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는 법

http://m.wikihow.com/Apolog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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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Apologize

An apology is an expression of remorse for something you’ve done wrong, and occasionally serves as a request for forgiveness, as well. Apologizing for a mistake might seem like an impossible task, but you can get through it. Here’s how.

사과는 당신이 무언가를 잘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의 표현을 하는 것이고 때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수에 진실한 사과를 한다는 게 불가능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알면 할 수 있습니다.

1. Determine what went wrong. Did you say something insensitive? Did you fail to come through on a promise? Was the offense recent or long ago? You can’t apologize effectively if you don’t know what you’ve done wrong.

무엇이 잘못됐는지 살피십시오 당신이 뭔가 무신경한 말을 했습니까?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까? 그 잘못이 최근의 일입니까 옛날 일입니까? 당신이 뭘 잘못했는질 알지 못한다면, 사과도 효과적으로 할 수 없는 법입니다.

-> If you don’t think you did anything wrong, then express regret or sadness for the feeling that someone is experiencing as a result of what you did. Presuming the effect was unintended, the basis of the apology often lies in not having foreseen how your actions would affect this person, realizing that the benefits of the action did not outweigh the unforeseen consequences, and wanting to compensate for your oversight. However, if the other person does think you did something wrong, just apologizing for the effect, and not acknowledging that you did something wrong, may mean the two of you can’t reach understanding.

만약 당신이 아무것도 잘못한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한 일로 말미암아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후회나 슬픔을 표현하십시오. 당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가 의도적이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많은 경우 사과의 핵심은 당신의 행동들이 (사과받는) 사람에게 그런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고, 내 행동들로 인한 유익한 효과가 이 예상치못한 나쁜 효과를 덮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간과해서 피해를 끼친 점을 보상하길 원한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상대방이 당신이 무언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내 행위로 인한 결과만 사과하고, 내가 무언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쌍방간에 상호이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Understand that if your error was in offending someone, whether or not you were right is irrelevant. You might have pointed out a very real flaw, but keep in mind that you’re apologizing for making the other person feel bad. Don’t dwell on the truthfulness of your actions in that case.

만약 당신의 실수가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한 것이라면, 당신이 맞았느냐 아니냐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주지하십시오. 당신이 진짜 잘못을 지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그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 점에 사과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이 경우 당신의 행동들의 진위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2. Take full responsibility. Own the mistake as wholly your own, without sharing the blame with anyone else, and without presenting mitigating circumstances. Admit that you were wrong emphatically, unreservedly, and as soon as possible.

전적으로 책임지십시오. 당신의 실수에 대해, 그 비난을 다른 이와 나누거나 정상참작할만한 부분을 더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진실로, 조건없이, 최대한 빨리 인정하십시오.

-> Realize that there are no excuses. Do not try to think of or offer one. An apology with an excuse is not an apology. Take full responsibility for what you did.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십시오. 변명을 생각하거나 제시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변명이 들어간 사과는 사과가 아닙니다. 당신이 한 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십시오.

-> An incomplete apology often feels more like an insult, because it implies that you don’t see the other person’s pain as valid.

분완전한 사과는 종종 모욕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상대방의 고통을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시사하기때문입니다.

-> An apology with an excuse is simply not an apology. It may very well be that other people or circumstances contributed to the situation, but you cannot apologize for them; you can only apologize for yourself, so leave them out of it.

변명이 포함된 사과는 사과가 아닙니다. 물론 그 상황에 이르게 된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지만, 당신은 그런 것들에 대해 사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오로지 당신에 대해서만 사과할 수 있기에, 그런 여러 조건들을 포함시키지 마십시오.

3. Choose the right time to apologize. Sometimes immediately after your mistake is best; sometimes it’s better to wait. The sting of a harsh word can be cooled right away with a quick apology, but other offenses might need the other person to cool down before they are willing to even listen to your next sentence. However, the sooner you apologize for your mistake, the more likely it will be viewed as an error in judgment and not a character flaw. The longer you wait to apologize, the more difficult it may be to ever mend the relationship.

사과를 위한 적절한 시점을 선택하십시오 어떤 경우 실수를 한 직후에 사과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을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기다리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폭언의 비수로 찔린 느낌은 빠른 사과로 덮을 수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잘못들은 상대방이 당신의 다음 말을 들을 의사가 있을 때까지 냉각기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실수에 대해 일찍 사과하면 할수록 당신의 행동이 판단미스이지 인격장애의 결과가 아니라고 보일 여지가 많습니다. 사과를 위해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4. Write your apology down (optional). If you’re having a hard time mustering the words for an apology, consider writing your feelings down. You can either give your apology to the other person as a letter, or use your notes as a guide while you deliver the apology in person. Take your time and sort out exactly why you feel compelled to apologize, and what you’ll do to ensure the mistake won’t happen again.

사과를 기록하십시오 (선택사항). 만약 당신이 사과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당신의 느낌들을 기록하는 것을 고려해보십시오. 당신은 상대방에게 사과를 편지형식으로 보낼 수도 있고, 또는 당신이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면해서 사과를 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정확히 어떤 점을 사과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실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당신이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정리하십시오.

-> If you don’t feel comfortable with writing, then use a voice recorder. Not only will this help you remember what to say when you’re face-to-face with them, but you can also bring the copy with you and hand it to them if you find the apology quite difficult to express.

만약 글로 쓰는 것이 불편하다면, 녹음기를 쓰십시오. 이를 통해 일대일 대면해서 상대방을 만났을 때 무엇을 이야기해야할지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사본을 갖고 와서 만약 사과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그 사본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 A phoned, emailed or recorded apology may show a lack of sincerity and effort. If possible, it’s best to apologize in person.

전화, 이메일 또는 녹음된 사과는 진정성과 노력이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직접 만나서 사과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5. Start off with what went wrong. Begin the apology by specifying your offenses and the feelings your actions may have caused. Be detailed about the incident so that the other person knows exactly what you’re apologizing for.

무엇이 잘못됐는지부터 시작하십시오. 사과를 시작할 때, 당신의 잘못과 당신의 행동들이 초래했을 감정들을 분명히 하십시오. 사건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정리하여 상대방이 당신이 어떤 점을 사과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하십시오.

-> Make it a point to avoid using the words “but” or “if”. (“I am sorry, but…” means “I am not sorry”)

“하지만”, “만약” 같은 표현을 쓰지 마십시오. (“미안해요, 하지만…” 은 “전 미안하지 않아요”와 같은 뜻)

-> Do not say “I’m sorry you feel that way” or “I’m sorry if you were offended.” Be sorry for what you did! “I’m sorry you feel that way” makes it seem like you are blaming the other person, and is not a real apology. Validate their feelings or discomfort by acknowledging your transgression’s (potential) effects, while taking responsibility.

“당신이 그렇게 느껴서 미안해요”라든가 “당신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라고 말하지 마세요. 당신이 무엇을 했기때문에 미안하다라고, *당신이* 뭘 했는지에 대해 사과하십시오! “그런 식으로 느끼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말하면 마치 당신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고, 진짜 사과가 아닙니다. 당신의 잘못으로 인한 (잠재적) 효과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면서, 그들의 감정과 불쾌함을 확인하십시오.

6. Say sorry. Use direct, declarative statements. Look at the next few statements below. There is a huge difference between them. The first one acknowledges that you recognize you did something wrong, and takes ownership and responsibility for that action. The next few do not take responsibility. They don’t say that you believe you did anything wrong. They can imply you aren’t even aware of what you actually did wrong, and can seem like you’re shifting blame to the other person for being easily offended:

미안하다고 말씀하세요. 직접적이고 선언적 문장을 쓰십시오. 아래의 몇 개의 문장들을 보십시오. 이들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문장은 당신이 뭔가를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잘못이 전적으로 자신때문이며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뒤의 몇 문장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 표현입니다. 이 문장들은 당신이 뭘 잘못했다고 믿는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당신이 실제로 뭔가를 잘못했는지 심지어 인지하고 있지도 않고 그래서 상대방이 너무 예민하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 Good: “I’m sorry I was offensive.”
옳은 표현: “내가 무례했던 것에 대해 미안해요”

-> Bad: “I’m sorry if I was offensive.”
나쁜 표현: “내가 무례했다면 미안해요”

-> Bad: “I’m sorry you were offended.”
나쁜 표현: “당신을 기분나쁘게 해서 미안해요”

-> Bad: “I’m sorry for anything that was offensive [to you].”
나쁜 표현: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기분 나쁘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해요”

-> Good example: Boss, I’m sorry I’m late again. I know my shift started 10 minutes ago. I hope this doesn’t complicate your day.”
좋은 예: “사장님,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제 업무시간이 10분 전에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장님 일정이 어그러지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 Good example: “Dear, I’m sorry I forgot your birthday – there’s no excuse. I hope you don’t feel neglected. Please, let me set this right.”
좋은 예: “여보, 내가 당신 생일을 잊어버려서 미안해요 –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당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내가 이 잘못 고칠 수 있게 해줘요”

-> Bad example: “I’m sorry I broke your vase, but I was mad and I needed to take my anger out on something.”
나쁜 예: “당신 꽃병을 깨뜨려서 미안해요. 하지만 나 진짜 열받아서 분노를 뭔가에 배출해야했어요.”

-> Understand that just saying “please forgive me” does not qualify as a true apology. That’s not even admitting you were in the wrong. Many people use the term “please forgive me” as a path to avoid responsibility. Instead, be sincere and show that you are truly sorry of what you did, and you would like to repair your relationship with the person.
“부디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만이 진실한 사과가 아님을 이해하십시오. 이런 말은 심지어 당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디 용서해주세요”라는 말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도로 씁니다. 오히려 진실하게, 당신이 정말 당신이 한 행동에 대해 미안해하며, 상대방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진실히 원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7. Make amends. Think about what caused you to make the offense. Is it because you’re a little too laid-back about being on time, or remembering important dates? Is it because you tend to react instantly to certain comments, without pausing to consider an alternative point of view? Is it because you are unhappy with your life, and you unknowingly take it out on others? Find the underlying problem, describe it to the person (as an explanation, not an excuse), and tell them what you intend to do to rectify that problem so that you can avoid this mistake in the future:

개선 방도를 내십시오. 무엇이 그런 문제를 일으켰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시간을 지키는 것에 좀 널럴한 기준을 갖고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중요한 일자를 기억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그런지? 특정한 발언들에 대해서 쉬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기보다 즉자적으로 반응해서인지? 당신의 일상생활에 불만이 많아서 무의식적으로 이를 다른 이들에게 발산하는 것인지?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찾아, 상대방에게 설명하십시오 (변명으로써가 아니라, 설명으로써). 그리고 앞으로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그 문제의 원인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 계획을 말씀하십시오.

-> “I snapped at you because I’ve been so stressed out with work lately, and it’s selfish of me to take it out on you. Starting tomorrow, I’m going to cut down my hours to X per week. I really think it’ll help me unwind, and help us spend more quality time together.”

“내가 당신에게 쏘아붙인거 내가 최근에 너무 일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에요. 그걸 당신에 풀어버리는 건 내 이기적인 행동이에요. 내일부터 일을 X시간 줄이려구요. 일을 좀 줄이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좀더 오붓한 시간을 같이 보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해요.”

-> “I’ve been distant and cold because I get paranoid that you’re going to walk out on me because I don’t have a job. But that’s a terrible thing to do. Look, here’s a list of things I’m going to do to find a job ASAP…”

“내가 퉁명스럽고 차갑게 당신을 대한 건 내가 일자리가 없어서 당신이 나를 차버릴 것이라는 피해망상에 빠져서에요. 절대 그래선 안 되는건데 말이에요. 자 봐요, 내가 당장 일자리 찾기 위해서 하려는 목록들이에요…”

8 End with gratitude. Express your appreciation for the role that they play in your life, emphasizing that you do not want to jeopardize or damage the relationship. This is the time to briefly recount what has created and sustained the bond over time and tell loved ones that they are indeed loved. Describe what your life would be missing without their trust and their company.

감사로 끝내십시오 상대방이 당신의 삶에 있어서 미치는 역할에 대해 감사하고 이 관계를 손상시키거나 끝장내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십시오. 이 지점에 이르러서 간단히 오랜 기간 관계를 만들고 유지시킨 점들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분명 그들을 사랑한다는 점을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의 신뢰와 동행 없이 얼마나 당신의 삶이 부족할지 설명하십시오.

9 Request forgiveness. Ask if they will give you another chance to make up for what you did wrong. Tell them you’d love to show them that you’ve learned from your mistake, and that you will take action to change and grow as a result, if they will let you. Make a clear request for forgiveness and wait for their answer. This gives the injured party the well deserved “power” in determining the outcome of the situation.

용서를 구하십시오. 당신이 잘못한 점을 고치기 위해 다른 기회를 줄 수 있을지 물으십시오. 당신이 실수로부터 배웠고 그들이 허락할 경우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점을 말씀하십시오. 용서를 위해 명확한 요청을 하고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십시오. 이를 통해 피해당사자는 해당 상황의 결과를 결정할 수 있는 정당한 “힘”을 주는 것입니다.

10 Be patient. If an apology is not accepted, thank them for hearing you out and leave the door open for if they wish to reconcile later. (E.g. “I understand you’re still upset about it, but thanks for giving me the chance to apologize. If you ever change your mind, please give me a call.”) Sometimes people want to forgive you, but they still need a little time to cool off. If you are lucky enough for your apology to be accepted:

인내하십시오. 만약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당신의 사과를 들어준 것에 감사하고 나중에라도 관계를 회복할 생각이 있을 때 그럴 여지를 남겨두십시오. (예: “당신이 그 사건으로 아직 화가 나있는 거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고마워요. 언제라도 생각이 바뀌면, 부디 내게 전화줘요.”)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이 당신을 용서해주고 싶지만 냉각할 때까지 좀 시간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사과가 받아들여진다면:

-> Avoid the temptation to throw in a few excuses at the end. Instead, have a transition planned out beforehand for what you can do to solidify the clean slate (e.g. “Let’s go get some coffee and catch up. It’ll be my treat. I miss knowing what you’re up to”).

마지막 순간에 변명을 늘어놓고 싶은 유혹을 참으십시오. 오히려 악감정을 털어버린 상황을 단단히하는 전개를 미리 준비하십시오 (예: “커피 좀 마시고 이야기 나눠요. 내가 낼게요. 당신이 요즘 뭐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 Remember, just because someone accepts your apology doesn’t mean they’ve fully forgiven you. It can take time, maybe a long time, before the injured party can completely let go and fully trust you again. There is little you can do to speed this process up, but there are endless ways to bog it down. If the person is truly important to you, it’s worth it to give them the time and space they need to heal. Don’t expect them to go right back to acting normally immediately. At the same time, don’t let someone hang this over your head for the rest of your life. The same way you need to learn how to apologize, they need to learn how to forgive.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상대방이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그게 당신을 완전히 용서했다는 것이 아님을 말입니다. 상처를 입은 상대방이 완전히 악감정을 풀고 당신을 다시 신뢰할 때까지 시간이, 어쩌면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 과정을 가속시킬 수 있는 방도는 거의 없지만, 그 시간을 길게할 수 있는 무한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진정으로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상처가 아물 때까지 필요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이 즉시 정상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동시에, 남은 평생동안 당신이 사과한 상대방이 당신을 쥐고흔들게 만들지 마십시오. 당신이 어떻게 사과하는지를 배워야하는 것처럼, 그들도 어떻게 용서해야하는 것인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11 Stick to your word. A true apology entails a resolution, and you have to carry out your promise in order for the apology to be sincere and complete. Otherwise, your apologies will lose their meaning, and trust may disappear beyond the point of no return.

말을 지키십시오 진정한 사과는 해결책을 포함하는 것이고, 사과가 진정성 있고 완전하기 위해서는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사과는 의미를 잃게 되고 더이상 회복할 수 없을 수준으로 신뢰에 금이 갈 것입니다.

Tips팁들.

* Don’t keep asking if he or she is mad at you. This puts the focus back on you, and makes you sound impatient and selfish. Just as it takes time to heal, it can take time to forgive.

상대방에게 아직도 화났냐고 자꾸 물어보지 마십시오. 이는 초점을 당신에게 다시 맞추고 당신이 인내심이 없고 자기중심적으로 보이도록 만듭니다. 상처가 치유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용서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 Do not expect the victim to reward you after you have apologized. This is not about you at all, it is about the other person.

당신이 사과한 다음에 피해자가 당신에게 보상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이건 당신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건 피해자가 주인공인 과정입니다.

* Do not look irritated during your apology. This will make the victim think that you’re only apologizing just because you have to, and that you aren’t sincerely meaning it. Instead, be truthful, and show that you are genuinely sorry for what you did.

사과하는 동안에 불쾌한 표정을 짓지 마십시오. 이는 피해자가 당신이 사과해야하기 때문에 사과하지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이 없다는 인상을 줍니다. 진실하게, 정말로 당신이 한 일에 대해 미안하다는 점을 보이십시오.

* Don’t be too surprised (or suspicious) if you are forgiven. Take people at their word, just like they took your apology.

당신이 용서받았을 때 너무 놀라거나 (의심스러워하거나) 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의 말을, 말 그대로 사과를 받은 것으로 믿으십시오.

* Sometimes attempted apologies turn into a rehash of the same argument you wanted to amend. Be very careful not to re-argue any topics or open any old wounds.

어떤 경우 사과시도가 당신이 고치고자 했던 똑같은 논쟁을 재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들이나 문제를 일으켰던 주제에 다시 논쟁하게 되는 것을 피하도록 조심하십시오.

* A proper apology is always about the injured party. Keep your apology focused on the actual wrong done, and the recipient.

진정한 사과란 언제나 상처받은 쪽이 중심인 것입니다. 실제로 잘못한 행위, 그리고 그래서 상처받은 피해당사자에게 사과의 초점을 맞추십시오.

* Even if you feel that the conflict was partly because of the other person’s miscommunication, do not say so in the middle of your apology. At most, mention briefly that the other person can help you avoid misunderstandings by reminding you when you step out of line, and apologize again for the hurt you caused.

문제가 다른 사람과의 오해로부터 부분적으로 비롯됐다고 느껴도, 사과하는 중간에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최대한 할 수 있는 말은 당신의 말이 일탈했을 그 순간에 지적해주기를 바란다는 점을 언급하고, 다시 한 번 그런 일탈때문에 입었을 상처에 대해 사과하십시오.

* After you have apologized, take some time to yourself and try to think of a better way that you could have handled the situation. That way, the next time a similar situation arises, you will be ready to handle it in a way that does not hurt anybody’s feelings or cause trouble when there doesn’t need to be any.

사과한 후에, 스스로 그 상황에 어떻게 더 잘 대처했을까 생각해보도록 하십시오. 이를 통해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당른 사람들에게 상처주거나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 Never assume that the injured party is “punishing” you by taking time to forgive you, but watch for warning signs that they will hold a grudge forever. If you hear the words “I’m not going to let you forget this,” or “I’ll be your friend again, but this will change our friendship forever,” listen to your heart, and consider letting the relationship go.

