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위의 링크를 초벌번역해본 것이다. Da Shiji (达史纪) 라는 필명의 저자가 2020년 1월 27일자로 올린 글이다.)
“제가 아는 한, 천백만명 인구의 도시를 봉쇄하려고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전례없는 조치입니다.” 중국 WHO 담당자 Dr. 고든 갈레아(Gauden Galea)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발 관련 지난 주 우한시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반응이다.
갈레아박사의 이 말로 유추해볼 때, 내가 지난 기십년 살았던 우한시의 봉쇄조치는 WHO가 조언한 정책방향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또한 이런 조치가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데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도 WHO가 분명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공중보건 조치로 시도된 적이 없기때문에, 이 조치가 효과적일지 아닐지 이 시점에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나는 현재 이 거대한 실험 속에서 살고 있는 우한시 천백만 시민 중 한 명이다. 갈레아박사는 중국의 이 조치에 대해 “당국이 어떠한 극적 조치도 할 수 있다는 공중보건에 대한 전적인 헌신의 표현으로 보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사는 이 도시를 휘감은 장막 안에서, 나는 이 “극적 조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직접 보고 겪은 “당국의 공중보건에 대한 전적인 헌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도시봉쇄
1월 23일 새벽 2시, 우한시 당국은 급작스럽게 도시를 전면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에 따르면, 같은 날 오전 10시를 시작으로, 모든 공공 버스, 지하철, 선박, 장거리 버스, 그리고 다른 교통수단 운송이 중단될 뿐만 아니라, 공항과 철도 또한 통제될 것이었다. 이 시점에, WHO는 이런 전략의 필요성이나 유효성에 대해 반문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조치는 무를 수 없었고, 곧이어 다른 인접 도시들로 확대될 운명이었다.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서, 1월 24일 정오때까지, 후베이성의 총 14개 도시들이 방역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총 3천5백만에 달하는 인구의 도시들, Huanggang (黄冈)과 E’zhou (鄂州)를 이어 Chibi (赤壁), Xiantao (仙桃), Zhijiang (枝江), Qianjiang (潜江), Xianning (咸宁), Huangshi (黄石), Enshi (恩施)、Dangyang (当阳), Jingzhou (荆州), Jingmen (荆门), Xiaogan (孝感)까지 봉쇄지역이 확대되었다.
이틀만에 한 도시가 아니라, 사실상 후베이성 전체가 방역지역으로 봉쇄되어 버린 것이다.
갈레아박사와 다른 외국인 전문가들은 후베이성의 이처럼 엄청난 방역작업에 일종의 경외감을 표현했다. 주말에 뉴욕타임즈지는 밴더필트 대학의 감염병 전문가인 윌리엄 셰프너(William Schaffner)박사를 인용하며, “전례에 없었던 규모의 보건의학적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셰프너 박사는 분명히 놀라고 있었다: “그 규모와 속도 측면에서 매우 놀랍습니다”라고 전했다.
중국이 이런 엄청나게 거대한 조치에 대한 인상은 필경 지난 40년간 중국 경제성장을 빗대어 “중국의 기적”이란 말이 회자되는 것에 비견될만하다. 허나 앞서 언급한 대규모 방역조치를 보건 측면에서 “중국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모든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이해해야하는 점은, 이 전염병이, 앞서 언급한 도시들이 봉쇄되기 전까지, 아니, 그 어떤 결정적인 조치가 내려지기 전에, 40일도 넘은 기간동안 퍼지도록 방치되었단 점에 있다. 중국 지도부가, 특히 후베이성 및 각 시 정부들이 그간 벌였던 노력들을 보면, 전염병을 방역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이 병에 대한 정보를 가두고 억제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이 전염병에 대한 뉴스를 억제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상식이며, 많은 이들은 이 전염병이 발발했을 때 터놓고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내가 사는 도시와 다른 도시들을 봉쇄하는 “극적 조치”를 낳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문제의 원인은 우한시에서 비롯되어 전세계로 퍼진, 다들 얘기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다. 1월 24일까지, 후베이성에서만, 이 바이러스로 인해 입원한 환자들이 549명에 달했다. 그 중 24명이 사망했다. 허나 실제 숫자는 여전히 알려져있지 않다.
