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th Amendment

 

옛날에 한국서 국회의원이 밥값 하느냐 마느냐로 매번 몸살앓이하는 와중에 끄적였던 실없는 이야기 소개해봅니다. (DISCLAIMER: 전 이쪽 전공자가 아니니 잘못된 내용은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0.75

아주아주 거친 배경설명.

미국이 독립한 직후 있던 헌법은 독립한 13개 주 연합체 위에 효과적인 행정기능, 사법기능, 조세기능을 부여하지 않았기때문에 (예를들어, 대통령이 없었다), 한 주가 깽판 치면 속수무책이고, 전쟁을 벌일 때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이 쉽지 않는 등 문제가 많았다. 그 고민 끝에 1787년에 벤자민 프랭클린 등등 12개(!) 주 대표들이 모여서 현재 미 헌법의 초안을 만들었다.

헌법 초안을 작성하면서 많은 논점들이 절충/타협으로 해결되었지만, 해결되지 않고 남은 심각한 이슈가 대략 두 개가 있었다.

한 문제는 매우 기괴한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갔는데, 결국 한 세대를 겨우 넘어 전쟁으로 그 논쟁이 끝났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가 현실화될 때까지도 또 몇 세대가 걸린 문제고, 헌법을 여러차례 수정하게 만든 문제다. (얘기하기 시작하면 재밌는 얘기들이 많지만 훨씬 복잡한 배경이 있기때문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정리해보자)

다른 하나는 꽤 강력한 연방정부/연방 사법부를 규정한 헌법을 입안하고 비준하는 과정이 독립한 주와 시민들이 자신들의 (제정 영국으로부터 얻은) 자유로운 권리를 다시 포기하는 과정이 아니냐라는 문제제기였다(대통령 만드는 거, 왕 만드는 것 아닌가 – 성경을 봐라). 그러니 그 권리들을 명문화해서 (권리장전權利章典. Bill of Rights) 헌법에 집어넣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가 하면, 그딴건 왕과 신민 사이에나 맺어졌던 것이고, 그런 식으로 나열을 하면 나열 안 한 것은 보호받지 못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는 쪽이 다른 쪽으로 부딪쳤다(이런 우려들이나 논의들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여러 정치지형들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여차저차해서, 그런 구문들을 집어넣지 않고 헌법초안이 마련되어서 각 주별로 비준에 들어갔는데, 이 문제가 미 헌법 비준안을 상정한 6번째 주, 메사추세츠 주[0]에서 심각한 상황까지 갔다. 큰 싸움 끝에, 미헌법이 발효된 다음에, 이 문제의식에 입각해 초대 의회에서 권리조항[1]들을 추가하자고 제안해놓기로[2] 가까스로 절충을 보고 겨우 비준에 성공했고, 그 이후 비준과정에도 그 논의가 영향을 미쳤다. 1788년 9번째 주가 헌법을 비준으로 헌법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1789년 소집된 미 초대 연방의회에서는 약속에 따라 미 헌법에 조문을 추가하는 (그래서 미헌법을 “수정”하는 – 그래서 “수정헌법”이다) 과정을 밟는다. 이 때 제안된 조문이 총 12개였고, 이윽고 각 주의 비준절차를 걸쳐서 미헌법에 “권리장전”으로 덧붙여진 최초의 수정헌법 조문 10개를 이루게 된다.

우리가 종종 접하는 “표현의 자유” 논의에서 인용되는 수정헌법 제1조를 비롯해서, (종종 옛 집주인덕분에 받아본 NRA의 월간지를 보면 제1조 이상으로 신성한) 무기소지의 자유를 기록한/했다고 여겨지는[3] 제2조 등등을 볼 수 있는데, 그 이후로 이 조항들을 통해 미국 사법판결에도 굵직한 큰 사건들이 많이 나왔다.

1. 문제의 2조

그렇다. 12개를 제안했는데, 10개 조문만 헌법이 되었다. 수정헌법 제1조는 일련의 제안된 조문들 중 3번째다. 첫째 조항과 둘째 조항은 비준을 받지 못한 것이다.