상처받은 상대가 당신에게 용서해주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것이 당신에게 “벌을 준다”라고 가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혹시 상대가 불만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는 위험신호가 있는지는 주의깊게 살피십시오. “당신 이거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거야”라는 말이나, “우리 다시 친구 사이지만, 우리 친구관계를 영원히 변하게 할꺼야”라는 말을 듣는다면, 마음 깊히 생각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고려하십시오.

* Do not talk about how bad you feel. The apology is not about your guilt, your shame, your fear of rejection, your anxiety or your loneliness while waiting to be forgiven. It is about the other person – remember that, even if it seems to be taking them a long time to forgive you.

당신이 얼마나 괴로운지 얘기하지 마십시오. 사과는 당신의 죄책감, 부끄러움, 거부당한 기분, 두려움이나 용서받기 전까지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상대방이라는 것, 아무리 상대방이 당신을 용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If the person is willing to talk to you about making amends, see this as an opportunity. If you’ve forgotten your wife’s birthday, for instance, you might decide to celebrate another night and make it extra wonderful and romantic. This won’t relieve you of responsibility for remembering the next important occasion, of course, but it will show that you’re willing to take special time and effort.

만약 상대방이 보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이를 기회로 여기십시오. 만약 당신 아내의 생일을 잊어버렸다면, 다른 날 생일을 기념하고 좀더 좋고 로맨틱하게 가꾸는 것을 결정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더 애쓴 것이 다음 생일을 기억하는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 아니지만 이를 통해 당신이 특별히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 If you can, pull the person aside so that you can apologize while you’re alone. Not only will this reduce the likelihood of other people influencing the person’s decision, but it will also make you a little less nervous. However, if you insulted the person publicly and made him/her lose face, your apology might be much more effective if done publicly.

만약 할 수 있다면 상대방과 따로 만나 얘기하십시오.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상대방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줄일 수 있고, 이를 통해 당신도 덜 긴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상대방을 공공장소에서 모욕을 주고 상대방을 수치스럽게 했다면, 당신의 사과를 공공에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 Don’t apologize unless you really mean it. People can spot false apologies from a mile away. If you’re not ready to apologize, work on yourself until you are, then give it a shot.

당신이 정말 사과할 맘이 있기 전까지 사과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거짓된 사과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만약 사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당신이 준비될 때까지 고민하고, 그 때 가서 하세요.

* Don’t force them into accepting your apology. If they still don’t forgive you it may be time to move on.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하지 마십시오. 만약 오랜동안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제 갈 길을 갈 때일 수도 있습니다.

* One apology will often cause another, either from you for something else you realized you are sorry for, or from the other person because they realize the conflict was mutual. Be prepared to forgive.

사과를 하면 다른 사과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다른 점들도 사과해야할 것이라는 걸 당신이 깨달아서일 수도 있고, 문제가 상호적인 것이라는 상대방의 깨달음때문에 상대방이 사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용서할 준비를 하십시오.

* Recall all acts that may have led to this and include them in the apology. If you forget to mention something, the victim will only become angry.

모든 행동들이 이런 상황에 이르게 했을 수 있다고 간주하고 사과에 추가하십시오. 만약 당신이 무언가 언급하는 것을 잊었다면, 상처받은 사람은 더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 You should be relaxed and humble body language. Keeping your arms crossed or pointing fingers will put the other person on the defensive.

경직되어 있지 않고 겸손한 바디랭귀지를 써야합니다. 팔장을 끼고 있거나 삿대질을 하는 것은 상대방을 방어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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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쩌다가 Niall Ferguson이 했던 엄청난 설화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본 적이 있는데, 1차 사과문 이후에 2차 “사과문”이 올라와서 더 X박살난 모습을 보면서 느낀 바가 적지 않았다.

사실 얼마 살지도 않았지만 너무 많은 경우 사과한답시고 사과를 하지 않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하게 떠올랐고, 누구나 실수한다고 하지만, 누구나 그 실수를 잘 수습할 수 있는건 아니라고, 의식적으로 배우고 다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p.s. : http://www.cuppacocoa.com/a-better-way-to-say-sorry/ 이 글도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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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실질문맹률

“실질문맹률”이라는 드립이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나보다. 링크를 보니 또 돌아다니고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 좀 살펴봤었다. 간단히 두괄식으로 요약하자면, 철지난 잘못된 얘기다. 최신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평균적으로 중위권, 게다가 시계열로 보자면 가장 문해력수준이 올라간 국가들 중 하나다. 특히 이 근거자료가 주로 인용되는 양상을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굳이 따지자면 잘못된 “꼰대질”이 많이 보인다(아래 절 참조).

1. 배경

네이버의 블로그글은 짜깁기한 것에 가깝고, 그나마 정보들이 정리된 것을 보자면 클리앙의 어떤 용자가 정리한 것이 있다 (이 글도 아주 전형적으로 잘못된 “꼰대질”이 보인다. 아래 절에서 좀더 얘기하겠음). 여기서는 국립 국어원의 2008년 조사도 인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국제비교 결과가 아니다. 지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퍼센티지 등을 비교할 수 없음은 불문가지.

모든 것의 시작은 2001년 연구에 있다. OECD국가들이 그 국가들 사이에 학생처럼 성인들의 문서해독률에 대한 평가지표를 개발하고자 한 사업이 1990년대에 있었는데, IALS라고 한다. 한국은 이 사업의 연구기법만 차용해서, 2001년 독자적으로 한국에서 돌려봤다.

당연히, OECD국가들 사이에 제대로 비교를 한게 아니다 (batch도 다르고, 국가들끼리 coordination한게 아니라 적당히 번역해서 진행한거다). OECD국가들과 점수를 비교한 것은 아무리 막 나가도 참고용으로만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실질문맹률”이란 말을 쓰지도 않았다. 이건 KEDI가 무슨 대통령 보고를 할 때, 저기 하위 그룹의 퍼센티지를 “실질문맹률”이란 말로 포장해서 발표한거다. 그리고 그걸 문화일보에서 받아서 대서특필했다. 잘 살펴보면 원본 소스는 거의 대부분 문화일보 기사로 흐르고 있다. 한 마디로 “실질문맹률”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그건 2002년 결과를 바탕으로 얘기하고 있는거다.

그러면서 온갖 자학이나 꼰대소리들이 넘쳐났다. 국한문혼용을 포기해서 애들이 독해력이 떨어진다느니, 클리앙의 용자님도 키배가 안 끝나는 이유는 난독증, 독해력이 떨어져서 그렇다느니.

2. 가장 최신 결과가 있다.

2002 년, 그리고 2008년 결과 말고, 국제 비교를 엄밀하게 하는 사업에 한국이 참여한게 있다. OECD에서 IALS의 후신으로 국가간 문서해독률이나 컴퓨터 활용능력, 수리처리 능력 등 성인들의 능력을 측정하고자 하는 사업을 확대해서 PIAAC라는 것을 시작했고 여기에는 한국이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결과가 최근에 나왔는데, 한국은 그 순위가 최하위이긴 커녕 (전체 중간그룹), 젊은 세대(16-24세)만 보자면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긴 보고서 다 읽기 귀찮은 사람은 Figure 2.2/2.3참조).

사실 2002년도 그렇고, 문해력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세대 격차가 가장 크게 나는 국가이어서 그렇다. 노년세대가 점수 바닥을 깔고 있단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1990년대에 40%도 안 됐고, 중등교육이 의무교육으로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노년세대가 바닥을 깔고 있다.

노년세대가 바닥을 깔고 있다. 왼쪽 아래 링크를 치면 데이터를 직접 엑셀로 볼 수 있음. 이 그림은 스크린캡처.

세부적인 세대차를 봐도 큰 차이가 보인다. 오른쪽 그래프는 가장 젊은 세대 평균과 가장 나이든 세대 평균의 차이. 한국이 압도적 1위.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 대비 세대별로 고등교육(대학진학)율이 엄청나게 올라간 나라 중 하나다. (질적 저하니, 이렇게 지나칠 듯한 결과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교육수준 향상이 된 것은 맞음)

 

중등교육도 보면, 한국은 50%에 달하는 세대가 중등교육 (대강 고등학교까지)을 받지 못하던 세대에서, 사실상 그런 사람이 없는 세대로 급격하게 변했다.

수리능력은 잘 알려져있지만, 기술능력의 경우에도 세대차로 1등 먹었다.

PIAAC보고서에서도 대한민국의 급격한 문해력 향상을 특기해서 적어놓을 정도다. 비교해서 영국 같은 경우에는 문해력이 외려 살짝 뒷걸음질쳤다. 요즘 독해가 안 된다느니 이런 소리를 자료를 인용해서 하자면 영국인이란 얘기

그 밖에 다른 재밌는 결과들도 많다. (관심있는 분들은 위의 링크로 보고서 전문을 참조하시기를)

https://pbs.twimg.com/media/Bq0lbi0IQAAEh-m.png

부모의 교육수준이 대물림되는 수준. 지름 젊은 세대 (16-24세)의 경우 가장 적다. 전체 세대를 평균하면 기울기가 높아지는데, 즉, 과거 세대에서는 교육수준이 대물림되는 것이 더 강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보통교육의 확대의 결과.

3. Zombie Idea

이렇게 계속 출몰하는 실질문맹률드립은 “좀비아이디어”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럴듯하고, 수치들도 있는데다가, 꼰대질하는데 안성맞춤이니, “한국은 안 돼” 이런 소리에 ‘사실’로 인용되는 것이다.

더해서 한국에서만 특별히 심한지는 모르겠지만, 지표들을 개발해서 우리나라 국가 순위 어쩌구 하는 얘기들, 잘 뜯어보면 거의 순환논법인 경우가 많은데, 원본이나 데이터가 무슨 의미를 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섹시한 이름 갖고 대충 생각하고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실질문맹률”이 무슨 뜻인지, 이 맥락에서 인용할 수 있는 자료인지, 다른 반대되는 자료들이 있는지 기본 숙제를 하지 않는다는거다. 이렇게 “이름으로 넘겨짚기”의 최고봉은 “도덕적 해이”가 아닌가 싶다. 다르게는 “사회갈등지수”같은 것도 그렇다. 사회갈등지수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OECD 2위”가 되었는지를, 기본적으로 파악해야할 사람들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다보니, “그래 우리가 갈등이 많잖아, 갈등 줄이자!” 이런 소리나 해대고 있다.

이런 좀비생각들 자꾸 출몰하는 이유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일단 대충 맞을 것 같은 자기 주관, 인상에 필요한 자료를 보면 바로 붙여서 지르거나, 더 나아가 그런 자료들만 찾아서 인용하는 경향이 공론에서 많은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실질문맹률 드립으로 가장 우스웠던 것 중 하나는, 조갑제 닷 컴에서 실질문맹률이 높은건 한자교육을 안 해서라는 드립을 접했을 때이다. 심지어 2001년 기본 데이터의 나이 상관관계를 볼 생각조차 안 했다. 그냥, 요즘 애들은 한자도 모르니 한자 섞어쓴 내 글 읽지를 못하고, 그러니 독해를 못하는 거지가 그럴듯하니까 거기에 맞춰서 권위있어 보이는 자료를 인용하는거다.

읽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쉽게 내지르는 말들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숙의”가 “상식”만큼 많이 회자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도 짜증나서 내지르는 꼴임을 인식하고 있다.)

보고 싶은 데이터만 보면서 외치지 않고, 데이터들을 모으고, 검토하고, 좀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공개하고, 어떻게 시각화하고 어떻게 조명해야할지 정리하는 노력에 좀더 관심과 자원을 주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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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th Amendment

 

옛날에 한국서 국회의원이 밥값 하느냐 마느냐로 매번 몸살앓이하는 와중에 끄적였던 실없는 이야기 소개해봅니다. (DISCLAIMER: 전 이쪽 전공자가 아니니 잘못된 내용은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0.75

아주아주 거친 배경설명.

미국이 독립한 직후 있던 헌법은 독립한 13개 주 연합체 위에 효과적인 행정기능, 사법기능, 조세기능을 부여하지 않았기때문에 (예를들어, 대통령이 없었다), 한 주가 깽판 치면 속수무책이고, 전쟁을 벌일 때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이 쉽지 않는 등 문제가 많았다. 그 고민 끝에 1787년에 벤자민 프랭클린 등등 12개(!) 주 대표들이 모여서 현재 미 헌법의 초안을 만들었다.

헌법 초안을 작성하면서 많은 논점들이 절충/타협으로 해결되었지만, 해결되지 않고 남은 심각한 이슈가 대략 두 개가 있었다.

한 문제는 매우 기괴한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갔는데, 결국 한 세대를 겨우 넘어 전쟁으로 그 논쟁이 끝났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가 현실화될 때까지도 또 몇 세대가 걸린 문제고, 헌법을 여러차례 수정하게 만든 문제다. (얘기하기 시작하면 재밌는 얘기들이 많지만 훨씬 복잡한 배경이 있기때문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정리해보자)

다른 하나는 꽤 강력한 연방정부/연방 사법부를 규정한 헌법을 입안하고 비준하는 과정이 독립한 주와 시민들이 자신들의 (제정 영국으로부터 얻은) 자유로운 권리를 다시 포기하는 과정이 아니냐라는 문제제기였다(대통령 만드는 거, 왕 만드는 것 아닌가 – 성경을 봐라). 그러니 그 권리들을 명문화해서 (권리장전權利章典. Bill of Rights) 헌법에 집어넣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가 하면, 그딴건 왕과 신민 사이에나 맺어졌던 것이고, 그런 식으로 나열을 하면 나열 안 한 것은 보호받지 못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는 쪽이 다른 쪽으로 부딪쳤다(이런 우려들이나 논의들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여러 정치지형들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여차저차해서, 그런 구문들을 집어넣지 않고 헌법초안이 마련되어서 각 주별로 비준에 들어갔는데, 이 문제가 미 헌법 비준안을 상정한 6번째 주, 메사추세츠 주[0]에서 심각한 상황까지 갔다. 큰 싸움 끝에, 미헌법이 발효된 다음에, 이 문제의식에 입각해 초대 의회에서 권리조항[1]들을 추가하자고 제안해놓기로[2] 가까스로 절충을 보고 겨우 비준에 성공했고, 그 이후 비준과정에도 그 논의가 영향을 미쳤다. 1788년 9번째 주가 헌법을 비준으로 헌법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1789년 소집된 미 초대 연방의회에서는 약속에 따라 미 헌법에 조문을 추가하는 (그래서 미헌법을 “수정”하는 – 그래서 “수정헌법”이다) 과정을 밟는다. 이 때 제안된 조문이 총 12개였고, 이윽고 각 주의 비준절차를 걸쳐서 미헌법에 “권리장전”으로 덧붙여진 최초의 수정헌법 조문 10개를 이루게 된다.

우리가 종종 접하는 “표현의 자유” 논의에서 인용되는 수정헌법 제1조를 비롯해서, (종종 옛 집주인덕분에 받아본 NRA의 월간지를 보면 제1조 이상으로 신성한) 무기소지의 자유를 기록한/했다고 여겨지는[3] 제2조 등등을 볼 수 있는데, 그 이후로 이 조항들을 통해 미국 사법판결에도 굵직한 큰 사건들이 많이 나왔다.

1. 문제의 2조

그렇다. 12개를 제안했는데, 10개 조문만 헌법이 되었다. 수정헌법 제1조는 일련의 제안된 조문들 중 3번째다. 첫째 조항과 둘째 조항은 비준을 받지 못한 것이다.

당시 새로 만들어진 미합중국 헌법에 따라 헌법이 수정되려면 (또는 조항이 추가되려면), 일단 상하 양원에서 2/3의 찬성을 거쳐서 각 주에 헌법수정안을 제안하고, 미합중국을 이루는 3/4의 주들이 이 수정안을 비준해야한다[4]. 그렇다면 1789년 9월 25일 수정안이 의회를 통과해 각 주의회에 제시된 당시 독립13주(+버몬트) 중에서 11개 주가 비준해야하는데, 제1조는 10개주만 비준했고, 제2조는 6개주에서만 비준이 되었다. 이 문제의 제2조문은 무려 5개주 주의회에서 비준을 거부한 것이다.

이 두 번째 조문은 다음과 같다.

No law, varying the compensation for the services of the Senators and Representatives, shall take effect, until an election of Representatives shall have intervened.
상하의원의 세비 변경에 관한 법률은 다음 하원의원 선거때 까지 효력을 발생하지 않는다.

…왜 비준하기 어려웠는지 알만하다.

이후로 미합중국에 “가입”하는 주들 중에서 이 조항을 비준한 주가 있었지만, 그만큼 3/4 역치도 점점 높아지기 마련이고, 뭐 좋은 게 좋은 거고 그런 오래된 거 잊어버리자구요하면서 그 이후 200년 정도 거의 잊혀진 개정안이었다.

2. 192년후.

1982년에 외로운 별주텍사스 오스틴의 대학교2년차 학생(Gregory Watson)이 리포트 조사차 서류들을 뒤지다가, 이 헌법수정안을 찾았다. 좀 살펴본 끝에, 그는 교수에게 이 헌법수정안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하는데, 그가 주장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권리장전 이후 미 연방의회의 2/3선을 통과한 헌법수정안들은 대개 주의회들이 비준을 해야하는 기간제한을 걸어놓았는데, 공교롭게도 이 권리장전은 그런 비준시기제한이 없다. 미헌법 수정절차를 기록한 조문에도 수정안이 언제까지 비준되어야한다는 사항이 없었기때문에, 이 조항은 현재 미 50개주 가운데 38개주의 비준을 다 받아내면 여전히 수정헌법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이 조항을 비준한 7개 주를 생각하면, 31개 주의회에서 이 수정안을 비준하면 됩니다!

교수의 리포트 채점결과: C.
이유: 야 임마, 200년 지난 수정안을 비준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학생이 10년동안 각 주의회에 청원한 결과, 1992년이 되니 38(또는 39)개주가 이 수정안에 대한 비준을 끝마쳤고, 1992년 5월 18일,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장은 202년만에 이 개정안이 수정헌법 제27조가 되었음을 인증해버렸다.

일부 미 연방의원들은, “아니 202년 지난 헌법수정안 비준이 말이 됩니까,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봅시다”라는 식의, (어느 나라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입법부의 사법판단요청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수십년 전에 사법부는 (어느 나라의 사법부와는 달리) 이미 “그건 정치적 문제이니 늬들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임”이라고 판결을 내린 선례가 있기때문에, 결국 의회가 제 손으로 이런 식의 202년만의 비준에 의한 헌법개정이 맞는지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왜 결국 연방의회가 군말없이 이 조항을 헌법에 받아들였는지 알만하다.

그리하여 미 수정헌법 제 27조가 탄생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너무 끝이 썰렁하다고 혼내지 말아주세용…굽신굽신…)

p.s. : 문제-해당 학생은 리포트 채점결과를 수정할 수 있었을까요?

[0] 그래놓고 이 주는 권리장전 조항들을 1939년까지 비준하지 않았다(물론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1] 여기서 “권리”가 요즘 말하는 “권리”랑은 좀 다른 개념.
[2] 메사추세츠 주의회 비준 과정 싸움은 “비준을 하냐 안 하느냐지, 단서 조항같은 건 있어도 안 되고 효과적이지도 않다/아니다”의 싸움이었다.
[3] 각각 다 짧은 영문이니 직접 읽어보시기를. 이거 해석 어떻게 하느냐로 가끔 미국인들끼리 치고박는 포럼에서 구경하면 재미남.
[4] 이런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권리장전 이후로 16번 더 수정이 이뤄졌는데, 그 중 가장 백미는 수정헌법 18조(또는 21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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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A Country is not a company (Krugman)

0.