주요 언론사중 하나인 Caixin Media(財新傳媒)의 보도에 따르면, 이 모든 사태는 12월 8일 시작되었다. 우한 허난 수산시장의 좌판 판매자가 최초 감염자로 확인된 것이다. 우한 수산시장은 대규모 수산시장으로, 7개 축구장 면적에 천개 이상의 좌판으로 이뤄져있다. 시장에는 수많은 고객들이 들락날락해서, 전염병이 퍼지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수산시장이란 말은 사실 이름뿐이고, 이 곳에서 두더쥐, 사향 고양이, 공작새, 대나무쥐 등 여러 야생동물도 거래된다. 이 시장에선, 끊임없는 식욕과 걸신들린, 때론 호기심어린 중국의 각양각색의 요리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감염자들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짧은 시간에 27명으로 불어났다. 우한시의 의료진들은 12월 초, 이 병이 2003년의 사스와는 다른 신종의 감염병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12월 내내 사스란 유령이 우한시를 돌아다니는 것 같았고, 새로운 역병에 대한 소문은 점점더 멀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중국사회는 정부가 면밀히 감시하는 사회이고, 빅브라더의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는 매우 촘촘한 감시대상이다. 당국이 사스의 재림, 또는 비슷한 역병에 대한 소문을 감지하자마자, 처음에 두가지 주요조치를 단행한다. 먼저, 이들은 이 질병발생을 비밀에 부쳤고, 안정성 보호 기제(啟動穩控機制)를 발동했다. 12월 30일, 우한시 보건 당국은 병의원 및 보건 조직에, 이 신종 전염병에 대한 그 어떠한 정보도 발표하는 것을 금하는 명령을 발동했다. 12월 31일까지, 우한내의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2차 감염 (인간-인간 감염)이 보고된 바가 없고, 어떤 의료진도 감염된 바가 없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과학 대 정치
12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기간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23일간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동안, 중국의 과학자들은 놀고 있지 않았고, 이 바이러스를 규명하기 위해 분초를 다투었으며, 이들의 노력은 경의를 표할만했다. 중국 질병 예방 통제 본부 소속 과학자 Meng Xin (孟昕)이 밝힌 것에 따르면:
“그러니까 원래 이들[주: Meng은 여기서 정부를 가리킨다]은 손에 에이스 카드 하나를 쥐고 있었습니다. 내 동료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 안에: 병원체를 찾아서, 그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체를 해독했으며, 질병의 원인을 규명했습니다. 2주도 안 되어서, 각급 성 질병 예방 통제 본부에 진단 시약을 제공했으며, 우한으로부터 온 수십에서 수백개의 검체들 (정확한 숫자는 알려져있지 않았다)을 검사했어요. 이런 기민한 대응은 해외 동료들의 칭찬을 들었고 WHO도 사례했으며, 이 전염병의 예방과 통제에 귀중한 시간을 벌어다줄 수 있는 카드였어요”
Meng은 여기서 베이징의 과학자들의 활동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허나 상하이의 과학자들도 뒤지지 않았다. 중국 국가 보건기구의 공식지 Health News (健康报)의 보도에 따르면, 상하이 공공 보건센터 또한 12월 26일 우한 감염자들로부터 받은 샘플을 접수한지 열흘만인 1월 5일 코로나바이러스 종을 분리해냈고 전체 유전체를 해독했다고 한다.
1월 11일, 베이징과 상하이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중국은 우한 폐렴 전염병의 병원체가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임을 밝혔고, WHO와 이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 정보를 공유했다.
이렇게 중국당국이 WHO와 신속하게 정보를 교환하는 동안, 당국은 중국 인민에게는 이 정부를 공유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엄격한 비밀을 유지했다. 이때문 예방과 통제 차원에선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는 뜻이다.
Meng Xin이 이 점을 이렇게 요약한다:
“[과학자들이 제공한] 에이스 카드를 당국은 활용하지 않았는데, 매 순간마다 정치적 지도가 가해졌고 엄격한 비밀보안요구가 지워졌다 – 이건 말할 수 없고, 저것도 말할 수 없고, 우리는 안정을 취해야하고 등등등. 그래서 검체 테스트 결과들은 안전하게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중국인민의 입장에서, 우한시 시민으로써,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1월 12일, 우한시 보건당국은 새 환자들이 없고 또 2차 감염 또한 1월 11일일자로 없다고 발표했다.
1월 13일, 우한시 보건당국은 새 환자들이 없고 또 2차 감염 또한 1월 12일일자로 없다고 발표했다.
1월 14일, 우한시 보건당국은 새 환자들이 없고 또 2차 감염 또한 1월 13일일자로 없다고 발표했다.
1월 15일, 우한시 보건당국은 새 환자들이 없고 또 2차 감염 또한 1월 14일일자로 없다고 발표했다.
1월 16일, 우한시 보건당국은 새 환자들이 없고 또 2차 감염 또한 1월 15일일자로 없다고 발표했다.
