> 해당됨

  1. 엄격한 경제적·사회적 통제

-> 해당됨

  1. 반대파의 강제 진압

-> 해당됨(Check)

자, 이를 통해 볼 때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입니까? 본인이 한 말로 판단하자면, 그렇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당신에게 도널드 트럼프가 파시스트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 그리고 거의 다른 어떤 점에서도 아닌 – 도널드 트럼프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에 제게 도널드 트럼프가 파시스트인지 물었다면, 저는 아니라고 했을 것임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20년 10월에도 아니라고 했을 것입니다. 권위주의적 성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파시스트는 아니라고 했을 것입니다.5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수사는 변했고, 그것도 모든 차원에서 그를 확실히 이 범주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파시스트가 되었고, 그가 우리에게 그것에 대해 말할 때 – 우리는 그를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전적 정의는 너무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이 사용할 만한 더 신중하고 자세한 정의가 있어서, 그것을 기준으로 이데올로기로서의 트럼프주의가 파시스트인지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트럼프주의는 파시즘의 한 형태인가?

그리고 실제로 그런 정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파시즘의 분류법은 움베르토 에코가 그의 에세이 “원류 파시즘”에서 제시한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학자들이 좋아하는 대부분의 것들처럼, 이것은 복잡하고 약간 모호합니다. 에코는 파시즘이 반지성적이고 근본적으로 감정적(합리적이기보다는)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모호한’ 집합이며 쉽게 분류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에코가 지적하듯이, 파시즘이라는 집합은 “abc bcd cde def”와 같은 시리즈와 비슷한데, 여기서 모든 요소들이 분명히 하나의 종류를 이루지만 현실에선 핵심 요소들이 이리저리 재조합되어 있어 파시즘을 이루는 분명한 필수조합을 식별하기는 대개 쉽지 않습니다.

자, 독자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모호한 정의가 싫으시면, 위로 스크롤해서 트럼프의 수사들을 훨씬 더 딱딱한 정의에 견주어 어떤지 보시면 됩니다.

어쨌든 이러한 모호성때문에 에코는 단일 정의 대신 14개의 요점을 제안하는데, 이것들이 집합적으로 파시즘의 ‘유형 집단’을 구성합니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파시즘으로 인정되기 위해 모든 요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더 많은 기준을 충족할수록 그 정의에 더 확실히 부합합니다. 마찬가지로, 개별 요점들도 모호하거나 경계선상에 있을 수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누적된 적합성입니다 – 결국, 대부분의 이데올로기들은 이러한 속성들을 사실상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속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몇 가지 더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실제로 그 틀에 꽤 잘 맞습니다. 우리는 파시즘/비파시즘의 경계선을 어디에 그을지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지만, 먼저 그 기준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유는 곧 분명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단순히 ‘트럼프’ 자신만이 아니라(그것은 위에서 다뤘습니다), 그를 둘러싸고 형성된 이데올로기인 트럼프주의, 그의 운동을 말합니다. 트럼프 자신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아무도 혼자서는 통치할 수 없습니다 – 그는 행정부를 구성해야 할 것이며(그리고 그는 확실히 기존의 공화당원들로는 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입니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트럼프와 그의 동맹자들을 움직이는 이데올로기, 예를 들어 헤리티지 재단이 수천 개의 이력서를 검토할 때 찾고 있던 종류의 세계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내 목표는 외부인들이 트럼프주의를 어떻게 보는지가 아니라, 트럼프와 그의 (현재) 측근들이 자신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기반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을 그들이 스스로 한 말을 통해 이해하려고 합니다.

  1. 전통의 숭배, 특히 이상화된 과거의 다양한 반복을, 심지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들조차도 결합하는 혼합주의적 전통주의. 트럼프주의의 핵심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분명히 향수적이면서도 혼합주의적입니다 – 미국이 언제 위대했는지, 어떻게 그곳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기 때문에6, 청취자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집단을 제거하거나 원하는 변화를 되돌리는 것을 스스로 채워넣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전환점이 세계화와 깨어있음이었나요(터커 칼슨의 주장처럼), 아니면 미국의 ‘기독교 정체성’ 상실이었나요(많은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혹은 여성 참정권이었나요(J.D. 밴스의 후원자인 피터 틸의 주장처럼), 아니면 자녀 없는 고양이 아줌마들이었나요(J.D. 밴스 자신의 주장처럼), 아니면 실제로 독립선언서의 아이디어였나요(트럼프주의 지식인 패트릭 디닌의 주장처럼). 에코가 지적하듯이, 그 혼합주의적 구조는 파시즘에서는 정상적인 것입니다(반면 다른 전통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은 종종 덜 혼합주의적이고 어떤 전통을 따르는지에 대해 더 구체적입니다). 해당됨(Check).
  2. 근대성의 거부, 특히 에코의 생각으로는 “계몽주의, 이성의 시대를 거부하는 것… 이는 근대적 타락의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위 단락의 예시들을 쉽게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 여성 참정권을 한탄하고, 현대 국제 무역과 현대 문화(‘깨어있음’이든 단순히 미혼이고 자녀가 없는 여성들의 존재든)를 한탄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성 거부는 트럼프주의의 지적 분파에서 ‘반자유주의적’ 또는 ‘탈자유주의적’ 움직임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 에이드리언버뫼울 Adrian Vermeule, 커티스 야빈Curvis Yarvin (J.D. 밴스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인물들; 밴스는 자신을 “탈자유주의자“라고 묘사했습니다)과 이미 언급한 패트릭 디닌Patrick Deneen과 로드 드레허Rod Dreher (현재 탈자유주의적 헝가리에서 자발적 망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드레허는 J.D. 밴스를 긍정적으로 “미국의 오르반주의“를 대표한다고 묘사하는데, 이는 공공연히 반자유주의적 권위주의 헝가리의 통치자(역주: 다음 글 참고)를 가리킵니다) 같은 사상가들 말입니다. 이 사상가들에게 있어서, 미국의 실험이 잘못된 시점은 FDR의 뉴딜이나 오바마의 대통령직이 아니라, 건국 당시, 심지어 건국 이전입니다: 문제는 자유주의 자체였습니다. 존 로크가 주창하고 우리의 건국 문서에 담긴 개인의 자유라는 이상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주장은 트럼프의 유세 연설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 않지만, 자신을 지식인으로 여기고 공공연히 탈자유주의자인 J.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것은 트럼프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이 요소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해당됨(Check).
  3. 행동을 위한 행동의 숭배, 이는 에코에게 있어 실제로는 지성주의, 사고나 고려의 거부, 전문가, 지식인, 대학에 대한 경멸을 의미합니다: 생각하며 주저하지 말고 그저 결행하라, 그리고 사고하는 자들을 증오하라. 여기서 물론 우리는 트럼프가 자신의 “직감”을 자신의 조언자들보다 더 신뢰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구의 두뇌보다도” 더 신뢰한다고 말이죠. 또한 그가 팬데믹 동안 자신의 전문가들과 다투는 습관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J.D. 밴스가 “대학들이 적”이라고 선언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해당됨(Check).
  4. 반대는 곧 반역. 이는 도널드 트럼프란 개인에 대한 우려로 거부하는 Charlie Sykes, Mitt Romney, David French, Liz Cheney, Dick Cheney, Jonah Goldberg, Bill Kristol, Adam Kinzinger 등과 같은, 이 문제 말고는 가장 완고하고 원칙적 보수주의자들을 이 운동이 대우하는 방식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피즘이 내부의 반대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당에서 쫓겨나거나 보수지(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와 같은)에서 추방되었습니다7. 현 시점에서 트럼프 집권 때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는 매우 보수적인 공화당원으로 남아있고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집회보다 해리스 집회에서 더 따뜻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리즈 체니는 해리스와 마주 앉아 해리스후보와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트럼프는 자신을 결국 지지한 니키 헤일리와도 선거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해당됨(Check).
  5. 차이에 대한 두려움. 이는 버락 오바마가 외국에서 태어났다는 거짓 주장으로 시작하여, “무슬림 금지” 약속으로 발전했고, 아이티 이민자들에 대한 거짓말과 이민이 “우리 나라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이는 비전통적인 성별 표현에 대해 깊은 적대감을 보이는 운동이며, 물론 이는 더 많은 미국인의 가족 패턴이 자신의 것과 같아야 한다는 밴스의 신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해당됨(Check).
  6. 좌절된 중산층에 대한 호소. 이는 전체 운동에서 가장 잘 기록된 부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들이 보여주듯이, 트럼프와 트럼피즘의 핵심 지지층은 반드시 가장 가난한 미국인들이 아니라, “뒤처진 지역의 엘리트… 잘 살지 못하는 지역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지위의 부재가 아닌 지위 상실을 두려워하는 유권자들로, 이는 보트 퍼레이드와 다른 값비싼 정치적 헌신의 과시에서 드러납니다. J.D. 밴스는 “포퓰리스트이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 이러한 호소에 대해 매우 명시적이며, 중산층의 좌절감의 원인이 자유무역과 이민이라고 주장합니다8. 해당됨(Check).
  7. 음모에 대한 집착. 트럼프의 초기 부상에서 큐어넌의 두드러진 존재감과, 이후 이를 대체한 2020년 ‘도둑맞은’ 선거에 대한 근거 없는 음모론을 고려하면 이 또한 쉽게 확인됩니다. 후자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퍼뜨리고 있으며, 이는 그의 핵심 측근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음모론적 사고는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이 우크라이나의 비밀 서버에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과, 물론 오바마의 시민권에 대한 출생지(birther) 음모론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때로는 이러한 음모론들이 트럼프에 의해 공개적으로 홍보되고, 때로는 그를 중심으로 응집되지만, 이는 이전에 좌파 성향이었던 음모론조차 트럼프의 이데올로기 진영으로 쏠리게 되는 “괴짜 재정렬“을 만들어낼 정도로 항상 존재합니다. 해당됨(Check).
  8. 영원한 적의 상상할 수 없는 강함/약함. 이는 복잡한 개념이지만, 파시즘은 동시에 너무 강한(따라서 파시스트 강자의 힘으로 물리쳐야 하고, 그들의 지속적인 존재는 지속적인 동원과 권위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는) 동시에 퇴폐적이고 약한 ‘적’을 만들어냅니다: 나치는 유대인들이 인종적으로 열등하고, 약하고, 비겁하다고 보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세계의 가장 강력한 모든 국가들을 비밀리에 통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피즘에서 이의 가장 명확한 버전은 ‘딥스테이트'(때로는 ‘늪지’)입니다. 이는 트럼프가 물리쳐야할 만큼 강력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당선을 막을 만큼 강력하지 않은 존재로 묘사됩니다. 또는 정부 관료, 학계, 언론인들의 혼합체로 자주 규정되는 ‘워크이즘’과 ‘급진 좌파’일 수도 있습니다(커티스 야빈 – J.D. 밴스가 인정한 영향을 준 인물 – 은 이를 “대성당”이라고 부르고 언론인들과 학계로 정의합니다)9.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기만적으로 강하면서도 약한 적은 그저 모호한 “그들“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만들어진 적은… 실제로 그저 유대인들입니다. 해당됨(Check).
  9. 삶은 영구적인 전쟁. 에코가 말했듯이, “삶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투쟁을 위해 삶을 사는 것”입니다. 특히 트럼피즘이 외부 정복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에 이를 파악하기는 더 어렵지만(살라자르(역주: 포르투갈의 독재자)와 프랑코(역주: 스페인의 독재자)를 보면 이는 실격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이 모티프는 트럼프의 “우리는 너무 많이 승리해서, 여러분이 승리에 지칠 수도 있고, ‘승리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니다, 우리는 계속 승리해야 하고, 더 많이 승리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라는 말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더 넓게 보면, 2016년 트럼프의 승리와 4년간의 대통령직이 해결하기로 했던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지 않습니다. 결국 2020년에도 장벽은 건설되지 않았고, 늪지는 배수되지 않았지만 (역주: 워싱턴 기득권층의 부패는 일소되지 않았지만), 이는 실패의 징후가 아니라 더 많은 투쟁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트럼프의 수사 – “우리는 지옥에 갈 것처럼 싸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지옥처럼 싸우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나라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는 정치를 투쟁으로 규정합니다(물론 많은 정치적 수사가 이렇게 합니다만, 이는 제게 짜증나는 일입니다). 더 넓게 보면, 트럼피즘이 본질적으로 놀랄 만큼 다양성을 지닌 국가에서 현대성과 다원주의 사회의 힘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사실상 모호한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투쟁을 요구합니다. 해당됨(Check).
  10. 약자에 대한 경멸. 도널드 트럼프는 장애가 있는 기자들을 좋아하지 않고, 포로가 된 군인들을 좋아하지 않으며, 부상당한 군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의 연설은 대신 강함을 보여줄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의 반대자들을 약하다고 공격합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자신이 매우 똑똑하다(‘정신적으로 강하다’고 할 수 있죠)고 주장하면서, 그의 반대자들은 ‘낮은 IQ‘(‘정신적으로 약하다’)를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반영하듯, 그의 지지자들은 나이 들고 다소 비만인 트럼프를 실제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날씬한 문자 그대로의 강자로 묘사하는 엄청난 양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더 넓게 보면, 이는 연민에 대한 파시스트적 경멸 – 약자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태되어야 한다 – 로 이어져 난민 대우, 외국 원조가 “어리석다”는 믿음, 그리고 일반적으로 미국이 어떤 국가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또는 도널드 트럼프)이 구체적인 이익을 받을 때만 그 국가를 돕는 거래적인 외교 정책 비전으로 확장됩니다. 해당됨(Check).
  11. 영웅주의 숭배. 이는 아마도 14개 항목 중 가장 덜 발달된 요소이지만, 여기에서도 우리는 예시가 없지 않습니다. 카일 리텐하우스Kyle Rittenhouse를 영웅적 인물로 격상시킨 것(전 대통령과의 만남과 청년 지향 보수/트럼프주의 조직인 터닝-포인트 USA의 강연 투어 포함)이 명확한 예시로 보입니다. 하지만 훨씬 더 강력한 예시는 1월 6일 ‘정치범들’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신화입니다. 트럼프는 국회의사당 내부에서 장벽을 돌파하려다 총에 맞은 애슐리 배빗Ashley Babbit을 칭찬하고, 체포되어 범죄 혐의로 기소된 이들을 “전사들”, “양심수들”, “믿을 수 없는 애국자들”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J6 교도소 합창단”과 함께 “모두를 위한 정의“라는 제목의 “성조기”를 녹음했고, 이를 일부 집회의 오프닝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는 1923년의 실패한 나치 쿠데타인 ‘뮌헨 맥주홀 폭동‘이 나치 신화에서 신성한 사건이 되어, 신입 대원들이 폭동 때 들고 다녔던 깃발인 블루트파네(혈기)를 만져야 했던 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해당됨(Check).
  12. 남성다움(마치스모), 에코가 지적했듯이 이는 “여성에 대한 경멸”과 “비표준적 성적 습관에 대한 비난” 모두를 포함합니다. 마치스모는 악명 높은 액세스 할리우드 녹음(“그들을 잡아…”)에서부터 여성들에 대한 긴 목록의 대상화하는 발언들, 그리고 물론 성희롱과 성폭행의 긴 역사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의 페르소나의 지속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의 행동 이상입니다. 이는 이데올로기의 일부입니다: 터커 칼슨은 최근 트럼프의 권력 복귀를 “아빠…그리고 그는 화가 났다”가 집에 와서 “네가 나쁜 어린 소녀였고 지금 강력한 체벌을 받게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으로 특징지었는데, 이는 단순히 이 비유를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트럼프 대통령직의 장점이 좋은 일을 할 것이라는 점이 아니라, 단지 칼슨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점이라는 것을 주목하세요). 칼슨은 2022년 “남성의 종말” 다큐멘터리처럼 이런 식의 발언을 계속해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밴스가 자녀가 없는 여성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한 발언들 –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더 사회병리적”이고 “가장 정신이 나가있고 가장 정신병적”이며, 폐경기 이후 여성의 전체 목적”은 손주를 키우는 것을 돕는 것이라는(밴스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동의한) 발언 등이 있습니다. 해당됨(Check).
  13. 선택적 포퓰리즘: 파시즘은 ‘인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일부 인민만을 대변하며 민주적이고 다수결 원칙을 따르는 시스템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대신 지도자가 공동의 의지를 전달하는데, 이는 실제 인민의 투표와 모순되더라도 인민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집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반복적으로 자신이 대다수의 – 종종 닉슨의 구절인 “침묵하는 다수“를 빌려와서 – 미국인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며, 그의 군중 규모를 강조하지만, 아직 한 번도 득표율에서 승리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근접하지도 못했습니다. 선거인단 74표와 일반투표 4.5% 차이로 2020년 선거에서 패배했음에도, 그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렇게 주장했고,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파시스트적 이념적 틀에서는 투표자가 아닌 지도자가 인민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작동하려면,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진정한 미국인’이 아닌 것으로 인민에서 제외되어야 하며,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들이 투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이는 트럼프와 연계된 헤리티지 재단이 메아리치고 있지만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물론 정치적 반대를 ‘진정한 애국자들’이 아닌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매우 기꺼이 하고 있습니다. 해당됨(Check).
  14. 뉴스피크, 에코는 이를 단어의 의미를 바꾸는 것, 종종 그것들을 뒤집는 것으로 식별하지만, 더 넓게 보면, 저는 에코가 여기서 오웰이 그의 유명한 구절에서 요약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은 당신에게 당신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은 증거를 거부하라고 말했다. 그것이 그들의 최종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명령이었다.” 따라서 1월 6일 폭동 참가자들은 “양심수(정치범)“이 되고, 174명의 경찰관이 부상당한 폭동 자체는 “사랑의 날“이 되며, 트럼프가 명백히 패배한 선거는 “도둑맞은 선거”가 되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그의 근소한 승리(일반투표에서는 패배했음에도)는 “압도적 승리“라고 묘사됩니다. 소박한 취임식 군중은 역대 최대 규모가 되고공식 사진들이 이에 맞춰 편집됩니다. 허리케인 도리안의 경로에 대한 잘못된 진술(알라바마를 강타할 것이라는)은 지도에 매직으로 수정을 가해서라도 ‘사실’이 되어야 했습니다. 해당됨(Check).

14개 항목 중 14개가 모두 해당됩니다. 일부는 다른 것들보다 더 명확하고 강한 정합성을 보이지만, 모든 요소가 상당한 정도로 존재합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이는 예를 들어 14개 중 10개나 12개를 충족하는 정권도 여전히 일반적으로 파시스트로 간주될 수 있는 종류의 분류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트럼피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준에서 트럼피즘은 14개 모두를 충족합니다.

따라서, 네, 이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스펙트럼 상에서 그것이 속한 곳을 사실의 문제로서 식별한다는 의미에서 파시스트로 정당하게 정의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입니다.

1932년

그러므로,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입니다. 그는 반대파에 대한 폭력적 탄압과 같은 파시스트적인 일들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트럼피즘’이라고 부른 그가 이끄는 이데올로기적 운동은 이 이데올로기의 가장 일반적인 분류법의 모든 점에서 부합하며 매우 분명하게 파시즘의 한 종류입니다.

이런 분석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먼저, 공화당 전체가 파시스트이거나 트럼프의 모든 지지자가 파시스트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합니다. 저는 공화당원이나 트럼프 지지자들 많이 알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의 성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왜 ‘코를 막고’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것을 고려하는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들의 거의 대부분은 이것이 마지막 라운드가 아닐 것이며, 4년 후에는 이러한 문제들, 이러한 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공화당원으로 트럼프를 교체할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들은 정책, 세율 등의 측면에서 다음 선거를 위한 입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그러한 사고방식에 대해 경고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았듯이, 그것이 파시즘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우리가 보여주었듯이,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 운동을 이끄는 파시스트 지도자입니다. 그의 첫 임기에서, 트럼프의 행정부는 지금 그의 진정한 본성에 대해 공화국에 필사적으로 경고하려 하고 있는 위에서 인용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고 제약받았습니다 – 그들은 두 번째 임기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트럼피스트 파시스트 운동의 일부인 헤리티지 재단은 지난 4년 동안 연방 공무원(정치적, 임의 임명직이 아닌)의 거대한 부분을 해고하고 트럼프의 충동이 그렇게 제약받지 않도록 현대 미국의 브라운셔츠들로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수천 개의 이력서를 검토하며 준비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대통령으로서, 트럼프는 – 그가 약속했듯이 – 1월 6일 폭동 참가자들을 사면하여 그의 폭력적인 거리 군인들을 다시 거리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는 사전에 검증된 브라운셔츠들로 채워진 법무부를 ‘반대’ 언론에 대항하도록 – 그가 위협했듯이 – 돌릴 수 있으며, 동시에 그를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소유주들의 플랫폼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그가 사면을 약속한)이 그의 정치적 라이벌들을 위협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묵인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의 정부는 불법 이민자들을 위한 거대한 구금 캠프를 설치하고 – 아마도 ‘우연히-의도적으로’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선호하는 집단들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원류-파시즘”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누군가가 세계 무대에 등장해서 ‘나는 아우슈비츠를 다시 열고 싶고, 검은 셔츠들이 다시 이탈리아 광장을 행진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면 우리에게는 훨씬 더 쉬울 것이다.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라고 경고한 것을 감안할 때 현재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실제로 지금, 우리가 보고 들을 눈과 귀만 있다면 트럼프주의는 정말 그렇게 단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해합니다. 사람들은 백주대낮에 그런 소릴 듣고, 믿고 싶어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이러한 시도가 필연적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미국 시스템은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이탈리아 왕국보다 이런 종류의 장악에 훨씬 더 회복탄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복탄력적이라는 것이 면역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 그러한 시도는 성공할 수 있으며, 설사 실패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결국, 파시스트들은 거의 폭력 없이 권력에서 물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 이 파시스트는 지난번에도 비폭력적으로 물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어느 시점에서든, 어느 누구에 의해서든 이것이 폭력으로 이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듯이, 반대파를 폭력으로 이기려고 함으로써 ‘스타시스'(정치적 폭력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 를 ‘이기려는’ 시도는 단지 사회 구조를 찢어놓을 뿐인 패배하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아직 1933년이 아닙니다. 아직은 1932년입니다: 기차가 아직 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파시스트의 권력으로 가는 길을 폭력 없이, 단지 투표로 막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나서 4년 후에 우리는 새로운 지도력의 새로운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 미국의 정치적 의견이 변화하는 방식을 고려하면 거의 확실히 새로운 보수적 지도력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정당이 어떻게 되어버렸는지에 경악한 보수주의자들을 위해, 저는 당신이 그토록 강하게 동의하지 않는 카멀라 해리스에게 투표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만큼이나 보수적인 동료 시민들이 트럼프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입장을 취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트럼프는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해 군대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해리스는 그녀의 내각에 공화당원들을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절대로 민주당원에게 투표할 수 없다면, 다른 이름을 적어 넣거나 투표용지 상단을 비워두세요. 하지만 이것에 당신의 이름을 서명하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그 시점부터, 당신은 외면하기로 선택할 수는 있지만, 당신이 몰랐다고는 결코 다시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10 그리고 지금 당신은 많은 이유와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만약 당신이 이 파시스트에게 당신의 이름을 서명하고 그 결과로 파시스트 정부가 권력을 잡게 된다면… 당신의 많은 이유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프란츠 폰 파펜이나 빅토르 엠마누엘 3세 또는 나치당이나 블로코 나치오날레 투표자들이 무엇을 걱정했는지 또는 그들의 중요한 이슈가 무엇이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파시스트 정부가 권력을 잡자… 그들은 파시스트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 대해 중요했던 전부였습니다.

당신에 대해 그것이 중요한 전부가 되도록 하지 마세요. 이 지난 세기에 우리가 최소한 무언가는 배웠으며 과거의 실수를 끝없이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세요.