옛날에 Krugman이 블로그에 언급한 16년 전 글을 접하고, 꽤 재밌는 내용인데 좀 찾아봐도 전문을 번역한 건 못 찾았다. (아마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번역해봤다. CEO출신 대통령  (거의) 퇴임 기념으로 옛날에 번역해본 것 실어본다.

1996년에 HBR에 쓴 크루그먼의 글이다. 제목으로 검색하면 바로 PDF를 구할 수 있으니 따로 링크를 걸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공부하는 분야가 아니므로 오역이 있을 것이고, 별로 매끄럽게 다듬을 시간도 없었으니, 좀 흥미가 생기신 분은 영문본(또는 어딘가 있을 국문본)을 보세요.

DISCLAIMER: 전 경제학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크루그먼이 말한게 맞는지 틀린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름 알려진 글인 것 같으니 읽자는 취지에서…

p.s. : 2014년 1월 8일 일부 거친 표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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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고자 계획하는 대학생들은 대개 경제학을 전공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강의때 들은 것을 현장에서 이용하게 되리라고 믿지 않는다. 이 학생들은 근본적인 진실을 이해하고 있다: 경제학 수업들에서 배우는 내용은 사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역 또한 진실이다: 경영을 통해 배우는 것은 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가는 큰 기업이 아니다. 훌륭한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사고방식은, 일반적으로, 훌륭한 경제 분석가에게 요구되는 사고방식과 일치하지 않는다. 십억불을 벌어들이는 기업가가 6조불의 경제에 대한 조언을 구할 적합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라는 것이다.

왜 이 점을 지적해야할까? 기업가들이나 경제학자들이나 대개 매우 훌륭한 시인은 아니지 않는가? 그게 뭐 어쨌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기업가들을 차치하고도, 큰 돈을 번 사람들은 전체 국가를 더 부유하게 만들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간주한다. 사실, 이들이 하는 조언들은 대개 매우 심각하게 잘못된 조언들이다.

내가 기업가들이 멍청이라거나 경제학자들이 특별히 똑똑하다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만약 상위 100명의 기업가들과 상위 100명의 경제학자들을 모아놓은다면, 그들 중 가장 낮은 순위의 기업가들조차 가장 인상적인 경제학자들을 압도할 것이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경제 분석에 필요한 사고방식이 기업을 성공하게끔 하는 사고방식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이 차이점을 이해하고나서야, 좋은 경제분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고, 잠재력을 갖고 있는 기업가들이 훌륭한 경제학자가 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기업가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두 가지 예로 시작해보자: 먼저, 수출과 일자리 창출과의 관계가 첫째고, 둘째로 외자유치와 무역 수지와의 관계다. 두 문제 모두 국제무역와 관련된 것은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이기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국제무역이야말로 기업가들이 국가와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기업과 기업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쉽게 실수하는 분야이기때문이다.

수출과 일자리

기 업가들은 국제무역과 국내 일자리 창출사이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점을 일관되게 오해한다. 첫째로, 미국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자유무역을 지지하기에, 국제무역이 증진되면 세계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데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최근에 합의된(역주: 우루과이 라운드에 따른 WTO체제성립을 뜻하는 듯) GATT체제 같은 자유무역협정들이 전세계 고용을 증진시킨다고 믿는다. 둘째로, 기업가들은 국가들이 이렇게 창출된 일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한다고 믿는다. 이 생각을 따라가면, 미국이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것이고, 반대로 수입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관점에 따르면 미국은 자유무역을 해야할 뿐만 아니라, 이 자유무역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창출된 일자리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춰야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들이 합리적으로 보이는가? 물론 그래보인다. 이 미사여구들은 지난 미 대선을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다음 대선에도 들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이 전세계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든가 (또는 자유무역의 이익이 일자리창출의 관점에서 나온다거나), 매우 성공적인 수출국가들이 무역적자에 놓인 국가들보다 낮은 실업률을 달성할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믿지 않는다.

왜 경제학자들은 기업가들이 보기에는 상식적인 생각들에 동의하지 않는가? 자유무역이 국제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은 명백해보인다: 무역이 증진된다는 것은 더 많은 수출이, 따라서 더 많은 수출과 관련된 일자리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한 국가의 수출은 다른 국가의 수입이기때문에, 수출로 번 돈은, 단순한 산술적 필요에 의해, 어떤 국가가 국내의 재화를 사는 대신에 수입에 돈을 쓴 양과 일치해야한다. 자유무역이 전세계 지출을 늘릴 것이라는 어떤 이유를 들지 않는 이상 – 그런 조건은 항상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 전세계 수요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위와 같이 산술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진실 너머에 보다 근본적인 질문, 전체적인 일자리를 제한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혹시 재화에 대해 불충분한 수요의 문제가 아닐까? 아주 단기적인 효과를 제외하곤, 분명히 아니다. 사실, 이렇게 수요를 증가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연방 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연준; 역주: 미국의 중앙은행)은 원하는만큼 돈을 찍어낼 수 있기때문에, 연준이 원할 때 경기 부양을 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그렇다면 왜 연준은 항상 경제를 호황상태로 유지시키지 않을까? 왜냐하면 만약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 즉 너무 많은 일자리를 만들려고 한다면 —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들을 초래하고, 나아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여러가지 정당한 이유로 믿고 있기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에서 일자리수를 제약하는 것은 미국 경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총)수요 – 그것이 수출로든 또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 가 아니라, 연방준비은행이 생각하기에 인플레이션을 일정 수준으로 이하로 잡기 위해 미국 경제가 유지해야하는 (최소)실업률이다. (역주: 최소실업률 이하로 떨어뜨리는 경기부양, 일자리 창출은 물가인상으로 돌아오기때문에 연준이 막는다는 뜻).

이 점은 단지 가설이 아니다. 1994년동안, 연방준비은행은 7차례에 걸쳐서 이자율을 높였다. 그 공공연한 이유가 바로 경기 호황이 너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경기를 과열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 걱정했기때문에 경기를 냉각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점이 무역이 고용상황에 미치는 영향에 의미하는 바를 고려해보자. 미국 경제가 큰 수출 증가를 경험한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미국이, 중국이 2000억불어치의 미국 상품을 산다는 조건으로 노예노동에 대한 반대를 거둬들인다고 해보자. 연방준비은행은 어떻게 할까? 연방준비은행은 수출로 인한 경기팽창효과를 이자율을 올림으로써 제어하려고 들 것이다; 즉 수출과 관련된 일자리 증가는 크든 작든 이자율에 민감한 경제분야, 이를테면 건설업같은 분야의 고용 감소와 일치할 것이다. 반대로, 수입이 크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준비은행은 이자율 인하로 대응할텐데, 그럼으로써 수입품과 경쟁해서 잃는 일자리는 대충 다른 경제분야의 일자리 증가와 일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이 전세계 수출액을 증가시키는 딱 그만큼 항상 수입액도 늘릴 것이라는 점을 무시하더라도, 자유무역이 미국 고용을 증진시킨다거나, 다른 제반 무역 정책, 이를테면 수출 진흥이 우리 경제의 총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미 상무부 장관이 외국을 돌아다니며 미국 회사들을 위해 수십억불어치의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해도, 그가 수출관련 일자리를 늘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설사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대강 비슷한 수의 다른 경제부문의 일자리를 줄이는데도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즉, 미국 경제가 수출을 증가시키거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식의 논리는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할 때 별로 효과가 없다. (내가 참석했던 기업 논의장에서 NAFTA가 미국 총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더니, 나와 함께 있던, NAFTA를 지지하는 논의자는 “이런 식의 말을 하니 왜 사람들이 경제학자들을 미워하는지 알만하군요!”라고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늘어난 수출 또는 줄어든 수입으로 얻은 일자리 증가는 눈에 보이는데 비해서 – 외국인들이 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수입상품과 경쟁때문에 폐업한 공장들의 노동자를 떠올려봐라 –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다른 효과들을 추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방 준비은행이 전체 미국 경제의 총고용에 대한 목표치와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수출입의 변화가 총고용에는 별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결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투자와 무역수지

두 번째 예, 해외투자와 무역수지는 기업가들에게 똑같이 어려운 문제다. 수백 개의 다국적 기업들이 한 국가가 제조업 공장을 세우기에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연간 수십억불에 달하는 돈을 투자해서 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해보자. 이 국가의 무역수지는 어떻게 될까? 기업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이 국가가 무역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이 국가가 큰 무역수지 적자를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경제학자들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업가들의 답변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추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경영하는 회사를 생각하며, 사업들의 생산능력이 갑자기 확대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묻는다. 당연히 이 회사들은 덜 수입(지출)하고 더 많이 수출(생산)할 것이다. 같은 식의 일이 여러 산업부문에서 일어난다면, 경제 전체적으로 무역 흑자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경제학자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왜냐? 왜냐하면 무역수지라는 것이 전체 국제수지의 일부이고, 한 국가의 전체 국제수지 – 외국에 판매한 총액과 외국으로부터 사온 총액의 차이 – 가 항상 0이어야하기 때문이다[1] 물론, 국가가 무역수지 적자나 흑자를 기록하는 것은 가능하다. 즉, 한 국가가 상품을 판 액수보다 더 많은 상품을 사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인한 불균형은 항상 자본계정에 대응하는 불균형으로 맞춰야한다. 무역수지 적자에 놓인 국가는 자신이 외국에서 취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산을 팔고 있어야한다;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는 해외에서 순채권국이어야한다.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차를 구입한다면, 미국은 그 반대로 무언가를 팔아야한다; 그것이 보잉사 제트기일 수도 있지만, 또한 록펠러 센터일 수도 있고, 사실은, 재무성 채권을 판다. 이건 단순히 경제학자들이 갖고 있는 의견이 아니다; 이건 회계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결론인 것이다.

자, 그렇다면 큰 외자유치가 이뤄진 국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본이 유입되므로, 외국인들은 그 국가 주민들이 해외에서 취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산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바로 단지 회계상의 이유로, 그 국가의 수입액이 동시에 수출액보다 많아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큰 외자유입이 이뤄지는 나라는 반드시 무역수지 적자가 일어나야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회계일뿐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회사들이 공장을 지으면, 이들은 일부 수입제품들을 구입할 것이다. 투자 유입은 국내 호황을 야기할 수 있고, 이는 수입수요를 늘릴 수도 있다. 만약 그 국가가 변동환율제하에 있다면, 외자유입은 환율하락을 불러올 것이다; 만약 고정환율제라면, 그 결과는 물가상승으로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시나리오라도 그 효과는 수출시장에서 그 상품가격을 높이고 수입액을 증가시킬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무역수지에 대한 결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본유입은 무역수지 적자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최근 역사를 살펴보자. 1980년대에, 아무도 멕시코에 투자하는 이들이 없었고, 멕시코는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1989년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멕시코의 미래 전망을 높게 사고 큰 투자를 했다. 투자한 그 돈 중 일부는 멕시코에 세워진 새 공장을 위한 기자재를 수입하는데 쓰였다. 나머지는 국내 호황을 야기해 수입액을 증가시켰고 또한 페소화가 절상되도록 만들었다. 이 때문에 수출이 억제되고 많은 멕시코인들로 하여금 수입품을 싸도록 부추켰다. 그 결과, 엄청난 외자유입은 거의 비슷한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를 낳은 것이다.

바로 그 이후 1994년 12월 페소화 위기가 왔다. 다시 한 번, 외국인 투자자들은 멕시코로부터 탈출했고, 이제 이야기는 정반대가 되었다. 불황은 수입감소로 이어졌고, 평가절하된 페소 또한 수입액 감소를 불러왔다. 한 편, 멕시코 수출은 증가해 약한 경제를 도왔다. 그 어떤 경제학자도 예상했겠듯이, 멕시코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 규모붕괴와 거의 비슷한 규모의, 멕시코 무역 수지 흑자가 이어졌다.

수출증진이 고용증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는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다는 말도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별로 인기있는 말이 아니다. 외국인 투자가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지는 각 가능성들은 이들에게는 의문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진짜 투자자들이 받은 돈으로 그만큼 수입기자재들을 살까? 어떻게 환율이 절상될지 알며,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출액이 감소하고 수입액이 증가하는 것이 얼마나 확실한 일인가? 기업가들의 의심의 근저에는, 자본유입은 반드시 — 그럴지도 모른다가 아니다 — 무역수지 적자를 수반해야한다는 회계 원리에 대한 몰이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위 예들에서 모두, 경제학자들이 옳고 기업가들이 틀리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왜 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설득력있는 논리들이 기업가들에게는 매우 일어나기 힘들거나 심지어 반직관적으로 보이는걸까?

이 물음에는 두 가지 답을 할 수 있다. 피상적으로 답하자면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기반하고 있는 원리들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아도 기업가들이 기업 경영을 할 수 있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좀더 깊이있는 답은 개별 사업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되먹임들이 경제 전체적으로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되먹임보다 정도도 약하고 또 종류도 다르다는 것이다. 두 가지 답들을 차례로 분석해보자.

마비된 지네의 비유

때때로, 아주 성공한 기업가가 그가 배운 바에 대해 책을 쓴다. 그 중 일부는 회고록이다: 제 자신이 겪은 것들을 통해 자신의 직업 성공 이야기를 하는 책들. 하지만 더 나아가 이 대단한 사람의 성공의 원리를 일반화하려는 대담한 시도들도 있다.

거의 예외없이, 첫번째 종류의 책이 두번째보다, 책 판매뿐만 아니라 비평가들의 평가라는 관점에서도 더 성공적이다. 왜냐? 왜냐하면 기업 지도자는 기업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개발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성공한, 특정한 상품전략이나 조직혁신을 찾아냄으로써 성공하기때문이다. 일부 큰 업적을 이룬 기업가들이 자신들이 아는 것들을 원리로 정리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지만, 이런 시도들은 거의 항상 실망스러웠다. 조지 소로스의 책은 독자들에게 어떻게 또다른 조지 소로스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워린 버핏은, 실제에 있어서는, 이른바 워린 버핏 투자법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사실, 성공적인 금융가는 금융시장의 일반 원리를 알아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특정한, 매우 개별적인 기회들을 포착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다.

나아가 현실에선 성공적인 사업가들이 종종 자신들이 하는 일들을 공식화하고 몇 가지 원리들로 정리하면서부터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성공적인 경영방식, 그 틀에 맞춰 행동하기 시작하는데, 기실 이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것은 (틀에 박히지 않은) 육감과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였기 때문이다. 마치 오래된 우화와 같다. 지네에게 어떻게 그 100개에 달하는 다리들의 움직임을 다 통제하냐는 질문을 하자, 지네가 이를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다시는 제대로 다리들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얘기 말이다.

허나 사람들 중에는, 기업가들이 일반 이론들을 정립하거나 그가 하는 일들을 설명하는데 능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들이 갖고 있는 능력 – 기회를 포착하고 사업이 직면한 도전들을 해결하는 능력은 국가 경제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미국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잘 정리된 논설이 아니라 바로 다음 뭘 해야할지에 대한 건전한 조언이 아닌가? 그 사업에 있어 일관되게 좋은 판단을 내린 사람이 대통령에게 국가 경영에 대해 좋은 조언을 주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가? 있다. 짧게 말하면, 국가는 큰 기업이 아니기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제일 큰 대기업과 국가경제 사이에 놓인 복잡성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경제는 1억 2천만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에서 제일 큰 고용기업, 제너럴 모터스(GM)의 200배에 달하는 규모다. 허나 이 200 대 1이라는 비율도 제일 큰 대기업과 국가 경제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모자라다. 수학자라면 큰 집단에서 가능한 수의 상호작용은 그 집단의 구성원의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할 것이다. 너무 신비주의적으로 갈 필요는 없지만, 미국 경제가 제일 큰 기업보다 어떤 의미에서 수백배가 아니라 수만배 더 복잡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심지어 초거대기업들도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특정 경쟁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한 기술이라든지, 특정 종류의 시장에 대한 특정한 접근법이라든지가 그런 예다. 이 때문에 거대기업들이 거느리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도 어떤 특정한 주제가 관통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국 경제는, 거대기업집단에서 보자면 궁극의 악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만 가지 완벽히 다른 사업, 분야들이 단지 국경선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묶여있기때문이다. 밀농사를 짓는 농부의 성공기가 컴퓨터산업에 적용되는데 도움이 될리 만무할뿐더러, 또 이 컴퓨터산업의 성공적인 전략은 아마도 요식업에 적용되기 힘들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복잡한 경제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단 말인가? 답은, 국가경제는 특정한 전략들이 아니라, 일반 원리들에 기초해서 운영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제문제를 살펴보자. 제대로된 정부라면 특정 개인들이나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매기거나 면세혜택을 주지 않는다. 대신에, 좋은 세제는 수년간에 걸쳐 재정 전문가가 개발한 일반적인 원리를 따라 수립된다 – 예를 들어, 대체 투자들 사이에 중립성(neutrality between alternative investment)라든지, 낮은 한계세율, 현재 소비와 미래 소비 사이에 최소한의 차별 등을 들 수 있다.

이게 왜 기업가들에게 문제란 말인가? 결과적으로 보자면 제대로된 기업경영에도 많은 일반원리들이 있지 않던가: 일관된 회계기준, 명확한 책임소재, 등등 말이다. 허나 많은 기업가들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상대적으로 방임적인, 현명한 경제 정책가의 역할을 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기업 경영가는 혁신적이어야한다. 기업가의 역할을 맡았던 사람에게 있어 국가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데 이런 혁신성이 얼마나 더 어렵고 — 또 불필요한지 — 깨닫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특정 산업을 진흥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제대로 된 기업수장이라면 회사의 미래에 꼭 필요한 사업분야를 찾는데 열심일 것이다; 기업수장이 투자결정을 개별 이익을 내는 사업부문의 관리자들에게 맡겨버린다면 그는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특정 산업목록을 정해 적극적으로 진흥해야할까? 경제학자들이 산업정책에 대한 이론적 비판들을 차치하고라도, 정부들이 중요산업을 결정하는데 얼마나 무능했는지 과거 역사가 증명해준다. 여러 시기에, 정부들은 철강, 원자력, 합성연료, 반도체 기억소자, 그리고 5세대 컴퓨터산업이 (역자주: 미국의) 미래의 유망한 산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물론, 기업들도 실수를 하지만, 평균적인 정부만큼 맞추는 확률이 낮진 않다. 훌륭한 기업가들은 자신이 속한 산업에 대해 잘 알고, 감각을 갖고 있기때문이다. 허나 이런 지식과 감각은 국가경제만큼 복잡한 체계에서는 그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더라도 갖기 힘든 능력이다. 정부가 특정 산업의 기업가만큼 선구안을 갖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여전히, 가장 좋은 경제 관리란 거의 항상 좋은 틀을 수립하고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라는 생각은 기업가들에게는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본능은 로스 페로(역주: 미국의 유명한 기업가)가 잘 정리한 바가 있다: “보닛(hood)를 열고 엔진을 고쳐야하지 않겠는가?”