정치가 먼저다. 사회 안정이 우선이다. 이런 환경에서, 과학은 그저 앉아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적 결과는 이보다 더 분명할 수 없었고, 당국자들은 실제 상황에 대해서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진실을 얘기할 수 없었고, 전염병을 통제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일선에 있는 의사들이 전염병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 이들은 심문당하러 끌려갔다. 온란인에 전염병에 대해 쓴 우한 시민 여덟명은 공연한 불안감을 조성한단 죄목으로 경찰에 잡혀갔다. 물론 대중의 목소리를 묵살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제약들의 초점은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2차 감염(인간에서 인간)이 일어났단 진실이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우한시 당국자들은 1월 14일까지 2차 감염의 분명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강조하기에 바빴다. 나중에서야, 당국자들은 이들이 일컫길 “제한적인 인간-대-인간 감염”에 대한 증거가 있다고 인정했을 뿐이다. 베이징의 전문가 그룹의 위원인 Wang Guangfa (王广发)는 대외적으로 이 질병이 “예방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공식 보도들에, 대중은 상황인식을 할 수 없었고, 또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 않은 척 정치
1월 17일까지, 우한시 관광당국은 춘절 명절 행사 홍보 “Spring Festival Culture Benefitting the People Campaign” (春节文化惠民活动)에 바빴는데, 중국 전국의 관광객들에게 우한시의 볼거리를 위해 수십만개의 공짜표들을 뿌리고 있었다. 1월 19일까지, 우한시가 자랑하는 주거구역 Baibuting Garden (武汉市百步亭社区)에선 4만명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춘절잔치를 치루고 있었다. 우한시로 중국, 나아가 전세계 관광객들이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우한은 지역 당국자들이 진실을 막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한 덕분에 사방으로 열린 도시가 됐다.
후베이성 지역 당국자들의 일정표를 보면 당국자들이 얼마나 전염병을 무시하고 있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1월 11일, 이 병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것이 확인된 그 날부터, 1월 20일, 시진핑 총서기가 전염병에 대한 대응과 통제에 대한 지시를 시달할 때까지, 후베이성 당국자들과 우한시의 당국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과 관련된 그 어떠한 조치나 모임을 갖은 적이 없다.
1월 12일부터 17일까지, 이 당국자들은 모두 이른바 “양회”로 언급되는 전인대 및 정협의 성급 또는 시급 회의에 참석하느라 바빴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대로 새 케이스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보건당국에서 발표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 왜냐하면 “양회”를 위해 “조화로운” 여론환경이 조성되어야했기때문이다.
1월 18일 토요일, 당국자들의 일정표는 비어있는데, 아마도 휴식일이었기때문일 것이다. 1월 19일, 성급 및 시급 지도자들은 일정이 있었지만, 이들은 전염병에 대해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후베이성 당서기 Jiang Chaoliang (蒋超良)은 3개의 일정이 있었는데: 양쯔강 수자원 보호 위원회, 퇴약장병들과의 모임, 및 군 춘절행사 참석이 그것이었다. 다음 날 그의 일정은 Daye시의 빈민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후베이성 성장 Wang Xiaodong (王晓东)은 1월 19일 당서기 방문들을 따라갔으며, 다음 날엔 아무런 일정이 없었다.
우한시 당서기 Ma Guoqiang (马国强)는 1월 19일 Grass-roots Party Building Review and Appraisal Council에 참석했고, 1월 20일에는 시 상임위원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 상임위원회의 내용은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중앙 및 후베이성 당 지도부로부터 하달받은 “우리 목표를 향해 흔들림없이 나아가는 것” remaining true to our original aspiration, keeping firmly to our mission” (不忘初心, 牢记使命)을 다뤘는데, 시진핑이 중국적 사회주의의 길과 이른바 “중국의 재발흥”이란 발표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과 관련된 유일한 일정은 우한시 2인자 Zhou Xianwang (周先旺)시장이 1월 20일 전염병 예방 통제 본부를 방문한 일정이다. 이 날은 시진핑이 마침내 전염방에 대한 공식조치를 하달한 날이기도 하다.