  1. 물론 의원내각제 제도하에서, 과반 자체는 드문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33년 11월에 이르러 나치당이 다른 모든 당을 불법화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에 이르는 그 어떤 시점에서도 이들이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만합니다. 과반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일당독재의 길을 향해 갔습니다. ↩︎
  2. 덧붙여, 이 지점에서 ‘그놈이그놈’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가 1월 6일 폭동 가담자들을 사면하겠다는 약속과 민주당이 조지 플로이드 시위 중 폭력행위자들을 기소하기를 꺼리는 것이나 다 그게 그거다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의 문제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이든대통령은 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를 비난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폭력 시위자에 대한 기소를 중단하지 않았고 계속 조사하고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민주당 집권 주정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뉴욕의 민주당 시장, 밥 메넨데스 상원의원, 헨리 쿠엘라 하원의원, 그리고 물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을 포함하여 법을 어길 때 정치적 우군들을 기소할 의향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근거들을 보면 피장파장 논리는 무너집니다. 한 후보는 자신의 지지자들의 범죄를 사면하겠다고 약속하고, 다른 후보는 동등하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합니다. ↩︎
  3. 트럼프가 이민자들이 강력범죄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씁니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미국태생보다 이민자들이 훨씬 낮은 강력범죄율을 보여줍니다. 나치 혈통주의가 유태인들을 중상모략한 것처럼, 이런 인종주의 또한 거짓말에 근거해있습니다. ↩︎
  4. 여기서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라면, 이런 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 이 법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재판 없이 추방시키겠다는 것입니다. ↩︎
  5. 솔직히 말하자면, 제 평생 동안 도널드 트럼프를 제외한 어떤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도 파시스트나 공산주의자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시는 히틀러가 아니었고 (그의 외교 정책이 항상 좋지는 않았지만), 오바마는 스탈린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런 단어들을 쉽게 던지는 사람이 아니며, 그런 적도 없습니다. ↩︎
  6. 실제로, SNS에서 트럼프 지지하는 우익계정들 사이에서조차 대체 이 이상적인 과거란 것인 고대 로마였는지, 십자군전쟁시절이었는지, 1950년대였는지, 1980년대였는지, 1990년대였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습니다. 유일하게 이들이 동의하는 것은 그 이상이 현재가 아니라는 사실 뿐입니다. ↩︎
  7. 이를 해리스 바이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좌파들, 리버럴들, 심지어 반트럼프 공화당원들이 현재 민주연합에 속해있는 것과 비교해보십시오. ↩︎
  8. 이 점에 동의하는 경제학자들은 드뭅니다. ↩︎
  9. 야빈Yarvin의 글은 링크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아니면. 이 팟캐스트가 그의 이데올로기를 잘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
  10. William Wilberfor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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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사이비-사건)

이젠 아주 오래전 사건에 대한 뉴요커 기사를 발췌해서 번역해본 적이 있는데, 심너울작가의 기고를 보고 다시 생각나서 여기도 올려본다.

(전략) 문제는, 하지만, 이런 진지한 이슈들이 이런 식으로 제기되면, 이 논란을 피할 수가, 아니 어쩌면 논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Covington사건 같은 사건은 함정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최선의 이론틀을 제공한 사람은 Daniel Boorstin이다. 그는 1962년 저작 “The Image: A Guide to Pseudo-Events in America”에서, 인위적으로 보도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에 따르면 “사이비-사건”(pseudo-event)이란, 그 속성이 거의 오로지 보도되고 논쟁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어떠한 사건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상표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파티는 사이비-사건인데, 왜냐하면 그 파티는 오로지 보도되기 위해서 치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나가, Boorstin은 많은 진지하고 진정 흥미로운 언론보도들도 기실 유사-사건에 기대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예를 들어, 언론기자가 정부 관리에게 민감한 문제에 대해 질문해서 답변을 받고, 다른 관계자에게 같은 질문을 해서 다른 답을 받았다고 하자. 이제 이 두 정부관계자 사이의 불협화음을 보도할 수 있게 된다. 그 균열이라는 것이 기자가 질문한 것때문에 생긴 것일 뿐인데도, 그 차이나는 답변들때문에 이제 두 정부관계자 사이의 차이는 보도가치를 갖은 뉴스가 되는 것이다: 즉, 논의할 이슈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언론은 “최신 뉴스꺼리”를 끊임없이 제공해서 독자/시청자들의 시간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정치인은 사이비-사건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언론에 오르내릴 수 있는데 — 기자회견, 언론누설, 등등등 — 이 모두 보도가치가 있고 또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건들이다. 보도가치란, 사건 자체의 본질적 속성으로부터 비롯되지 않고 “흥미로운 방법으로 윤색하고 각색”할 줄 아는 사람이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들은 물론, 이런 식의 윤색과 각색을 부추기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시스템의 문제는, “사이비-사건들이 다른 사이비-사건들을 기하급수적으로 만들어낸다”라는데 있다고 Boorstin은 지적한다. 공화당의원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고 비난하면, 이건 사이비-사건이다. 오바마는 이제 해명을 할 수밖에 없는데 — 왜 이런 용어를 쓰지 않는지 설명함으로써, 이 사이비-사건의 타래에 하나의 연쇄를 더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사이비-사건들은 증식하고, 언론지형에 퍼져나가면서 진짜 사건들을 압도해버린다. 진짜 사건들은 좀더 지역적이고, 그렇게 극적이지 않기때문이다. Boorstin은 우리가 “정치”라고 말하는 세상의 대부분이 유사-사건으로 이뤄진 미래를 그린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북 치고 장구치면서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행태를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중요한 것 — 여론이기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비용을 지불한다: 우리의 주의가 특정 방향으로 인위적으로 몰리기때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략)

https://www.newyorker.com/culture/cultural-comment/what-the-covington-saga-reveals-about-our-media-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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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onundrum, though, is that, once serious questions are raised, it’s hard—and perhaps even wrong—not to debate them. It’s in this sense that episodes like Covington are a trap.”

우리의 주의력이야말로 소중한 자원인데, 마치 몇 년동안 우리의 몸을 숙주로 삼아 휩쓰는 바이러스처럼, 한국 미디어의 어떤 행태가 병처럼 휩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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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ten의 Written: 익명의 가장(假裝)사기꾼 갱생회 Impostors Anonymous

Witten의 Written: 익명의 가장(假裝)사기꾼 갱생회 Impostors Anonymous

2022년 11월 15일

객원편집자 Daniela Witten의 기고문입니다:

제가 “가면假面증후군(impostor syndrome)”이란 말을 들은건 대학원 2년차였을 때였습니다. 훌륭한 능력과 업적을 갖은 사람들이 자기 재능과 성취를 의심하고, 자신들이 사기치고 있단걸 결국 발각당할거란 두려움에 떨며 사는 증상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진 심리현상이죠 – 제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니 우리 학과에 숨넘어가게 똑똑한 통계학자들 중 대체 어떤 사람들이 자기 능력을 의심할 수 있단 말이야, 대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건가?!?라고 되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가면증후군에 시달린단 소린, 진실을 아는 제겐 정말 말도 안 되는 부조리극처럼 보였어요: 실로 다들 전부 완벽하게 준비된 척척박사들이고 똑똑한 척 하는 사기꾼은 나란 진실 말입니다.

네, 여러분, 제가 조교수 몇 년차 될 때까지 저야말로 어쩌면, 실로, 가면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른단 것을 깨닫지 못했어요. 솔직히 제가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차고도 넘치는 증거들에 맞서서 거의 30년동안 쉼없이 가면증후군을 유지한 그 정신적 곡예가 대단할 지경인데요, 왜냐하면 이런 상태를 유지하려면 (ㄱ) 문자 그대로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똑똑하면서, (ㄴ) 제 그 멍청한 능력으로 그 똑똑한 사람들에게 모두 사기치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믿어야 하는 상태였기 때문이죠. 복잡한 현상에 대한 가능한 가장 간결한 설명을 찾는 통계학자가, 당시 제 성공들에 대해 단순한 설명(내가 하는 일을 잘하고 있고,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보다, 복잡한 이유들(그 때 그 명예로운 상에 어쩌다 나만 후보로 지명되어서 수상한걸꺼야! 그 탑랭킹 저널에 빵꾸가 나서 내 논문을 채워넣은거야! 이 학과에 일하겠단 교수후보를 나말곤 도저히 못 찾았던거야!)을 만들어내고 있단 그 아이러니, 역설을 이젠 인정할 수 있습니다.

제 깨달음의 순간은 대학원생에게 격려차, 학생, 자네 대단히 능력이 뛰어난데, 아이쿠, 가면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을 때였어요. 네, 맞아요. 제가 가면증후군에 시달린단 사실을, 제가 다른 사람이 가면증후군에 시달린단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깨달은거에요. 정말이라니깐요!

제 가면증후군때문에 전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일했어요. 지금껏 제 성취들이 행운때문이나, 사기/약장수팔이때문이라면, 제 운수가 다하거나 사기친게 발각되기 전에 최대한 많이 성취해야했으니깐요! 제 가면증후군이 아니었다면 제 커리어 이른 시기에 같은 수준의 성공을 하지 못했을꺼라고 확신해요. 하지만, 가면증후군이 없었다면 훨씬 행복하고 아마 90% 정도 성공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어떤 정의의 “충분”으로라도, 그 정도면 충분했을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면증후군이 다른 식으로도 발현될 수 있다는 것 인정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이들은, 자기가 사기꾼이란 것 발각당할까봐 논문을 완성시키지 못할 수도 있죠)

해가 지나면서, 제 가장증후군이 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똑똑하다고 믿으면,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치를 갖게 될겁니다. 그런 기대치는 제가 지도하는 대학원생들이 모두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고 실로, 모두 똑똑합니다!), 항상 훌륭한 아이디어들을 내기를 기대하게 만드는데, 돌이켜보면 학자 커리어를 막 시작하는 이들에겐 분명히 말도 안 되고 비현실적인 기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실, 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높은 기대치야말로 다른 사람들이 가면증후군을 갖는데 기여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미안해요!!), 그렇게 다음 세대로 가면증후군이 지속되게 되는거겠죠. 제 생각에 소장 연구자들이 논문 리뷰어들 중 제일 논문평가가 짠편인 이유가 가면증후군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만약 당신 주변 사람들이 당신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느낀다면, 당신 주변 모든 사람들과 그 연구들에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을 갖게 되기 마련입니다 (앞서 말한 정신적 곡예들의 연장선이죠…)

전 다행히 제 커리어 내내 대우를 매우 잘 받았습니다만 (아마도 큰 부분 제 큰 특권때문이죠 [1]), 가끔, 돌이켜보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가 있었는데, 현재 제 안락한 위치에서 돌이켜봤을 때 쫌 웃기기까지 합니다. 이런저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를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종종 제게 물어요. 왜 그 당시 그 사람들의 행동거지가 대단히 부적절했단걸 단호하게 지적하지 않았냐고 말이죠. 그 답 또한 다시 가면 증후군에서 찾을 수 있어요: 누군가 스스로 그만큼 가치있지 않다고 믿는다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기가 그럴만하니 그런 취급받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거든요.

저는 현 학계 구조가 가면증후군을 지속시키고 있다고 믿습니다. 논문을 투고한다는게, 3명의 리뷰어와, 편집자와 편집장, 그리고 인터넷연결만 있으면 그 아무개라도 제 아이디어, 그리고 나아가 저 자신에 대해 무제한의 비판권을 주는 시스템이거든요. 논문 한 편 한 편이 모두 내 가면을 들춰내고 진실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되는겁니다.

더해, 학계 구조가 이런 가면증후군을 바탕으로 흥합니다: 연구자들이 자기 커리어 내내 줄기차게 일하도록 만들거든요 (심지어 테뉴어 받은 다음에도, 심지어 자기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불행히도, 이런 불안을 땔깜으로 한 노력들이 국소 최적점에 이르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개인에게든, 어떤 분과든 궁극의 최적점에 이르게 해주진 않습니다.

가면증후군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지만, 여성, 젊은이들, 그리고 역사적으로 배제당한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특별히 더 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가면증후군이 흔한지에 대해서 연구들이 일치하진 않습니다. 가끔 저는 제가 겉보기에는 크게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루하루 간신히 생존곡예비행하는 사람들의 일원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이런 모임을 가장(假裝)사기꾼 갱생회(역주: 알코올 중독자들의 자가 치료 모임인 익명의 알코올중독자 갱생회 Alcoholics Anonymous를 모사한 Impostor Anonymous)라고 하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들 만나보고 싶습니다!

제가 가면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안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증후군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 전 2022년 통계학회 회장단 위원회로부터 회장상(2022 Presidents’ Award from the Committee of Presidents of Statistical Societies)을 수상했습니다. 41세 이하 통계학자들에게 주는, 제가 받은 상들 중 최고로 영예로운 상입니다. 제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전 – 어이쿠! 나중에 내 연구가 그렇게 대단치 않단걸 발견하면 얼마나 끔찍할까! 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제 머릿속에 무슨 소리가 들리든간에, 이런 생각들을 죽이고, 제가 일군, 제 진짜 성취들에 이르기까지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만들어야했답니다.

다른 이들을 사랑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저는 능력있는 통계학자입니다. 이를 앎으로써 더 좋은 (그리고 더 행복한) 연구자, 스승, 친구, 그리고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충분하다고 말할 때, 언젠간 그게 맞다고 믿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Daniela Witten은 시애틀에서 남편과 세 자녀들과 살며, 항상, 하지만 아마도 지나친, 실패의 걱정 속에 살고 있습니다. @daniela_witten twitter계정에서 그녀의 통찰들을 공유합니다.

[1] 이 기고문의 의도에 대해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덧붙입니다: 제 커리어 내내 제 특권 덕분에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미래 기고문에서 이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닌 특권을 인정하는 것은 가면증후군의 징후가 아니며, 제 특권이 제 성취나 제 재능을 지워버리는 것 또한 아닙니다. 두 가지 모두 동시에 진실일 수 있습니다: 내 특권때문에 제 경력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것과, 제가 하는 일 잘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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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Shor의 미국 정치 종합이론 (Eric Levitz)

아래는 New York magazine (격주 잡지)의 일일 디지털 기사 섹션(Intelligencer)의 인터뷰 기사를 초벌번역해본 것이다. 선거인단제도나, 상원제도같이 미국 정치 특유의 맥락 속에서 논의하는 것이지만, 한국 정치상황에서도 음미할 부분들이 많아 보이고, 무엇보다, 미국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2년마다 열리는 민주주의의 꽃, 선거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는지 플레이어 중 하나의 전망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번역해봤다. (개인적으론 마지막 민주당 상원 및 대선 판세에 대한 그의 말이 제일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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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ymag.com/intelligencer/2020/07/david-shor-cancel-culture-2020-election-theory-polls.html

David Shor는 해고당해서 유명해진 사람이다. 5월 말, 조지 플로이드가 경관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한 대규모 항의시위기간 중, 28세의 분석가는 1968년 (마틴 루터 킹 암살 직후) 평화시위가 “폭동”보다 여론을 움직이고 선거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를 트윗했다. 많은 트위터리안들, 그리고 (언론보도에 의하면) Shor의 일부 동료들과 그가 일하고 있던 Civis Analytics 데이터 분석회사의 클라이언트들은 이 트윗이 부적절하다고 난리가 났다. 하루 뒤, Shor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공식 사과했다. 이 주 뒤에, 그는 Civis의 수석 정치분석가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이른바 “cancel culture“의 희생양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Shor는 기밀유지협약때문에 공개적으로 해고사유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으며, 그 이유는 알려져있지 않다)

하지만 Shor가 논란의 중심에 서기 전부터도, 민주당 정치계에서는 매우 영향력 있는 데이터 구루들 중 하나였다. 20세에 2012년 오바마 선본이 판세를 판단하는데 이용했던 예측 모델을 작성하며 선본의 네이트 실버로 통했다.

그리고 그 전엔, 그는 대학에서 맑시스트, 빨갱이였다.

이런 특이한 이념적 배경, 경력, 그리고 실력때문에 Shor는 미국 정치에 특별한 시각을 갖게됐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자칭 사회주의자면서 민주당의 부유한 정치자금 기부층들이 민주당을 좌측으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내가 3년간 알고 지내는 동안, 미 정치에 대해 뭔 질문을 해도 그 답에 인용한 논문이 3편보다 적은 적이 없었다.

Shor는 여전히 민주당 정계에 자문을 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할 자유를 제약하는 회사에서 일하지 않기에, Intelligencer는 민주당이 정말 어떻게 운영되는지, 왜 앞으로 10년간 미국 우익에게 좋은 미래가 펼쳐져있는지, 그리고 과연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될지 등에 대해서 인터뷰를 가졌다.

당신 이름이 작금의 미국의 문화전쟁을 상징하는 말이 되어버린 기분이 어떠신지요?

그 사건에 대해선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 질문은 취소됐습니다.

죄송합니다.

뭔가 억압당한 것 같지만 괜찮습니다 ㅎㅎ 그럼 여기서부터 시작하죠: 처음 오바마 선본에서 일했을 때와 대비해서 선거 정치가 돌아가는 것에 대한 당신의 시각이 바뀐게 있다면 제일 큰 점이 무엇입니까?

제 생각에 제가 정치계에 발을 들였을 때를 생각해보면, 선본을 구성하는 개개인들의 이념이 선거운동 과정 중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과대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더 넓게 보자면, 사람들이 어떠한 결정을 할 때 이념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과대평가하고 있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2012년 당시, 진보측 블로그에서 이를테면 “백악관이 기후변화 주간을 갖는걸 보면, 공화당 후보들에게 기후변화 이슈가 약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기때문이다”라고 하는걸 봤습니다. 그리고 정작 백악관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 사실 그렇지 않단걸 깨닫게 됩니다; 사무실에서 어색하게 회의를 하고, “우리 이번 주에는 뭘하지? 흠… 기후변화 어때?” 이런 식으로, (민주)당에서 장기적이거나 전략적인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럴 인센티브가 없었으니까요. 즉, 선본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무작위적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에 비해 실제 일의 수행과정에 더 주목하게 된 것 같습니다(consultant theory of change; process theory of change).  많은 좌파들은 힐러리 클린턴 선본이 경제문제를 무시했고 사회문제에 몰두했던 이유가 힐러리 선본을 위해 일한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에 빠져있었기때문이고, 진보적 경제정책을 주장하기엔 힐러리에게 선거자금을 대는 기부자들의 이해관계와 배치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경제정책을 무시하고 사회구호에 몰두했던 이유는 클린턴 선본이 어떤 구호가 도움이 될지 알기 위해 여론조사들을 돌렸고, 진부한 과정상 이유때문에, 사회적 신뢰가 적은 노동자층 유권자들이, 대학교육을 받은 전문직들에 비해서 그런 여론조사에 대한 응답률이 떨어졌다는데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코스모폴리탄 및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구호들이 여론조사 응답에서 아주 잘 나왔습니다. 실제로는 표가 떨어져나가는 구호들이었지만요. 즉 문제는 과정상의 문제였고, 관련 행위자들의 맑시스트적인 지저분한(vulgar) 이해관계는 훨씬 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깔쌈한 (지저분한에 대한 반댓말로 무슨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네요) 맑시스트는 그런 과정상의 문제조차 이들의 계급적 편견/편향때문이라고 반박할지 모르겠네요 – 코스모폴리탄적이고 중상층인 여론조사 분석관들과 선본원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니 체계적 표본오류의 가능성을 놓쳤다고 말입니다.

정확한 분석이십니다. 선본들은 승리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선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념적으로 매우 동기부여된 사람들이어서 전략적으로 바보같은 짓을 해야한다고 믿어버리기 매우 쉽습니다. 제가 – 또는 제가 Civis에서 이끌던 팀이 – 컨설턴트로 클라이언트들에게 하는 그 어떤 말들도 그렇게 기똥찬 것이 아니었어요. 아시다시피 저희가 수리적으로 분석하고 그 중 일부는 꽤 근사해보이는 것은 맞습니다만, 높은 수준에서 보자면 우리가 클라이언트에게 말하는건 단순해요: “선거 직전에 박빙인 주에서 값싼 언론시장에 돈을 풀고, 인기있는 이슈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인기없는 주제에 대해선 말하지 말라.” 이거에요. 그리고 이걸 대규모 물량으로 할 수 있도록 머신러닝기법을 이용하는 것이죠.

사실 정치에서 최적의 전략은 그리 불분명하지 않아요. 하지만 클린턴 선본의 많은 사람들은 인종주의자 백인들의 사회적 관점을 달랠 필요가 없다고 자기기만을 해버렸죠.

이 맥락에서 인종주의자의 정의가 뭡니까?

아, 넵. 트위터에선 이 문제에 대해서 맨날 욕하죠. 자, 백인 노동자 계층은 엄청난 정치력을 갖고 있고 이들은 현재 공화당쪽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민주당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해서면 이념적으론 진짜 편하겠죠.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게 꽤 명백합니다.

제 생각에 이 유권자층을 다시 포섭해오는건 중요합니다. 만약 제가 선거에 나간다면, 이 유권자층이 민주당을 떠나는 이유가 경제민주화(economic populism) 정책들을 수용하지 않아서라고 말하긴 할겁니다. 제 생각에 그렇게 말하는건 충분히 괜찮은 정치적 구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뭐가 이 현상을 야기했는지 들여다보면, 숫자가 말하는건 분명합니다. 이론적으론 물론 일평생 민주당 후보만을 찍다가 오바마케어나 무역같은 문제에 대한 불만때문에 트럼프를 찍은 사람이 있을 순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유권자들이 많이 존재할겁니다 물론요. 하지만 이들이 백인 노동자 계층이 공화당으로 쏠리는 현상을 대표하는 경향이 아닙니다.

2012년과 2016년 선거결과를 놓고, 민주당 투표 변화를 모델링해보면, 투표변화를 설명하는 가장 큰 요소는 교육수준입니다. 대졸 유권자들은 민주당 지지로 이동하고 고졸 이하 유권자들은 공화당지지로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인종적 불만” 질문들을 하고 — 이를테면, “유색인종들때문에 백인들이 일자리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합니까?”라든지, “백인들이 이 나라의 방향에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 인종주의적 성향을 통제해보면, 교육수준은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변수에서 탈락합니다: 고졸 백인 유권자층 중 인종주의적 성향이 적은 이들은 2016년 민주당 지지로 이동했고, 백인 대졸 유권자층에서도 인종주의적 성향이 강한 유권자들은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탈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반박해볼 수 있겠죠, “하지만 정치학자들이 인종주의 (불만) 성향을 측정하는건 계급지표지 않습니까. 대졸 유권자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을 하지 않도록 교육받았으니까요.” 하지만 공화당 경선 당시 트럼프 지지를 보면,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지표는 흠… 인종주의적 구글 검색어들이었습니다. 결국 반이민, 정치적 올바름을 반대하는 선거구호와 공약으로 선거전에 임한 정치인이, 부동층의 상당 부분을 모았고, 개인 수준으로 들여다봐도 지지를 바꾼 이들은 인종주의적 반감 성향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고, 지리적으로도 인종주의적 검색어와 트럼프 지지세 상관관계가 강하고, 계속 파고들어가도 어느 지점이 되면, 흠, 이 사람들은 인종주의때문에 투표에 임했구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옵니다. 이 세상에 대한 중요한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 사람들이 이런 사실로부터 잘못된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생각합니다. 트위터에서 제가 2016년 선거 이후 목격한 논쟁을 보자면 한 쪽에선 오바마를 찍었다 트럼프 찍은 유권자들은 인종주의자들이고 개전의 정이 없는 사람들이기때문에 이젠 부유하고 학식있는 근교지대 유권자들을 노려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반대 쪽 좌파들은 “사실 이 백인 노동자층 유권자들은 기십년동안의 신자유주의때문에 배신당했고 사회주의로 나감으로써 이들을 되찾아야하며, 근교지대 유권자들은 믿을 수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이런 전선에 대한 제대로 된 해답은 오바마를 찍다 트럼프를 찍은 이들은 인종주의에 경도된 것이 맞지만, 이들은 선거공학적으로 중요한 유권자층이며, 이들이 민주당을 찍도록 방법을 강구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당이 어떻게 해야할까요?