학교로 돌아가기

과학계에서, “석학병”이라는 신드롬은 유명한 연구자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분야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하는데, 이를테면 화학자가 의학 전문가 행세를 한다거나 물리학자가 인지과학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똑같은 신드롬은 경제자문가로 발탁된 몇몇 기업가들에게도 명백하다: 이들은, 새 분야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려면 학교에 돌아가야한다, 즉 다시 공부해야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경제가 운영되어야할 일반원리들은 사업에 적용되는 원리들과 다르다. 더 이해하는 게 어렵다는 게 아니라, 다르다. 기업회계에 능숙한 기업가는 자동적으로 국가 수입계정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아는 게 아니다. 국가 수입계정은 기업과는 다른 것을 측정하고 다른 개념을 쓴다. 인력관리와 노동법은 같은 것이 아니다; 기업 재무 관리와 통화정책도 마찬가지로 다른 것이다. 기업가가 국가경제관리자 또는 전문가가 되고자 한다면 새로운 용어들과 개념들을 익혀야하고, 그들 중 일부는 필연적으로 수학적이다.

이 점은, 기업가들, 특별히 매우 성공적이었던 사업가들이 받아들이 어려운 점이다. 복잡다단한 한 산업에 정통하고, 이 산업에서 수십억불 규모의 기업을 운영했던 사람을 상상해보라. 경제정책에 대해 자문을 부탁받을 법한 이런 사람이 1학년 경제학 수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다시 복기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아니면 경제학자들이 쓰는 생소한 단어들과 개념들이 단지 젠체 하려는 학술용어며 기업 경영 경험만으로도 경제자문을 하는 데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겠는가?

당연히, 내가 앞에 제시한 예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은 후자가 더 그럴 법한 반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 경제분석이 기업경영과 다른 개념들,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요구한단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효과적인 기업경영에 요구되는 사고방식과 경제분석를 가르는 더 깊은 차이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사업전략 과 경제분석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것이다: 가장 큰 사업이라할지라도 그 환경이 개방형 시스템이라면, 점점 커지는 세계무역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큰 틀에서 폐쇄형 시스템이기때문이다. 기업가들은 경제학자들보다 폐쇄형 시스템에 대해 사고하는 데 익숙하지가 않다.

여기 폐쇄형 시스템과 개방형 시스템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몇 가지 경제 바깥 예들을 제시하고자한다. 이를테면 고형폐기물을 들어보자. 매년, 평균적인 미국인은 약 500kg에 달하는, 재활용하거나 태워없앨 수 없는 쓰레기를 만든다. 그 쓰레기는 어디로 가나? 많은 지자체의 경우, 딴데로 실어보낸다. 내가 사는 동네의 경우 모든 주민들은 사립 폐기물처리 서비스를 이용해야하며, 지자체 자체 매립지는 없다. 따라서 이 폐기물 처리업체는 우리가 내는 수수료 중 일부를 매립지를 보유한 다른 지자체에 내고 우리가 쓰레기를 그 매립지에 버릴 수 있는 권리를 사야한다. 그 뜻은 내가 사는 동네 주민은 매립지가 구비된 다른 동네보다 쓰레기 처리 수수료가 높을 것이라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 지자체 정부가 선택한 것이다: 그 권역에 보기 불쾌한 매립지를 갖는 대신에 돈을 더 내겠다는 결정 말이다.

개별 마을에 있어서, 그건 선택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미국의 모든 시와 군이 같은 선택을 한다면? 우리가 이 쓰레기를 어딘가 딴 데로 보내버리기로 결정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쓰레기를 제3세계로 수출하지 않는 이상). 미국 전체로 보자면, 문자 그대로 “들어간 쓰레기만큼 나온다”라는 원칙은 성립한다. 국가 전체로 보자면 폐기물을 어디에 묻을지 결정할 수 있지만, 폐기물을 묻을지 말지를 결정할 순 없다. 즉, 폐기물처리 입장에서 보자면, 각 마을들은 개방형 시스템일지 몰라도 미국 전체로는 폐쇄형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든 예는 상당히 명백한 예다. 여기에 또 다른, 아마 덜 명백한 예를 들어보자. 일전에 나는 “주차 후 대중교통 이용(park-and-ride)” 출퇴근객이었다: 매일 아침, 나는 큰 주차장까지 운전해서 간 다음, 거기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 중심으로 출근했다. 불행히도, 이 주차장은 충분히 크지 않았다. 항상 꽉 차버려서 늦게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일터까지 운전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내가 약 8시 15분 전에만 도착한다면 항상 주차 공간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내 알아냈다.

이 경우, 출퇴근하는 각각의 개인은 개방형 시스템에 놓여있다: 그는 일찍 출근함으로써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허나, 출퇴근자 집단 전부를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주차공간을 얻기 위해 일찍 주차장에 온다면, 주차장은 더 빨리 찰 뿐이다! 집단으로서 출퇴근자들은, 적어도 주차문제에 한해서는 폐쇄형 시스템에 놓인 것이다.

이런 예들이 사업과 경제학 사이의 차이와 어떻게 연관된단 말인가? 사업은 — 심지어 매우 큰 기업들일지라도 — 일반적으로 개방형 시스템에 놓여있다. 이들은, 예를 들어 그들의 모든 사업부문에서 동시에 고용을 늘릴 수 있고; 투자를 동시에 늘릴 수 있으며, 모든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물론, 기업집단의 경계조정이 완전히 개방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알맞은 노동자들을 수월하게 끌어들이거나 충분한 자본을 끌어모을 수 없어서 기업확장에 애로사항을 겪을 수 있다. 기업수축은 이보다도 더 어려울 수 있다. 능력있는 고용인들을 해고하는 것은 망설일 것이기때문이다. 허나 몇 년에 걸쳐 시장점유율이 두 배가 되거나 반쪽이 나는 기업에 우리는 아무런 이상한 점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국가경제 — 특히 미국과 같이 엄청나게 큰 경제 — 는 폐쇄형 시스템이다. 미국 기업 전부가 향후 10년 안에 시장점유율을 두 배로 끌어올 수 있을까?[2] 아무리 그 기업경영이 향상된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그럴 수는 없다. 한 이유로, 세계 무역이 증가 일로에 있지만, 70% 이상의 미국 고용 부가가치는 판매업처럼 수출 또는 수입 경쟁과 관계가 없는 부문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산업들과 같은 경우, 미국회사 하나가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려면 다른 기업의 점유율을 끌어내려야한다.

세계 무역에 뛰어든 산업들의 경우, 미국 회사들 집단 전체로 보면 그 시장 점유율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이는 수출액을 증가시키거나 수입을 감소시킴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즉 시장 점유율의 증가는 무역 흑자를 가져올 것이고,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국가는 자본유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조금 계산해보면, 만약 평균적인 미국 회사가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5% 정도 끌어올린다면, 현재 순 자본수입국인 미국은 우리가 지금껏 보지 못한 규모의 자본수출국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게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면, 또한 미국 회사들이 아무리 경영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시장에서 총 점유율을 1-2% 이상 올릴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한다.

기업가들이 경제분석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이들이 개방형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는 데 익숙하기때문이다. 앞에서 든 두 가지 예로 돌아간다면, 기업가는 수출로 인해서 직접적으로 만들어진 일자리들을 보고 이야기에서 이 일자리증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더 높은 고용율이 더 높은 이자율을 부를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지 모르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고려사항으로 보일 것이다. 허나 경제학자들이 보기에는 고용이 폐쇄형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수출증가로 얻은 일자리들은, 마치 주차장에 일찍 도착해서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park-and-ride 출퇴근객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아서 얻은 것들이다.

무역수지에 외국 투자가 미치는 효과는 또 어떠한가? 기업가들은 외국투자에 의해 특정 산업부문에 미칠 직접적인 효과에 관심을 기울이지, 환율, 가격 등등에 대한 효과는 믿음직스럽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경제학자들은 허나 국제수지가 폐쇄형 시스템을 이룬다는 것을 안다: 자본유입은 항상 무역적자와 일치해서, 자본유입은 무역적자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영과 경제학에 있어서 되먹임(피드백)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왜 훌륭한 기업경영자가 경제학과 관련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왜 특정한 경제학적 아이디어가 다른 생각에 비해 인기가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다: 기업과 같이 개방형 시스템에 놓인 행위자는 경제와 같이 폐쇄형 시스템과 다른 피드백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이 개념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래와 같은 가상적이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다. 한 회사가 두 주요사업부문이 있다고 해보자: widget과 gizmo. 이 회사가 widget판매에서 예상치 못한 선전을 기록했다고 하자. 회사 전체에 미치는 판매증진 효과는 무엇인가? widget판매 향상이 gizmo사업에 도움이 될까 해가 될까? 많은 경우 답은 어떤 쪽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widget부문은 단순히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것이고, 회사 전체로는 더 많은 자본을 확충할 것이고, 그게 전부일 것이다.

물론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widget판매 증진은 gizmo사업에 몇 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쪽으로, 수익성 있는 widget사업은 gizmo사업 확장에 필요한 현금흐름을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부품사업에서 성공경험이 gizmo사업에도 적용될 수 있고, 또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R&D에 의해 두 부문이 다 혜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빠른 기업확장은 기업 내 자원 활용에 무리를 가져와 어느 정도 gizmo 사업부문의 희생의 대가로 widget사업부문으로 자원배분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허나 이런, 기업 내 한 부문의 성장이 간접적으로 다른 부문에 미치는 영향은 원리상으로도 불분명할뿐만 아니라 실제로 판단하기도 어렵다; 다른 사업들간 피드백은 그것이 시너지든 자원배분을 둘러싼 경쟁이든, 대개 불분명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주요 수출부문이 급속히 성장하는 국가경제를 고려해보자. 만약 이 부문이 고용을 늘린다면, 이는 다른 산업들의 희생을 대가로 하기 십상이다. 만약 이 나라가 자본유입을 줄이지 않는다면, 한 부문에서 일어난 수출증가는 다른 수출의 감소나, 또는 수입증가로 맞아떨어져야하는데,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회계상 수지균형을 이뤄야하기때문이다. 즉, 수출신장때문에 다른 산업부문의 고용과 수출에 매우 강한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이 일어나야한다. 사실, 이러한 음의 되먹임의 강도는 대략 총고용이나 무역수지향상 효과를 거의 지워버릴 수준이다. 왜? 고용과 수지는 폐쇄된 시스템을 이루기때문이다.

개방형 시스템인 산업계에서는, 되먹임은 항상 약하거나 거의 항상 불확실하다. 폐쇄형 시스템인 경제학의 세계에서는, 되먹임은 매우 강하고 매우 확실하다. 하지만 이게 차이의 전부는 아니다. 산업계에서 되먹임은 대개 긍정적이다; 경제 정책의 세계에서 되먹임은 대개, 항상은 아니지만, 부정적이다.

다시 한 번, 기업이 사업을 확장할 때 일어나는 결과와 국가경제의 그것과 비교해보자. 기업의 재무, 기술 또는 영업능력을 증진시키는 한 사업부문의 성공은 다른 사업부문 확장에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즉, 기업의 한 사업부문이 잘 나가면 다른 부문에서도 더 많은 인원을 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재화를 생산하고 파는 국가경제의 경우, 경제 분야 사이에 음의 되먹임이 일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 산업부문의 확장하면, 이는 다른 산업부문으로부터 자본과 노동력과 같은 자원을 뺏어간다.

사실, 경제학에서 양의 되먹임이 일어나는 예들이 있긴하다. 이런 예는 특정한 산업 내에서, 또는 연관된 산업들 — 특히 이 산업들이 지리적으로 집중되어 있다면 — 사이에서 대개 분명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 런던이 금융중심지로 부상한 것이나, 헐리웃이 연예중심지가 된 것은 양의 되먹임이 일어난 분명한 사례들이다. 그러나, 이런 예들은 대개 특정한 지역이나 산업들에 국한되어 있고, 국가 규모 수준의 경제에서는, 음의 되먹임이 일반적으로 더 강하다. 이런 식으로, 만약 특정한 산업 복합체만 놓고 본다면, 양의 되먹임이 일어나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경제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국부적인 양의 되먹임에 의한 효과는 다른 곳의 음의 되먹임들에 의한 효과를 넘어설 수 없다. 한 산업 또는 산업복합체로 끌어들인 추가 자원은 다른 곳, 즉 다른 산업들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가들은 강한 음의 되먹임이 작용하는 체계에 대한 개념에 익숙하지도 않고, 편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특히, 개개의 기업 관점에서는 그 효과가 미미하거나 불확실한 효과들 — 평균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수가 줄어든다든지 환율에 의해 외자가 증가한다든지 — 이 국가 경제 전체에 정책들을 적용할 때 누적되어 매우 중요한 효과들이 된다는 사실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통령은 뭘 해야하는가?

기업의 성공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필연적으로 — 그리고 옳은 일이기도 하다 — 재계 지도자들로부터 많은 문제들, 특별히 돈과 얽힌 문제들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전부는 조언을 구하는 쪽과 조언하는 쪽 모두가, 사업성공 경험이 경제정책을 세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에 대해 적절한 인식을 갖고 있으라는 것이다.

1930년, 전세계가 불황에 빠졌을 때, 은행가들은 금본위제를 지키는 정책조언을 했고 산업가들은 생산량 제한을 통해 가격을 올리는 정책을 지지했다. 이 때 John Maynard Keynes는 이런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보다 경제학적 분석에 따라 대규모 통화팽창을 통한 위기극복을 주장했다. “왜냐하면 —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 경제학은 기술적이고 어려운 학문이기때문입니다.”[2]

케인즈는 옳았다: 경제학은 어렵고 기술적인 학문이다. 좋은 경제학자가 되는 것은 좋은 기업가가 되는 것만큼 어렵다. (사실, 조금 더 쉬울 수는 있다. 경쟁이 기업가들의 만큼 치열하지는 않기때문에) 그러나, 경제학과 경영은 같은 주제가 아니고, 둘 중 하나에 통달했다고 다른 하나의 통달은커녕 이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기업가가 경제 전문가가 되는 것은 그가 군사전략가가 되는 것만큼 어렵다.

다음에 재계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 그들의 시각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 한 번 물어봐라. 이들이 이 주제에 대해 공부했을까? 전문가들이 쓴 얘기들을 읽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기업경영에서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아마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말들이 의미를 그들도 모를테니까.

[1] 여기에는 물론 두 가지 기술적인 예외가 있다. 하나는 “unrequited transfer”라고 불리는 것, 선물, 원조, 등등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 투자로 인한 이윤이나 이자지급이다. 두 가지 모두 말하고자 하는 요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2] 엄밀하게 말해서,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회사만으로 한정해야할 것이다. 미국 소재 기업이 외국 자회사들을 사들여서 세계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3] “1930년의 대공황”, Essays in Persuasion (New York: Norton, 1963)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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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The Unwisdom of Crowds

2009년 번역해봤던 글 다시 싣는다.

0.

뉴욕타임즈에서 크루그먼말고 가끔씩 보는 칼럼이 David Brooks이다. 내 딴에는 글을 잘 쓰고,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기에, (언제나 동의하는 건 아니고, 좀 얄팍하거나 편협할 때도 종종 있지만) 이리저리 궁리할 꺼리를 던져준다. 그래서 보수주의자이고 매케인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림보같은 강성 “보수”주의자에게 까이는 것일테다. 최근 칼럼에서 “시드니 어워드”라고 하면서 잘 쓴 긴 글들을 추천했는데, 처음에는 Sydney Hillman Award를 말하는 건줄 알았다. 2008년 수상자 목록을 보니, 그냥 Brooks관점에서 제가 보기에 잘 쓴 글 추천한 것 같다. 그 중 한 글이 눈에 들어왔는데, 한국의 상황이나 여러가지로 꽤 재밌게 읽었다. 남는 짬짬이 시간동안 조금씩 (급하게) 번역을 해봤다. 그냥 copy & paste하면 재밌는 글을 읽는 사람이 한 1/10이 될 것 같아서다. 그런데 시간이 좀 되고 영문이 되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따라 영문을 읽기를 추천한다. 제목은 어떻게 번역해야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놔뒀다.

1.

http://www.weeklystandard.com/Content/Public/Articles/000/000/015/921taekw.asp?pg=2

버락 오바마나 존 매케인이나 이번 가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금융위기에 대해서 의미있는 말을 하지 않았다. 캠페인 전략을 수정하기보다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처럼, 그들도 안전하게 행동했다. 허나 정의의 이름으로, 우리는 아직 위기가 분명해지기 전에 상당한 정확도로 우리 곤경을 내다봤던 후보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론 파울말이다. 그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의 거의 모든 연설때마다 거품, 무모한 신용팽창, 그리고 현재 정책의 “지속불가능함”에 대해서 말했다. 그런데 왜 그가 주장했던 상식적인 해결책들은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 것일까? 왜냐하면 금융위기 중에는 상식은 별로 쓸모가 없기때문이다.

이 역설은 19세기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월터 배짓의 위대한 발견이었다(1860-1877년까지 이코노미스트지 편집자 역임). 99%의 상황에서 상식은 실용주의의 동의어이다. 그러나 심각한 은행위기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은 – 즉,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 푼이라도 아끼는 일 –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배짓의 <<롬바르드 거리>>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영국은행을 바라본 책이다. 이 책은 또한 고도화된 경제에 문제가 생길 때 정치 및 금융 지도자들이 행동해야하는 원리들을 담고 있다. 이 원리들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해 단순한 개념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매우 우울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반면에 실제적이다. 그것이, 이른바 앵글로색슨 세계에서 배짓의 책이 여전히 금융위기들 – 현재 위기를 포함해서 – 에 대한 대응책을 고민할 때 기초를 제공하는 이유이다.