당시 새로 만들어진 미합중국 헌법에 따라 헌법이 수정되려면 (또는 조항이 추가되려면), 일단 상하 양원에서 2/3의 찬성을 거쳐서 각 주에 헌법수정안을 제안하고, 미합중국을 이루는 3/4의 주들이 이 수정안을 비준해야한다[4]. 그렇다면 1789년 9월 25일 수정안이 의회를 통과해 각 주의회에 제시된 당시 독립13주(+버몬트) 중에서 11개 주가 비준해야하는데, 제1조는 10개주만 비준했고, 제2조는 6개주에서만 비준이 되었다. 이 문제의 제2조문은 무려 5개주 주의회에서 비준을 거부한 것이다.

이 두 번째 조문은 다음과 같다.

No law, varying the compensation for the services of the Senators and Representatives, shall take effect, until an election of Representatives shall have intervened.
상하의원의 세비 변경에 관한 법률은 다음 하원의원 선거때 까지 효력을 발생하지 않는다.

…왜 비준하기 어려웠는지 알만하다.

이후로 미합중국에 “가입”하는 주들 중에서 이 조항을 비준한 주가 있었지만, 그만큼 3/4 역치도 점점 높아지기 마련이고, 뭐 좋은 게 좋은 거고 그런 오래된 거 잊어버리자구요하면서 그 이후 200년 정도 거의 잊혀진 개정안이었다.

2. 192년후.

1982년에 외로운 별주텍사스 오스틴의 대학교2년차 학생(Gregory Watson)이 리포트 조사차 서류들을 뒤지다가, 이 헌법수정안을 찾았다. 좀 살펴본 끝에, 그는 교수에게 이 헌법수정안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하는데, 그가 주장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권리장전 이후 미 연방의회의 2/3선을 통과한 헌법수정안들은 대개 주의회들이 비준을 해야하는 기간제한을 걸어놓았는데, 공교롭게도 이 권리장전은 그런 비준시기제한이 없다. 미헌법 수정절차를 기록한 조문에도 수정안이 언제까지 비준되어야한다는 사항이 없었기때문에, 이 조항은 현재 미 50개주 가운데 38개주의 비준을 다 받아내면 여전히 수정헌법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이 조항을 비준한 7개 주를 생각하면, 31개 주의회에서 이 수정안을 비준하면 됩니다!

교수의 리포트 채점결과: C.
이유: 야 임마, 200년 지난 수정안을 비준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학생이 10년동안 각 주의회에 청원한 결과, 1992년이 되니 38(또는 39)개주가 이 수정안에 대한 비준을 끝마쳤고, 1992년 5월 18일,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장은 202년만에 이 개정안이 수정헌법 제27조가 되었음을 인증해버렸다.

일부 미 연방의원들은, “아니 202년 지난 헌법수정안 비준이 말이 됩니까,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봅시다”라는 식의, (어느 나라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입법부의 사법판단요청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수십년 전에 사법부는 (어느 나라의 사법부와는 달리) 이미 “그건 정치적 문제이니 늬들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임”이라고 판결을 내린 선례가 있기때문에, 결국 의회가 제 손으로 이런 식의 202년만의 비준에 의한 헌법개정이 맞는지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왜 결국 연방의회가 군말없이 이 조항을 헌법에 받아들였는지 알만하다.

그리하여 미 수정헌법 제 27조가 탄생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너무 끝이 썰렁하다고 혼내지 말아주세용…굽신굽신…)

p.s. : 문제-해당 학생은 리포트 채점결과를 수정할 수 있었을까요?

[0] 그래놓고 이 주는 권리장전 조항들을 1939년까지 비준하지 않았다(물론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1] 여기서 “권리”가 요즘 말하는 “권리”랑은 좀 다른 개념.
[2] 메사추세츠 주의회 비준 과정 싸움은 “비준을 하냐 안 하느냐지, 단서 조항같은 건 있어도 안 되고 효과적이지도 않다/아니다”의 싸움이었다.
[3] 각각 다 짧은 영문이니 직접 읽어보시기를. 이거 해석 어떻게 하느냐로 가끔 미국인들끼리 치고박는 포럼에서 구경하면 재미남.
[4] 이런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권리장전 이후로 16번 더 수정이 이뤄졌는데, 그 중 가장 백미는 수정헌법 18조(또는 21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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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sponse to 27th Amendment

  1. 지나가다 says:

    지나가다 이 글을 보게되어 아주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약속하신 기괴한 방식으로 엄어간 첫번째 문제- 아무래도 남북전쟁과 관련된 문제인 것 같은데- 에 관한 글을 몇년이 지났는데도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요.
    약속하셨으니 바쁘시더라도 썰을 풀어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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