자, 여기 수많은 논점, 이슈들이 있습니다. 고학력 정치 고관심층이 모든 다른 유권자층과 구별되는 점은 바로 이 많은 이슈들에 대한 입장이 이념적으로 대단히 일관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모든 이슈들 – 낙태찬반, 총기규제찬반, 노조찬반, 의료보험 등등등 – 에 대해 양자택일의 옵션을 주고 더 리버럴한 옵션에 1점을 준다면, 민주당 (당선)정치인들이 전체 유권자들 대비 90-95% 좌측에 있을겁니다.

그 이유는, 유권자들이, 중도적이라는 조 바이든 같은 사람들에 비해 일부 이슈에 대해선 더 좌파적인 관점을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관점들에 걸쳐서 같은 식의 일관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엔 낙태를 반대하면서 증세에는 찬성하는 등의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정치학자 David Broockman의 논문이 이를 지적해서 이 점이 널리 알려졌는데 — “중도” 유권자라는 것은 중도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게 아니라, 이념적으로 일관되지 않은 입장을 갖고 있다란 주장입니다. 그 논문이 나왔을 때 언론에서 일부의 반응은 “글쎄요, 사람들이 걍 그런 조사에는 대충 잘 모르는 이슈들에 대해선 무작위로 찍는거에요, 이런 이슈들은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닌거죠.”였습니다. 하지만 논문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장에서, 이들은 이 이슈들이 얼마나 (유권자에게) 중요한지를 유권자들에게 가상의 후보대결에서 후보를 골라보라고 해서 측정해봤습니다 — 이 이슈에 대해 한 입장을 갖는 후보와, 다른 후보는 다른 입장을 갖는 경우 누굴 찍을 것인가 식으로요 — 그리고 해당 이슈에 대한 입장이 유권자들의 투표에 사실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밝혔죠.

그래서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 민주당의 입장들 중 일부에 대해 동의하면서 또 다른 입장들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 많은 유권자들이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우리(민주당)가 어떤 이슈에 대해 말하면, 유권자들은 그 이슈를 기준으로 해서 투표를 할 확률이 높아진단 겁니다.

밋 롬니와 도널드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모든 이슈에 대해 같은 입장이었어요. 버락 오바마랑 힐러리 클린턴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지지표를 바꿨어요. 그리고 그 이유는 이 다양한 이슈들 중에서 부각되는 이슈, 전선이 바뀌었기 때문이에요. 양측이 모두 이민문제에 대해서 더 많이 말했고, 그 때문에 이민정책에 대한 선호와 후보 지지의 상관관계가 올라간거에요. 2012년엔 양측이 모두 의료보험제도에 대해 말했어요. 2016년엔 그렇지 않았죠. 결과적으로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시각과 후보지지와의 상관관계가 떨어진거죠.

결과적으로 매순간 우리가 입을 열때마다, 뭘 말하냐에 따라 어떤 유권자를 잃고 어떤 유권자를 끌어들이는지 무지 복잡한 최적화문제가 되어버린단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좋은데, 왜냐하면 선본은 뭐에 대해 말할지 통제할 수 있기때문이죠.

고졸이하 백인들은, 평균적으론, 이민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관점을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인종적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와 관련해선 중도좌파적 시각을 갖고 있고, 전국민 의료제도를 찬성하며 최저임금인상도 찬성합니다. 즉 제 생각에 민주당은 우리와 시각을 같이 하는 이슈들에 대해 얘기하고, 이들과 시각을 달리하는 이슈들에 대해선 최선을 다해 입을 다물어야합니다. 실질적으로 그 말은 이민정책에 대해 말을 안하는거죠.

말씀 들어보면 여론이란건 고정된 실체고 선거운동이 이를 바꾸는건 어렵단 입장이신 것 같습니다. 많은 진보좌파 운동가들은 이견을 보일 것 같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인종주의적 백인들의 사회적 입장”이란건 정해진 거가 아니고, 우파 매체가 이들의 이해관계를 배반하는 반이민정서를 심었다고 봅니다. 만약 민주당이 재계 기득권이 인종주의를 이용해서 노동자층을 갈라치기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 여론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입장이 왜 틀렸나요?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를 수 있는지 명확히 생각해보는게 도움이 될겁니다. 정당들이 정당지지자들의 입장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맞습니다. 대충 20%의 유권자들은 민주당 여론주도층들을 대단히 신뢰합니다. 이들은 당이 얘기하면 자신들의 입장을 한순간에 바꿀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이민세관단속국(ICE)을 폐지하자를 정강으로 잡으면 해당 입장이 10%지지에서 30%로 뛰는건 됩니다. 이념적 활동가라면, 이 정도는 대단한 힘입니다. 당파성이 강한 사람들이 당신 입장을 지지하도록 한다면, 당이 권력을 쟁취했을 때 이들이 결과적으로 행정부를 구성할 것이고 해당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어느 정당도 믿지 않는 부동층에 있습니다. 자, 민주당이 이민세관단속국을 폐지하자고 하면, 어느 정도 중도적이면서도 인종주의적인 백인 연성지지자들은 이 정책을 지지하기보단 아예 공화당으로 넘어가버립니다. 이게 트레이드오프입니다. 인기가 없는 정책을 수용하면, 주변부 연성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떨어질뿐만 아니라, 꽤 큰 여론층이 여타 시각들마저 바꾸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후자의 효과가 장기적 변화를 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트레이드오프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문제와 관련해 더 논점을 분명히 부각한 것을 생각하면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괜찮은 거래였다”라고 하지 않을겁니다. 그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원하는 점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인기가 없는 입장이 7%에서 30% 지지로 올라가는걸 원하는게 아닙니다. 이들이 원하는건 동성혼허용이라든지 대마합법화와 같이, 30% 정도 지지를 갖던 이슈가 70%로 지지가 올라가길 원하는겁니다. 그리고 이런 이슈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거운동이 그런 변화를 이끌지 않는단건 분명합니다.

동성혼 지지의 장기 흐름을 살펴보면, 1980년후반 이래로 매년 선형적으로 증가하는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4년 선거전에서 이 이슈가 부각되었을 때, 이 문제는 갑자기 당파적인 문제가 되었고, 지지는 떨어졌습니다. 더이상 이 문제가 선거전의 이슈가 되지 않게 되어서야, 이 문제가 동성혼 지지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Graphic: Gallup

선거운동은 이런 장기적인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자기 당파를 신뢰하는 당파성이 강한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줄 수 있을 따름이고, 일부 이슈들에 대해서 부동층과 함께 한다는 추파를 던질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변부 부동층들의 생각을 바꿀 여력은 적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분석이 지난 몇 주가 이뤄진 사건들과 모순되는 것 아닌가요? 인종주의적으로 차별적인 공권력 행사란 이슈가 조 바이든의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 격차 확대와 같이 이뤄진 현상 말입니다. 명백히 다른 변수들이 있겠습니다만, Black Lives Matter 운동과 경찰개혁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습니다. 바이든은 인종문제에 대해 트럼프보다 더 잘 처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결과들이, 진보 활동가들이 예외적으로 꽤 인기가 없는 정책입장인 경찰예산 삭감으로 좌파를 몰아가고 있는 도중에 나왔습니다.

네, 이 문제가 이렇게 풀릴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틀에서 설명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선거에 있어서 논점을 부각시키고 그 효과를 생각해볼 때, 유권자들이 해당 이슈에 대해, 어떤 정책입장을 선호하느냐를 떠나, 어떤 정당을 더 믿을만하게 생각하는지를 고려해볼만합니다. 그러니까 총기구매시 모두 신원조회를 하자는 정책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보면, 그 정책 자체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매우 지지가 높습니다. 하지만, 이런 총기규제를 공약으로 채택한 이들은 자주 패배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이민정책 개혁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보면 공화당 지지자들을 포함해서 매우 지지가 높습니다. 하지만 공화당 후보가 반이민 공약으로 선거에 임해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방법은 여론조사가 매우 한정된 정보를 준다는걸 상기하는겁니다. 한 문장짜리 아이디어, 그것도 대개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개념을 던져놓고 거기에 반응하라고 하면, 이건 사람들이 당파적 맥락없이 어떤 정책에 대한 첫인상 반응을 떠보는겁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유권자들이 양측 입장을 모두 듣고나선, 일종의 당파 전선에 따라 다시 복귀합니다. 허무주의적인 분석이 아닙니다. 민주당 지지성향의 유권자가 민주당 입장을 취하고 공화당 지지성향의 유권자들이 자동적으로 공화당 입장에 동의하는게 아닙니다. 아이디어는, 설득할 수 있는 유권자들은 이슈들마다 어떤 정당이 그 이슈를 잘 처리할지에 대해서 감을 잡고 있습니다.

꽤 기본적인 패턴이긴한데요 —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관찰되는겁니다 — 유권자들은 중도좌파정당들은 공감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중도좌파 정당들은 환경보호, 빈곤퇴치, 인종관계 개선 등에 신경씁니다. 그리고, 중도우파정당들은 더 “진지”하다, 그러니까 대충 엄격한 아빠같은 느낌으로 간주합니다. 이 정당들은 경제나 실업률을 낮추거나 세금, 범죄, 이민에 대해 더 잘할거라고 간주하는겁니다.

이런 경향이 미국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면 — 갤럽이 2017년 이와 관련된 조사를 했고, 그 이후 별반 큰 변화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본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만 여기에 재밌는, 어쩌면 의외로 꼬인 부분이 있습니다. 일관되게 민주당이 더 잘할거라고 나오는 이슈 중 인종간 불화 개선이 있죠. 이게 인종 불화, 불만이 갖는 복잡한 면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데요, 대개 인종문제가 미국 여론에 떠오를 땐 이게 범죄와 관련되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범죄는 매우 공화당-중심적 이슈입니다 (중위 유권자가 더 신뢰하는 정당이 공화당이란 점에서 그렇습니다). 인종문제는 이민 이슈와 관련되어서도 부상하는데, 이민 이슈 자체는 또한 공화당-중심적 이슈입니다. 그러니까 유권자들이 미국내에 존재하는 거대한 불평등이 있다는건 인정하지만, 대개 이 인종문제는 보수파들이 치안이라든지, 공화당을 더 신뢰하는 다른 여러 이슈들과 엮어서 쌤쌤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비폭력, 평화 시위가 강력할 수 있는건 — 특히 경찰로부터 합당치 않게 가혹한 반응을 받는 평화시위들일수록 — 여론지형을 아주 피부에 와닿게, 중도좌파와 민주당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이기때문입니다. 즉, 평등, 정의, 공정 — 이건 민주당-중심적인 개념입니다 — 을, 범죄나 치안을 얘기하지 않고도 추구할 수 있는거죠. 제 생각에 이런 시각은 넓고 종단적 증거들로 뒷받침되는 관점입니다. (일부는 제가 물론 일전에 트윗한 바 있듯이) 비폭력시위는 정치적으로 특정 이슈들에 대해 여론을 바꾸는데 있어서나, 좌파의 관심사에 좀더 동정적인 정당을 집권하게 있어서나 도움이 되는겁니다.

“경찰을 폐지하자”라는 주장에 대해선,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실상 주류 정치인들 중 이 입장을 채택한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점입니다. 민주당으로 끌어올 수 있는 유권자들 대부분은 저녁뉴스나 CNN을 통해 뉴스를 접합니다. 그리고 이런 언론매체에서 보도한 것을 볼 때, “경찰을 폐지하자”란 주장은 여기 트위터나 엘리트들의 논쟁만큼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뤄졌다고 하더라도, 유명한 좌파 정치인들이 소리높여 이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다뤄졌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이는 이와 관련된 모두들에게 윈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인종정의 문제들뿐만 아니라 경찰문제에 대해서도 여론지형을 거의 사실상 제2 대각성운동이라고 할만큼 바꿔버렸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정치인들이 중위 유권자들에 집중했기때문에, 이슈를 환기하면서도 선거공학적으론 표를 잃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버린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반도들의 옹호자가 되보자면: 시위가 완전히 비폭력이었던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미네아폴리스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언론들이 그렇게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고, 비폭력 시위도 상대적으로 덜 이뤄졌을 것이라고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비폭력 시위가 이 운동이 정치적으로 효과적이었다는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 시위 일부에서 벌어진 폭력이 왜 치안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지 않았을까요?

물론 제가 말하는걸 무슨 물리법칙으로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건들이 전개된 과정에 대해서 우리가 전부 이해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순수히 공리주의적으로, 윤리문제를 차치해놓고 보자면, 초기 폭력시위가 언론 관심을 유도했고 또는 경찰이나 군부대가 비폭력 시위대에도 폭력을 행사하게 만들었고, 이런 폭력시위가 없었다면 이렇게 폭발적으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거라고 얘기할 순 있을겁니다. 그랬을지 안 그랬을지는 알기 어려울겁니다.

하지만 언제나 시위엔 폭력적이고 비폭력적인 부분들이 혼재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또는, 비폭력 시위에서도 항상 어느 정도 폭력적 부분이 있습니다. 아주 조금의 폭력이 모든 것을 망치고 모두를 파시스트로 바꾸는건 아닙니다. 이와 관련된 연구결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건 그 비율입니다. 여기서 기작은 폭력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된다는겁니다. 안전을 갈구하게 되고, 그러면서 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질서회복은 미국이나 다른 전세계에 있어서 보수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슈입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기본적인 구도는 좌파는 “세상을 더 공정하게”고 우파는 “우리가 그렇게 하면 혼란으로 당신 가족이 위험해질거다”란 설전입니다.

하지만 만약비폭력 시위대가 치안세력이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을 향해 과도한 폭력을 휘둘게 만들면 — 다른 사람들이 보는 와중에요 — 질서에 대한 호소는 신빙성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피부로 불공정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 여론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지 플로이드 시위를 보면, 첫 2-3일동안은 폭력이 있었지만, 그 다음은 잦아들고 오히려 매우 극명하게 치안세력이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패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우리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바이든 지지세의 변곡점은 Lafayette 공원 사건이었습니다. 이 때 트럼프가 아무 위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최루탄을 쐈죠. 이때부터 바이든의 지지가 확 올라갔고 그 다음은 꽤 안정적으로 격차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앞서서 민주당이 고졸이하 백인 유권자들에게 갖는 문제를 묘사할 때, 힐러리 클린턴 선본의 많은 결정들의 문제를 강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이해로는 2016년 선거는 단지 이미 존재하는 경향을 가속화시킨 것일 뿐인 것 같은데요: 미국과 서구유럽에서, 고졸이하 유권자들은 기십년에 걸쳐서 우익으로 지지를 이동하고 있다구요.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그 어떤 선거운동 구호 선택의 문제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저도 오랜동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애써봤습니다. Matt Stoller라든지 Ryan Grim이 이렇게 복기해본걸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민주당 엘리트들이 노동자층을 배신하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시점에서 문제가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어쩌면 워터게이트 이후 태어난 이들때문일지도 모르고요, 어쩌면 Taft-Hartley법을 폐지하지 못했을 때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1992년 빌 클린턴때문인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겪는 것을 보면, 같은 이야기가 어디서나 반복되고 있단걸 목도하게 됩니다. 토니 블레어의 영국에서 벌어졌고,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에서도 벌어졌죠. 저한테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PASOK, 그리스 사민당의 역사를 읽었을 때였습니다. 1990년대 그리스 선거에 대한 평가에서, “우파 신민주당이 노동자계층의 지지를 얻어가기 시작했다”라는 걸 읽다보면, 아, 더 큰 역학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자,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제게 가장 말이 되어보이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전후세대에, 대졸 전문직층은 유권자의 아마 대강 4%도 될까말까 했습니다. 말인즉 그 어떤 유권자도 조금이라도 코스모폴리탄적인 가치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 가방끈 긴 4프로가 여전히 세계를 주름잡았죠. 양당은 모두 이 고학력, 코스모폴리탄 소수파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전후 합의된 원칙들 — 민주주의와 법에 의한 지배 등등의 가치들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난날의 이 엘리트들은 현재의 엘리트들에 비해서 많은 사회적 이슈에 대비해서 보수적이었지만, 그 시대에 있어서는 양당이 사회에서 가장 코스모폴리탄적인 계층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또한 그 시대에는 매우 강한 게이트키퍼들, 여론주도층이 있었습니다. 이 소수의 고학력층은 양당 지도부를 통제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도 통제했습니다. TV방송국도 적었고, 다른 나라의 경우엔 심지어 국영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양당 모두 코스모폴리탄적 가치를 내세운 선거운동을 하는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선거운동은 이 코스모폴리탄 엘리트들이 경제 이슈에 갖는 불일치에 전선이 그어졌습니다. 하지만 60년에 걸쳐서, 대졸학력층은 대강 유권자의 4%에서 대강 35% 정도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이제, 실제로, 인류역사상 최초로, 정당들이 공개적으로 코스모폴리탄적 가치를 내세워서 선거를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지선급에선 그게 가능해졌고, 너무 막나가지 않으면, 그리고 경제가 불황이 아니면 국가레벨에서도 승리하는게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엘리트들은 전후 이래 항상 원하던대로, 하지만 그 동안 너무 이길 가망이 없어서 감추고 있던 선거구호로 선거에 임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중도좌파정당들이 그렇게 했죠.

이른바 코스모폴리탄적 이슈들에 대해 대졸층과 고졸이하 유권자들의 근원적 차이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학력은 개방성과 새로운 경험과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갖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어떤 사람들은 덜 긍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가 인과관계로 엮어있다는 근거도 있습니다. 유럽에서, 의무교육연령을 16세에서 18세로 올렸을 때, 학교에 더 오래 머문 첫 세대는 바로 직전 세대에 비해서 이민문제에 대해 훨씬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또한, 대졸 학력자일수록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본다든지, 해외여행을 더 시도한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즉 (고등)교육이 새로운 경험에 대 개방적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자면, 이 문제는 이민에 대한 시각차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아주아주 단단한 관계입니다. 1940년대 미국이 유대인 난민들을 받아들여야하냐고 여론조사를 한 것을 보면, 대졸자들은 지지하고, 고졸이하는 반대합니다. 이런 관계는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나타나는데 —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 노동자들은 짐바브웨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데 비해, 대졸 남아프리카인들은 지지하는 식입니다.

다른 연구들은 협력과 포지티브섬 같은 메세지들이 고학력층에게 먹히는데 비해서, 제로섬게임같은 메세지는 저학력층에게 더 먹힌다는 보여줬습니다. 물론 이는 대졸 전문직들이 정말 상호 교환을 통해 이득을 보는 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는데 비해, 노동자들은 일생이, 부자들은 겪지 않을, 제로섬이나 네거티브섬 분쟁으로 점철되어 있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많은 방식으로 드러나고 정치적 태도의 차이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백인 유권자들의 학력차에 대해 많이 얘기했는데요, 지금 인용하신 남아프리카 여론조사만 보더라도 코스모폴리탄주의에 대한 학력격차는 인종전선을 뛰어넘는 것 같은데요. 민주당이 유색 저학력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고 있다고 봐야할까요?

네. 흑인 유권자들은 2016년 공화당쪽으로 지지가 이동했습니다. 히스패닉 유권자들 또한 격전주에서 우측으로 이동했지요. 2018년, 제 생각에는 매우 명백하다고 보는데요, 다른 유권자들 대비, 유색인종 유권자들은 좀더 공화당쪽으로 이동했어요. 플로리다에서,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빌 넬슨은 백인들 사이에선 클린턴 대비 2-3퍼센트 포인트 선전했지만 클린턴의 흑인 및 히스패닉 지지자들보다 득표를 못해서 졌습니다. 2020년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을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차마 안 보려는 경향이 꽤 많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명확한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학력 백인 유권자들과 저학력 유색인종 유권자들은 문화적으로 꽤 많은 부분에 있어서 공통분모가 있어요. 그래서 학력 대비 전선이 그어지는 문화적 이슈가 부각될수록 — 그게 젠더 정치든 권위주의든 이민문제든 — 인종 전선을 뛰어넘는 저학력 유권자들 사이의 수렴이 이뤄지는 것은 말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정치는 (다른 나라들에 대비해서) 매우 특이했었는데, 노예제와 짐 크로우같이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유산을 지니고 있었기때문이죠. 하지만 세계는 느리게 변하고 있어요 — 인종주의가 사라지거나 의미가 없는 방향이 아니지만 — 인종에 따라 이뤄지는 투표행태의 기저 중 일부를 부식시키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어요. 결국 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하는 흑인 유권자들을 보면, 이게 균질한게 아니에요. 특별히 젊고, 세속적인 흑인 유권자들이 해당 블럭에 비해 더 공화당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표면적으론 이유는 흑인 교회가 약화되고 있기때문입니다. 흑인교회는, 역사적인 이유로, 흑인사회에 매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흑인들이 민주당에 묶여있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흑인 유권자들 중, 공화당을 찍는 것을 예측하는 가장 큰 변수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제 생각에 우리 정치에서 미국중심적인 요소들이 부식되기 시작하면, 아마 역학은 지금 유럽에서 보는 것과 같은 식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라 예측할 수 있어요. 유색인종 유권자들이 백인 유권자들에 비해 좌파적이긴 하지만, 지금 흑인에서 보이는 90대 10구도가 아니라 대충 65대 35 정도의 구도가 될 것이란거죠.

명확히 하자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릴거에요. 하지만 만약 예측하라고 하면, 젊은 흑인들은 상대적으로 봤을 때 4-5% 정도 민주당 지지가 빠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흑인 유권자층 중 작은 부분이긴 합니다. 이런 움직임은 모두 느린 장기추세입니다.

연구하신 추세들이 모두 민주당에게 나쁜 추세들입니까? 만약 민주당이 젊은 흑인들의 지지를 잃고 또한 백인 저학력층 지지를 잃는다면, 이를 벌충할 수 있는 지지를 얻고 있나요? 앞으로 10년 민주당에 대해 어떤 전망을 하십니까?

좋은 소식부터 시작해볼게요. 제가 2016년 선거 이후 가졌던 악몽은 롬니-클린턴 유권자들이 다시 공화당으로 돌아가지만, 오바마-트럼프 유권자들은 민주당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건 일어나지 않았죠 — 적어도 클린턴이 더 얻은 유권자들은 그대로 민주당 진영에 남았어요. 2020년 여론조사에서도 이 점은 보여요. 2018년에 이 새로운 지지자들을 유지해서 상원, 하원 그리고 주별 선거에서 크게 득표할 수 있었죠.

그리고 이런 결과가 고학력 전문직들이 중간선거에 나오기로 해서 생긴 착시는 아니구요?

일부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략 75%는 정말 생각을 바꾼 사람들때문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고학력 전문직들이 기본적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된겁니다. 이 유권자층은 미국 대선 선거인단을 이기는덴 별로 최적의 유권자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은 인구집단 기준으로 보자면 다른 자산(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좌파쪽의 발언들을 보자면 정치에 부자들이 발언권이 더 크다는데에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역대로 봐도 지금 미국처럼 부자와 매우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 이만큼 리버럴한 선진국이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학력을 통제하면 매우 부자들은 여전히 공화당 지지성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현재 이 시점에서 이를테면 스탠포드 로스쿨을 보면, 학생들 중 민주당 대 공화당 비율은 대강 20대 1정도 됩니다. 하버드야 줄곧 민주당성향이 강했지만, 현재론 이들 중 도널드 트럼프를 찍은 사람은 대략 3-4%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힘쎈 기구들 — 그게 대기업 이사진들이든지 전문직집단들이든지 — 모두 과거에 비해서 이렇게 리버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좌측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투표행태뿐만 아니라, 이념적 선호에 있어서도 드러납니다. 소규모 정치자금 기부자들 — 분명히 말하지만, 소규모 정치자금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은 대부분 부자들입니다 — 을 보면 2012년 민주당은 이들 중 54%를 차지했습니다. 2018년, 소규모 정치자금의 76%를 민주당이 차지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변화가 ActBlue라든지 기술 같은 증진때문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2018년은 대규모 슈퍼 정치활동위원회가 지출 관점에서 공화당보다 민주당에 더 많이 지출한 최초의 해입니다.