<<롬바르드 거리>>는 1873년에 출판됐다. 그 바로 몇 해 전에 Overend, Gurney & Co라는 은행이 일천백만 파운드의 손실을 기록하고 급작스럽게 파산하여, 투자자들이 공황상태에 빠졌으며, 예금자 인출사태가 벌어졌었다. 이 사건은 “장사에 있어서 악질적인 수법들을 총망라한 교본”이 되었다. 이 위기는 영국 금융 및 정부에 엄청난 인상을 남겨서 그 이후 141년간 다시는 예금자 인출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다 – 두 번째 인출사태는 2007년 여름 Northern Rock이 무너졌을 때 일어났다. (영국 투자자들은 미국인들에 비해서 더 긴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가 현재 짊어지고 있는 악성 서브프라임 모기지들, 그리고 이를 담보로한 증권은 2001년 엔론이 우리 스스로의 악질적인 수법들의 교본이 된 이후에 발생한 것들이다.) 이 Overend, Gurney 위기와 그 이후의 위기들에서 공황을 방지하는 책임을 진 것은 영국은행이었다. 영국은행은 신용을 제공하고 (injecting) 사람들을 구제함으로써 공황을 방지했다. 배짓은 이를 찬성했다. 많은 일반상인들은 상품들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물품공급자들에게 대금을 지불할 수 없었다. 신용이 없다면 이들은 패가망신하는 것이었고, 이들이 몰락은 대부자들에게 퍼져나갈 터였다. 이건 도덕적 타락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현대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 경제체제는 현대 정치체제-민주주의-와 꽤 불편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기실, <<롬바르드 거리>>에서 여러 차례 배짓은 호황과 불황의 문제를 “영국 상업의 점점 더 민주적 구조를 띄는” 과정 속에서 이해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기관들이 마치 개인처럼 행동할 때 가장 편안해한다. 위기상황에서, 은행들은 – 다른 이들과 똑같이 – 조건반사적으로 돈을 쌓아놓는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반대로 움직여야한다. 즉, 자유롭게 대부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국은행이 보여주는 가장 근본적으로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상식에 반한다는 것이 이 조치의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이 아니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최종 대부자로서의 필요한 의무를 오로지 법을 어김으로써만 할 수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영국은행 운영, 그리고 그 건전성을 담보하는 것은 1844년에 제정된 은행법이었다. 이걸 건전한 금전체제(a regime of sound money)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은 준비금 대비 찍어낼 수 있는 화폐에 엄격한 제한을 포함하고 있었다. 경제상황이 괜찮을 때 이 조건은 잘 지켜졌다. 하지만 배짓이 글을 적고 있던 사반세기 당시, 이미 법은 3번이나 정지됐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배짓이 적기를, “비슷한 상황에서 이 법 적용을 정지하지 않은 적이 없다.” 말하자면, 영국의 지급능력을 보장하는 법은 엄격한데, 다만 누군가가 그 법 적용에 예외를 둬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만 그랬다.

더 웃긴 것은, 영국은행이 단 한 번도 최종대부자로써의 역할을 인정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몇몇 은행 총재들은 심지어 그런 의무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다. 배짓은 영국은행의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영국은행과 대중을 포함해서 모두가 분명히 이해해야할 것은, 영국은행이 바로 우리의 궁극적인 준비금(banking reserve)를 갖고 있으므로, (영국)은행은 내적 공황상태에서는 즉시, 조건없이 대출해줘야한다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장들이 그런 의무를 숨겼던 이유가 있었다. 만약 중앙은행이 일반은행들을 관대한 신용제공으로 구제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해버리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만들어낼 것이기때문이다. 배짓이 존경했던, 영국은행장 톰슨 핸키 (금융관련 저자 제임스 그랜트는 최신저작 “미스터 시장도 오판한다”책에서 그에 대한 글을 헌정한 바 있다)는 배짓이 영국은행이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관점을 “이 나라 통화 또는 은행업계에서 제기되었던 가장 해로운 주의주장이다”라고 했다.

실질적으로는 배짓이 옳았고 핸키가 틀렸다. [영국]은행가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원칙적으로는 핸키가 맞았고 배짓이 틀렸다. 은행이 도산할만한 실제의, 설득력있는 위협이 있기전까지는, 영국은행의 보증의 효과는 거품이 발생할 때 이미 포함되어서 거품이 터질 때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햇킨식 원칙과 이를 배반하는 배짓식 적용 – 요즘 말로 말하자면 “전략적 모호성”인 것이다.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상황도 비슷한 배합을 요구한다. 중앙은행의 노릇은 그래서 종종 치킨게임이라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은행들이 충분히 겁을 먹지 않으면 [너무 많은 리스크를 떠안고 막 가서 거품이 생기면] 끝장을 보기도 한다. 9월달에 미 재무성이 리먼 브라더스를 구제하지 않아 금융계가 경악에 빠졌을 때가 분명 그런 순간이었다. 배짓의 관점에서는 재앙이었지만, 핸킷의 원칙에는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이로써 납세자가 부담하는 보험(중앙은행이 구제해줄 것이라는 약속)에 가입해있다고 믿으면서 합리적인 수준 이상으로 자산에 투자하려는 유인을 줄일 것이다. 공화당의원들이 9월달에 재무성의 TARP를 거의 부결시켰던 것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문제는 중앙은행이 책임있는 모습(accountable)으로 행동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명료한 규칙들과 투명성을 갖고 운영되어야한다고 누구나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가 규제를 바라볼 때 놓치는 것은 대개 가장 효과적인 규제는 규제가 변덕스럽고 불투명할 때라는 것이다. 그 어떠한 규제 체계도 오래 사용하면 취약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만약 경제적 문제에 규제라는 것이 예측 가능하다면, 똑똑한 투자자들은 그 예측가능성에 “승부를 걸” 방도를 찾아낼 것이다. 이 상황은 항우울제를 사용하는 것과 비유해볼 수 있다.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항구적인 훙우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항우울제는 오직 정신 (또는 뇌?)이 그 항우울제의 작용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만 효과적이다. 그런 후에는 또다시 익숙하지 않은 약을 처방해야한다. 같은 식으로, 규제체제가 얼마나 좋은 내용으로 채워져있을지라도, 시장 지배적 경기자가 그로부터 이득을 취하지 못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바꿔줄 필요가 있다.

배짓은 처음부터 은행업의 실질적 현실이 역설에 역설을 거쳐야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중앙은행의 활동이 그 시작부터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그의 평가의 단서는 앤드류 잭슨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글들로부터 얻을 수 있다. “은행업은 단순해야한다” 그는 말했다. “만약 복잡하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만약 그게 복잡한 일이면 은행가는 위임된 일을 잘 못하고 있거나 실상 장사가 없는 것들에 복잡한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배짓에 따르면, “모험은 상거래의 일상이지만, 신중, 난 거의 소심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 은행업의 일상이다.”

한 사회의 현금 보유를 중앙집중화하는 것은 복잡하고, 무모하며, 인위적인 것이다:

자유롭게 내버려둔다면, 그 어떤 종류의 장사에 있어서도 장사를 할만한 적절한 규모의 경쟁자들이 공존하는 공화제가 형성되기 마련이고, 은행업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 어떤 상업활동에 왕조가 구축된다면, 그것은 어떤 부자연스러운 이득, 그리고 어떤 개입의 징조라고 할 수 있다. … 은행업의 가장 자연스러운 체제는 모든 은행들이 자체 현금보유고를 지니고 있고, 충분히 보유금을 쌓아놓지 않으면 망한다는 원칙 위에 있는 것이다.”

배짓이 생각했던 자연스러운 은행규모는 당대보다 그 이전 18세기를 생각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배짓은, 사실상, 완벽히 틀렸다. 자유시장 조건에서 자연스러운 경향은 합병, 더 나아가 독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만약 소기업들이 더 바람직하다면, 이들을 정부를 통해서 보호하는 수 밖에 없다 – 이게 테디 루즈벨트식의 반 트러스트법을 통해서든, 프랑스식의 담배회사 보조금식이든, 유럽연합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했던 식의 소송으로든, 또는 님비식 반 월마트 캠페인으로 지역 소상점 보호운동이든 말이다. 배짓은 가끔 이 점에서 모순된 입장을 보였는데, 이를테면 “큰 은행은 점점 더 커지고, 작은 은행은 점점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런 경향을 부자연스럽다고 평한 것으로 볼 때 이런 경향을 일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봐야할 것이다. 맑스와 동시대인물인 배짓이 기업들이 진화하는 양상에 대해 맑스와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는 흥미로운 일이다.

현대 경제에 예측가능한 불안정성이 있다는 믿음과 관련해서 배짓은 맑스와 동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가 위태로와지거나 투기가 발생하는 데 은행이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 배짓은 1720년대를 뒤흔들었던 남해버블(남해포말사건)과 미시시피 거품사건* 당시에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의 은행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했다. 하지만 현대 은행업은 설계부터 위태롭다. 배짓이 이르기를, “이 체제의 강점은 정확히 그 정교함에서 나온다. 또 그 위험성이라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강점, 정교함, 그리고 위험성은 모두 같은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사실, 이 세 가지는 이 것에 대한 서로 다른 이름들일 뿐이다:

레버리지Leverage.

책의 첫머리에 배짓은 최소한 경제가 호황일 때 신용으로 사업하는 이들이 구닥다리 자본가들을 “괴롭히고 압박하며, 심지어 퇴출시키는지”를 절묘하도록 단순한 예를 통해 보여준다. 여기서 구닥다리 자본가란 돈을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않는 원칙을 지키고 제 현금을 써서 사업하는 멍청이들을 가리킨다:

만약 어떤 상인이 5만 파운드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자. 연 10%의 이익을 얻으려면 매년 5천파운드를 벌어야하고, 그에 알맞게 제 물건들에 값을 매겨야할 것이다; 한편 만약 다른 상인은 1만 파운드 밖에 없지만, 4만 파운드를 융통해서 (이 정도는 이 시대 사업에서 그리 극단적인 예가 아니다) 5만 파운드를 마련하면, 그는 똑같이 5만불의 자본금을 지닌 셈이고, 훨씬 싸게 물건을 팔 수 있게 된다. 만약 그가 내야할 이자율이 5%라고 하면 그는 연간 2천 파운드를 지불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구닥다리 상인과 똑같이 연간 5천 파운드를 번다면, 이자를 다 지불한 다음에도 연간 3천 파운드, 그러니까 자기자본 1만 파운드 대비 30퍼센트에 해당하는 이윤율을 달성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상인들이 30퍼센트보다 훨씬 더 적은 이윤율로도 만족하므로, 그는 만약 원한다면, 그 이득의 일부를 포기하고 재화에 대한 가격을 낮춰서 구닥다리 상인 – 제 자기자본으로 장사하는 인물 – 을 시장으로부터 몰아낼 것이다.

나중에 배짓은 이런 레버리지의 필요성이 진짜 물건을 파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돈을 파는 사람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은행가는 상인이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없는만큼 대출을 해줄수 밖에 없다:

(증권)중개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에게 맡겨진 매 6펜스마다 이문을 물어줘야하고, 이렇게 상시적으로 이자를 물어줘야만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은 중대한 결과를 낳는다: 중개자는 최대한 많은 돈을 굴려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든 돌려줘야할 돈을 갖고 있지만, 그걸 일반적인 은행가가 보유하고 있는만큼 현금을 쌓아놓을 수가 없는데, 결국 이자지급부담이 그에게 돌아올 것이기때문이다.

결국 금융에서, 레버리지를 갖을 수 있으면, 레버리지를 갖아야만 한다. 일단 레버리지를 갖는 순간,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레버리지를 지는 것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 사이에서 통화량을 늘려야할지 줄여야할지 논쟁한다해도, 이들이 언제나 금융계로부터 요구받는 것은 더 큰 레버리지를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심지어 민주정에서조차, 통화정책 도구들만큼은 투표자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떨어져있고, 더 나아가 숨겨져있는 이유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용은 나선형으로 끝없이 팽창할 것이고, 거품은 불가피해진다. 이런 투기적 악순환이 “탐욕”에 의해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이다 – 물론 탐욕이 인간 본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다르겠지만. 신용의 나선형 팽창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그리고 Bernard de Mandeville이 벌들의 우화에서 기술한 세계의 어두운 측면이다. 사회가 이기적 동기에 따라 제각기 움직이는 행위들로 향상될 수 있는만큼, 그 누구의 탐욕과도 상관없는 이유들로 경제가 붕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돈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은 도덕적이어야하지만, 신용 체제는 도덕적 책임을 엉망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배짓은 런던의 금융구역을 “나라에서 조용히 저축하는 이들과 열심히 고용하는 구역들 사이의 중개자”로 묘사했다. 모범적인, 청교도정신의 서포크(Suffolk) 농부들은 안전한 곳에 그들의 돈을 맡기기를 원한다; 랭카셔의 사업가들은 일을 벌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런던 은행가들 덕분에, 둘 모두 바람을 이루고 그 과정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서포크(Suffolk)의 낙동업자가 “도덕적”인 쪽이고 (저축하니까) 랭카셔의 투기자를 “비도덕적” 편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도박을 하는 거니까). 하지만, 은행체제가 개입하는 순간, 둘 모두 도박을 하는 셈이고, 둘 모두 저축을 하는 셈이다. 좋은 시절에는 그저 입으로 상투적인 구도에 따라 근면한 농부들이 금융가들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라고 우물거려도 상관없다. 하지만 불경기가 찾아오면, 비는 정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들 모두에게 내리는 것을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현재 집이 저당잡히거나 신용카드한도가 다한 많은 미국인들은 탐욕스럽고, 분수에 넘치고, 브랜드에 중독되어 있고, 물질주의적인 쇼핑중독자들이며, 내가 뭘하든 세상이 자신들을 먹여살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다. 하지만 또 많은 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금융기관들만큼이나 무분별한 차입에 기반한 체제의 덫에 걸린 이들이다. 이 체제에 참여가 강제된 것은 분명 아니지만, 또 그저 선택사항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한 사람의 삶의 질은 그 사람의 구매력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경제적 지위에 의해서도 결정되기때문이다. 내 이웃들이 더 빨리 부유하게 되는 것에 원통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저 나쁜 성격 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지만, 시샘할게 아무것도 없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사람들이 가장 본질적으로 여기는 재화를 따질 때 – 적절한 짝; 어린아이들의 교육; 집의 평수, 위치, 얼마나 멋들어진지, 그리고 얼마나 편한지 – 절대적인 부보다 중요한 것이 상대적인 위치가 아닌가.

1990년대에 돈을 저축은행에 넣어둔 사람들은 우리가 동의하면 안될 행동들, 이를테면 “남돈을 제 돈 쓰듯” 돈을 빌려서 주식에 투자를 한 사람들에게 졌다. 심지어 그렇게 해서 채권투자를 한 사람들도 10년간 연간 평균 15%의 이자를 얻을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 부자가 된 사람들을 보면, 그 이유가 노동시장에서 뭘 했느냐보다 주식시장에서 뭘 했느냐에 연관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게 정의로운건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젠 분명히 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지난 호황기때는 주식과 주택투기를 통해 사회적인 위치가 바뀌는 일들이 왜 맞는가에 대해 온갖 합리화가 난무했다. 그 중 하나는 주식에 돈을 투자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주택을 구입하기보다 월세로 사는 사람들이 바보 멍청이라는 말이었다. 이런 종류의 논설은 퇴직 저축을 해외 주식시장에 투자하지 않은 대중들이 바보라고 했던 대통령이 당선된 2000년에 절정에 달했다.

배짓은 투기 광풍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이들을 휩쓸고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다. 배짓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대위기들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많은 가구들이 투기에 뛰어든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이들은 투기가 처음 시작될 때는 그 투기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그 참여가 제한적이었다가, 매일매일 오르는 가격과 주변의 열기에 휩쓸려서 결국 참여한 이들이다.” 탐욕스러운 이들은 대가를 치루기 마련이지만, 거품이 터질 때 가장 큰 대가를 치루는 것은 그들이 아니다. 거의 모든 역사적인 투기열풍과 붕괴에서 발견하는 비극적인 인물들은, 해가 갈수록, 그 광풍이 허상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게 자기확신이 가셨던 것인지 아니면 주변의 권유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투기에 뛰어들어서 (시장의 상투를 잡아) 쓸려버리는 이들이다. 얼마나 짖궂은 역설인가! 그의 순간적인 흔들림에 더해서 그 길고 지혜로왔던 인내마저 형벌일테니.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게 흐른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와 사회학자 다니엘 벨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 고전적인 관점에서는, 자본주의는 근면한 이들을 보상하고, 근면함은 부를 만들어내며, 부는 게으름을 초래하고, 게으름은 자본주의에 위기를 초래하는 모순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정말 지극히 심각한 상황에서는, 자본주의가 정말로 근면과 검약의 덕목과 관련이 있는지 되물어볼 수 있다. 진정 자본주의적 덕목은 낙관주의와 운처럼 보인다. 중앙은행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이런 문화적 모순들은 자본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그 근본요소처럼 보인다.

중앙은행이 직면한 문제는 경영자들을 보상해서 빗나간 시스템에 반응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에 대한 반대가, 우파 (론 파울, 짐 버닝)에서 나오든 좌파에서 나오든 (버니 프랭크, 윌리엄 그라이더), 모두 대중주의적인 이유이다. 배짓은 대중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익숙했다:

특별한 정보를 제시하는 거의 모든 [영국은행]총재들은 사적 이익을 챙긴다는 의심때문에 고생한다. 그들은 그런 정보를 현업에 종사할 때 얻었을 것이고, 그런 사업들은 중앙은행의 정책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연유로 중앙은행이 생생한 정보로부터 유리되면 결코 안 된다.

배짓이 핸크 폴슨 재무성장관에 대해 여러가지 잘못을 지적하겠지만, 현재 가장 많이 지적되고 있는 비판 – 폴슨이 예전 월스트리트 동업자들 – 그는 골드만 삭스에서 CEO로 여러 해 일했다 – 과 너무 가깝다는 비판은 배짓에게는 잘못된 비판으로 여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월스트리트야말로, 바로 그 “신용의 수준”이 결정되는 곳이기때문이다:

특정한 시점에서의 신용수준은 다른 사실들과 마찬가지로 결정되어야하는데, 즉, 시도해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말이다. 같은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준비금”이 적정한 수준의 신뢰를 보장할 것인지는 경험을 통해서밖에 알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신용이 성공적으로 다시 회복되는 때는 바로 금융 엘리트들이 “이 때”라고 얘기할 때다. 신용은 지배계급의 기분과 거의 동의어에 가깝다. 경제가 신용에 기초해있다는 것은 동물적 신비들에 기반해있다고 말하는 바와 다를 바가 없다. 매력, 긍지, 감, 뽐내기… 그게 경제의 기초란 말이다. 거의 무서운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배짓의 관점에서 볼 때, 위기의 순간에 중앙은행의 관점에서 볼 때, 고도화된 경제는 원시경제와 상당히 유사하게 보인다.

*대영제국과 프랑스에서 각기 발생했던 대형 주식투기사건
**도덕적 해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라는 뜻은 아니다. 글의 나중에 분명해진다
*** 그러니까 남들이 부당하게 투기로 더 잘 사는 것, 시샘해서 따라하는 것이 그 개인의 잘못(나쁜 인격)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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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영화가 놓친 소설 레미제라블의 다른 절반

http://www.foreignaffairs.com/articles/138737/charles-walton/the-missing-half-of-les-mis?page=show

 

The Missing Half of Les Mis
The Film’s Pessimistic View of Revolution — And Ours

영화가 놓친 소설 레미제라블의 다른 절반
영화의 시선은 혁명에 대해 비관적이다 — 우리의 시선도

찰스 왈튼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기 전에, 블록버스터 책들이 있었다. 1862년 출판된 빅터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그런 책이었다. 마케팅에 능란했던 출판사 덕분에 프랑스 낭만주의의 금자탑이라할만한 이 10권의 시리즈는 유럽과 북미에서 바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인기가 얼마나 컸으면, 구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같은 작가들은 그들의 저작들이 빛바래지 않기 위해 출판을 연기했을 정도다. 일부 고매한 비평가들은, 마치 요즘 돌풍을 일으키는 헐리웃 영화에 대해 그러하듯, 이런 열기를 불쾌해했다. Edwin Percy Whipple이 The Atlantic誌의 서평에서 이 책의 출간과 함께한 “요란한 광고공세”를 Ebenezer Scrooge(역주: Charles Dickens의 Christmas Carol의 주인공)에 비견하면서 한 말들이 한 예다: “출판 광고 중 가장 지저분하고”, “Barnum (역주: 19세기의 유명한 서커스업자, 요란한 광고로 유명)이 울고갈만하다”.