즉 지금껏 보수세력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유권자층이 진보층이 된겁니다. 그 여파에 대해선 제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민주당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정치자금이 풍부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언론도 훨씬 우호적이죠. 이런 식으로 파급효과가 상당합니다.

좌파들은 민주당이 점점 더 부자 유권자들과 정치자금 공여자들에게 의존하는 것에 대해 우려합니다. 하지만 과거 당신은 정당의 정치자금 공여계층이 민주당을 좌측으로 이끈다고 주장했죠, 민주당 정치자금 공여자들이 민주당 중위 유권자들에 비해서 더 진보적이어서 — 심지어 경제 이슈와 관련해서도 말입니다. 저는 그 주장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솔직히, 결과적으로 일반 시민들이 인지하는 규제나 법안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예를 들어 환태평양 파트너쉽(TPP) 협상때,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의 제약업계에게 후한 특허제도를 개발도상국들에게 강요하려고 했다든지,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제도(ISD)을 확대하려고 했던 것들이 중위 부동층을 잡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비슷하게, 지미 카터, 빌 클린턴, 그리고 바락 오바마 행정부 기간동안 노조의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확대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가 이런 정책에 대한 재계의 일치된 반대가 아니라 중위유권자가 노동법 개혁을 반대했기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정책 차원으로 볼 때, 부자 민주당원들이 이념적으로 조사질문들에 이념적으로 일관된 반응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고액 기부자들, 매우 정치고관심층이면서 반동적인 사람들이, 당을 우측으로 이끈다고 생각할 수 없는걸까요?

어떤 수준의 정부에 대해 말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주의회 수준에서 보자면, 그건 첨예하지 않은 정책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주의회 차원 정당들은 윤리적으로 볼 때 의문스러운 일들을 해야 정치자금 공여자들이 선거기간 동안 기부합니다. 그래서 주나 그 아래 지자체 차원에선 재계의 돈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소규모 기부자들은 정말 연방 차원의 정치를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지만 – 명확히 하기 위해서 – “소규모” 기부자들도 대부분 부자들입니다. 대부분의 기부자들은 수백불을 기부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건, 지금 이 시점에 있어서, 이들이 내는 정치자금이 제일 크다는겁니다. 연방차원의 민주당 정치에 흘러드는 정치자금은 이념적으로 동기화된 소규모 공여자들과 매우 리버럴한 백만장자들, 그리고 조지 소로스같은 억만장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재계로부터 비롯된 정치자금은 더이상 가장 큰 돈이 아닙니다. 이런 과정은 직관적이지 않은 사정을 만들어내곤 하는데, 예를 들어 웨스트버지니아의 경우, 부자 리버럴들이 별로 없기때문에, 소규모 정치자금 공여자들이 별로 없고, 그래서 Joe Manchin (웨스트버지니아 민주당 상원의원)은 좀더 재계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격전지 선거구의 하원의원이라면, 정치자금을 많이 모아야할 아주 큰 유인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유인은 대개 후보자들을 좌측으로 끌어들이는데, 왜냐면 소규모 정치 공여자들의 돈을 모으려면 분연히 일어나 트럼프를 욕하거나, 매우 리버럴한 치과의사나 의사들을 열광하게 만들 일을 해야하니까요. 물론 그게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수준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이런 리버럴한 전문직들은 경향적으로 또 꽤 경제적으로도 좌파적입니다.

David Brookman이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 그리고 내부적으로도 저도 확인한 바 있습니다 — 민주당 전체 대비 정치자금을 공여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경제적으로 더 좌파성향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돈을 공여할수록, 더 경제적으로 좌파적입니다. 이런 경향은 분명 이득을 기대하는 부패한 공여라고 하기 어렵겠죠.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정치자금 규모가 대부분을 차지할만큼 크다는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10년 전만해도 이렇지 않았습니다.

자,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길 법합니다: 왜 많은 중도적 민주당 의원들은 심지어 민주당에서도 별로 인기가 없는 중도 우파적 정책에 투표하는걸까요? 왜 노쓰 다코타 상원의원 Heidi Heitkamp는 노쓰 다코타의 중위유권자가 은행규제완화에 찬성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2018년 은행규제완화법안에 투표한 걸까요? 하지만 잘 보면, 중위 유권자가 은행규제 완화에 찬성하진 않지만, 노쓰 다코타 결제활동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상원의원을 원친 않습니다. 그래서 노쓰 다코타 재계가 Heidi Heitkamp를 싫어한다고 하면, 그건 Heidi Heitkamp에게 좋을리가 없는데, 왜냐하면 재계가 문화권력이 꽤 있기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이게 바로 단순명쾌한 거의 맑시스트적 관점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자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문화적 영향력이 큽니다. 즉 재계는 당을 우측으로 끌어들이죠. 하지만 그 기작은 여론을 움직이는 문화적 권력을 통해서이지, 선거자금 공여를 통해서가 아니라는거죠.

그러니까, 당신 관점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경제 문제에 대해서 더 좌측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은 매수되어서가 아니라, 중위유권자가 “매수되어서”, 즉 재계의 이해관계에 반응해서라고 할 수 있단겁니까?

넵. 8년동안 민주당측 정치 컨설팅에서 일하면서 배운건 이 나라에서 좌파정책에 걸림돌이 되는게 민주당 개개 의원들의 결정때문이란 생각이 거의 말도 안 된다는겁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매우 좌파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정말 이기려고 합니다.

제가 일했을 때, 여론조사결과상 뭔가를 해야하는데, 이념적인 이유로 안 한건 몇 번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경우, 좌파적인 이유로 여론을 무시했습니다. 이를테면 Joe Biden이 그냥 여론을 따라가려고 했다면, Hyde Amendment (낙태서비스에 연방정부 보조를 금지하는 수정안)을 지지했을 것입니다. Hyde Amendment는 여론조사에서 매우 지지가 높거든요. 하지만 그를 위해 일하는 이들은 Hyde Amendment를 반대해요. 그래서 조 바이든은 Hyde Amendment를 반대했어요.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오바마 행정부기간에, 최초로 이들이 의회를 제끼고 절차적으로 꼼수부리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 바로 의회 휴회 중 전국 노동관계위원회 (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 위원 임명을 강행했던 거였어요. 오바마 행정부가 이런 일을 한건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죠 – 노동계의 여러 요구사항 – 노동권법 철폐, 산별교섭 — 은 여론이 좋지 않아요. 하지만 민주당이 친노동 정책들을 취하는건 민주당 선본을 구성하는 사람들, 그리고 후보들이 일반적으로 매우 진보적인 사람들이기때문이에요. 좌파들은 민주당을 구성하는 우리가 얼마나 소수파인지 정말 이해를 못해요.

제가 겪은 일화 하나 말씀드리죠: Civis에서 연방 수준의 취업 보장 프로그램이 매우 인기있는 정책이라는 여론조사를 얻은 다음에, 내 동료가 민주당지지성향의 매우 큰 super-PAC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었어요. 그 관계자가, “거, 당신네가 한 취업 보장 여론조사 있지 않소…” — 그리고 내 동료는 곧바로 내 욕할 준비가 되어 있었대요 (대충 “아, 그 시카고의 미친 사회주의자들이 한 여론조사 말씀이십니까?”란 식으로요) — 그런데 그 다음 이어서 super-PAC 관계자는 그 아이디어가 근사하단거에요. 그 다음 어떻게 선거광고에 이 공공 일자리 창출 문제를 집어넣을지 한참을 얘기했다는거에요.

그래서 제 생각에 선거에서 지지 않는 선에서 좌파정책에 대해 민주당의원들의 호감에 대해 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여론조사 돌려보면 꽤 급진적인 좌파 정책들 중에서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정책들이 꽤 많아요. 근로자 경영참여 – 공동결의(codetermination)는 인기 있는 정책이에요. 말씀드렸다시피 취업보장 프로그램도 인기있어요. 최저임금인상도 인기있고 문자 그대로 시장주의에 의한 빈곤을 퇴치할 수 있을거에요.

물론 이런 정책들은 자본가들의 반대를 부르겠죠. 하지만 인기있는 정책들에 집중한다면, 그리고 이런 정책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언론반응을 만들어나간다면, 민주당의원들이 이 정책들을 입안하고 추진하도록 설득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고민해야할 것은, “Joe Manchin (역주: 웨스트버지니아 상원의원, 민주당 상원의원 중 가장 보수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알려짐)이 인정할만한 최대로 급진적인 정책이 무엇인가?”에요. 물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우울한 최적화 문제가 되겠지만, 심지어 대부분의 좌파들은 그렇게 접근하려고 하지 않지만, 그게 최선이에요. 다음에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의 가능성이 있고, 현실적인 요구사항들에 대해 명확한 비전이 없으면, 결국은 다 말아먹을 거에요.

당신 생각엔 그 현실적인 요구사항들의 범위를, 이 코로나바이러스 역병사태가 넓혔다고 생각하시나요?

제 생각에 코로나바이러스 역병사태의 정치적 후과로 잘 조명받지 않은게 민주당이 상원을 탈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거에요. 일년 전에, 저는 그게 가능은 하지만 매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어요. 이젠, 꽤 가능할 수도 있는 확률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이는 사실 많은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매우매우 인기있는 정책들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기때문이에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의료이슈를 부각시켰는데, 이건 민주당-중심 이슈에요. 그리고 역병사태는 또 유급휴가정책 같은걸 반대하기 매우매우 어렵게 만들었죠. 그리고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이런 식으로 인기있는 정책들 반대하는걸 계속 보고 있어요. 지금 일어나고 사태에 대해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욕먹고 있는 것들을 언론에서 제대로 조명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게 이 역병사태가 가능한 정책들을 넓히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죠.

죄송한데, 민주당에게 긍정적/부정적인 경향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셨죠? 좀더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아 넵. 다른 긍정적인 경향은 세대 양극화가 커졌다는거에요. 그냥 젊을수록 더 민주당지지성향이 크다는게 아니에요. 좀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2012년 18세였던 유권자들은 12% 포인트 더 민주당 지지성향이었는데, 65세였던 유권자들은 2012년 대강 8% 포인트 더 공화당 지지성향이었어요. 현재로썬, 이건 남는 장사가 아니죠. 노인들 투표율이 청년보다 높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연령별 지지율 격차가 커져버리면, 해가 갈수록 벌어지는 인구구조 변화가 이제 관심을 갖을만한 수준이 되는거에요. 2012년 오바마 선본에서, 2008년과 2012년 사이에 — 다른 모든게 일정하다고 봤을 때 — 민주당이 대략 인구구성 변화로 인해 0.3% 정도 이득을 본다고 계산했어요. 지금처럼 연령별 정당지지성향차가 더 확대된 상황에선 그 숫자가 아마 2-3배 더 높을거에요. 젊은 백인들은 이제 매우 진보쪽이에요. 그리고 그게 중요해질겁니다.

하지만 나쁜 소식은, 앞으로 10년에 걸쳐서, 우리 선거제도가 구조적으로 민주당에 불리한 효과는 훨씬 커질거에요. 이 얘기는 사람들이 많이 하긴 하지만, 제 생각엔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거인단에서의 편차는 너무 커져서 현실적으로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기려면 대략 3.5에서 4퍼센트를 이겨야해요. 트럼프는 역대급으로 너무 인기가 없어서 금년엔 그래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30년 전의 결과들을 볼 때, 대통령 선거들은 꽤 박빙이었어요. 그러니까 4%나 이겨야 대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건 민주당이 대통령직을 잡을 기간이 짧아질거라는겁니다. 사람들이 물론 “그치만 남부 썬벨트 주들이 민주당으로 넘어오고 있지 않나요” — 라고들 하는데 이거 한 번 살펴보고 시뮬레이션하면, 큰 유권자층 지지구도에 재정렬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선거인단의 공화당편향은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유지될거에요.

그러니까, 2030년 텍사스가 51% 민주당 지지주가 된다고 생각하시진 않는거군요?

만약 학력에 따른 양극화가 더 심해져서 텍사스가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대선에서 찍을 수 있는 정점(tipping-point)에 도달한다면, 그 시점에서 이미 미시건, 미네소타, 메인 그리고 위스컨신주들은 전부 공화당으로 넘어간 다음입니다. 현재로썬, 노동자계층이 더 많은 주들은 전국 대비 대략 2% 정도 더 공화당 지지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민주당으로썬 괴로운 일이지만 대처할 방법이 없는건 아니에요. 그런데 이 주들이 전국대비 5% 더 공화당 지지성향을 갖게 되면, 이건 뭘 어떻게 하기 무척 어려워져요. 이런 식으로 유지될거라고 주장하는건 아니지만, 앞으로 두 번의 대선에 있어서, 바탕선으로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은 꽤 민주당으로썬 우울한 상황입니다.

사실 상원은 심지어 더 심각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해요. 상원은, 언제나 제도적으로, 민주당에게 불리한 구도였어요. 상원은 백인 및 도시 밖 사람들을 과대대표하고, 그래서 구조적으로 공화당에게 유리한 제도에요. 50년 정도 동안, 상원 확보(탈환)의 기준이 되는 상원의석주는 전국에 비해서 대략 1% 포인트 더 공화당을 지지했어요. 그리고 그 평균은 2016년 더 올라갔는데, 왜냐하면 백인 향촌 유권자들이 민주당으로부터 떠났기때문이죠 (그래서 공화당편향이 3% 포인트로 올라갔어요).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장기적으로 구조적인 편향이 증가한다는데에 있지 않아요. 만약 그런 문제라면 이렇게 제가 이렇게 우울해하지 않을거에요. 진짜 문제는 상원의 편향은 그간 큰 문제가 아니었던게, 대선투표경향과 상원의원 투표경향의 상관관계가 과거에는 낮았어요. 2006년까지만 해도, 민주당 상원의원 현직들을 보면, 상원선거 수준에서의 투표경향과 대선투표경향과 상관관계가 문자 그대로 0이었어요. 그 해에, 네브라스카의 Ben Nelson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은 뉴저지의 Bob Menendez보다 더 득표율이 좋았어요. 그러니까 14년 전에는, 상관관계가 대충 0이었다는거죠. 그리고 현재는 대충 90%는 될거에요.

이게 핵심적인 문제에요. 대선 아래 후보들에 대해선 꽤 많은 무작위적인 요소들이 있었고, 현직 프리미엄이 매우 강했어요. 2004년, 현직 프리미엄은 대충 11% 포인트에 달했어요. 이젠 그 프리미엄이 3% 밖에 안 되어요. 그리고 이렇게 현직 프리미엄이 낮고, 대선 득표율과의 상관관계가 크면, 민주당이 우리 상원 다수당을 이루는데 중요했던 주들을 모두 이기는건 사실상 불가능한거에요. 2012년 노쓰 다코타에서 공석인 의석을 이긴 적은 있죠. 그런데 그 다음 민주당에 불리한 편향이 더 심해졌고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죠. 그런데 90%의 효과는 그간 대선후보 정당과 그 아래 후보 정당을 쪼개는게 흔한 일이었다가 이젠 드문 일이 되었다는 데에 있어요. 그리고 이건 트럼프 효과가 아니에요. 부시때부터 정당후보를 다르게 찍는 유권자들이 줄어들고, 오바마대에 이르러 가속화되었어요. 그리고 그 경향은 아마도 변하지 않을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아마 이젠 인터넷이란게 있고 그 때문에 유권자들이 과거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연구가 있는데, 광대역 인터넷망이 깔린 시기가 다른 지역들을 조사해보면, 광대역 인터넷망이 깔리니까 이렇게 대선후보 정당과 그 아래 후보들 정당을 다르게 찍는 경향이 줄어들었고 이념 양극화가 커졌다고 합니다.

현재 상황으로 보자면 — 공화당 성향 주들에 현직 상원의원들이 이미 많고, 2018년 선거에서 충분히 민주당이 크게 이긴 행운 덕분에 — 2020년 상원을 탈환할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추세들을 추계해보면 — 2018년 여론조사 회귀분석결과를 미래에 적용해보면 — 2024년 박빙구도로 가정할 때 (예를 들어 2016년 같은 환경) 아마 민주당 상원의석수는 43석으로 떨어질거에요. 진짜 우울하죠. 상원은 언제나 제도적으로 소수파를 위한 기구였어요. 그 동안은 네브라스카의 유권자들이 대충 무작위적으로 찍어서 그나마 괜찮았죠. 이제 그들도 인터넷을 하고, 민주당 후보들이 리버럴(빨갱이)란걸 안단겁니다.

그럼 민주당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나요? 인터넷 폐지? 아니면 주 승격?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걸 해야죠. 물론 D.C.랑 푸에토리코 주승격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 두 개 주보다 더 많은 주를 승격하는걸 노려봐야해요. 저는 U.S. 버진 아일랜드 주 승격을 밀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 비백인, 주변부화된 사람들이 살고 있고 대표가 하나도 없죠. 사실 이거에 대해서 여론조사를 돌린 적도 있어요. 여론조사에서 장단점을 모두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지지가 높아요. 사람들은 대표성에 대해서 꽤 특이하고 비일관적인 관점을 갖고 있어요. 만약 사람들에게 “미국령 사모아제도에 5만명이 사는데 이들의 이해를 대표할 상원의원이 없습니다. 이들이 상원의원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심지어 공화당에선 이런 제안이 민주당의 권력독점 야욕이라고 주장한다고 얘기해도, 트럼프 지지자들 중 꽤 큰 소수가 그래도 지지한다고 답해요. 우리가 수행했던 여론조사들에서, 다수는 3-5개 주 승격을 찬성합니다. 사람들은 그게 더 공정한거라고 생각해요. 웃긴 점은, 버진 아일랜드의 주 승격이 D.C. 주 승격에 비해 더 높은 지지를 얻는다는겁니다. D.C. 주승격은 우리가 조사한 그 어떠한 여론조사 중에서 제일 지지율이 낮은 제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될 확률을 얼마나 보십니까?

제 생각에 2018년 중간선거에서 우리가 목도한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트럼프 지지층이 건재했다는겁니다. 물론, 야당으로써 민주당이 잘한건 맞아요. 하지만 우리가 메인주나 위스컨신, 미시건에서 어땠는지 보면, 2012년보다 2016년 구도에 가까웠어요. 도널드 트럼프는 여전히 선거인단제도에서 구조적으로 엄청 유리해요.

2016년에서, 민주당은 양당제에서 51.1%의 득표율을 기록했죠 (민주당/공화당 득표합을 모수로 했을 때요). 그리고 만약 우리가 51.6%를 득표했다면, 아마 선거인단에서 과반을 차지할 확률이 50%가 되었을겁니다. 대선에서 높은 확률로 이길려면 아마 52% 정도를 득표했어야했을거에요. 지난 6개월의 대부분 기간동안,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은 대략 52% 정도에 있었고, 이제 대충 54%선에 있어요.

자, 그래서 질문은 결국 이거에요: 이 수준에서 내려갈까 아닐까?

전 코로나바이러스 역병사태가 더 좋아질지 나빠질지 예측할 수 없어요. 다만 어떤 방향으로든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이만큼 멀리 떨어진 시점에서의 여론조사가, 이렇게 격차가 컸을 때, 선거당일 여론조사 결과를 걍 회귀분석 때려버리면, 대개 그 격차가 축소되는 방향, 평균으로의 회귀가 일어나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불행히도, 역사적으로 회귀하는 평균이란게 50%가 아니에요. 현직 프리미엄이 역사적으론 평균적으로 51% 득표로 수렴해요. 그러니까 현재 레이스가 아마도 더 박빙으로 흐를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물론, 여론조사는 2016년 예측에 실패했죠. 게다가 사실, 주별 수준으로 보자면, 주별 여론조사결과는 2018년에도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미시건이나 몬태나같은데서 2016년 수준으로 틀렸었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 양당 컨벤션, 후보자지명이 끝나고, 당파성 강한 양당 유권자들이 결집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 더 박빙인 구도로 갈거라고 예상해봅니다. 그리고 모두들 그렇게 예상을 해야할거구요.

개인적으로, 2016년, 대강 9월달에, 저희가 힐러리 당선확률을 85% 정도로 예측했던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이런 예측이 민주당 기구들이, Civis의 클라이언트들이, 돈을 펜실베니아에서 빼서 다른데 투자하려는 상황들을 만들었죠. 제 기억에 한 사람이 문자 그대로 이렇게 물어봤어요: “대강 선거인단 270석을 노릴게 아니라 370 선거인단표로 최대화하기 위해 애써보는건 어떨까?” 제 생각에, 우리 민주당 사람들이 선거는 이미 따논 당상이라고 간주할려는 본능에 이끌리어 바보같고 교만한 짓들을 할 위험이 있어요. 힐러리는 수백만불을 승리선언 스테이지에 썼다니까요!

그래서 저 생각엔 계속 민주당은 선거인단 과반을 차지하는데 중요한 주들(tipping-point state)에 투자하고 중위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규율된 선거운동에 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금년이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해이기때문이죠. 민주당이 아주 오랜 미래까지, 대선/상원/하원을 모두 장악할 수 있는 (trifecta) 마지막 기회일거기때문이죠. 그리고 우리가 대선을 이기지 않으면, 아주아주 우울해질거에요. 그래서 모든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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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이들이 누굴까?

(Update: 뭔가 자동링크 기능때문에 링크가 안 걸린 것 같습니다. www.nytimes.com/2020/04/13/opinion/coronavirus-immunity.html 여기를 카피하면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Marc Lipsitch 교수의 글. 다시 초벌번역

코로나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이들이 누굴까?

이 질문 또한, 중차대한 결정들을 적은 정보를 바탕으로 내려야한다.

COVID-19과 관련해서 남아있는 많은 불확실성들 중에는, 이 바이러스에 걸렸을 때 인체 면역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이런 면역반응이 전염병의 확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영구적인 면역에서부터, 사실상 아무런 면역력도 획득하지 않게 되는 수준까지, 감염 후 면역은 굉장히 다를 수 있는데, COVID-19을 일으키는 SARS-CoV-2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에 대해선, 지금까지 극히 적은 정보만 나와있다.

이렇게 실질적인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과학자들과, 그들의 결과들을 바탕으로 판단해야하는 정책결정자들은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가장 최선의 접근법은 일단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면역계와 바이러스들과 관련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식으로 면역이 일어날지 여러 가정들을 엮어 모델을 세워보고, 각기 가정들이 어떻게 틀릴 수 있을지, 틀리다면 어떻게 이를 알 수 있을지, 그리고 그렇게 틀릴 경우 정책적 함의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아가, 과학자들은 이런 잠정적 모델을 개선시키기 위해 관찰과 실험을 수행해야할 것이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로는, 한 번 감염을 겪고 나서 영구적인 면역력을 획득하는 것인데, 이는 여러 감염병의 경우의 케이스다. 감염 후 영구적 면역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1846년 홍역 유행병이 터졌을 때 덴마크 의사 Peter Panum이 Faroe제도 (스코틀랜드와 아이슬랜드 사이의 군도)를 방문을 통해 확립되었다. 그는 1781년 홍역에서 살아남은 65세 이상의 섬주민들이 1846년 전염병에선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놀라운 관찰은 면역학 및 역학(epidemiology)를 수립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나, 물론 면역학계와 역학계는 그 이후로, 다른 어떤 분야에서 흔히들 겪는대로, 문제가 그렇게 단순명쾌하진 않을 수 있다는 점 또한 배웠다.

“단순명쾌하지 않은” 면역의 한 예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인데, 이 바이러스종은 종종 동물숙주로부터 인간에게 들어오곤 한다: 2002-3년 사스(SARS)와, 2012년 시작된 메르스(MERS)에 이어 3번째로 동물로부터 전파된 바이러스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인체면역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의 사람들을 감염시킨 SARS나 MERS가 아니라, 매년 감기서부터 폐렴까지 다양한 증상의 호흡기질환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두 개의 독립된 연구들에서, 연구자들은 자원자들에게 이런 계절성 코로나바이러스를 1년을 간격으로 두고 같은 종, 또는 비슷한 바이러스종을 접종을 해봤다.