이런 열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국 프랑스 안에서 이 소설에 대한 반응은 양극을 오갔다. 어떤 이들은 역사상 최고의 소설이라고 추켜세웠고, 다른 이들은 말도 안 되고 감상적이라고 깎아내렸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불온하다고까지 했는데, 이들이 걱정하기에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치적 행위였고 소설에서 위고가 묘사한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법은 무장봉기 매뉴얼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위고는 그의 혁명에 대한 동조를 부인한 적이 없었다. 그는 전에 혁명에 참여했던 독자가, “이 책은 혁명을 10년 앞당길 것이다”라는 평을 자랑스러워했다.

빅터 위고는 칼 맑스는 아니었으나 혁명을 통한 진보를 믿었다 — 이 부분은 Tom Hooper의 새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본 관객은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위고의 고전을 바탕으로 만든 매우 인기있는 뮤지컬(파리에서 1980년 초연)을 옮긴 것인데, Hooper의 연출은 놀랄만큼 멋지고 훌륭하나, 원저자 위고의 한 면만 보여주고 있다: 혁명가로서의 위고를 뺀, 종교인으로서의 위고만 말이다. 영화는 카톨릭적 양심의 여정을 통해 개인구원의 서사만 보여주고, 정치적 폭력을 통한 프랑스의 집단적 구원은 무시하고 있다.

종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중심을 관통한다. 영화 초입 카톨릭 사제가 전 죄수 장발장이 은기구를 훔친 혐의로 수감될 위기에서 구해주는 장면서부터 시작해서(사제는 경찰에게 장발장이 그 은기구를 훔친게 아니라 자신이 선물해줬다고 거짓말한다) 장발장이 평생에 걸쳐 속죄의식으로 구제와 자기희생을 실천하는 장면을 지나(그는 자기가 고용했던 Fantine을 매춘으로부터 구해내고 그녀가 죽을 때 그녀의 딸 Cosette를 키우겠다고 한다), 마지막에 장발장이 그의 미래의 사위 Marius를 바리케이드로부터 구출한 후 그의 과거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에 이르러선, 우리는 장발장 뒤로 명명백백하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을 보게 된다. 장발장이 죽을 때 — 물론 수도원에서다 — Fantine의 영이 마치 천사처럼 그를 데리러 내려와 합창단이 강조하듯 “바리케이드 넘어 어딘가”, “주님의 정원으로” 데려간다.

물론, 종교는 위고의 원저작의 중심주제다 — 허나, 혁명 또한 그러했다. 사실, 레미제라블을 쓴 위고의 목적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진 이래로 대립하던 이 둘을 화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에 대한 신념을 가졌으며 브르조아(중산층 유산계급)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이 원칙을 위해 일어나 싸울 것을 독려했다. 브루조아의 몰락을 믿고 투쟁했던 맑스와 달리, 위고는 당시 나폴레옹 3세 (1851-1870)의 권위주의적 정권하에서 자유와 정의를 대가로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상황에 만족하는 중산층이 부끄러운 타협으로부터 깨어나길 호소했다. 소설 속의 화자는 “(민주적) 원칙이 결여된 평화는 전쟁보다 더 어렵고 부담스럽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전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Hooper의 영화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혁명적 이상주의를 바라본다: 오도되고, 부질없는 것으로. 관객들은 이를테면, Marius의 혁명동지들이 무의미하게 죽었다고 믿게되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죽음을 통해 어떤 명확한 진보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 전날 “최후의 만찬”을 치뤘던 곳의 빈 의자와 식탁을 돌아다니면서, Marius는 “여기서 이들은 혁명에 대해 토의했네 / 여기서 그들은 불을 붙였다네 / 여기서 그들은 내일을 노래했고 / 그 내일은 오지 않았다네.”라고 노래한다.

혁명을 통해 내일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관객들은 생각할 것이다. 오로지 종교를 통해 올 뿐이라고. 이 시각은 위고의 혁명에 대한 낙관론과,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그가 묘사하는 혁명과 같이 실패한 혁명들에 대한 그의 깊은 연민을 가려버린다. 실패한 1832년 봉기의 절정, 바리케이드 장면에서, 위고는 독자들이 혁명가들의 대의에 공감하기를 바랬고, 그래서 그 뜻을 이어 투쟁을 계속하도록 고취하고자 했다. 소설의 화자는 말한다 : “그들이 성공하든 안하든, 미래를 위해 영광스럽게 투쟁하는 이들을 존경해마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혁명은 신의 역사(役事)”며, 그리고 혁명에 의한 순교는 “진보를 향한 순수한 선물”이라고 위고는 소설 속에서 쓴다.

이렇듯 위고는 종교와 혁명을 신성한 국가적 희극으로 승화시키려 했는데, 이 시도는 그가 동시대인들과 공유했던, 정치적 양심에 따라 필생동안 고민한 고뇌의 산물이었다. 18세기말과 19세기에 걸쳐서, 프랑스는 반복적으로 혁명, 쿠데타, 그리고 군사적 패배에 시달렸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입헌군주주의, 공화주의, 권위주의적 자유주의, 반동적 보수주의, 사회주의와 다양한 파생이념이나 그 모든 치환, 조합들이 백가쟁명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섞어찌개가 되어버렸다(책에서 Marius는 그의 공화주의자 친구들과 구별하며 “나폴레옹 민주주의자”라는 꽤 이상한 조합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정치적 스펙트럼 하에 놓인 이 모든 이념들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위고의 능력은 그의 특이한 혈통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웠을 부모 사이의 결합의 결과였다: 그의 아버지는 제1공화국(1792-1804)의 장교이자 나폴레옹 치하 장군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방드(Vendée) 지방의 골수 카톨릭 반동 집안 출신이었다. 이 지방은 공포정치 (1793-94) 시기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폐허로 변한 곳이었다. 위고는 레미제라블을 통해 이러한 상처들을 치유하고, 카톨릭과 공화주의의 프랑스를 통합하고자 했다.

왜 영화 및 뮤지컬은 혁명을 위고처럼 숭엄한, 어쩌면 비극적인 변화의 도구로 보기보다 의미없는 이상주의로 묘사했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 스스로의 혁명에 대한 비관적인 관점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수십년간, 냉소주의가 이상주의를 대체했고, 혁명은 독재정에 이르는 지름길로 보이기 시작했다. 유토피아주의는 기요틴, 굴라그(역주: 구소련의 노동수용소. 대강 시베리아형무소, 아오지탄광, 요덕을 떠올리면 됨), 대량학살을 불렀지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오늘날에 이르러, 우리는 혁명을 위고의 낙관적 렌즈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인이었던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비관적 렌즈로 바라보게 되었다.

위고와 토크빌은 놀라우리만치 비슷한 생애를 살았다. 둘 모두 19세기 첫 10년에 태어났고(각각 1802년과 1805년), 공포정 시기 박해받았던 가문에서 나왔다. 1820년대의 젊은 시절, 이 둘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루이 16세의 동생, 찰스 10세의 후원을 받았다. 위고는 1825년 찰스의 대관식을 기리는 시를 짓기까지 했다. 1830년 7월 혁명의 결과 루이-필립의 입헌 군주제가 수립됐을 때, 둘은 모두 좌측으로 이동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유럽의 미래로 미국의 정치제도를 꼽았고, 위고는 사형제 폐지에 대한 글을 쓰고 당대 사회정치적 불평등을 고발하는 소설을 계획했다. (이는 수십년 후의 레미제라블로 실현된다) 둘은 모두 1841년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둘 모두 2월 혁명으로 루이 필립의 정부가 무너지기 전, 이 정부를 위해 중요한 보고를 올리는 역할을 했다 — 토크빌의 알제리 보고서와 위고의 폴란드 보고서가 그것이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무늬만) 입헌 군주정이었던 루이필립이 물러나고 제2공화국이 수립됐을 때, 둘 모두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둘 모두 그 해 6월 노동자 봉기에 반대했다. 위고는 바리케이드 뒤에서 농성하는 봉기자들과 대화하려고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Place des Vosges거리의 그의 집 앞문에 14발의 총알자국을 남겼다. 둘 모두 1851년 루이-나폴레옹의 쿠데타에 반대한 대가를 치뤘다. 루이-나폴레옹은 국회를 해산하고 스스로 황제 (나폴레옹3세)에 등극하는 길을 열었다. 토크빌은 잠시 투옥됐고, 위고는 19년간 망명을 해야했다.

바로 이 1851년 쿠데타를 끝으로 이 둘의 혁명에 대한 관점이 갈리기 시작했다. 토크빌은 절망하고, 만성병에 시달리며 구체제와 프랑스 혁명The Old Regime and the French Revolution을 집필했다. 이 책은 비판적 시점에서 프랑스의 혁명적 전통을 고찰하여 왜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내건 혁명들이 공포와 압제로 끝나는지 설명하려고 했다. 그의 생각에 이유는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계몽됐으나 경험이 없는 이들이 벌이는 “추상문학 정치abstract literary politics”에 있었다. 짧게 설명하자면, “철학자들이 주권자가 되면 피바다가 된다”. 역사가들이 그의 주장 중 일부는 반박했지만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이끌었던 혁명가들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구체제에서 많은 경험을 갖고 있었다), 토크빌의 혁명에 대한 비관주의는 현재 우리의 여러 정치적 상상에 짙게 배어있다. Hooper의 영화에 그 그림자가 드리워있는 것은 물론이다.

토크빌이 혁명에 대해 점점 더 회의적으로 변해갈 무렵, 위고는 더욱 더 확고하게 혁명을 받들었다. 둘 모두 1851년 제2공화국을 압제한 루이-나폴레옹에 반대했지만, 위고는 쿠데타에 반대하는데 더 유력한 역할을 맡았다. 위고는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바리케이드를 칠 것을 촉구했다. 레미제라블에서 묘사한 1832년 실패한 봉기의 비극적 장면과 비슷하게, 1851년 12월의 봉기는 아주 잔인하게 진압됐다. 위고의 무장봉기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찍어서 파리 거리 곳곳에 뿌렸던 위고의 친구이자 동료는 Faubourg Saint-Antoine거리의 바리케이드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그 날 학살의 현장을 훑어가면서, 위고는 머리에 총알이 두 발 박힌 일곱살 어린이의 시체에 다다랐다. 그 이미지는 수년간 위고를 사로잡았고 그의 몇몇 저작에 영감을 줬다.

레미제라블은 위고와 그의 독자들에 있어서 일종의 치료였다. 책은 혁명의 비합리적이고 잔인한 측면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국가적 구원을 위한 도구로 경배하는 방식으로 혁명을 신성화했다. “인류를 비등점에 이르게 한 문제들을 지나, 우리는 우리가 그 길을 따라 전진했음을 목격한다… 역사의 진보는 혁명들을 통해 올 것이다,” 그렇게 위고는 썼다.

영화가 위고의 혁명에 대한 낙관을 포착하는데 실패했지만, 최소한 이 소설의 또다른 중심주제를 다루는데에 있어서는 면피를 했다: 비참한 사회현실고발이 그것이다. 이 점에서 레미제라블 영화는 지난 수십년간 프랑스 대혁명의 순간을 영화적으로 해석했던 다른 영화들로부터 구별된다. 예를 들어 Andrzej Wajda의 당통Danton (1983)과 Eric Rhomer의 영국 여인과 공작The Lady and the Duke (2001)는 토크빌적 관점을 차용하여, 현실 속의 빈자들의 비참한 현실보다 엘리트들의 비극적 이상주의에 집중한다. 이전 영화들에서 그나마 일반인을 묘사한 장면들에서 사람들은 격분한 채로 창 끝에 머리를 달고 다니거나, 빵을 구하고자 긴 줄을 서고 있는 정도뿐이었다. 그나마 빵줄이 긴 것은 혁명가들이 사회주의자들이었기때문이라는 암묵적 가정과 함께 말이다.

Hooper의 레미제라블은 한편, 하층계급을 인간적으로 바라본다. 일자리를 잃고 비참한 매춘녀로 전락한 Fantine의 고통은 Ann Hathaway의 슬픈 목소리를 통해 강하게 전달된다 (티슈를 준비하세요). 하지만, Hooper의 빈곤에 대한 묘사는 매우 양식화되어 있다. 부자나 빈자나 가릴 것없이 벗겨먹으려하는 비열한 여관 주인집 Thénardier부부는 영화에선 1980년대 팝스타 Adam Ant나 Cyndi Lauper의 할로윈 버전같은 섬뜩한 모습으로 묘사됐다. 선정적으로 그려진 불결함과 부도덕 행위들은 때론 충격적이기보다 재미있을 지경이다. 하지만, 영화속 이미지들과 노래는 19세기 프랑스의 비참한 현실 – 수없이 많은 여인들이 매춘으로 생존하고 버려진 아이들 (기억에 남는 Gavroche같이)이 봉기에 기여하고, 떠돌이 예술가들과 거리 연예인들이 갖은수를 써서 영문을 모르는 구경꾼들을 벗겨먹는 – 을 보여준다.

아랍의 봄이 한창인 이 때에, Hooper의 영화 레미제라블이, 혁명에 대한 달라진 시각에 기여할 수 있을지 묻게 된다. 튀니지의 억압적 경제, 정치 질서에 대한 좌절이 Mohamed Bouazizi를 분신하게 만들었고, 이 사건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혁명을 점화했다. 최근 인터뷰들에서, Hooper는 그의 영화가 이러한 흐름 속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의역).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본이 됐던 뮤지컬로부터 벗어나 위고의 혁명에 대한 믿음, 혁명이 비참함을 개선할 능력이 있다는 희망, 혁명적 변화를 통해 민주주의와 종교 사이를 화해시키려는 노력을 복원시켜야만 했다. 위고의 소설이 21세기에 가지는 의미를, Hooper의 영화는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기회들을 놓쳤다는 사실 — 구원의 매개로 혁명 대신 기독교가 제시됐다는 점 — 은 그리 놀랍지 않다. 결국에는, 이 영화가 미국에 개봉된 일자는 12월 25일이지 7월 14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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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걍 거칠게 번역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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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남아프리카 인종차별정책과 선거제도

http://patrickhenrypress.info/node/205926
원래 fivethirtyeight blog에 올라왔던 글(2010년 5월 22일, 영국 총선 직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인데, NY Times에 통합되면서 과거 자료들을 링크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전체 본문을 실은 링크를 임의로 올렸다.

제목 : 꼬인 선거제도가 뒷받침한 남아프리카 인종차별정책(apartheid)
저자 : Dan Berman

지난 몇 주간 걸쳐서 이뤄진 상대다수대표제(plurality system; 그냥 선거구에서 1등한 사람 당선되는 것. 나머지 표는 사표가 된다) 선거제의 단점에 대한 논의는 이해할만한 것이다. 특별히 이 방식의 선거제도가 편향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주였다. 영국과 관련해서는, 이 제도가 노동당은 과대대표하고 제3당인 자유민주당을 과소대표하는 문제가 중점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런 논의의 중심에는 이 제도가 최대다수표를 얻은 당이 의회에서 1당이 되지 않을 가능성에 있었고, 몇몇 정치인들은 더 나아가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경우 잠재적으로 “사회적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표를 얻은 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닌데, 2000년 미국 대선이나 1974년 영국 총선을 예로 들 수 있다. 심지어 대안투표(AV; alternative vote), 즉 선호 투표제하의 오스트렐리아조차 1998년 그런 일이 일어났다. 허나 이러한 선거의 경우 제1당과 제2당이 얻은 표차이가 작았으며, 그 다음 선거에서 결국 (다수표를 얻었으나) 패배한 당이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다. 이런 불일치가 공정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편하긴했지만, 시스템에 대한 도전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다수대표제의 문제가 더 심각한 결과에 이른 예들이 있다. 이런 예들을 보면, 선거제도의 편향이 너무 심각해서, 결과적으로 그 유권자들의 (제한적인) 정당성마저 침식하고 반대자들이 아예 정치장(場)에 자발적으로 불참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별히 눈에 띄는 예가 아파르테이트(Apartheid 인종차별정책)하의 남아프리카다. 이 경우, 선거제의 문제때문에, 다수 백인 유권자들이 재차에 걸쳐 선거를 통해 분명히 반대한 인종차별정책을 선거를 통해 승리한 당이 도입할 수 있었다.

인종차별적 관행에 의해 선거권이 백인들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졌음(1936년부터 1958년사이에는 제한적으로 혼혈인들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졌다)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국의 지지자들은 남아프리카가 고도로 민주적이며 유권자들을 대표하는 체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하며, 자국을 “아프리카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가”로 일컬었다. 그리고 문서상으로만 보자면, 그 헌법은 오스트렐리아나 캐나다와 놀랍게도 비슷했다.허나, 아파르테이트를 도입하게 된 선거결과, 그 과정을 보면 이 체제가 심지어 이 제한된 유권자들의 의견을 대표하는데도 매우 무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실은 1994년[1] 이전 남아프리카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였던 1948년 선거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선거에서 아파르테이트를 입안하겠다 공약했던 국민당이 여당인 연합당을 이겼다.

1948년에 이르기까지, 남아프리카 정치는 40년간에 걸쳐 영국-보어전쟁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 때까지 총리였던 Louis Botha, Jan Smuts, JBM Hertzog는 모두 (패배한) 보어전쟁의 장군들이었다. Botha와 Smuts는 중도적 아프리카너(afrikaner, 네덜란드계 백인)와 영국계 유권자들의 연합을 대표하는 남아프리카당을 만들었고, 그 대척점에는 Hertzog이 이끄는 더 가난한 아프리카너와 영국계 남아프리카인들에게 호소하는 국민당이 있었다.

대공황기에, 두 당은 제휴관계를 유지했다. 이 관계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내각에서 1표 차이로 연합국에 가담하는 결정이 내려진 직후 깨졌다[2]. 국민당의 급진파는 당시 여당인 “연합 당(United Party)”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이 극단적인 분파(1948년 선거 당시 이 당은 단 한 명의 영국계 후보도 내지 않았다)가, 막 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여당을 이길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허나 연합당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집권했던 다른 서구의 여당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경기침체, 그리고 국가의 미래 청사진을 결여한다는 인식 등의 약점들을 공유했다.

이에 비해, 국민당은 정부에서 영국계 우위의 구조를 끝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도시로 밀려드는 흑인들과 경쟁해야하는 아프리카너 빈민 노동자들에게 효과적인 호소를 했다. 선거결과, 연합당은 전체 득표수로는 547,437표(50.9%)를 득표함으로써 443,278표(41.2%)의 국민당을 월등히 앞섰다. 하지만 의석수로는 국민당과 그와 연합한 당들은 79석을 얻었음에 비해, 연합당과 그 제휴 정당들은 71석을 얻는데 그쳤다.

1948
정당
득표수 % 의석수 %
연합당(United Party)계 547,437 50.90% 71 47.30%
국민당(National Party)계 443,278 41.20% 79 52.70%

* 원문과 Wikipedia항목에 나온 수치가 약간 어긋난다. Wikipedia의 숫자를 참고하시라. 해당항목에 투표율로 보이는 수치도 나와있다. 80.2%.