첫번째 연구는, 1977년 또는 1978년 접중(“도발된(challenged)”이란 표현을 쓴다) 후 감기증상을 일으킨 18명의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다. 이들 중 6명은 같은 바이러스종을 1년 후 접종했으나 아무도 다시 감염되지 않았기에, 첫번째 감염 이후 면역을 획득했다고 추정되었다. 나머지 12명의 자원자들에겐 살짝 다른 코로나바이러스 변종에 노출시켜봤고, 이 때 면역은 부분적이었다.

1990년 다른 연구에 따르면, 15명의 자원자에게 코로나바이러스를 접종했을 때 10명이 감염되었고, 14명은 일 년 이후 같은 변종에 노출된 결과 덜 심한 증상과 초기 접종에 비해서 더 적은 양의 바이러스들을 만들었고, 이전 감염에서 얼마나 강한 면역반응을 보였느냐에 따라 그 감소가 더 컸다.

SARS나 MERS에 대해서 이런 실험이 이뤄진 바는 없다. 허나 SARS나 MERS를 이겨낸 이들의 혈청 측정결과에 따르면 SARS나 MERS에 대한 면역은 일정 기간동안 유지되었는데, SARS의 경우에는 한 연구에 따르면 2년, 그리고 다른 연구에 따르면 MERS의 경우에는 거의 3년 정도 유지된 것으로 나왔다. 허나, 이들 항체의 중화효과 – 즉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 – 는 해당 연구기간동안 이미 감소하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들이 COVID-19 환자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추측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SARS-CoV-2에 감염된 뒤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면역반응을 겪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강한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이 반응이, 일정 기간동안 – 최소한 1년 정도 – 어느 정도 보호효과를 발휘할 것이고, 그 이후로는 효과가 감소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다른 증거가 이 모델을 지지한다. 최근 동료학자 검토를 거친,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학 연구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2명의 환자 관찰결과, SARS-CoV-2에 감염된 이후 항체들을 형성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동료들과 학생들과 함께, 우리도 미국에서 수천명의 계절성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례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두 종의 계절성 코로나바이러스들에 있어서 1년을 넘는 면역효과를 추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두 계절성 코로나바이러스들이 SARS-CoV-2 바이러스에 가장 가까운 바이러스들이기때문에, SARS-CoV-2 자체가 어떤 종류의 면역효과를 일으킬지 짐작해볼 수 있다.

만약 바이러스 감염이 대부분 또는 모든 사람들에게 1년이 넘는 면역보호능력을 가져다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걸리면, 이른바 “집단면역”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바이러스에 면역성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감염된 사람의 바이러스는 다음 숙주를 찾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집단면역이 퍼지기 시작하면, 감염자가 평균적으로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1명 미만으로 떨어지고, 그 시점이 되면 감염자수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 집단면역이 광범위하게 확립되면, 전염속도를 늦추기 위한 여러 조치들을 철회한다고 하더라도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감염에 취약한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까진 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COVID-19 감염사례를 놓친 경우가 많은데, 진단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일부 지역, 예를 들어 3월 기준 이탈리아의 경우 약 10배 과소추정되었다고 보인다. 만약 다른 국가들에 있어서 이 정도로 과소추정이 되고 있는 것이라면, 인구의 대부분, 그리고 어쩌면 세계의 대다수의 인구는 감염에 여전히 취약한 것이고, 현재로썬 집단면역은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에 부족하다. 장기적으로 바이러스를 통제하기 위해선 대다수의 사람들이 감염을 통해서건 백신을 통해서건 면역력을 획득해야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면역력을 획득해야하는지는 감염력의 여러 요소들에 달려있고 이 또한 잘 알려져있지 않다.

한 가지 우려할 사항은 재감염의 우려다. 대한민국의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SARS-CoV-2에 감염되었다 음성으로 회복판정을 받은 사람들 중 91명이 다시 양성으로 판정받았다고 보고했다.만약 이들 중 일부라도 재감염이 된 것이라면, 환자들이 획득한 면역력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다른 가능성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더 가능성 있다고 보는 것은, 이 환자들이 감염 중 위음성 결과를 얻었거나, 바이러스 증식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재발흥했다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질본이 현재 이러한 가설들을 검정하는 중이다. 결핵처럼, 재감염과 예전 감염이 재발하는 것을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 문제는 최초 감염의 유전체서열과 두 번째 감염의 유전체서열을 비교함으로써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로썬, 최악의 상황을 겪은 지역에서조차 SARS-CoV-2에 면역력을 갖고 있는 인구는 소수라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잠정적인 결론이 새로운 결과에 따라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현재 보이는 경향으로는 양방향으로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모두 있다.

우선 보고된 수치보다, 진담검사능력의 한계를 감안하고도, COVID-19 사례가 훨씬 많을 수가 있다. 최근 연구 (아직 동료평가를 거치지 않음)에 따르면, 현재 확진자 수치의 10가 아니라, 미국에서 100배, 아니 1000배의 감염자가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추정치는 통계적 상관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한 수치다. 긴급한 이런 시국에서, 이런 간접적인 추정치는 중요한 발견일 수도 있지만 통계적인 착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이 추정이 맞다면, SARS-CoV-2에 대한 집단면역이 현재 보고되는 수치보다 훨씬 빠르게 확립되어간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다른 최근 연구 (또한 동료평가를 거치지 않음)에 따르면, 모든 환자들이 집단 면역에 기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175명의 경증 COVID-19 환자들 중, 70%는 강한 항체 반응을 형성했지만, 25%는 약한 반응만 있었고 5%는 아예 반응이 없었다. 경증의 경우, 다른 말로 말하자면, 항상 면역을 형성시키는 것이 아닐 수가 있다. 비슷하게, SARS-CoV-2 감염에 대한 무증상 케이스에서 면역 반응이 어떻게 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증상의 경중이 궁극적으로 면역력을 획득하는 능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 불확실성들은 혈청학적 조사(serologic survey), 즉 피에서 항체를 확인하는 검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수행함으로써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사들은 현재 시작되고 있고 조만간 결과들이 나올 것이다. 물론, 그 결과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항체검사가 얼마나 민감하고 분별력이 있는지에 달려있다: SARS-CoV-2 항체들을 민감하게 잡아내면서도 다른 비슷한 바이러스들로부터 비롯된 위양성 신호는 피해야한다.

더 도전적인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면역반응이 재감염 리스크와 전염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것이다. 계절성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자원자 조사와 SARS, MERS의 경우 수행된 항체지속 연구들을 바탕으로 볼 때, SARS-CoV-2에 대한 강한 면역 반응은 재감염 위험을 없애고 약한 면역반응이라고 하더라도 심각한 감염을 막고 여전히 바이러스의 전파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역학연구를 설계하는 것은 쉽지 않고 – 많은 과학자들이, 그 중 일부 팀에 나 또한 소속되어 있다 –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현재 작업중이다. 한 가지 어려운 점은 현재 완치자들이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과 여러 측면에서 달라서 이미 감염된 사람들을 기준으로 미래의 감염 위험도를 추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과거 노출이력이 다른 위험인자들에 비해 어떤 영향을 끼칠지 파악하는 것은 역학자들이 말하는 교란요소(confounding)를 다루는 고전적인 문제이자 오늘에 있어서는 아직 확산 중인 SARS-CoV-2 판데믹의 급격한 변화들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이 문제를 발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매우매우 중요한 일이다: 집단면역의 수준을 추정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사회에 다시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는지, 재감염 우려는 없는지, 또는 매개체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전염능력이 있는지를 판단해야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얼마나 면역력이 유지되느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면역의 다른 측면들도 더 분명해질 것이다. 실험적통계적 증거를 바탕으로 볼 때 한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감염이 일정 정도 다른, 하지만 연관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능력도 제공해줄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이 다른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감염이력때문에 SARS-CoV-2에 대해 더 크거나 적은 리스크를 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답해야할 과제다.

마지막으로 면역항진효과에 대한 문제가 있다. 여러 기작들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반응이 일부 경우 감염을 억제하긴 커녕 항진시킬 수 있다. 이는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 flavivirus에 있어선 잘 알려전 문제인데, 왜 뎅기열 백신이 경우에 따라 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기작이 코로나바이러스에서도 일어나는지는 아직 연구 중이지만, SARSMERS의 경우 이러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백신을 개발하는데 장애물 중 하나였다. 이런 항진효과를 피하는 것이 COVID-19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도전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좋은 소식은 SARS와 MERS에 대한 연구 덕분에 어떻게 이런 항진효과가 일어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를 피하기 위한 방법들이 제안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COVID-19 백신 개발이 여러 경로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모든 측면에 대한 과학 연구가 요구되는 바인데, 이 판데믹하에서, 예전 판데믹 상황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데이터가 나오기 전에 중대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정책결정들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긴급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과학 과정 — 숙의 끝 도출된 가설과 이를 실험과 사려깊은 역학조사를 통해 검정하는 과정 — 은 매우 급박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중의 관심의 정도를 감안해볼 때, 이런 과정들은 보기 드물게 노출되어 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저자 본인은 이 기사가 조만간 철지난 것이길 바란다 — 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현재보다 많은 것들이 발견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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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해지면 COVID-19가 종식될까?

저자정보: https://www.hsph.harvard.edu/marc-lipsitch/
Professor of Epidemiology and Director, Center for Communicable Disease Dynamics, 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
하버드 보건대학원 전염병학 교수

초벌번역 원문: https://docs.google.com/documen../edit (구글닥스이기때문에 2020-02-26 10:10:00 AM EDT 기준으로 카피해서 번역함)

아래는 초벌번역이고 원문을 확인하기를 바란다.

 

따뜻해지면 COVID-19가 종식될까?

 

(한 줄 요약) 아니오.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SARS-CoV-2와 이 바이러스가 야기하는 병증 COVID-19가 북반구 날씨가 몇 달 후 따뜻해지면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는 한 발 더 나아가 2003년 사스(SARS)때의 경험이 그 근거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과연 따뜻해지면 COVID-19가 종식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짧은 답은 SARS-CoV-2가 좀더 따뜻하고 다습한 날씨, 그리고 아마도 북반부 온대기후대의 학교들의 휴교(방학)로 전염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이런 전염성이 감소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추이에 크게 영향을 줄거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기 전에, 일단 몇 가지 돌고 있는 미신들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

미신 1: 2003년, SARS는 날씨가 따뜻해지자 종식되었다. SARS는 자연적인 원인으로 종식된게 아니었다. 중국 본토 도시들, 홍콩, 베트남, 태국, 캐나다를 비롯한 각국의 강력한 보건조치를 통해서 종식되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이 조치들에는 격리, 접촉자들에 대한 방역, “사회적 거리두기 (역주: 대규모 집회 등을 자제하는 것)” 조치, 그리고 다른 강력한 노력들을 말한다. SARS의 경우 이러한 조치들이 효과적이었는데 왜냐하면 가장 감염능력이 높은 개인들이 특정하기 쉬운 형태로 아팠기 때문이다 — 즉 아픈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감염을 일으키는 이들이었고, 그래서 이 아픈 사람들을 격리하자 전파를 억제할 수 있었다. 실제로 토론토에서는 초기 전염유행이 통제되고 주의조치들이 해제된 후에 재차 유행병이 번졌던 사례가 있다. 이 사례를 통해 (날씨가 아니라) 방역조치가 초기 유행을 막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신 2: 일반적인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 종은 계절성, 즉 여름에는 별로 전염이 안 되기 때문에, SARS-CoV-2 또한 그럴 것이다. 신종 바이러스가 어떤 특징을 지닐지 다른 바이러스종을 통해서 추정해보는 것은 언제나 추정의 영역이지만, 다른 정보가 없을 때는 그게 최선일 순 있다. 그런데 이 미신의 첫번째 문제는, 이 일반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들 – OC43, HKU1, 229E 그리고 NL63과 같은 바이러스들이 현재 SARS-CoV-2 바이러스에 속성을 추정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OC43이랑 HKU1의 경우에는 계절성 코로나바이러스들 중에서 염기서열상 SARS-CoV2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긴 한데, 이들은 아주 오랜동안 인구집단에서 유행하고 진화했기때문에, 이종 감염을 통해 새롭게 유입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행태를 얼마나 잘 예측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자, 왜 그런지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왜 미국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는 온대지역에서 호흡기 바이러스들이 겨울에 유행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은 이 현상에 대해 네 가지 요인을 나열한다. 어떤 바이러스들에 대해서는 이 요소들중 어떤 요소가 가장 중요한지 알고 있고, 어떤 경우에는 외삽을 해야할 수밖에 없다 (즉, 정보가 부족하다).

요소 1: 환경. 겨울에는 실외공기는 차갑고, 실내외 공기는 모두 건조하다. 독감 바이러스의 경우엔 절대습도가 독감 전염성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유려한 실험을 통해서 밝혀진 바 있다. 건조한 공기가 전염성을 높인다. 또한 역학조사를 통해 이 실험 결과가 미국베트남 등 여러 역학연구지역의 관찰결과와 부합한다는 것도 밝혀진 바가 있다. 특히 베트남에선 독감을 포함한 독감과 비슷한 병증을 관찰했을 때도 부합하는 결과가 나왔기때문에, 다른 효흡기 바이러스들에도 비슷한 기작이 벌어질 것이라고 추정은 할 수 있지만, 내가 아는 한 독감을 제외한 코로나바이러스나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에서 습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연구된 바가 없다. 또한 중요한 점은, 매우 다습한 조건이 독감 전염을 오히려 높일 수도 있는데, 특히 열대지역과 관련해서 관련이 있다. 허나 온대지역 국가들에 있어서, 건조한 공기 = 독감 전염을 높이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이 요소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내가 협업한 최근 preprint에선 코로나바이러스가 여러 다른 기후대에서도 전염이 가능하고, 특히 적도 근처에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바이러스가 퍼진 사례로 볼 때 다습한 상황에서도 전염력이 떨어진다고 덮어놓고 추정할 수 없다.

요소 2: 인간 행동 겨울철에 대개 사람들은 주로 실내에서 활동하고 환기를 덜하며 여름철에 비해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더 좁다. 특히, 학교들이 전염의 가장 큰 근거지가 된다. 호흡기 바이러스들의 전염이 높은 시기가 학교 학기와 연관되어있다는 보고들은 여러 차례 제시된 바 있다. 수두, 홍역 그리고 독감(보고보고)이 그 예들이다. 학기가 SARS-CoV-2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아동들이 확진된 경우는 드물다. 이 때문에 이들이 별로 전염성이 강하지 않다는 뜻일 수가 있다. 또는 이들이 증상이 약해서 무증상 전염을 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그 중간일 수도 있다. 이를 규명해야 학교 폐쇄가 COVID-19 전염을 막고 통제하는데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요소 3: 숙주의 면역계. 평균적으로 인간의 면역능력이 체계적으로 겨울철이 여름철에 비해서 떨어질 수가 있다. 가설 중 하나는 멜라토닌이 면역력과 관련이 있으며 광주기로 조절되기 전염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다른 가설로는 비타민 D 레벨이 일부 자외산 노출과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여름철에 더 자외선을 많이 쬐고 비타민 D 합성이 올라간다) 여름철 면역력이 더 높다는 것이다. 이 가설과 관련해서 가장 강한 증거는 무작위 임상시험에 대한 메타 분석에서 비타민 D를 더 먹을 경우 급성 호흡 감염률을 낮춘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있다. 반면 우리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독감의 경우 이 면역효과가 여름철과 겨울철 사례 차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다. 이 분야가 더 많이 연구되어야하겠지만, 현 사태와 얼마나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요소 4: 전염되기 쉬운 숙주수의 감소. 계절성이 없더라도, 전염병은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다가, 그 전염속도가 줄어들고, 감소하는데, 감염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경우 감염자가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고 (Reff>1), 감염시킬 수 있는 개인들의 비율이 줄어들면서 전염이 피크를 찍고 (Reff=1), 그 이후 감소한다 (Reff<1). 만약 위의 1-3과 같은 요소들이 계절적으로 변화하고, 새롭게 감염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시간에 따라 등장하면 (예를 들어 출생을 통해서) 이 과정은 계절요소와 연관되어 매년 반복되는 계절성을 만들 수 있다.

이 점이 마지막 요점이다: 설사 계절에 영향을 받는 전염병이라 하더라도 만약 새롭게 발생한 것이라면 “계절과 관계없이” 확산될 수 있다. 신종 바이러스는 일시적이지만 중요한 강점을 지니고 있는데 – 거의 어떤 개인도 이 바이러스에 면역을 형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랜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들은 더 적은 수의 숙주들 사이에서 유행해야한다 — 대부분의 개인들은 면역이 되어 있고, 따라서 전염병이 유행하기 위해서는 일부의 아직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숙주들을 노려야한다. 간단하게 말해, 오래동안 유행했던 바이러스들이 잘 전염되기 위해서는, 모든 조건이 맞아야하고, 그래서 좀더 조건이 맞는 겨울철에 유행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종 바이러스 — pandemic 인플루엔자 같은 경우 — 의 경우에는 통상적인 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계절과 다른 철에 유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판데믹은 4월에서 5월에 시작됐고 (독감 시즌이랑 전혀 다름), 여름철에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아마도 이 독감의 경우 유아들이 전염에 중요한 요소이고 학교 방학철이었기때문에), 통상 독감 시즌 시작보다 빠른 9-10월 다시 유행했다. 즉 오래된 바이러스들과 달리 신종 바이러스는 알려진 계절성 영향이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독감 판데믹 상황에서 흔히 벌어지는 패턴이다.

자, 그래서 요약하자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SARS-CoV-2에 있어서, 다른 베타 코로나바이러스들과 비슷한 양상으로 여름철에 비해 겨울철에 더 많이 전염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요소가 그 계절성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른다. 그 계절적인 차이가 아주 클 것 같진 않고, 그 자체만으로 전염을 막기에는 부족할 것이라 예상한다. 판데믹 독감의 사례들로부터 추론하자면, SARS-CoV-2는 인간에게 신종이기때문에 면역을 가진 개인들이 적을 것이고, 따라서 겨울철을 벗어나서더라도 전염될 계속 전염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날씨가 따뜻해지는게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전염을 종식시키진 못할 것이다. 효과적인 정책을 위해 시급한 연구과제는 아이들이 중요한 전파자들일 것이냐는 문제이고, 이 경우 개학 연기 등의 조치가 효과적일지, 아니면 공연한 자원낭비가 될지 판단하는데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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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 조치”의 진실

The Truth About “Dramatic Action”

(아래는 위의 링크를 초벌번역해본 것이다.   라는 필명의 저자가 2020년 1월 27일자로 올린 글이다.)

“제가 아는 한, 천백만명 인구의 도시를 봉쇄하려고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전례없는 조치입니다.” 중국 WHO 담당자 Dr. 고든 갈레아(Gauden Galea)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발 관련 지난 주 우한시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반응이다.

갈레아박사의 이 말로 유추해볼 때, 내가 지난 기십년 살았던 우한시의 봉쇄조치는 WHO가 조언한 정책방향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또한 이런 조치가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데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도 WHO가 분명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공중보건 조치로 시도된 적이 없기때문에, 이 조치가 효과적일지 아닐지 이 시점에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나는 현재 이 거대한 실험 속에서 살고 있는 우한시 천백만 시민 중 한 명이다. 갈레아박사는 중국의 이 조치에 대해 “당국이 어떠한 극적 조치도 할 수 있다는 공중보건에 대한 전적인 헌신의 표현으로 보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사는 이 도시를 휘감은 장막 안에서, 나는 이 “극적 조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직접 보고 겪은 “당국의 공중보건에 대한 전적인 헌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도시봉쇄

1월 23일 새벽 2시, 우한시 당국은 급작스럽게 도시를 전면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에 따르면, 같은 날 오전 10시를 시작으로, 모든 공공 버스, 지하철, 선박, 장거리 버스, 그리고 다른 교통수단 운송이 중단될 뿐만 아니라, 공항과 철도 또한 통제될 것이었다. 이 시점에, WHO는 이런 전략의 필요성이나 유효성에 대해 반문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조치는 무를 수 없었고, 곧이어 다른 인접 도시들로 확대될 운명이었다.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서, 1월 24일 정오때까지, 후베이성의 총 14개 도시들이 방역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총 3천5백만에 달하는 인구의 도시들, Huanggang (黄冈)과 E’zhou (鄂州)를 이어 Chibi (赤壁), Xiantao (仙桃), Zhijiang (枝江), Qianjiang (潜江), Xianning (咸宁), Huangshi (黄石), Enshi (恩施)、Dangyang (当阳), Jingzhou (荆州), Jingmen (荆门), Xiaogan (孝感)까지 봉쇄지역이 확대되었다.

이틀만에 한 도시가 아니라, 사실상 후베이성 전체가 방역지역으로 봉쇄되어 버린 것이다.

갈레아박사와 다른 외국인 전문가들은 후베이성의 이처럼 엄청난 방역작업에 일종의 경외감을 표현했다. 주말에 뉴욕타임즈지는 밴더필트 대학의 감염병 전문가인 윌리엄 셰프너(William Schaffner)박사를 인용하며, “전례에 없었던 규모의 보건의학적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셰프너 박사는 분명히 놀라고 있었다: “그 규모와 속도 측면에서 매우 놀랍습니다”라고 전했다.

중국이 이런 엄청나게 거대한 조치에 대한 인상은 필경 지난 40년간 중국 경제성장을 빗대어 “중국의 기적”이란 말이 회자되는 것에 비견될만하다. 허나 앞서 언급한 대규모 방역조치를 보건 측면에서 “중국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모든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이해해야하는 점은, 이 전염병이, 앞서 언급한 도시들이 봉쇄되기 전까지, 아니, 그 어떤 결정적인 조치가 내려지기 전에, 40일도 넘은 기간동안 퍼지도록 방치되었단 점에 있다. 중국 지도부가, 특히 후베이성 및 각 시 정부들이 그간 벌였던 노력들을 보면, 전염병을 방역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이 병에 대한 정보를 가두고 억제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이 전염병에 대한 뉴스를 억제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상식이며, 많은 이들은 이 전염병이 발발했을 때 터놓고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내가 사는 도시와 다른 도시들을 봉쇄하는 “극적 조치”를 낳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문제의 원인은 우한시에서 비롯되어 전세계로 퍼진, 다들 얘기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다. 1월 24일까지, 후베이성에서만, 이 바이러스로 인해 입원한 환자들이 549명에 달했다. 그 중 24명이 사망했다. 허나 실제 숫자는 여전히 알려져있지 않다.