국민당은 남아프리카 선거제도의 몇몇 유별난 점들을 이용했다. 첫번째는 선거구별 인구수가 지리적이거나 지역적 경계문제때문에 +/- 15%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였다. 선거구별 대략 7200명의 유권자들이 투표를 했는데, 국민당은 7200명 이상이 투표하는 선거구에서는 단 2석만 가져갔다. 반면 연합당은 절반 이상의 의석을 투표수가 8000표가 넘는 선거구에서 가져갔다.

둘째로, 국민당이 그 시스템에서 다수인 인종을 대표하는 당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호소한 아프리카너들은 전체 인구(유권자)의 57%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150석의 선거구 중 98개 선거구에서 다수 인종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우위는 1948년 국민당 승리 후 남아프리카 정부가 UN의 독립 요구를 무시하고 병합한 나미비아에 6개 의석을 더하는 선거구제 개편으로 더 심각해졌다.

이 때문에, 다음 두 선거는 더욱 편향된 결과를 낳았다. 1953년, 야당들은 연합전선(United Front)의 깃발 아래 모여 승리의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연합전선은 기업 및 경제 엘리트층이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당 대비 선거비를 거의 4배에 가까이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결과는 1948년의 재판이었다. 아니, 1948년보다 더 큰 규모의 불일치를 보였다. Cape Town에서 연합 전선은 73%를 득표했고, Cape Elizabeth서는 65%를 득표했다. 하지만 나머지 Cape Province에서 국민당은 57%를 득표하며 33석 중 무려 29석을 가져갔다. 이런 패턴은 전국적으로 반복됐다. 1958년에 이르자, 야당들은 유권자의 절대 다수가 자신들을 지지한다는 결과를 보면서도 정권을 탈환할 실질적인 희망을 사실상 버렸다.

1953
정당
득표(%) 의석(%)
국민당(National Party) 45.90% 60.20%
연합당(United Party)계 53.60% 39.80%
1958
정당
득표(%) 의석(%)
국민당(National Party) 49.00% 62.40%
연합당(United Party)계 50.70% 37.60%

* 여기서 연합당계는, 연합당과 노동당의 의석수를 합친 것이다(중도적 연합당과 노동당은 1948년부터 줄곧 야당연합을 이뤄왔다). 역시 수치가 약간 차이가 난다. Wikipedia (1953)(1958)에 기록된 수치를 참고하시라. 투표율은 1953년 총선 87.9%, 1958년 총선 74.3% (이미 떨어지고 있다). Wikipedia의 수치에 따르면 1958년 총선은 국민당이 득표수에서도 승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전체 논지에 큰 영향은 없다.

1958년이 지나자, 투표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영국인들과 중도적 아프리카너들이 난공불락의 국민당에 점점 투항하기 시작하고, 좌파(liberal)들은 희망이 없는 전쟁을 하느니 이민을 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선거상 국민당의 압도적 우위는 경제제재만큼이나 아파르테이트를 약화시켰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위협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인종분포였는데, 젊은 백인들에게 정권교체의 선택항이 사라진 상황이, 많은 남아프리카의 가장 훌륭하고 똑똑한 이들을 이민의 물결로 밀어넣었다. 1970년에 이르자 영어를 쓰는 이들만 나라를 떠나는 게 아니라, 국민당이 강제하는 아프리칸스(Afrikaans; 네덜란드계 남아프리카 백인 방언)만 가르치는 교육체제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젊은 아프리카너들까지 이민대열에 동참했다.

1970년말에 이르자, 백인은 연간 2만명 가량 줄어들고 있었고, 1980년대에 이르자 그 감소폭은 배가 넘어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선거제도가 국민당정부를 투표로 끌어내리는 것이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체제의 반대자들은 제발로 걸어나감으로써 아파르테이트에 대한 반대를 그 발로 투표한 셈이 되었다.

[1] 아파르테이트 철폐의 해
[2] 자치를 누리고 있었던 아프리카너들은 영국과의 전쟁인 보어전쟁에서 패한 뒤 반영감정이 컸다. 그래서 (그리고 인종주의적인 경향이 강했기에) 영국과 전쟁을 벌어지는 히틀러 치하의 제3제국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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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헝가리 주미대사의 반박과 재반박

지난 번 헝가리 포스트에 이어서 (이 글을 처음 보는 분들은 꼭 이 전 포스트를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쫌 길지만, 주미 헝가리대사의 반박문과 재반박문도 번역해봤다. 원래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는 법이니

헝가리 주미대사의 반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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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eppele씨 귀하:

귀하께서 뉴욕 타임스의 크루그먼 블로그에 공개하신 헝가리 정치상황에 대한 분석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헝가리 주미대사로서, 저는 만약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거나 오해의 여지가 있다면 이를 지적할 의무가 있습니다. 귀하의 기사에는 그러한 오류와 오해의 여지가 있기때문에, 다음과 같이 그 점들을 지적함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정당성(legitimacy)의 문제에 관해서입니다. 귀하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끌고 있는 현재 정부가 의회 내에서 절대다수의석을 차지하게 된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데, 헝가리의 현재 혼합 선거법이야말로, 왜 현재 제1야당인 사회당이 현 의석에서 상대적으로 큰 비율을 차지할 수 있는 근거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만약 헝가리 선거가, “혼합”선거제가 아닌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오로지 “승자독식제”에 의해서 치뤄졌다면, 현 사회당은 176개의 선거구 중 오로지 두 명의 의원을 배출했을 것입니다.

귀하가 비판하고 있는 새 선거법은, 바로 이 “혼합”선거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선거구 재조정은 헝가리와 같이 작은 국가로써 훨씬 더 적절한 의석수인 199석의 의석수로 현 386석의 의회를 조정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또한 과거 선거법에서 존재했던 비헌법적인 불균등 선거구를 재조정했습니다. 귀하께서 “새 선거구획은 피데스당을 제외한 그 어떠한 당도 사실상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게 획정되어 있다”라는 말은, 제가 보기에는 매우 성급하고 감정적인 반응으로 보입니다. 귀하께서 근거로 삼으신 씽크탱크의 숫자들은, 다른 씽크탱크의 계산과 다릅니다. 게다가 이 모든 씽크탱크들의 계산들의 약점은 유권자들이 과거와 똑같이 투표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점입니다. 이런 가정은 그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매우 위험한 가정이지만 특별히 지난 6번의 선거에서 5번이나 정부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더 그렇습니다. 정당들은 선거제때문에 이기거나 지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에 대해 다가가기를 실패했을 때 그렇습니다.

둘째로, 헝가리 유권자들이 2010년 선거당시 피데스당이 헌법에 상당한 정도의 개정을 할 줄 몰랐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헝가리의 주요 제 정당들 사이에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기존 헝가리 헌법 자체가 이 헌법이 임시 헌법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헌법학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누구든 그 필요한 의석수를 달성할 경우 헌법을 개정할 것이며 개정해야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귀하는 지난 정부 중 2/3의석을 점유했던 마지막 정부 – 90년대 중반 사회당/자유당 연합 – 이 실제로 헌법을 개정하고자 원했으며, 허나 두 정당이 어떻게 개정해야할지 합의할지 결정하지 못해 무산된 것을 아실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난 선거때 사회당은 이 점을 선거의 주요쟁점으로 삼아, 피데스당이 절대다수의석을 차지한다면 새 헌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한 바 있습니다. 사회당의 이러한 주장은 주요 매체들에서 비중있게 다뤄졌으며 피데스당은 이 점에 대해 결코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오르반 당수는 선거 당시: “적은 수의 다수석으로는 적은 변화밖에 못 이룹니다; 큰 승리는 큰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셋째로, 저는 귀하께 사법부와 사법부를 규정하는 법들에 대해 좀더 신중히 살펴볼 것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귀하는 법원이 정부에 점점 더 종속되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지만, 귀하의 주장은 “만약”이라는 가정법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모든 법은 잠재적으로 남용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허나 개혁의 결과가 그러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판사들의 전문가로서의 독립성과 그 양심을 의심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새로 임명되는 판사들에 대한 모욕일뿐만 아니라, 헝가리 전역에서 일하고 있는 수천명의 판사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바로 어제, 귀하께서 “기능적으로 죽었다”고 표현하신 – (역주: 그 인원이) 확장된 헌법 재판소는 미디어법의 새 형벌규정들 몇몇과 교회와 관련된 전체 법을 위헌판결 내린 바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판사들이 정치인들의 꼭두각시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결정들입니다.

비슷하게, 왜 귀하께서는 새 예산 위원회가 비-피데스 정부를 해산시키려고 가정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산 위원회는 그 부여된 임무, 즉 지난 잃어버린 8년간 사회당 정부가 했던 것과 같은 완전히 방만한 재정정책을 방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넷째로, 저는 특정 최고 기관장의 임기가 선거 주기보다 긴 것이 비민주적이라는 귀하의 암암리의 가정에 매우 놀랐습니다. 귀하도 아시다시피, 민주정에서 특정 최고 기관장의 임명시기를 선거주기와 불일치시킴으로써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또한 많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더불어, 귀하께서는 몇몇 사실관계의 오류를 저지르셨습니다. 감사원장의 임기는 기존 법이나 신법에서 모두 12년입니다 – 즉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예산위원회 위원장의 경우, 임기가 짧아졌습니다; 과거 법에서, 예산위회 위원장은 9년의 임기를 가졌지만, 신법하에서는 6년의 임기를 갖습니다.

저는 정당하고 사실에 기초한 비판은 받아들이지만, 경제학자로서 제 믿음은 사실이 항상 먼저 전제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실을 들여다보신다면 피데스당의 정책에는 항상 선의의, 악의 없는 설명이 있습니다. 귀하의 사실관계 오류와 편견은 사실을 아는 이들에게는 귀하 주장의 신빙성을 깎아먹을 것이며 귀하의 글을 읽는 대다수의 독자들처럼 사실관계에 익숙치 않는 많은 이들을 오도할 것입니다. 물론 저는 귀하께서 의도적으로 그러셨다고 보지 않습니다. 분명 변화의 속도와 깊이가, 귀하와 같이 헝가리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해온 사람들에게도 압도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허나 피데스당의 모든 정강정책에 대해 매순간 가장 악의적인 의도를 덧붙이는 것은 황색신문이나 하는 짓이지, 학자의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György Szapáry
헝가리 주미대사, 워싱턴 DC, 2011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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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가? (그 느낌을 음미해본 다음…) 이에 대해 사흘 뒤 Scheppele의 반박문이 Krugman의 blog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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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30일

Szapáry대사님께,

편지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항상 헝가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더 많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귀하께서 제가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라는 말씀을 해주셨기에,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선거제도와 관련하여: 제 선거제도에 대한 비판은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혼합제도에 대한 것이나 의회 의석수를 줄이기 위해 더 큰 선거구를 만들어야한다는 점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선거구들의 경계가 확정된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Haza és Haladás의 분석은 이 새로 확정된 선거구로는, 지난 3번의 선거들이, 구선거법 상으로는 두 번이나 다른 당의 승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피데스승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귀하께서는 다른 씽크탱크들이 이와 같은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유감스럽게도 그 결론에 이르지 않은 다른 분석결과를 본 바가 없습니다.

혹시 귀하가 언급하신 분석들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여쭤봐도 될지요? 또한 그 결과들이 Haza és Haladás가 그러한 것처럼, 온라인에, 사용한 방법론과 함께 공개될 수 있을까요? 만약 귀하께서 정말 이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을 제기하신다면, Haza és Haladás의 분석방법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는지 그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먼저 내놓으시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많은 집권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거구를 획정하기에, 피데스당이 그런 점에서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허나 저는 그 어떠한 나라에서도 선거법에 선거구를 획정하면서 그 변경을 위해 2/3의 의석수를 요구하며 처음에 그 선거구가 공정하게 획정되었는지를 판단하는 독립적인 기구 없이 그 경계가 획정된 예를 알지 못합니다. 이 두 가지 점에서, 헝가리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특이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귀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유권자들이 항상 생각을 바꾸며 게리멘더링된 선거구조차도 유권자의 큰 수준의 투표로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새로 획정된 선거구로는, 헝가리 정부는 1998년 피데스당이 처음으로 승리한 이래 단 한 번도 정권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구선거법하에서) 2002년 선거는 아슬아슬했죠. 하지만 (피데스당이 패배한) 2006년은 아슬아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선거에서조차 (신선거법으로는) 피데스당은 승리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정권교체가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유권자들의 투표행태 가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폭의 변화를 요구하기에 새로 획정된 선거구가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둘째로, 유권자들이 피데스당을 찍을 때 새 헌법에 대한 추인을 한 것인지 아느냐에 대한 문제에 대해: 귀하가 인정한 바와 같이, 피데스당은 결코 새 헌법을 제정하겠다고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르반 수상은 간접적으로 “큰 변화”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지, 헌법적 질서가 급격하게 변화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선거때 사회당에 대한 큰 심판분위기를 감안할 때, 많은 사람들이 리더십에 큰 변화를 원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 더 크게 바뀐다면 더 좋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허나 그 분위기가 다른 어떤 정당의 동의나 시민들이 정말로 그러한 헌법을 바라는지를 묻는 국민투표 없이 막 써도 된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만약 귀하께서 피데스당이 선거기간 중 헌법을 다시 쓰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근거를 갖고 계시다면, 제가 어디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지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1995년에서 1996년 사이 마지막으로 헌법개정 작업이 이뤄졌을 때 외부 전문가 고문이었기때문에 새로운 헌법 제정이 오랜동안 논의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1995년 당시, 새 헌법 제정절차가 시작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4/5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헌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또한 (헌법은) 제정절차가 시작되면 신헌법제정위원회는 의회 내 6개 정당 중 5개 정당이 제정에 찬성해야함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데스당이 작년 집권하자마자 한 첫 작업은 이 4/5 제한사항에 대한 헌법조문을 개정하여 야당의 지지 없이 맘대로 신헌법제정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피데스당의 헌법개정으로 신헌법 제정에 어떠한 야당의 지지도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이번 신헌법제정 작업이 지난 헌법제정작업과 구별되는 큰 차이입니다.

만약 지금 당장 새로운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진정한 공감대가 있다면, 왜 피데스 정부는 이 속전속결의 제정작업 전에 4/5룰을 제거했습니까? 피데스당이 이미 의회 내 68%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귀하께서 주장하시는대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면 12%의 다른 의원들을 동의하게 만드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왜 피데스당은 1995-1996년에 이미 밟아본 적이 있는, 제 정당의 절대다수의 찬성절차에 따라 제정작업을 진행하는 규칙을 폐지하셨습니까?

제가 보기에, 선거 전 유권자 또는 야당, 또는 그 점에 있어서 피데스당 자체로도 새 헌법제정에 대한 어떠한 꾸준한 요구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귀하께서는 피데스당이 헌법제정 절차를 시작할 당시 광범위한 지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여쭐 수 있겠습니까? 또는 현재 제정된 신헌법에 광범위한 지지가 있다고 볼만한 근거를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피데스정부가 정권을 잡은 후, 피데스당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절반이 지지를 거뒀습니다. 이것이 신헌법에 대한 지지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근거로 볼 수 없겠습니까?

셋째, 사법부와 관련해: 저는 헝가리 판사들에 대해 깊이 존경하며, 사실, 4년간 헝가리 헌법 재판소에 연구하면서, 지근거리에서 많은 존경할만한 헝가리 판사들을 봤습니다. 허나 사법부의 독립은 판사의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기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에 달려있는 문젭니다. 사법부에 대한 신법은 국가 사법 사무처장(head of the National Judicial Office) 일인의 판단에 의해 현재 일반법원에 있는 그 어떠한 판사들도 다른 법원으로 발령낼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이 새 체제에서 판사가 이러한 발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어떠한 절차가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귀하께선 국가 사법 사무처장이 이러한 발령을 내는데 있어서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절차상 아무런 요건 없이 이러한 발령이 가능하다면, 정치적이거나 또는 다른 부적절한 사유에 의해 발령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결코 헛된 망상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어떤 절차가 있습니까? 판사가 만약 정치적 이유에 의해 발령을 받았다고 믿을 때 어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헌법이나 사법부에 대한 법은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절차로 이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법이 이를 규정하고 있습니까? 다시 한 번, 이 지점에 대해 귀하로부터 제가 모르는 부분을 배우고 싶습니다만, 현재 있는 법으로부터 그 어떤 보장을 찾은 바 없습니다.

게다가, 오늘(2011년 12월 30일) 통과한 헌법부칙은 국가 사법 사무처장과 검사가 쟁점이 되는 재판을 나라 어느 법원에나 배당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헝가리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식으로 행정부가 재판에 간섭하는 것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기에, 저는 현 정부가 이를 아예 신헌법에 못박아버린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허나 만약 정치적인 관리들이 각 재판에 대해 어떤 판사로부터 판결을 받을지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사법부의 독립은 끝난 것입니다.

귀하의 정부는 이 새 체계가 재판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귀하 정부의 관리들께서 오로지 효율성이라는 관점을 가장 큰 기준으로 삼아 (재판이 빨리 끝날 것 같은 재판정, 즉 판사에게) 재판배당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도 정치적 영향을 배제하는 보호장치가 마련되어야합니다. 가장 빨리 재판을 해치우는 방법은 아예 증거를 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하고 신중하게 재판하는 과정은 시간을 요합니다. 만약 재판을 더 빨리 해치우는 판사들에게 더 많은 사건이 배당된다면, 사법판단의 질이 어떻게 될지는 명약관화한 것 아닙니까?