주요 언론사중 하나인 Caixin Media(財新傳媒)의 보도에 따르면, 이 모든 사태는 12월 8일 시작되었다. 우한 허난 수산시장의 좌판 판매자가 최초 감염자로 확인된 것이다. 우한 수산시장은 대규모 수산시장으로, 7개 축구장 면적에 천개 이상의 좌판으로 이뤄져있다. 시장에는 수많은 고객들이 들락날락해서, 전염병이 퍼지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수산시장이란 말은 사실 이름뿐이고, 이 곳에서 두더쥐, 사향 고양이, 공작새, 대나무쥐 등 여러 야생동물도 거래된다. 이 시장에선, 끊임없는 식욕과 걸신들린, 때론 호기심어린 중국의 각양각색의 요리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감염자들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짧은 시간에 27명으로 불어났다. 우한시의 의료진들은 12월 초, 이 병이 2003년의 사스와는 다른 신종의 감염병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12월 내내 사스란 유령이 우한시를 돌아다니는 것 같았고, 새로운 역병에 대한 소문은 점점더 멀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중국사회는 정부가 면밀히 감시하는 사회이고, 빅브라더의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는 매우 촘촘한 감시대상이다. 당국이 사스의 재림, 또는 비슷한 역병에 대한 소문을 감지하자마자, 처음에 두가지 주요조치를 단행한다. 먼저, 이들은 이 질병발생을 비밀에 부쳤고, 안정성 보호 기제(啟動穩控機制)를 발동했다. 12월 30일, 우한시 보건 당국은 병의원 및 보건 조직에, 이 신종 전염병에 대한 그 어떠한 정보도 발표하는 것을 금하는 명령을 발동했다. 12월 31일까지, 우한내의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2차 감염 (인간-인간 감염)이 보고된 바가 없고, 어떤 의료진도 감염된 바가 없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과학 대 정치

12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기간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23일간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동안, 중국의 과학자들은 놀고 있지 않았고, 이 바이러스를 규명하기 위해 분초를 다투었으며, 이들의 노력은 경의를 표할만했다. 중국 질병 예방 통제 본부 소속 과학자 Meng Xin (孟昕)이 밝힌 것에 따르면:

“그러니까 원래 이들[주: Meng은 여기서 정부를 가리킨다]은 손에 에이스 카드 하나를 쥐고 있었습니다. 내 동료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 안에: 병원체를 찾아서, 그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체를 해독했으며, 질병의 원인을 규명했습니다. 2주도 안 되어서, 각급 성 질병 예방 통제 본부에 진단 시약을 제공했으며, 우한으로부터 온 수십에서 수백개의 검체들 (정확한 숫자는 알려져있지 않았다)을 검사했어요. 이런 기민한 대응은 해외 동료들의 칭찬을 들었고 WHO도 사례했으며, 이 전염병의 예방과 통제에 귀중한 시간을 벌어다줄 수 있는 카드였어요”

Meng은 여기서 베이징의 과학자들의 활동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허나 상하이의 과학자들도 뒤지지 않았다. 중국 국가 보건기구의 공식지 Health News (健康报)의 보도에 따르면, 상하이 공공 보건센터 또한 12월 26일 우한 감염자들로부터 받은 샘플을 접수한지 열흘만인 1월 5일 코로나바이러스 종을 분리해냈고 전체 유전체를 해독했다고 한다.

1월 11일, 베이징과 상하이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중국은 우한 폐렴 전염병의 병원체가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임을 밝혔고, WHO와 이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 정보를 공유했다.

이렇게 중국당국이 WHO와 신속하게 정보를 교환하는 동안, 당국은 중국 인민에게는 이 정부를 공유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엄격한 비밀을 유지했다. 이때문 예방과 통제 차원에선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는 뜻이다.

Meng Xin이 이 점을 이렇게 요약한다:

“[과학자들이 제공한] 에이스 카드를 당국은 활용하지 않았는데, 매 순간마다 정치적 지도가 가해졌고 엄격한 비밀보안요구가 지워졌다 – 이건 말할 수 없고, 저것도 말할 수 없고, 우리는 안정을 취해야하고 등등등. 그래서 검체 테스트 결과들은 안전하게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중국인민의 입장에서, 우한시 시민으로써,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1월 12일, 우한시 보건당국은 새 환자들이 없고 또 2차 감염 또한 1월 11일일자로 없다고 발표했다.

1월 13일, 우한시 보건당국은 새 환자들이 없고 또 2차 감염 또한 1월 12일일자로 없다고 발표했다.

1월 14일, 우한시 보건당국은 새 환자들이 없고 또 2차 감염 또한 1월 13일일자로 없다고 발표했다.

1월 15일, 우한시 보건당국은 새 환자들이 없고 또 2차 감염 또한 1월 14일일자로 없다고 발표했다.

1월 16일, 우한시 보건당국은 새 환자들이 없고 또 2차 감염 또한 1월 15일일자로 없다고 발표했다.

정치가 먼저다. 사회 안정이 우선이다. 이런 환경에서, 과학은 그저 앉아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적 결과는 이보다 더 분명할 수 없었고, 당국자들은 실제 상황에 대해서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진실을 얘기할 수 없었고, 전염병을 통제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일선에 있는 의사들이 전염병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 이들은 심문당하러 끌려갔다. 온란인에 전염병에 대해 쓴 우한 시민 여덟명은 공연한 불안감을 조성한단 죄목으로 경찰에 잡혀갔다. 물론 대중의 목소리를 묵살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제약들의 초점은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2차 감염(인간에서 인간)이 일어났단 진실이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우한시 당국자들은 1월 14일까지 2차 감염의 분명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강조하기에 바빴다. 나중에서야, 당국자들은 이들이 일컫길 “제한적인 인간-대-인간 감염”에 대한 증거가 있다고 인정했을 뿐이다. 베이징의 전문가 그룹의 위원인 Wang Guangfa (王广发)는 대외적으로 이 질병이 “예방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공식 보도들에, 대중은 상황인식을 할 수 없었고, 또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 않은 척 정치

1월 17일까지, 우한시 관광당국은 춘절 명절 행사 홍보 “Spring Festival Culture Benefitting the People Campaign” (春节文化惠民活动)에 바빴는데, 중국 전국의 관광객들에게 우한시의 볼거리를 위해 수십만개의 공짜표들을 뿌리고 있었다. 1월 19일까지, 우한시가 자랑하는 주거구역 Baibuting Garden (武汉市百步亭社区)에선 4만명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춘절잔치를 치루고 있었다. 우한시로 중국, 나아가 전세계 관광객들이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우한은 지역 당국자들이 진실을 막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한 덕분에 사방으로 열린 도시가 됐다.

후베이성 지역 당국자들의 일정표를 보면 당국자들이 얼마나 전염병을 무시하고 있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1월 11일, 이 병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것이 확인된 그 날부터, 1월 20일, 시진핑 총서기가 전염병에 대한 대응과 통제에 대한 지시를 시달할 때까지, 후베이성 당국자들과 우한시의 당국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과 관련된 그 어떠한 조치나 모임을 갖은 적이 없다.

1월 12일부터 17일까지, 이 당국자들은 모두 이른바 “양회”로 언급되는 전인대 및 정협의 성급 또는 시급 회의에 참석하느라 바빴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대로 새 케이스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보건당국에서 발표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 왜냐하면 “양회”를 위해 “조화로운” 여론환경이 조성되어야했기때문이다.

1월 18일 토요일, 당국자들의 일정표는 비어있는데, 아마도 휴식일이었기때문일 것이다. 1월 19일, 성급 및 시급 지도자들은 일정이 있었지만, 이들은 전염병에 대해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후베이성 당서기 Jiang Chaoliang (蒋超良)은 3개의 일정이 있었는데: 양쯔강 수자원 보호 위원회, 퇴약장병들과의 모임, 및 군 춘절행사 참석이 그것이었다. 다음 날 그의 일정은 Daye시의 빈민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후베이성 성장 Wang Xiaodong (王晓东)은 1월 19일 당서기 방문들을 따라갔으며, 다음 날엔 아무런 일정이 없었다.

우한시 당서기 Ma Guoqiang (马国强)는 1월 19일 Grass-roots Party Building Review and Appraisal Council에 참석했고, 1월 20일에는 시 상임위원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 상임위원회의 내용은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중앙 및 후베이성 당 지도부로부터 하달받은 “우리 목표를 향해 흔들림없이 나아가는 것” remaining true to our original aspiration, keeping firmly to our mission” (不忘初心, 牢记使命)을 다뤘는데, 시진핑이 중국적 사회주의의 길과 이른바 “중국의 재발흥”이란 발표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과 관련된 유일한 일정은 우한시 2인자 Zhou Xianwang (周先旺)시장이 1월 20일 전염병 예방 통제 본부를 방문한 일정이다. 이 날은 시진핑이 마침내 전염방에 대한 공식조치를 하달한 날이기도 하다.

“양회”의 성급 및 시급 회의들이 모두 끝난 뒤에야 후베이성 당국자들이 새 발병자들을 보고하기 시작했기에, 1월 19일 밤 갑자기 새 발병자 수가 136명으로 늘어났다. 허나 이전 숫자에 비해 급격히 늘어난 이 숫자에도 불구하고 당국자들은 전염병에 대해 보수적이었고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1월 21일, 그러니까 시진핑 총서기가 1월 20일 전국적으로 지침을 하달한 다음 날에도, 후베이성 당 및 행정 당국자들은 Hongshan Assembly Hall에서 춘제 잔치를 관람했는데, 여기선 노래와 춤 극단의 공연도 포함되었다. 당보 보도에 따르면, 이 춘절 행사는 당지도부와 후베이성 문화관광부의 최우선 과제였는데: “후베이성 문화관광부장이자 비서인 Lei Wenjie는 직접 공연계획을 검토했으며, 프로그램을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리허설 또한 관람했다”라고 되어 있다. 심지어 이 보도에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디테일도 포함되어 있는데, 예컨대 공연자들이 “최고수준의 공연을 내는데 수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했는데, 먼 거리에서 오느라 감기, 콧물 그리고 통증도 참아가며 공연준비에 최선”을 다했단 보도다.

후베이성 최고지도자 Jiang Chaoliang서기와 성장 Wang Xiaodong (王晓东)이 당과 정부 고관에게 마련된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사진은, 매우 평화로와보인다. 허나 그 춘절행사뉴스가 온라인에 게시된 순간, 인터넷에선 이들의 무대책을 성토하는 자리가 되었다. 한 온라인 유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들을 비판했다: “바이러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공복들은 안마당서 꽃들이나 받고 있네”

진중한 목소리

진짜 전환점은 2003년 사스 바이러스를 발견했던 저명한 호흡기내과의 Zhong Nanshan (钟南山)이 우한시를 방문했을 때 벌어졌다. 1월 18일, 광저우 당국으로부터 당장 우한으로 향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중국 공학원의 높으신 회원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로 인한 특별 지시 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우한시까지 이동하는데 필요한 특별한 이동권한을 받기에는 지위가 너무 낮았던 모양이다. 결국 그는 춘절을 기해 귀향하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간신히 저녁 고속철도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광저우에서 우한시까지 식당차 한 켠에서 버텨야했다.

돌이켜보건대, 당시 그가 받은 지시는 전염병에 대한 연구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앞서 밝힌대로, 이 시점에서 베이징과 상하이의 과학자들은 이 부분과 관련해서 이미 결정적인 진전 – 병원체 발견, 유전체 확인, 진단키트 개발 – 을 이룬 뒤였다. 불행히도, 중국 정치때문 이러한 과학자들의 업적은 대부분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

종남산 박사가 등장한 것은 충분히 신뢰를 갖고 있는 제3자의 등장 없인 지금까지의 깜깜이 보도상황을 타개할 수가 없었기떄문이다 – 누군가 대중에게 이 엄청난 전염병 상황의 진실을 알리면서도, 어떻게든 패닉에 빠지지 않게 붙들어맬 수 있는 인물. 중국 질병 관리 통제 본부 소속 연구자 Meng Xin이 쓰기를: “[이 전염병에 대한 진실]을 더이상 가릴 수 없게 됐을 때서야, 남은 패라고는 이 노 종 박사, 이 대단한 의신께서 오셔서 실제 상황에 대해 말하고, 더불어 대중들을 안심시키기를 기도하는 것 뿐이었요.”

허나 당국자들은 모든 진실을 다 고백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전염병에 대해서 쉬쉬했다는 고백도 없었고, 보도가 통제되었다는 고백도 없었으며, 시에서 “슈퍼감염자”가 14명이상의 의료진들을 감염시켰다는 얘기도, 우한시의 의료시설들이 현재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조차도. 그저 종남산 박사가 우한시에 와서 2차 감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 다였다. 그 이상으로, 그는 아무 말도 안했다.

결국 보건의학적인 우려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한시의 심각한 상황이 국가에 끼칠 영향때문에, 정치적 안정이 언제나 제일 먼저이기때문에, 우리 도시가 봉쇄된 것이었다.

유령 도시

우한시의 봉쇄는 최고 당지도부의 절박함의 신호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후베이성 및 시급에서는 피할 수 없는 조치였다. 사실 다른 성들과 도시들이 중앙에 후베이성에서 일어나는 상황, 우한시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기에, 우한 및 후베이성의 거의 모든 지역 봉쇄령이 이뤄졌단 얘기가 있다.

우한시에 처음으로 봉쇄령이 떨어졌지만, 이 조치는 전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질질 끌려가면서 마지못해 이뤄진 조치였다. 그 어떤 증거로도, 내가 알기로는, 윌리엄 셰프너 박사의 표현처럼 “규모면에서 놀랄” 조치가 아니었다. 혹자는 이 조치가 일종의 전시통제의 일종으로 이뤄졌다고 상상할지 모르지만 이는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아니었다. 조치는 1월 23일 새벽 2시에 내려졌지만, 공식적으로 오전 10시 이전까지 시행되지 않았고, 따라서 8시간동안 조치를 미리 들은 이들이 자기 차를 갖고 고속도로를 통해 탈출할 수 있었다.

우린 이 시점에 시를 탈출한 이들 중 상당수 – 일부 예측에 따르면 거의 백만명이 탈출했다고 한다 – 가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시로부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어서 치료를 받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한시 출신 환자들이 이를테면 상하이에서 성공적으로 치료받고 퇴원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이 짧은 봉쇄령 발표와 실제 시행 사이의 구간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우한 봉쇄령의 다른 측면은 그 성급함이다. 심지어 봉쇄가 이뤄진지 며칠이 지난 이 시점에도,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지 않았는데, 이를 통해 볼 때 발표 이전에 그 어떠한 준비도 없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봉쇄령이 시행되기 전에 떠난 백만명의 이재민들은 어디에 머물고 도와야하는가? 봉쇄기간동안, 식량, 식수 및 다른 기본적인 필수품들은 시민들에게 어떻게 공급해야하나? 의료진들은 적절한 치료를 위해 의약품 및 다른 필수품들을 어떻게 공급받을 수 있는가? 당국은 긴급한 수송 – 이를테면 의료진들의 이동이나 환자들의 병원 이송을 위한 수송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법과 질서는 어떻게 유지하는가? 당국은 이들과 많은 다른 긴급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하지 못했다.

이런 답변이 없는 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저 한 도시 전체가 끊기고 막힌 것이다. 방역이란 것은 그저 천백만명의 사람들이 도시에 갇힌 것 다름이 아니다. 그 누구도 어떻게 질서가 유지되고 어떻게 우리가 생존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게 후베이성 성도, 우한의 상황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이런 식으로 봉쇄당한 다른 도시들이 나빴으면 나빴지 상황이 덜할 것 같지 않다. 봉쇄된 14개 도시 중에, 계획이나 준비와 관련해서 달리 말할만한 사항이 있는 도시는 하나도 없다. 이들 또한 암흑속에서, 마치 고립된 섬처럼 집에 있는 무력한 삼천오백만명의 시민들일 것이다.

이런 조치의 결과는 이미 분명해지고 있다. 우한시에서만 이미 생필품 부족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물가는 통제불능상태에 이르렀다. 1월 23일 아침 봉쇄가 시행되었을 때, 정오에 이르러 야채 가격은 이미 급등했고, 500그람당 일부 품목은 수백 위안의 가격이 되었다. 당일 오후에 이르러선, 많은 슈퍼마켓들이 동이 나버렸다. 다행히, 춘절을 맞이해서 각 가구들이 생필품들을 쌓아놓는 시기이긴 하다. 허나 공급이 재개되지 않으면, 조만간 많은 가구들이 식료품 부족을 겪을 것이다.

다른 주요 문제는 주요 병원 및 일선 의료진들의 방호기구들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쓰나미같은 환자들을 대하고 있다. 후베이의 가장 좋은 병원 – 예를 들어 통지병원이나 Xiehe 병원조차 이런 기본적인 문제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일부 경우, 일선 의료진들은 지난 금요일 춘절 식사 –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식사 – 조차 못했다. 이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방호복이 일회용이어서 벗을 때마다 버려야하는데, 마스크마저 주말에 동났기때문에 의료진들이 마스크를 벗지 않았기 떄문이다. 더 심각한 상황은 일선 의료진들이 이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피로 속에 지쳐가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란 것이다.

또다른 이슈는 거의 백만에 달하는, 우한시를 벗어난 주민들이 사실상 거주할데도 없는 난민 신세라는 것이고, 다른 지방정부 및 지역민들의 불안감때문에 공격받을 것이란 점이다. 일부 경우에, 이들은 바이러스를 더 퍼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고, 다른 경우에, 이들은 난민들 및 환영받지 않은 사람들로써 심각한 취급을 받을 것이다.

봉쇄령이 내려진 우한시는 이미 유령도시란 느낌이다. 연말연시에, 폭죽소리도 들을 수 없고, 수십년간 이 도시에 살았지만 폭죽소리 없이 지나간 것은 정말 처음이다. 전체 도시는 조용하다. 대개 꽉 들어찬 도로들은 비어있고, 공공장소는 아예 접근할 수 없다. 누구도 회합하지 않고 있고, 어떤 공공활동도 불가능하다. 원자화된 개인들로써, 우리 집에 틀어박혀서, 텔레비젼을 보면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다.

이런 고요한 침묵속에서, 공포가 퍼지고 있다. 고위 관리들은 분명히 두려움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이거다. 봉쇄령이 떨어진 다음에, 이들은 아무런 비상계획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추후 계획에 대해서도 발표한 바가 없다. 지난 금요일 결정적인 시기에, 후베이성 병원의 어떤 의료진에게도 격려차 식사를 하던 뭐든 한게 아무것도 없다.

이들은 이렇게 하는 것만이 일선 의료진들을 격려하고, 이 불쌍한 도시에 갇힌 수백만 인민들에게 힘이 되준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용기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비겁함에는 이유가 있다. 왜냐면 두려움을 강화시킬 예들이 이미 널려있다. 1월 22일, 후베이성 상무부 부상 Huang Mouhong (黄谋宏)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판정을 받았다. 이 발표 이전에, 베이징으로부터 우한에 날라와서 이 질병이 “예방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다”라고 말한 Wang Guangfa는 베이징으로 돌아간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실상, 성급 및 시급 정부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보는데, 결국 거의 임시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이 비겁하고 무능한 정부들은 사실상 전시상황이 된 이 시점에서 책임을 질 요량이 없다. 이렇기에 대중은 깊은 우려와 불확실성에 잠겨있다.

1월 22일, 후베이성 국영 일간지 언론기자 Zhang Ouya (张欧亚)는 거의 분명 정신줄을 놓고 온라인에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한시는 당장 지도자들을 갈아치워야한다. (武汉必须当机立断换帅了)” 짧은 시간 동안 이 열변은 온라인을 달궜다. 마치 변이하는 바이러스처럼, 다른 밈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태어났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어로 guānzhuàng bìngdú (冠状病毒)라고 불리우는데, 동음이의어로 “official virus” (官状病毒) “벼슬아치바이러스”로 불리우며 정부와 지도층들의 비겁함과 무능을 성토하는 말이 되었다.

이런 식의 촌철살인 풍자에 씁쓸한 웃음을 억제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중국의 안정지향적 정치환경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다. 이 나라에선 그 어떤 것도 억제될 수 있다. Zhang Ouya의 온라인 성토는 금방 지워졌고, 후베이 매일 일간지 그룹의 당 지도부는 시당에 Zhang Ouya의 “잘못된 발언”에 “깊은 사과”를 한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한 해당 언론사는 Zhang Ouya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적절한 조치”에 돌입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시점에, 전염병이 발생한 우한시 Huana 수산시장에 대한 조사를 하는 와중에, Caixin Media의 Xiao Hui (萧辉) 기자가 4명의 보안요원에게 구타를 당했다. 중국의 가장 저명한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 Wang Heyan (王和岩)는 우한 료진 감염사례를 검증하기 위해 의사들과 접촉했으나 이들과의 면담이 거부되었다. 중국 질병 통제 예방 본부는 “의료진은 그 어떤 조건에서도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으며, 정보를 누출하지 말 것. 익명으로 보도하겠다는 기자의 약속에도 절대 인터뷰하지 말 것”이라고 명령을 내렸기때문이다.

내일은 어떨까? 여기 우한에서, 천백만명의 시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 극적 조치가 아니라, 투명성 그리고 실질적인 조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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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과학자의 이야기

“1981년 만우절을 기다리는 그 주는 참 괴롭게 시작했었죠. 남편은 자기가 지도하던 대학원생이랑 사랑에 빠졌다며 날 떠난다고 했어요. 당장 내일 열대로 돌아갈거라고. 전혀 예상치도 못했기에 그 날도 멘붕이었지만 33년이 지난 지금도 뭐라고 할 말이 없을 정도니까…어안이 벙벙해서 멍하니 있는데 위로랍시고 새 진공청소기 하나 안겨줬죠.

봄학기일 때니까 담날 아침에도 수업을 해야했고 수업 때려치려면 이유를 설명해야하는데 그거보다야 수업을 하는게 훨씬 쉬운 일이었죠. 그래서 6살을 3개월 남짓 남겨놨던 딸내미를 강아지와 함께 유치원에 내려놓고 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아마 대충 9시 반이었을 땐데 학과장님이 날 붙잡는거에요. 내 사무실로 오라고. 아 진짜 어서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물론이죠라고 하고 학과장실에 갔더니 말씀하시더군요. 아 방금전에 알았는데 축하하네, 테뉴어 심사 통과했어요. 라고 말이죠. 물론 그 말씀하자마자 전 결국 눈물을 흘렸죠. 이 불쌍한 학과장님은 나보다 한 세대나 위의 노신사고 아들만 셋 키웠는데 자기 앞에 젊은 여조교수가 테뉴어받았단 말에 우니까 어쩔줄 모르면서 내 인생에 이런 반응은 또 처음이네 하며 앉아보게 무슨 일인가?라고 했어요. 전 테뉴어때문이 아니에요라고 하면서 사실 어제 남편이 결별하자면서 떠났습니다라고 했죠. 그 소리 들으니까 날 보더니 자기 책상 서랍에서 잭다니엘스를 꺼내 한 잔 따라주며 그러더군요. 이거 마시면 월요일 아침 버클리교정이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네. 그래서 간신히 그 날을 마치고 술 다 깬다음에 3시반쯤 언덕 넘어서 딸 데리러 유치원 갔죠.

딸이랑 강아지가 깡총 뛰어 차에 타고 집에 돌아갔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집안이 엉망진창인거에요. 집에 도둑이 들었던거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내 전남편은 자주 집에서 일했는데 그래서 우리 집을 노렸던 그 도둑놈은 예상할 수 없이 집에 누가 있으니까 우리 집을 재끼다가 물론 그 날 아무도 집에 없었으니까 털렸던거죠. 그래서 911을 부르니 젊은 버클리 경찰관이 왔죠. 와서 집안을 확인하는데 물론 뭘 도둑맞었는지 몰랐는데 왜냐면 당시 남편이 일요일밤 떠나면서 많은걸 갖고 가버려서 집에 뭐가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또 그 사정을 경찰한테 설명해야했죠. 경찰관은 목록을 함 만들어보라고 하구 말이죠. 그러면서 제 딸이랑 같이 딸 방문을 열어보니 와 완전히 엉망진창인거에요. 침대는 쪼개지고 커튼 찢기고 서랍은 다 뽑히고 개판인거에요. 옆에 여섯살 바라보는 에밀리가 경관을 보면서 경찰관아저씨 제 방에 도둑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더군요 (웃음). 아 정말 감사하게도 경찰관 아저씨는 그 말에 웃지 않고 딸한테 자기 명함을 건네주면서 꼬마숙녀님 잃어버린 것 알게 되면 언제든 여길로 연락해줘요라고 했죠.

자 이제 월요일밤이 되었는데 그 주에 전 워싱턴 DC의 NIH(미 국립보건원)에 중요한 발표를 해야할 상황이었어요. 당시 어떻게 돌아갔냐면 젊은 교수가 처음으로 큰 규모의 연구비를 제안하면 꽤 자주 NIH에 돌아가서 사실상 연구제안서를 설명하는 자리였고 그 때 제겐 상당한 금액의 5년간의 연구비가 결정나는 자리였지요. 처음 신청한데다가 해본 적도 없고 너무나 중요한 미팅이었기때문에 원래 계획은 딸이 아빠랑 있으면서 담날 화요일날 친정엄마가 와서 도와주는, 계획 세울 당시만 해도 아주 좋은 계획이었죠. 물론 엄마는 시카고에 살고 계셨고 바로 지난 24시간 전의 사건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기때문에 제딴엔 버클리에 오시면 그 때 설명해드리자라고 생각했죠. 안 그러면 당장 이 밤중에 전화해서 집에 도둑 든 것과 등등을 설명해드려야하는데 말이죠. 어쨌든 그래서 화요일날 엄마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버클리로 돌아가는 차편에서 일요일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처음 말하게 된거에요.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시면서 엄마가 매우매우매우 화가 나셨어요. 아니 어떻게 이 가족이 이렇게 파탄나게 된거냐?!!라면서 아니 어찌 손녀를 아빠 없이 크게 놔둘 수 있겠냐, 아니 이 판국에 딸내미를 놔두고 워싱턴 DC로 날라가겠다고, 가정을 팽개치잔 얘기냐,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정말 내 딸 뭐하는거냐, 지금 네 딸이 차 안에 앉아있는데 어딜 가겠다고, 나 사위한테 연락해야겠어, 엄마 그이는 코스타리카로 돌아갔어요, 연락 못해요, 연락해도 못 와요, 이런 소리하면서 점점더 감정이 고양되시더니 버클리 집에 도착했을 땐 너무너무 화가 나 계셔서 딸을 엄마한테 맡겨놓고 떠난다는 건 불가능한게 분명해보이더라구요. 급기야 몇 시간 뒤엔 난 도저히 지금 일어난 상황을 믿을 수가 없고 난 집에 돌아가겠다, 네가 애를 봐야지 가긴 어딜 가냐, 아니 서부에서 동부 갈 생각 꿈도 꾸지 말아라, 그러면서 난리를 치신거에요.

33년 지난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불과 일년 전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 사건 이후 두 달 이후에 엄마가 간질진단 받으신걸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데, 물론 그 당시엔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그래서 전 네, 엄마 말이 맞아요. 엄만 집에 가세요. 내일 돌아가시는 비행기표 바꿔놓을게요. 내일 공항에 데려다드리고 전 미팅 취소할게요라고 말이죠.

그러고나서 몇 년 전까지 UCSF의 내 포닥 지도교수한테 연락했죠. 이미 그 분은 워싱턴DC에 있었는데, 우연히 종양학회가 당시 DC에서 열리고 있어서 말이죠 — 저 아무래도 못 갈 것 같아요, 무슨 일 일어났는지 간단히 알려드릴게요 하면서요. 물론 그 분은 절 잘 아시기때문에 제가 겪은걸 다 잠자코 들으시더니, 다 큰 딸 키워낸 분이죠, 그냥 오라는거에요. 못 간다니까요라고 하니까 딸 데리고 와요, 그간 에밀리도 잘 봤으니까 자네가 발표할 때 딸 봐줄게라고 하면서 말이죠. 손자 손녀도 있어서 애 볼 줄 알아 이러면서요. 애는 비행기표가 없어요 했더니 내가 이 전화 끊자마자 항공사에 전화해서 딸이 엄마랑 같이 같은 비행기편으로 갈 수 있게 알아볼게, 다 괜찮을거야라는거에요. 진짜요? 진짜라니까 괜찮아 하시면서, 야 나 지금 빨리 끊고 항공사에 연락해야하니까 잘 자 이러시더군요. 네, 그 땐 비행기표 바꾸는게 훨씬 쉬운 시절이었죠.

그래서 전 전화 끊고 엄마 시카고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바꾸고, 제 기억이 맞다면 그 비행기는 아침 10시 출발하는 비행기였을거에요. 그래서 뭐 아침에 버클리를 출발해서 일반적이라면 충분한 시간 안에 도착해야하는데 베이브릿지가 완전 막혀서 45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45분에서야 도착한거에요. 그래서 엄마 비행기는 15분에 떠날 예정이고 저랑 딸의 비행기는 45분에 떠날 상황인데 항공권 받을 줄은 길기만하고 — 딸 항공권을 찾았어야하니까요 — 게다가 저와 딸 가방에 엄마 가방들까지, 거기에 엄마는 이미 노쇠하셨을 때니까요. 에밀리랑 저랑 엄마가 줄에 서 있으면서 제가 엄마한테 혹시 직접 비행기 타러 가실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기억하셔야할게 그 당시엔 지금처럼 무슨 보안검색대가 있고 그런 시절이 아니지만 공항간 게이트들은 여전히 머니까 말이죠, 일언지하에 아니, 나 혼자 못 가 이러시는거죠. 그래서 전 딸한테 에밀리, 엄마가 할머니 모시고 저기 갔다 올테니까 여기 잘 기다려라고 하니까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지르시는거죠, 아니 어떻게 애를 여기 혼자 둘 생각이냐고요, 맞는 얘기죠. 그런데 그 상황에서 도저히 놓칠 수 없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는거에요. 에밀리는 제가 봐줄게요 어서 가보시죠라고 말이죠.

전 뒤돌아보고 아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엄마는 저를 노려보면서 얘야 넌 네 딸을 아무 사람한테나 맡기고 갈 수 있는게 아니란다!라고 말씀하셨죠. 엄마, 제가 Joe DiMaggio를 믿을 수 없으면 대체 누굴 믿을 수 있단거에요?라고 답했죠. Joe는 저를 한 번 보고 엄마를 보고 에밀리에게 함박웃음 지으면서 손을 내밀고 에밀리, 나 Joe야, 그러면서 악수를 하고 딸은 안녕 Joe, 난 에밀리야라고 하는 와중에 전 엄마, 빨리 가요하고 공항을 가로질러 엄마 수속 마치고 다시 돌아오니까 한 20분인가 25분 지났을 때죠.

그 때 에밀리랑 조는 카운터 완전 앞에까지 가서 수다 떨고 있었어요. 조는 이미 에밀리에게 항공권을 손에 쥐어주고 분명히 제가 올 때까지 비행기 타는걸 미루고 기다리고 있었던거에요. 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하고, 천만의 말씀 소리하고 자기 게이트쪽으로 걸어가면서 크게 경례와 손을 흔들어주면서 씩 웃으며 자기 비행기를 탔고 저 또한 간신히 워싱턴 DC행 비행기 타서 인터뷰를 무사히 치루고 연구비 승인 났고 그 연구비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이제 33년 지난 지금 유방암 유발인자 BRCA1 유전자( https://en.wikipedia.org/wiki/BRCA1 ) 연구의 시초가 되었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날림)번역해본 것: https://www.youtube.com/watch?v=tOP5pUIYhv4

이 과학자의 업적은:
https://en.wikipedia.org/wiki/Mary-Claire_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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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화를 읽고 사람들이 다양한 부분을 주목하는 것이 인상 깊었음. 누군 여성과학자의 경험고백에 위로를 받았고들 하고, 또 혹자는 야구선수이름에, 또 혹자는 좌절스러운 순간에 그를 도운 학과장, 경찰관, 야구선수, 지도교수에, 또 혹자는 그 술 이름에, 또 혹자는 그 술을 서랍에서 꺼내는 상황에, 또 혹자는 가족들의 무용함에. 각자 읽을꺼리들이 있을 듯.

ps https://www.nytimes.com/2017/04/03/books/review-the-moth-presents-all-these-wonders.html 좋은 책이라고 함. 아마 번역본이 나오겠죠 (이미 나왔는지도 — 참고로 2015년 나온 책과는 다른 책임. 이게 TED처럼 시리즈물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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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랜 이야기

이건 김어준의 더플랜이란 음모론 영상에 대한 견해다. K=1.5에 대한 대체 가설 궁금하면 바로 넘어가시라. 물론 오류지적엔 마음이 열려있습니다. 댓글 달아주세요 (이메일이 이상하거나 욕설 등은 허가 안 해드립니다).

update update update: 중앙선관위의 공식적인 답변이 나왔는데, 읽으며 수긍갑니다. 결국 더플랜을 비판한 많은 분들과 비슷하고, K값에 대해선 연령별 기표실수차 효과로 설명하네요. 모두 공개검증 용의도 있다고 합니다. 기사: http://www.huffingtonpost.kr/2017/04/19/story_n_16094442.html#cb  한글HWP 읽기 싫으신 분은 이 링크로 읽어보세요. 아주 정리 잘 되어 있습니다: https://issuu.com/nyangs/docs/__________170419_____18____________

Update update: 특별히 K값에 대한 제 대체가설은 많은 분들의 피드백과 새로이 접한 사실들을 비탕으로 볼 때 의미있는 가설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http://ravenclaw1969.blogspot.kr/2017/04/blog-post_16.html 글을 일리있게 읽었으니 추천드립니다. 맘이 앞서 혼란 끼친 것 심히 죄송하게 생각하고, 피드백 주신 것들 감사합니다. 근신하겠습니다.

update: 제가 생업이 바쁘기도 하고 댓글들에 바로 응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無異 님께서 연령효과에 의해서도 K값이 달라지는 또다른 대체가설을 제시해주셨는데 일리 있어 보입니다. (특히 미분류표의 대부분이 유/무효가 갈리는게 아니라 인주가 번진 표일 것 같은 영상도 접했습니다. 만약 이게 일반적인 패턴이라면 무효표룰 변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 재고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부탁드립니다.

0.5 형식 (넘어가셔도 됩니다)

내가 이 영상에서 싫어하는 것은 (1) 형식과 (2) 추론이다. 잠깐 형식을 먼저 얘기하자.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서 관련이 없는 얘기들을 잔뜩 늘어놓고, 변죽을 잔뜩 울려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아주 약한 인과관계의 연쇄를 갑자기 진행시킨다. 그 끝에 아주 큰 주장을 하고 있으면서, 그게 큰 주장이 아니라 상식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전문가들을 소모해서 전문적인 내용들을 마치 이해하게 한 양 치장하고, 간단한 문제를 말도 안 되게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들도 포함한다.

한 마디로 음모론의 전형적 형식으로 영상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다단계나 노인들 약팔이에 쓰는 기법들, 간단히 야바위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똑똑한데 어떻게 속을 수 있어? 라고 하면, 사람이 원래 이런 인지편향에 약하다. 나도 마찬가지로 어렸을적부터 종종 음모론 이야기에 빠졌다 (내 세대에는 “신의 지문”이라든지, “비류백제”란 책들 읽어보신 적이 있나 모르겠다). 그냥 사람의 약점을 공략하는거다. 나는 이런 형식을 김어준이 모르고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잘 알고 활용하는 솜씨다. 일전에 황우석사태 등에서도 잘 보여준 바 있다.

예를 들어 시종일관 외국사례들을 갖다가 놓는데, 여기서 거의 의도적이라고 할만큼 전자투표전자개표를 섞어 쓰고 있다. 더해 한국에선 전자개표기 이후에 수개표가 이뤄진다는 것을 축소한다. 영상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개표 “시연”은, 개표과정이 개표기로 끝난다는 식으로 검표과정을 생략한다. 개표기를 고장내서 (해킹해서 분류를 삐꾸같이 하게 만든거다) 당연히 득표수가 잘못되면, 그걸 전국적으로 발견하지 않고 당락을 뒤바뀌는 백만표를 고칠 수 있다는건 얘기는 안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호도한다.

전문가들을 소모하는 것도 그렇다. 미국의 학자들이 한국의 투표시스템에 대해서 알겠는가? 미국 투표용지랑 한국 기표방식이 얼마나 다른지나 알고서 “3% 미분류는 말이 안 된다”란 말에 전문가적인 판단이 들어가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냥 자기가 필요한 꼭지를, 잘 모르지만 credential은 있어 보이는 사람들 따다가 붙이는 저열한 방법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검증하자, 이러면서 말 보태기 시작하면, 그게 김어준 et al.이 원하는 분위기 연출에 조력하고 소모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명확하게 해야할 이른바 시연 부분에서 검표같은 부분은 쏙 빼고, 감성팔이로 넘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상식적으로 반론을 할만한 진짜 한국 개표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의 반론은 에 배치한다. 당연히 추론을 전개할 때 이런 사람들은 요소요소에, 또는 최대한 에 배치하는 것이 정직하다.

1. 작은 의혹들 (넘어가셔도 됩니다)

작은 의혹들부터 처내자.

김어준이 하는 의혹제기 중에 시간역순이란 얘기는 http://ravenclaw1969.blogspot.kr/2017/04/blog-post.html 이 글을 발췌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어떻게 시간을 앞서서 보도하느냐는 이야기는 현장에 있는 기자들을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만 먹는 뻐꾸기 새끼 정도로 취급하는거죠. 자기네들이 나가 있는 선거구에서 누가 얼마를 득표했는지 다른 방송사보다 빠르게 전달하기 때문에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들이 직접 카운트 합니다. 선관위 결과보다 항상 언론보도가 빠를 수 있는 이유가 뭐겠어요? 선관위에서 개표발표를 한 다음에 방송 내보내는 방송사 본 적 없습니다.

역누적이란 얘기는, 그냥 도농 사이에 지지후보가 갈리고, 도시 선거구가 뒤늦게 개표완료되기때문에 그렇게 보이는거다. “문재인이 유리한 투표함이 나중에 열렸다”라니. 서울, 인천 등 전국 광역자치단체 전부에서 그랬다고 하는데 당빠 다 그렇게 나온다. 왜냐면 모든 광역자치단체엔 도시랑 촌 지역이 다 있다. 차라리 각급 개표소나 투표소별로 말하면 더 신빙성이 있었을거다.

2. 개표기

자, 전개를 명확하게 하자.

여기서 최종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간단하다.

전자개표기가, 표를 100장씩 묶을 때 잘못된 혼입을 의도적으로 일으켜서, 자기가 원하는 선거결과를 만들게 하는데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시연”을 통해 보여준거다. 웃긴게 거기서도 자원자들이 실제 혼입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사람도 확인할 수 있단 얘기다)

(그리고 말은 안 하지만 계속 정황을 대면서 말하는게, 그게 실제로 일어났고, 그래서 박근혜대통령은 개표조작을 통해 당선된 가짜란 것일테다.)

이 주장에 이르기 위해 어떤 논리전개를 하는지 보자.

(1) 전자개표기의 미분류율 3%는 너무 높다.
(2) 18대 대선에서 보니 미분류되었다가 돌아온(?) 표의 각 후보별 비율과 분류된 표의 후보별 비율을 보면 일관되게 박근혜가 미분류표에서 1.5배 더 높다.
(3) 16, 17대 sample에 따르면 저런 편이는 관찰되지 않는다.
(4) 따라서 18대때 기계가 이상한거다.
(5) 기계가 이상하게 행동한건 확실하고, 이게 일관되게 1.5란 수치로 정규분포를 그리고 있기때문에 프로그램이든 하드웨어든 조작했다고 볼 수 있다.
(6) 기계를 조작했다면 당연히 혼입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7) 혼입하게 만드니까 맘대로 득표수를 바꿀 수 있다.

(이 논리의 연장선상으로 부정선거로 박근혜대통령 당선 무효란 얘기는 다음 섹션에서 다루겠다.)

여기서 제일 먼저 하나를 지적하자. (6)은 소설이다. 실제로 수치상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문제는 (5)의 “1.5”란 수치가 너무 뭔가 부자연스러워서 누군가 조작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일 것이다. 김어준은 정규분포라는게 중요하다고 했다는데 (파파이스 뒷부분은 안 봄) 고등학교때 아직도 배우는지 모르는데 중심극한정리를 알려주면 될 것이다.

또 소소한 것 하나, (1)의 미분류율 3%는 너무 높다는 건 시종일관 외국 사람들에게 물어본거다. 미국 기표방식도 천양지차지만, 한국의 18대 대선처럼 기표하는 방식은 없다고 알고 있다. 대부분 사지선다나 오지선다 수능 찍듯이 동그라미를 칠하는 방식이 주여서, 한국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기표란에다가 기표하는 방식이 아니다. 당연히 기계가 미분류해서 사람에게 확인을 요구하는 방식 대한 이해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4)에 대해서는, 대체 가설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래부터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 미분류표에 대해서 언어장난질을 하고 있다. “미분류되었다가 돌아온 표”라고 하면 마치 정상적인 박근혜나 문재인을 찍은 표가 기계가 잘못 분류를 못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미분류표는 미분류될 여지가 있으니까 미분류된거다. 그리고 미분류된건 사람들이 룰에 따라 박근혜나 문재인표로 올리는 것이다.

그럼 미분류표는 어떻게 생겼고 어떤 룰에 따라 유효표냐, 무효표냐를 판정하나?

이런 표들일 것이다. (Update: 여기서 결정적으로 미분류표가 대부분 인주가 번진 것이라는 영상을 알려주셨습니다. 따라서 아래 설명은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혼란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99167

유효표2

유효표의 다양한 예 (중앙선관위, 18대 대선 당시)

무효표

무효표의 예. 18대 대선 당시 중앙선관위

자, 여기서 주목하셔야할 것이 첫번째 이미지 (유효표 예시) 5-(2)랑, 두번째 이미지 (무효표 예시) 3-(1)이다. 기표를 접선하여 첫번째 줄에 쓰면 그건 유효표로 1번 후보에게 득표가 된다. 그러니까 무조건 걸쳐있기만해도 된다는 것이다. 아마 공직선거법인가 어느 조항에 있을텐데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음), 유권자의 의도를 추론할 수 있는 애매한 표는 표로 계산된다는 룰로 이런 미분류표를 유효표로 분류했다.

기표위치

위에서 대충 그린 다이어그램은 이럴 때 문제상황을 보여준다. 박근혜의 문제표는 1,2,3에 찍혀있는 경우 유효표로 기록될 것이다. 유권자의 의도가 보이는거니까. 그런데 문재인의 표는 5,6의 경우에만 유효표로 기록되기 쉬울 것이다.

만약 유권자들이 기표를 할 때 랜덤하게 기표를 실수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기가 의도한 정사각형 공간 중에 4변에 찍히는 경우는 같은 확률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물론! 아주아주 단순화한 설명이다! 현실은 더 복잡할 것이지만 이해를 위해서 단순화한 것임). 그러면 박근혜가 유효가 될 확률과 문재인이 유효가 될 확률은 3:2, 즉 1.5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조작이 없었다. 그냥 룰대로 이상한 표들을 분류하는데 1번이 프리미엄이 있는거다. [1]

(update: 이가 헷갈리는 분증 때메 다른 다이어그램 첨부요)

K값은 (C/D)/(A/B). A, B는 기계가 바로 분류, C, D는 미분류후 박/문 인정되는 영역. 여기서 무효표율은 의미없음. 그냥 C>D이기때문에.

이게 무슨 복잡하게 개표기를 어쩌구저쩌구하는 것보다 훨씬 깔끔한 설명일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에선 그놈의 K값이 1이었던 이유도 설명한다. 왜냐하면 옛날엔 무효표/유효표 판정기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앞서 18대 대선땐 무조건 줄에 걸쳐있기만해도 판별한다고 했는데, 아주 옛날엔 그 줄에서 기표의 넓이가 넓은쪽에다가 유효표를 줬다. 따라서 1번보다 여백으로 더 떨어져버린 기표들은 무효가 되었을 것이다. 옛날에 막 자갖고 쟀다고하나, 표차가 매우 박빙이었던 경우 사람들이 갑론을박하고 무효표들 하나하나 법정에 갔단 기사를 옛날에 읽은 기억이 난다.

즉 이런 경우엔 아마도 (이건 추정이고 해보신 분들이 말씀해주시면 될 듯) 저 다이어그램에서 1번에 해당하는 기표에 대해서도, 더 엄격하게 유효표를 가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3)에서 지지난 대선과 K값이 차이가 난단 것도 설명할 수 있겠다.

백번양보해서 이것도 가설이라고 공격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런 대체가설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바로 조작 얘기로 슝슝 (4)에서부터 주루룩 넘어간게 아주 나쁘다는거다. 대체 가설은 기계는 죄가 없고 열쒸미 경계선에 찍힌 애들을 미분류에 정직하게 보내고, 그걸 사람들이 판단하는 룰에 1번에 좀 유리한 팩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 당락이 바뀌겠나?

어쨌든 저건 불합리하다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저 시나리오에서 그럼 박근혜대통령은 얼마나 더 표를 먹었단건가?

대충 계산하면, 미분류표가 전체 득표수의 3%나 되었다고 했다. 박근혜 총득표수에서 대충 1.5%를 곱하고 여기서 1/3을 깎으면 된다. 그럼 대충 8만여표다. 18대 대선에서 양대후보의 표차가 얼마나 났는지는 잘 아실테니까 넘어가자.

4. 에이, 그래도 찝찝한데 수개표하자.

수개표하던 시절에 선거를 안 해본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저런 소리 한다. 이러면 개표 자체가 너무 오래 걸리고, 오히려 사람이 오류율이 더 높아서 신뢰도가 떨어진다. 그리고 예전처럼 교사에 은행원들 동원해서 개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투표소에서 직접 수개표하잔 얘기도 개표 감시요원들을 전국 투표소에 다 보낼건가? 또 자기가 원하지 않은 결과 나오면 뭐라할거다.

5. 그럼 이번 대선에도 저렇게 1번 프리미엄이 붙는거에요?

유감스러운지 다행인지 몰라도 아니다. 왜냐하면 당연해 해야하는 일, 이번 총선때부터 이런 무효표 논란을 줄이기 위해 중앙선관위에서 각 후보별 기표란을 띄어버렸기때문이다. 당연히 했어야하는 일이다. 욕할 일이 있다면 그걸 저번에 안 했다는거겠지.

(PS 그런데 지금 그림 보니까 너무 후보들이 많으면 다다닥 붙어서 다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ㅠ.ㅠ)

진짜 이런거에 빠지지 마시라고 정말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대충 한 방에 써서 올립니다. 참고해주세요.

[1] ps 물론 (4)와 (7)에 해당하는 애매표에 대해서도 판정이 나면 비율이 1.5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습니다. 최대한 단순하게 왜 지지난 대선의 K값과 지난 대선의 K값이 다르냐를 쉽게 보여드리기 위해서 단순화한 것입니다. // 그리고 이 가설이 예를 들어 높은 연령층들이 기표실수를 더 많이 한다는 다른 분들의 가설과 꼭 상호배반적인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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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헝가리 이야기

2011년 근방에 헝가리의 정치상황에 대해서 크루그먼 칼럼을 보고 번역했던 적이 있다.

[scrap] 헝가리의 헌법 혁명 Hungary’s Constitutional Revolution

[scrap] 헝가리 주미대사의 반박과 재반박

이 때 사실 쫌더 궁금해서 헝가리에대해서 찾아봤는데, 이게 얼마나 맞는지 모르겠지만 작금 개헌 가능 의석수 얘기가 나오는 한국 총선에도 쫌 기시감이 느껴져서 (물론 언제나 그렇듯 한국이랑 헝가리랑 다르고, 무엇보다 국민투표가 있으니까 개헌을 저렇게 야바위짓을 못할거라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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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2.

0.

> Krugman이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헝가리 얘기를 인용하길래, 뭥미했는데, 블로그에 프린스턴 동료의 글을 게시했다.
>

http://krugman.blogs.nytimes.com/2011/12/20/more-hungary/#more-27541

헝가리에 대한 후속 블로그 포스트가 나왔다. 어째써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얘기다. 해당 블로그 포스트와 기타 자료들, 이에 달린 댓글들(아마도 헝가리인들로 추정)을 좀 정리해보자. 아래는 개인적으로 아주 거칠게 정리해본 것이다. 최근 벌어진 일들이나 원자료는 위 후속 블로그 포스트 참고바람.