행정부 관리직인 사법 사무처장과 검사가 재판을 배당하는 것은 사법과정의 공정성 관점에서 다른 중요한 문제도 야기합니다. 만약 민형법상 피고가 재판부를 기피하고자 한다면 어떤 선택지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 재판배당에 대한 규칙이 1심뿐만 아니라 항소법원에도 적용된다면, 피고가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적인 판사를 만날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넷째: 선거주기보다 더 긴 임기를 갖는 고위직 임명과 관련하여: 네, 선출직보다 특정 비정치적 자리들이 더 긴 임기를 갖는다는 것은 민주정에서 흔한 일입니다. 허나 또한 이러한 고위직들이 여러 정당 사이의 협의나 다른 방식을 통해 임명되어 한 당이 이러한 고위직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의 반반을 각각 좌우파 정당으로부터 뽑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판소의 상원(senate?)은 항상 여야 동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고위직들은 연방의회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하며, 이 때 의회 소수당이 상당한 수준의 거부권을 갖고 있습니다. 헝가리에서, 구 헌법질서하에서는 이런 고위직이 일당에 의해 임명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들은 (의석 분포가 아니라 정당에 따른) 의회 내 주요 정당 다수의 지지를 받고나서야 2/3의석수에 대한 인준을 받았습니다. 피데스당이 집권 1년차에 한 것은, 이 첫 단계를 제거함으로써, 의회내 충분한 다수석을 점유하는 일당이 이제 다른 당의 지지없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재판소에 임명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긴 임기를 갖는 고위직을 다수 정당들의 합의나 다른 방식의 독립적인 균형을 보장하는 기구 없이 임명하는 다른 헌법체계를 알지 못합니다. 허나 제가 뭘 놓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모르지만 피데스당이 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 검사, 국가 사법 사무처장, 감사원장, 예산위원회 위원장, 미디어 위원장 또는 다른 긴 임기의 고위직을 임명하는데 있어서 야당과의 합의를 위해 노력한 적이 있습니까? 그 어떠한 신법이라도 위원회를 갖는 독립기구 (예를 들어 선거관리 위원회 또는 미디어 위원회)에서 상임위원에 여러 정당이 대표되도록 보장하도록 한 것이 있습니까? 다시 한 번, 저는 이런 점에 있어서 제가 놓친 것이 있다면 배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만, 기존 법이 이런 장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들을 대체하는 신법들에선 이런 장치들을 발견한 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실관계 오류 주장에 대해서: 귀하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단지 각 고위직의 임기를 정확히 나열했을 뿐입니다. 고위직들 중 일부는 말씀하신대로 변한 게 없고, 일부는 길어졌고 일부는 짧아졌습니다. 또한 일부 지위는 완전히 새롭고, 대부분의 자리는 그 권한이 이전보다 훨씬 강화되어 그 자리에 누가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모든 지위들의 임기가 길어졌다는 암시를 주었다면 그 점은 잘못이지만, 각 지위들이 더 큰 권한을 갖었다는 것 또한 분명히 강조하지 않은 것도 잘못인 것 같군요. 검사는 자신의 사건을 자기가 원하는 법원에 배당할 수 있습니다. 감사원장은 이제 훨씬 더 광범위한 조사를 할 수 있습니다. 새 예산위원회는 국회해산권의 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 예산안에 대한 거부권을 가졌습니다. 미디어 위원회 위원장은 주파수 배당에 대한 막강한 권한, 미디어법에 규정된 애매한 기준을 위반한 언론인들에게 엄청난 벌금을 때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국가 사법 사무처장은 완전히 새로운 직위로써 전체 사법부를 새로 조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새로운 권한,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자리들을 감안할 때, 귀하께서 집권당 소속이 아니라면 이 새로운 헌법질서가 공정하다고 느끼시겠습니까?

헌법질서를 바꾸는 것은 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매우 급진적인 것입니다. 이를 오로지 한 정당의 투표를 통해서 제안하고 제정하는 것은 헝가리가 현재 받고 있는 것과 같은 국제적 비판을 부릅니다. 만약 피데스 정부가 야당들과 함께 일해 진정으로 모두 공감하는 헌법에 이르렀다면, 저와 다른 이들이 이를 놓친 것일테지요. 저희가 정말 그저 놓친 것이라면 정말 기쁠 것입니다.

Kim Lane Schepp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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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사의 글로부터 무언가 기시감이.

지난 대한민국의 두 총선에서 “개헌저지선”이 화두였다. 우파의 이를테면 헌법 제119조에 대한 개헌요구가 떠오른다. 대한민국 헌법에 그나마 존재하는 견제, 균형 장치가 심지어 2/3의석 약간 모자르는 경우에도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눈에 따르면) 거의 망가졌는지 우리도 겪어본 바가 있다. (사실 이 글은 4년 연속 예산안 단독처리/날치기 기념 번역이다) 헝가리 임시 헌법이 국민투표조항이 없는 이유는 조심스럽게 추측해보면 아마 공산당일당독재체제에서 이행하면서 사회당의 농간(?)이 아니었나 싶다. 되도록 균형은 정당 사이에서 합의되는 체제로 할 것, 그래야 당시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게 아닐까.

헝가리 헌법개정 과정을 대한민국 헌법에 대입해보자면, 이 사람들은 먼저 집권해서 헌법 제128-130조를 개정해버리고, 그 다음에 지 맘대로 했단 얘기다. 헌법개정을 위해 국민투표가 존재하는 것이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앞으로 제안되는 모든 헌법개정안에도, 국민투표가 빠지면 무조건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소선거구제, 소선거구+비례대표 “혼합”제, 선거제 얘기하면 이런 얘기들 어디서나 흔한 고민들인가보다… 뒤늦게 노회찬의 나꼼수에서의 선거제 변경에 대한 발언들을 다시 곱씹어본다.

대한민국에선 우선 선거구 사이의 유권자수의 차이가 여전히 큰데다가 비례대표 의원수는 적어 도시 유권자수 중에 낭비(왜냐하면 소선거구여서 패배하는 유권자의 표는 다 “낭비”되니까)가 상당하기때문에 유권자들이 좀처럼 정치과정에 레버리지를 갖는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에, 압도적으로 한 쪽 정당에 유리한 지역구들 (호남/영남)의 경우에는 또다시 정당에 대해 유권자들이 갖는 레버리지가 적어지기때문에, 두 겹으로 유권자들이 정치과정에 소외되는 효과가 강한 것 같다(그게 정치불신으로 연결되고). 중대선거구제의 문제는 일본에서 익히 본 바이고…그런데 이 정치불신으로 국회의원 의석수를 줄여야한다는 얘기가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선호되는 모양인데, 이게 대표성의 측면에서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것 같다.

게다가 이 놈의 정치불신으로 작은 나라에 걸맞게 국회의원 의석수를 줄여야한다는 얘기(아마 헝가리 우파당의 “선의의, 악의가 없는” 구호가 아니었을까 싶다)가 대한민국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선호되는 모양인데, 이게 대표성의 측면에서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것 같다. (그나저나 헝가리 천만명에 대강 350명의 의회의원이었는데, 한국은 거의 5천만명에 299명이네. 이거 인구당 의석수 데이터가 어딘가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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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헝가리의 헌법 혁명 Hungary’s Constitutional Revolution

Krugman이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헝가리 얘기를 인용하길래, 뭥미했는데, 블로그에 프린스턴 동료의 글을 게시했다.

아래는 초벌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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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Lane Scheppele

지난 주, “불황과 민주주의Depression and Democracy”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Paul Krugman은 헝가리의 “권위주의적 쏠림”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다. 그 칼럼의 소스 중 하나가 나로부터 나왔기때문에, 여기서 내가 왜 헝가리의 입헌주의와 민주주의가 위기상황인지 좀더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작년 봄철 치뤄진 자유롭고 공정한 총선을 통해 헝가리의 중도우파 정당인 피데스Fidesz는 53%의 득표율을 얻었다. 이 득표율은 헝가리의 현행 불균등한 선거법상, 68% 의회 의석수로 연결됐다. 이러한 압도적 과반수 (2/3 이상)을 바탕으로, 피데스당은 개헌의석수를 확보했다. 여당은 집권 1년차에 이 압도적 권력을 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이용하여 열 차례에 걸쳐 헌법을 개정했으며, 이윽고 2012년 1월 1일 발효될 신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 개정 및 신헌법 제정과정을 통해 정부의 견제와 균형원리가 무너졌으며, 사실상 현 여당이 바라볼 근미래에 걸쳐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법적 환경을 만들었다.

이 신헌법은 유럽연합 이사회의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일명 베니스 위원회 Venice Commission for Democracy through Law), 유럽의회, 및 미국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피데스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 새 헌법질서로 사법부가 제일 큰 타격을 받았다. 기존 거의 모든 법률의 헌법합치여부를 심사할 책임이 있었던 헝가리 헌법재판소는 세 가지 방식으로 무력화됐다. 첫째, 정부는 헌법재판관의 수를 늘렸으며 늘어난 재판관에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을 채웠다(루스벨트의 법원 장악 계획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 다음 이 재판소의 관할권을 제한하여 헌법에 열거한 권리들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세금과 긴축 프로그램과 같이 예산에 영향을 미치는 법률에 대해 심사를 할 수 없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헌소 요건을 강화하여 법률이 헌법과 합치되는지 심사가 어렵도록 했다. 더해, 개인은 일반 법원의 소송 과정을 모두 거쳐야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과거 단원제 의회제도에서 중요한 견제기능을 행사했던 헌법재판소는 이로써 기능적으로 사실상 죽었다.

일반 법관들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정부는 재판관의 은퇴연한을 70세에서 62세로 낮추고, 몇 개월의 유예기간밖에 주지 않았다. 200명 이상의 법관들이 1월 1일부로 법복을 벗어야하며, 이 중 사건 배당과 재판사무를 담당하는 재판소장들 또한 그러하다. 법원과 관련된 신법은 대법원장은 적어도 5년 이상 헝가리법원 경력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현 대법원장은 그의 재판경력 중 17년간의 유럽 인권 법원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1월 1일 또한 사임해야한다.

법원 관련법은 또한 새로 국가 사법 사무처(National Judicial Office)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기관은 실권자는 은퇴하는 법관의 후임법관을 임명하고 새로 임용되는 법관을 임명할 권한을 갖는다. 또한 아무 법관이나 임지를 옮길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 새로운 헌법 개정안 – 새로 만든 헌법에 대한 개정안이다! – 은 검사와 이 새로운 국가 사법 사무처 기관장이 재판할 판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정부가 원하는 법관을 자리에 앉히고, 원하는대로 인사이동시키고, 누가 어느 사건을 맡을지 결정할 수 있게 되면 끝장난거나 다름 없다.

유럽연합 정의, 인권 및 시민권위원회European Commission for Justice, Fundamental Rights and Citizenship 부의장인 Viviane Reding 지난 주 강력한 어조로 신법과 관련된 자료요청을 하며 즉각 회신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또한 “유럽연합 법률과 합치여부에 대한 의심이 가시지 않는 한 해당 입법안이 실행되지 않도록 확실히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대한 회신에서 헝가리 정부는 이 모든 변화는 개선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헝가리 정부는 신헌법질서를 브뤼셀의 강력한 경고에 불구하고 이행할 예정으로 보인다.

이 신헌법 체계에 따르면, 선거에 대한 법적 관리, 감독 체계도 바뀐다. 지난 선거 이전 규범은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는 5명의 위원은 정치적으로 다양해야하며 정부가 위원들을 선정하기에 앞서 야당과 협의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년 규칙이 바뀌어 매 총선거에서 선관위원도 함께 뽑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기존 선관위원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였으며 현재 선거관리위원회는 집권여당의 5인으로 채워졌다.

새 선거법은 의회 의원 선거지역구의 경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새 선거구획은 피데스당을 제외한 그 어떠한 당도 사실상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게 획정되어 있다. 권위있는 헝가리 씽크탱크가 새로 획정된 선거구를 바탕으로 지난 3번의 선거결과를 모의 실험해본 결과 피데스당이 지난 두 번 패배했던 선거까지 모두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모든 독립적 정치적 기구들이 타격을 입었다. 인권위원회, 개인 정보 보호 기구, 소수자 보호 옴부즈맨은 더 작은 기관으로 통폐합되었다. 검찰, 감사원 그리고 최근에는 중앙은행이 모두 새 법적 질서에 따라 정치적 영향에 노출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언론이 매일매일의 위협 속에 직면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강력한 일련의 언론 법안들을 통해 총리의 임명을 받은 9년 임기의 위원장을 비롯하여 피데스당 지지자로 채워진 미디어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모든 공공 및 민영언론들이 애매한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지 심사할 권한이 있으며 어떠한 언론사도 파산할만큼 벌금을 때릴 권한도 갖고 있다. 따라서 언론들이 자기검열하는 것이 이상치 않다. 이 언론체계는 유럽집행위원회 산하 통신위원회European Commissioner for Communications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으며, 이 밖에 UN의 반기문 사무총장을 비롯한 다른 기관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신헌법은 보수적 기독교 사회신조를 국가정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참고로, 헝가리에서 그 어떠한 종류든 교회에 출석하는 인구 비율은 21%에 불과하다. 태아는 임신부터 보호받는다(낙태금지). 결혼은 법률적으로 남자와 여자에 한한다. 헌법은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기독교의 역할을 인정하며”, “가족과 국가가 우리의 공존에 가장 중요한 두 축”이라 못박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신념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규정하는 새 법국가 공인 교단을 14개로 줄이며 348개의 다른 교단의 공인을 취소했다.

민주정에서 대중은 잘못하는 이들을 “갈아치우고” 여론의 지지를 받지 않는 정책을 변경할 수 있는 새 정부를 선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새 헌법 하에서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된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 – 자유로운 언론과 중립적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재 – 에 더해서, 새 헌법은 설사 다른 당이 작은 확률을 뚫고 선거에 승리했어도 피데스당이 통제할 수 있는 근거를 심어놨다.

새 헌법은 공공정책이 오로지 이후 의회의 2/3의 의석수에 의해서만 변경될 수 있도록 못박아놨다. 이제부터, 모든 세제 및 재정정책은 오로지 2/3의 압도적 다수를 통해서만 통과할 수 있다. 심지어 선거구 재획정조차 2/3의 압도적 다수결을 요한다. 만약 새 정부가 단순히 과반수로 구성된다면, 피데스 정부의 정책이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다. 근미래에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후임 정부들에 대해 피데스 정부는, 지금 임명하는 관리들을 통해 흔들 수 있다. 새 헌법은 검사의 임기를 9년, 감사원장은 12년, 국가 사법 사무처 9년, 미디어위원회 위원장 9년, 예산위원장 6년 등등으로 늘렸다. 각각의 자리는 피데스당 지지자들로 채워졌으며 이들은 현 정부의 임기가 한참 끝난 뒤에도 수사, 언론 위협, 공소, 법원인사를 할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작동할까? 한 가지 예로 족할 것이다. 신헌법은 새로 예산위원회를 만들었는데, 국가채무를 늘리는 그 어떠한 미래의 예산안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현재 헝가리 경제상황으로 볼 때 이는 그 어떠한 예산도 균형재정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는 어떤 경우에도 예산위원회가 거부권이 있다는 뜻이다. 이 예산위원회의 위원들은 6년 또는 12년의 임기를 갖고 현정부에서 임명되었으며, 의회가 2/3의 의석수로만 교체할 수 있고, 아니면 그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한편, 신헌법은 매년 3월 31일까지 의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한다. 만약 의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으면,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시행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후임정부의 제약은 명약관화하다. 새 정부가 예산안을 통과시키면 (예산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피데스당 지지자에 의해 비토당해 예산통과 기한을 지나면, (피데스당에 의해 임명된) 대통령은 의회해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적절한” 정부가 집권할 때까지 무한반복할 수 있다.

현 헝가리 정치지형상 피데스당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야당은 사회당 또는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로 극우 조빅Jobbik당이다. 작년 피데스당 선거승리 이전 입안된 법률에 따르면, 위헌정당은 해산당할 수 있다. 혹자는 피데스당이 조빅당을 이를 통해 해산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사실, 유럽제국(諸國)은 조빅당이 사라지는 것에 별로 상관 안 할지도 모른다. 각국이 제각기 극우당을 해산할 수도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피데스당의 라이벌인 사회당은 어떠한가?

제안된 헌법개정안에 따르면, 지난 공산주의 시절 공산당의 위법행위들이 헌법에 명시되며 공산정권 시절 범죄행위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삭제된다. 지난 공산당은 (이 개정안에 따르면) 범죄조직으로 취급받고 있으며 현재 야당인 사회당이 그 법적 후계자로 지목받고 있다. 법률적으로 말하자면, 이 헌법개정안이 뭘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다. 하지만 제1야당에게 아마도 별로 좋은 건 아닐 것이다.

피데스당은 이 헌법 혁명을 민주적 선거 이후 법적 절차에 따라 수행했다. 비록 피데스당이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헌법개정을 통해 이 모든 작업을 완수하였다고 하더라도 헝가리는 더이상 입헌적 민주정이라 부를 수 없다. 헝가리는, 폴 크루그먼이 말한대로, 권위주의로 미끄러지고 있는 것이다.

* 역주: 루스벨트는 뉴딜정책 당시 이에 대해 사사건건 위헌판결을 내리는 대법원에 대항하기 위해 대법관을 늘리고 종신직인 대법관 임기를 정하여 대통령 권한을 늘리려고 시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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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니, 진심으로 식은땀이 흐른다하나, 그런 느낌을 들었다. 과거 회귀형 투표라는 바람에 민주정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

순간, 한국은 그래도 그 정도로 막장스럽지 않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런 과거회귀바람이 거셌던 지난 대선과 총선 이후, 여당지지자들 사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 운운했던 기억이 났다. 인권위원회가 축소된 것이며, 언론이며, 정치과정, 검찰이며, 중앙은행이며, 방송통신위원회며, 예산날치기며, 정당이며, 지금 임명되는 모든 정부 관리들이며, 과연 얼마나 많이 다를까? 동양의 어느 나라 여당이 꿈꾸는 나라는 서방 정토의 어느 나라에 실재다

정치문화라는 것, 한순간에 “훅” 갈 수 있다는 것… 선악의 이분법이 되어가는 정치문화의 종착역은 어딜까?

한국은 개헌이 국민투표 절차가 필요하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야하는 건가? 하지만 버블이 다음 정권 즈음에 터지는 순간 어디로 갈지 진심으로 모르겠다.
p.s. :
서비스로, 위에서 언급된 조빅당(반 집시, 반 유대주의에다가 심지어 준군사조직까지 갖추고 있다)의 청년단체 조직 사진 하나. 이에 비하면 친박연대는 애들 장난이다.

p.p.s. :
참고로 2006년 지난 헝가리 총선에서 제1당은 사회당(MSZP, 190석), 피데스당(FIDESZ, 164석), 조빅당(JOBBIK)은 의석이 없었다. 그게 2010년 총선에서 사회당(-131석), 피데스(+99석), 조빅(+47)의 결과.

또 참고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대체 인권이며 입헌주의며 전통의 유럽연합 집행부는 뭘하고 있는 거였나요? 라고 묻는다면, 당시 헝가리가 순회의장국이었다고 한다 -_-;; 유럽연합, 더 높은 수준의 정치결사체로 빨리 가지 않으면 정말 막장으로 치닫겠다. 동북아시아만 문제가 많은게 아니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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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1:21-27

21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21-27 (개역개정)

21Therefore, get rid of all moral filth and the evil that is so prevalent and humbly accept the word planted in you, which can save you.

22Do not merely listen to the word, and so deceive yourselves. Do what it says. 23 Those who listen to the word but do not do what it says are like people who look at their faces in a mirror 24 and, after looking at themselves, go away and immediately forget what they look like. 25 But those who look intently into the perfect law that gives freedom, and continue in it—not forgetting what they have heard, but doing it—they will be blessed in what they do.

26Those who consider themselves religious and yet do not keep a tight rein on their tongues deceive themselves, and their religion is worthless. 27Religion that God our Father accepts as pure and faultless is this: to look after orphans and widows in their distress and to keep oneself from being polluted by the world.

James 1:21-27 (NIV)

“거울로 자기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 당시 거울은 동으로 만들어 희미하게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 이미지를 상상해서, 나를 돌아보면, 숨이 탁 막힌다.

“듣는 사람”(아크로아타이),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자”(드레스코스), 폐부를 찌른다. 기실 이렇게 타이프 치는 손에 재갈을 물리지 않은 것 아닌가.

큰 눈이 온다고 해서 새벽에 실험실에 왔다. 어서 정리하고 돌아가서 들어야할 때.

공부는 끝이 없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의 말을 읊던 사람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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