겨울철 공포영화, 그런데 왠지 참 익숙한.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북쪽 한반도 상황과 꼭 관련이 없다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Disclaimer: 댓글들을 바탕으로 하고 조금만 찾아봤기때문에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 있음)

1. 자유를 향해 – 자부심과 객기

1989년 철의 장막이 철거될 때, 헝가리는 동구권 국가들 중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물론 1989년 동구권의 분위기의 기폭제가 된건 폴란드지만, 폴란드가 자유노조운동 등 집권당 바깥의 세력에 의해 혁명적 분위기로 옮아가고 있었던 상황이라면, 헝가리는 집권당이 스스로 1980년대 점진적으로 일당독재당이 직접 자유주의적 개혁을 준비하고 있었고 (물론 제 정파들의 압력도 한 몫했다) 본격적으로 1988년 이래 다당제, 복수노조 허용,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선거법 개정 및 헌법개정에까지 이른다. 마침내 공산당(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1956년 부다페스트의 봄이, “서방의 사주를 받은 반동혁명”이 아니라, 시민에 의한 혁명운동이었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참고할 건, 1956년 헝가리의 혁명적 분위기는 옆 나라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과 마찬가지로 소련군의 탱크에 의해 밀려버렸다는 사실이다. 1980년 후반 비슷한 시기 천안문광장이 말끔히 청소된 것과 달리, 헝가리 주둔 고르바초프 휘하 소련군은 움직이지 않았다(당시 헝가리 총리가 고르바초프와 담판을 지었다는건데, 움직일 시간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헝가리의 일련의 조치들이 페레스트로이카 등 소련의 분위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인식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선언과 맞물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한다. 이는 혁명적 분위기를 간신히 누르고 있었던 동독과 체코스로바키아 집권 공산당에겐 재앙이었는데, 동독과 체코에서 대량난민이 헝가리를 통해 오스트리아 서방으로 건너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시의적절하게 “헝가리 국경을 넘은 동독인들을 우린 추방하지 않고 안전하게 (오스트리아로) 이동할 수 있도록하겠다”라는 선언에, 동독은 백기투항을 하고, 서독은 대량난민때문에 급격한 통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동서독 통합에 서둘러 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체코에서는 “벨벳혁명”이 일어나고. 헝가리 공산당은 헝가리를 공식적으로 “공화국”이라 선언한다.

즉, 헝가리사회노동자당(이후 사회당으로 개명)은 동구권 붕괴에 있어서 최소한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다른 여타 동구권 공산당 후신 정당들에 비해서, 헝가리 사회당은 (큰 논란에도 불구하고) 동구권 시절 공산당의 후신이라 좀더 공식적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과거 사회당 지지자들에겐 자부심이었겠지만, 또한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한다. 1990년 총선부터 이 당의 정강은 사민주의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였다.

1990년 자유총선으로 자유화운동을 벌였던 온건 우파 야당그룹 헝가리 민주포럼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집권당이 되고, 사회당은 3당으로 밀려난다. 제2당은 집권당보다도 더 급진적인 자유주의개혁을 요구했던 자민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헝가리는 서방세계로부터 얻은 채무를 조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종의 도덕적 자신감이라 부를 수 있겠다. “우린 그런 적선을 받을 국가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약속했던 것들을 이행할 수 있다!”고. 허나 당시 동구권 전체에서 일인당 채무액이 가장 높은 나라가 헝가리. 이는 내내 헝가리 정부를 옥죄는 족쇄가 되었다.

2. 선거는 몰아주는 것

엄청난 국가채무에,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라고 일부 사람들은 믿은) 정부 보조금 삭감과 복지정책 붕괴에 1994년 다음 총선때 분위기는 급반전, 집권 우파는 몰락하고 (9.8%, 126석 잃음), 사회당정부는 화려하게 복귀했다(무려 54.1%의 득표, 175석 추가).

이런 엄청난 바람 앞에 당시 민주화운동의 멤버였으며 소수당이었던 우파 오르반(Orban) 당수의 피데스당은 집권을 위해 정강을 자유주의에서 보수주의로 바꿔버린다. 일부 멤버들이 탈당하고 자유주의적 중산층 기반 자민련으로 이동했지만, 헝가리 분위기상 사회적인 면에서는 보수적인 지방 유권자들의 힘이 강했고, 또 경제적으로도 점점더 급격한 자본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불만이 늘어나고 있었으므로 효과적인 전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1998년 총선, 피데스는 화려하게 등장하여 집권여당이 된다(29.5% 득표에 148석, 128석을 추가), 사회당은 (33% 득표에 134석, 75석 감소). 득표율과 의석수의 상관계를 봐라. 소선거구제에 비례대표제를 약간 섞어놓은 선거제도하에서, 이런 식의 문제 (당은 아슬아슬하게 선거구에서 이겨서 최대한 경쟁당의 표를 의미없게 만들고 질만한데는 대패하는)가 심화된다.

자, 이제 2002년 총선, 피데스는 41.07%로 188석의 의석을 차지하지만 과반에 못 미친다. 사회당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삽질하고 있는(후술) 상황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42.05% 득표, 44석을 추가하여 178석으로 제2당이 되지만, 자민련 (20석)과 연정을 구성하여 다수정부를 구성해 집권에 성공한다. 피데스로는 제1당이 되어놓고도 집권하지 못했으니 억울할 수도 있겠다.

급진적 시장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자민련과의 연정이 쉬울 순 없었다. 어쨌든 어찌어찌하여 2006년 총선, 헝가리 사상 가장 치열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선거에서, 그리고 자유선거 실시 이후 매번 집권당이 바뀌는 추세 속에 역사상 최초로, 사회당이 간신히 선거에서 승리하여 재집권에 성공한다. 8석을 추가해 184석(42.0% 득표). 피데스당은 24석을 잃어 164석(43.2%).

이젠 대충 느낄 수 있을거다. 득표율이 선거승리를 전혀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특별히 2006년 총선에서, 민주화의 동지였던 피데스당과, 과거 집권여당이자 지금은 완전히 쪼그라들은 헝가리 민주포럼은 선거연대를 못해서 야당이 패배하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민주포럼은 오르반 당수가 총리직을 포기하겠다고 함에도 그에 대한 반대로 제3당 후보를 소선거구에 내서 결과적으로 여당 승리에 일조했다.

어쨌든 4년마다 갈아치우는 통에, 헝가리 국가채무문제 등등의 구조적 문제는 계속 쌓여갔다.

3. 경제상황

주요 양당이 빌 공자의 공약을 남발하면서 재정상황은 급속히 악화되어 갔다. 1997년 유럽연합 멤버가 되고 2004년 정식 회원국이 된 통에, (아직 화폐통합은 안 했지만) 굴릴데를 못 찾고 있던 엄청난양의 자본이 독일 등 서방세계로부터 헝가리에 들어와서 급격한 자산버블을 일으킨다.

여기에 미국에서도 톡톡한 역할을 한 모기지자금이 큰 역할을 하는데, 헝가리의 경우 유럽연합 가입을 통해 (착시로) 낮아진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스위스프랑이나 유로화 표시로 된 채권을 마구 발행하게 되는데…

4. 입 싸고 조국을 깔보는 젊은 리더

오르반 당수로 일치단결해있던 피데스당에 비해서 사회당 당수는 계속 바뀌었는데, 이 2006년 총선 승리의 주역 페렌츠 후르산(Ferenc Gyurcsány)은 젋은 피로 입이 걸걸했던 모양이다. 2006년 총선 승리 직후, 그의 설화때문에 헝가리 전역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설화? 대충 그가, 2006년 총선 승리 직후 비공개로 사회당 의원들한테 말했던 내용의 느낌을 옮겨보자(전혀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번역은 아예 위키피디아 링크가 있음 함 읽어보기 바람. 어떤 이에겐 매우 소탈하고 솔직한, 어떤 이에게는 부정부패의 증거, 어떤 이에게는 나라를 맡길만하지 않은 경박함을 느낄 것이다).

“(전략) 여러분 우리가 재집권하면서 많은 이들이 불안불안하게, 의심하면서 우릴 바라보고 있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과정 중에 우린 우리 연정 파트너(자민련)와의 협조를 위해, 그리고 조중동유력 언론사들에게 보란듯이, 우리가 제대로 국가를 다스릴 수 있단 걸 보여줘야합니다. 그 과정에 동참하도록 해야합니다. 그게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앞으로 전진합시다.

내가 앞으로 우리 정책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순 없어요. 그만한 능력은 없어요. 정부관리, 장관, 전문가 모두 합의볼 수 있는 그런 정책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지난 한 달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습니다. 선거 막판에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유출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구요. 우리가 비밀을 유지한건, 여러분도 다 아시겠습니다만, 이게 우리가 직면했던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들입니다(역주: 선거 당시 헝가리는 채무와 경제문제 등으로 재정적자가 매우 크게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거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난 정부 내내 사회-자민련 연립정부는 욕을 먹어야했다). 막장이 되는 걸 막기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진짜 문자 그대로 아침부터 밤까지 이거 막느라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아 찐짜 마지막 달에 이르러서는 나도 몇 번 소리 지르면서 돈 구하고, 협상하느라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정치적으로 타협해야하는 상황에서 진짜, “야 임마, 우리 좀 이제 진전 좀 시키자고!!!!”라고 소리지를 적 솔직히 몇 번 됩니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없다구요. 우리가 X랄을 해서 그래요. 유럽 어느 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우리나라가 바보짓을 한겁니다. 물론 설명할 수 있죠. 하지만 선거국면에 그게 뭔 상관입니까? 솔까말 2년 반동안 우리가 공표해왔던 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 명약관화했습니다. 어느 수준이냐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자민련이 재집권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우린 정말 아무 일도 안 했습니다. 손을 놓고 있었다구요. … 문제가 누적되는 동안 아무짓도 안 했죠. 발등의 불이 떨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미친듯이 일하다가, 막판엔 절망적일 정도로 일해야했죠. 그래서 겨우 막고, 그 다음 나 자빠져서 또 허송세월하는겁니다. 이게 상황이에요. 착착, 차근차근 일을 못해요. 그리고 이런 상황에 또 그 자민련이랑 합의를 봐야해요.

재무부장관 말이 맞습니다. 쫌더 끌 수 있지만, 오래 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하늘의 도우심과, 넘치는 세계유동성, 여러분들이 알 필요없는 온갖 꼼수 다 동원해서 이번 선거국면에 안 터지게 겨우 넘긴거에요. 이렇게 또 넘기는 거 말도 안 됩니다. 가능하지가 않아요. 아 물론, 우리 또 길게 분석하고, 각 사회 계층에게 어떤 타격이 가는지 다 계산하고 그러는거 아, 물론 가능해요. 이런 분석 몇주씩 앉아서 하는 거 불가능해요. 이럴 순 없습니다. 우린 집권 제1일차부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설명하고, 9월 1일 안에 세제개혁이 이뤄지도록 해야합니다. …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플랜 B같은 거 없습니다. 이걸로 밀고 나가야합니다.

사회당 거시경제정책에 영향력있는 사람들 다 만나봤어요. 두들겨맞고, 싸우고 뒤집어 엎고 그랬어요. 차암 좋은 아이디어들 많이 접했죠. 그런데 그 잘나신 전문가분들께서도, 그 잘난 아이디어들도 대충 거시경제 예측이 1조원 오더로 틀려요. 실례로 한 아이디어인, 전 국민에 종합부동산세 때리는 걸 예로 들어볼게요. 2500만원 이상 부동산에 대해 우리가 과세를 하면 얼마나 거둘 수 있는지 알아요? 5억원이 아니라 2500만원부터 말입니다. 그게 아이디어에요. 물론 그 돈 우리가 다 갖는게 아니라 지방정부에 2600억원 정돈 지방정부에 줘야해요. 그거 원래 지방세로 걷고 있는거여서 걔네들 수입으로 잡혀있어요. 그럼 1000억원 미안으로 균형재정 달성할 수 있어요. 아, 그럼 이제 우리 헝가리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이신 이건희Sándor Demján가 나타나시죠.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페리, 야 임마, 세제 누수되는 것만 거둬도 우리 8888억원은 절약할 수 있단 보고서 못 봤어!!! 라고 말이죠. 그럼 난 Sanyi씨, 당신 미쳤어! 계산 좀 해봐! 이러는 겁니다. 아 그럼 또 우리 동료 Gyuri [György] Surányi가 날 찾아와서, 사회정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과세를 하는 안을 갖고와요. 그럼 또 한참 계산해보죠. 그러고 나서 최종계산결과 보면 대충 또 맞아요. 근데 하날 빠뜨린거에요. 지금 세제에선 세액공제로 대강 빠지는 돈이 있다는거죠. 그게 1조가 넘어요. 세액공제를 조정하는데 그게 1조가 넘어가면, 그건 답이 없는겁니다. 시중에 진짜 좋은 해결책들이 넘쳐나요. 근데 계산하면 다 꽝이에요.

우리가 지금 미는 체계가 공정하지 않다, 일관적이지 않다, 뭐 어쩌구들 말이 많아요. 근데 사람들한테 우리 안에서 그럼 좀더 공정하고 일관적으로 바꾸기 위해 이것저것 빼면, 글쎄 남는게 우리가 거둬야하는 세금의 삼분의 일이에요. 1/3? 그 수준이면 나도 일관적일 수 있어요. 지금 문제는 우리가 5천억원을 거둬서 될 일이 아니라는거에요. 그리고 게다가 우린 이 문제를 우리의 장기 정책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상황에서 해결해야한다는거에요.

우리 정부가 완벽한 거 아니라는 거 인정해요. 모든 게 다 잘 될꺼라고 감히 말할 순 없지만, 우리가 안에서 서로 싸우지만 않고, 또 우리가 무슨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보다 더 잘하기 어렵습니다. 난 지금 신한국신헝가리니, 개발이니, 해외동포들, 교회와의 관계 등등 수천가지 다른 문제갖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 각각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잘 정리된 정책들을 갖고 있습니다. 한 두 가지 문제는 또 우릴 놀래킬 수도 있죠. 하지만 딴 것들에 비해서 이 문제는 정말, 정말 큰 그림상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개혁이냐, 아니면 실패냐. 딴 선택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실패라고 말할땐, 헝가리, 좌파, 그리고 아주 정직하게, 내 스스로에 대해서 말하는겁니다. 개혁하지 않으면 다 망합니다.

여러분, 우리 진짜 그 동안 뭘했습니까? 우리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 믿고, 제발 우리가 지금 직면한 거시경제적 문제 좀 해결을 위해 일할땝니다. 그 동안 좌파들, 나라 앞에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있었잖아요. 우리 보여주자구요, 이 망할놈의 나라에게, 좌파도 일할 수 있고, 우리가 일할 수 있다구요. 지난 정부에서 대체 우리가 X발 자랑할만한게 뭐가 있어요? X 팔려요 X팔려. 난 역사에서 과거를 마무리한 태종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습니다. 지난 1년 반(2006년 선거 이전, 당수직을 맡은 뒤) 일하는 척 하느라 고생했습니다. 대체 우리가 일하긴 했나요? 1년 반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거짓말만 했어요, 거짓말. …

더이상 좌파들이 낙인찍히지 않게 일 열심히 할겁니다. 맨날 뭘 해결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결과를 논의할 위원회를 만들고, 그 담 타협하고, 그래서 의회서 한다는 게 결국 기존 상태 유지하는 거 외에 뭐가 있습니까? 이젠 바꿔야할 땝니다. 어떤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무슨 정책을 진짜로 펼치든, 누군가는 손해 보게 되어 있습니다. 아 진짜, Gyula Horn(전임 총리)때도 맨날 밥먹듯이 자긴 그럼 사퇴하겠다고 버티던 장관들이 있었습니다. 의원 세비가 중요하다고 쫄랑대는 꼴이란, 우리 그거보다 잘해야하지 않겠습니까? X발, 진짜 190명 (당시 사회당 의원수)끼리 하나 합의할 수 있는 게 없으면 대체 뭘 보여줄 수 있단 말입니까?

의사당 앞에서 시위하게 하자구요. 시위, 할 수 있죠. 한참 시위하면 그네들도 지칠꺼에요. 그 시위가 무서워서 우리가 개혁을 하지 않으면 정말 답이 없어요 답이. 개혁은 기득권을 철폐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무슨 독재적이라구요? 난 짜식들 속에 품고 있는거 다 말하게 놔둡니다. 그냥 토론이 이뤄지도록 하는거라구요. 우리 사회당 사람들 속에 있는 패배주의들을 다 꺼내서 때려눕힐겁니다. 우리 속의 에너지를 끌어내서, 이 망할놈의 나라 진짜 바꿔버립시다. X발,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이 정권 어디로 넘어갑니까? 그 오르반(야당당수) 자식에 넘어간다구요!!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까?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선택지가 있겠지요. 우리 오르반 그 자식이랑 비교하는 거 그만둬야합니다. 글로벌, 세계랑 비교해야합니다. …

지금 현재 건강보험제도 아주 복잡합니다. 그 근거가 되는 건, 이룰 수 없는 약속들입니다. 해결을 봐야하는 문제라구요. 교육제도는 또 어떻습니까? 이 제도는 사회 불평등을 확인하고, 심화시키는 아주 나쁜 체계입니다. 개혁해야합니다. 그리고 제일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부자들에게 우린 무상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스캔들이 있다면 딴게 아니라 상위 1만명이 세금을 쓰면서 제 자식들 교육을 시키고 있단 게 스캔들이에요. 3% 교육세를 내게 만드는 거, 난 까짓꺼 7%도 때릴 수 있다고 봅니다. 의료제도에서, 집시족이 똑같이 내면서 우리가 받는 의료서비스의 십분지일밖에 못 받는다는거, 그게 스캔들이에요. 병원에 갈 때 모든 사람들 회당 1500원 내게 만드는거, 그건 스캔들이 아니에요.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내용이고, 아마 정치적 결과가 있겠죠.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머저리면 당하는거고, 우리만 감수하면 되는거에요. 이에 비해 의료개혁은 국민 전체에 가는겁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다고, 너무 명백하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 우리가 다루길 피하면 안 되는겁니다.

Gyula Horn이 총리할 때 어땠습니까? 뭘 안 하면 안 한다 욕먹고, 뭘 하면 한다고 욕먹고..X발 어쩌라고. 우리가 뭘 해야하는지, 우리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나아가야합니다. 작년 여름에 어땠습니까? 18%만 우릴 뽑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 보세요.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일시적으로 여론이 안 좋다고, 해야할 일을 안 하면 안 됩니다. 결국 다시 여론을 쟁취하지 않았습니까? 국민은 이해할겁니다. 우리가 뭘 해놔야, 나중에 선거구로 내려가서, 그래, 우린 그래도 뭘 했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정치가 지방선거에서 몇 명의 시장을 당선시키냐, 의석이 얼마나 증가하느냐에 있는게 아닙니다. 네, 네 그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것뿐이 아닙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자, 이제 그만, 개혁하잡니다. 여러분들 모두 세부사항에 대한 걱정, 우리가 잘할 수 있는가, 디테일얘길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난 꼼수부리지 않겠다, 우린 우리가 할 일을 하겠다입니다.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한, 돌격하겠다는 겁니다. 시행하는 게 안 된다고 여러분이 설명하는 건 좋습니다. 그런데 “동의합니다만,” 이런 식으로 토 다는 거, 그럴거면 내가 필요없습니다. 그럼 딴 사람 알아보십시오. 난 책이나 쓰게. (후략)”

헝가리인들은 들고 일어났다. 대충 민족주의자들로부턴 우리의 사랑하는 나라를 염병할 이 나라라고 표현하고, 집시족들이나 챙기는 놈. 대충 좌파들로부턴 부자 기업인이나 챙기는 놈. 중산층으로부턴 아 내 피같이 번 돈 세금으로 때릴 짓이나 하는 놈. 고매하신 분들껜 시시껄렁한 욕지꺼리나 하는 놈.

그리고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로 인해, 헝가리 환율이 폭등해버린다. 그리고 모기지같은 거 잘 몰라서 대충 스위스 프랑화 표시 또는 유로화 표시 모기지를 내고 있던 대다수의 헝가리인들은 한달 모기지 비용이 2배 내지는 3배까지 치솟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때문에 결국 후르산 총리가 사임하고 (“못해먹겠다!!”), 임시정부에 이어 IMF구제금융.

이 와중에 좀더 정밀하게 말하자면, 헝가리에선 고정 권위주의 향수 유권자층이 있었다. 그간 권위주의적이던 이 그룹은, 좌/우 양당에 고루 나뉘어있었다. 일부는 과거 공산당 후신을 지지하며 1990년 이후 나라를 망친 좌파 빨갱이 민주화 리버럴들을 증오했고, 일부는 우파 피데스를 지지하며 자유시장경제니 인권존중이니하며 빛나는 헝가리의 정통을 부정하는 좌파정부를 증오했다. 그 유권자층이 2006년 후르산 정부를 거치면서 대거 우파 및 초강경우파 조빅당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그 분위기는, 피데스당 의원 한 명의 발언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난 헝가리를 사랑하며, 헝가리인들을 좋아하며 (참고: 헝가리는 국외 헝가리인들이 많은 나라여서 재외국민 참정권 및 국적부여가 이슈 중 하나다), 국제 투기금융 자본과 유태계 자본의 이익에 맞서 헝가리의 이익을 지지한다” “집시족 여자들은 일부러 임신중 태아에 망치로 충격을 줘서 병신을 낳아 국가보조금을 더 받으려고 한다”

강력한 극우 제3당의 부상, 소선거구제, 그리고 사회당 정부와 경제실정에 실망하면서 우파 피데스는 싫어하지만 마땅이 찍을만한 정당이 전무했던 무당파가 기권해버렸다(하지만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06년 총선에 비해 투표율은 65%로 약 2%만 떨어졌다).

사회당은 2009년 유럽의회선거에서 참패한데 이어, 2010년 정권을 내줘야했다.

그런데 이 2010년 총선에서 피데스당은 헌법개정과 관련해서는 결코, 아무런 얘기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저 “갈아보세~”로 2010년 집권하자마자, 전광석화와 같이 10번의 헌법조문개정과, 전면개정을 통해 막장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놀라움은 피데스당 지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보다시피 피데스당 현재 지지도는 20% 내외. 그런데 야당들은 전혀 그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5. Aftermath.

크루그먼의 칼럼이 발행된 뒤로, 피데스당 치하 헝가리의 반응은 어땠을까?

* 대체 이런 막장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 도시 곳곳에서 3만명 이상에 달하는 시민들이 운집하여 시위함. 국영/민영 방송 가릴 것 없이, 그런 시위 보도 안 됨. 사실상 헝가리에서 반대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언론 전멸.

* 2011년 12월 20일, 부다페스트 유일한 야당 라디오방송국 폐쇄. 물론, 무력으로 한 게 아니라, 주파수 사용기간이 지나자, 주파수를 회수해서 음악방송에 줌(YTN….) 매우 법적으로 깔끔한 방법.

* 국회법 개정을 통해, 2/3의 의원발의 법안은 아예 토론과정 생략, 그대로 법이 되도록 함. (Reminder: 현재 집권여당은 2/3가 넘는 의석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 그나마 사회당은 탈당 의원들 생기고 개판.

이를 가리켜 Kim Lane Scheppele은 “헝가리 정치는 공중납치당했다”라고 표현. 피데스당은 반대하지만, 반대로 몰아줄 당은 마땅히 없고, 그 몰아줄 수 있는 때 (2014년 다음 총선)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남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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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면 머리가 복잡하다. 약속할 수 없던 공수표를 발행하다못해, 어쩔 수 없이 재조정이 필요한 판국에 들어갔을 때,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긴축을 하여 극우세력의 터를 잡아준 바이마르의 브뤼닝 정부라든지, 이런 역사적 예들은 있지만… (이른바 C일보 프레임으로) 욕심많고 돈은 내기 싫어하는 유권자들에게 파퓰리스트 정치인들이 휘둘린 당연한 결과라는 식의 논설은 쉽게 깨뜨리기 힘들다는 것… (지금 미국도 위태위태하고…) 김대중, 노무현, IMF, 거의 한국에서 벌어진 많은 일들을 또 기억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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