“양회”의 성급 및 시급 회의들이 모두 끝난 뒤에야 후베이성 당국자들이 새 발병자들을 보고하기 시작했기에, 1월 19일 밤 갑자기 새 발병자 수가 136명으로 늘어났다. 허나 이전 숫자에 비해 급격히 늘어난 이 숫자에도 불구하고 당국자들은 전염병에 대해 보수적이었고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1월 21일, 그러니까 시진핑 총서기가 1월 20일 전국적으로 지침을 하달한 다음 날에도, 후베이성 당 및 행정 당국자들은 Hongshan Assembly Hall에서 춘제 잔치를 관람했는데, 여기선 노래와 춤 극단의 공연도 포함되었다. 당보 보도에 따르면, 이 춘절 행사는 당지도부와 후베이성 문화관광부의 최우선 과제였는데: “후베이성 문화관광부장이자 비서인 Lei Wenjie는 직접 공연계획을 검토했으며, 프로그램을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리허설 또한 관람했다”라고 되어 있다. 심지어 이 보도에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디테일도 포함되어 있는데, 예컨대 공연자들이 “최고수준의 공연을 내는데 수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했는데, 먼 거리에서 오느라 감기, 콧물 그리고 통증도 참아가며 공연준비에 최선”을 다했단 보도다.
후베이성 최고지도자 Jiang Chaoliang서기와 성장 Wang Xiaodong (王晓东)이 당과 정부 고관에게 마련된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사진은, 매우 평화로와보인다. 허나 그 춘절행사뉴스가 온라인에 게시된 순간, 인터넷에선 이들의 무대책을 성토하는 자리가 되었다. 한 온라인 유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들을 비판했다: “바이러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공복들은 안마당서 꽃들이나 받고 있네”
진중한 목소리
진짜 전환점은 2003년 사스 바이러스를 발견했던 저명한 호흡기내과의 Zhong Nanshan (钟南山)이 우한시를 방문했을 때 벌어졌다. 1월 18일, 광저우 당국으로부터 당장 우한으로 향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중국 공학원의 높으신 회원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로 인한 특별 지시 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우한시까지 이동하는데 필요한 특별한 이동권한을 받기에는 지위가 너무 낮았던 모양이다. 결국 그는 춘절을 기해 귀향하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간신히 저녁 고속철도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광저우에서 우한시까지 식당차 한 켠에서 버텨야했다.
돌이켜보건대, 당시 그가 받은 지시는 전염병에 대한 연구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앞서 밝힌대로, 이 시점에서 베이징과 상하이의 과학자들은 이 부분과 관련해서 이미 결정적인 진전 – 병원체 발견, 유전체 확인, 진단키트 개발 – 을 이룬 뒤였다. 불행히도, 중국 정치때문 이러한 과학자들의 업적은 대부분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
종남산 박사가 등장한 것은 충분히 신뢰를 갖고 있는 제3자의 등장 없인 지금까지의 깜깜이 보도상황을 타개할 수가 없었기떄문이다 – 누군가 대중에게 이 엄청난 전염병 상황의 진실을 알리면서도, 어떻게든 패닉에 빠지지 않게 붙들어맬 수 있는 인물. 중국 질병 관리 통제 본부 소속 연구자 Meng Xin이 쓰기를: “[이 전염병에 대한 진실]을 더이상 가릴 수 없게 됐을 때서야, 남은 패라고는 이 노 종 박사, 이 대단한 의신께서 오셔서 실제 상황에 대해 말하고, 더불어 대중들을 안심시키기를 기도하는 것 뿐이었요.”
허나 당국자들은 모든 진실을 다 고백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전염병에 대해서 쉬쉬했다는 고백도 없었고, 보도가 통제되었다는 고백도 없었으며, 시에서 “슈퍼감염자”가 14명이상의 의료진들을 감염시켰다는 얘기도, 우한시의 의료시설들이 현재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조차도. 그저 종남산 박사가 우한시에 와서 2차 감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 다였다. 그 이상으로, 그는 아무 말도 안했다.
결국 보건의학적인 우려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한시의 심각한 상황이 국가에 끼칠 영향때문에, 정치적 안정이 언제나 제일 먼저이기때문에, 우리 도시가 봉쇄된 것이었다.
유령 도시
우한시의 봉쇄는 최고 당지도부의 절박함의 신호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후베이성 및 시급에서는 피할 수 없는 조치였다. 사실 다른 성들과 도시들이 중앙에 후베이성에서 일어나는 상황, 우한시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기에, 우한 및 후베이성의 거의 모든 지역 봉쇄령이 이뤄졌단 얘기가 있다.
우한시에 처음으로 봉쇄령이 떨어졌지만, 이 조치는 전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질질 끌려가면서 마지못해 이뤄진 조치였다. 그 어떤 증거로도, 내가 알기로는, 윌리엄 셰프너 박사의 표현처럼 “규모면에서 놀랄” 조치가 아니었다. 혹자는 이 조치가 일종의 전시통제의 일종으로 이뤄졌다고 상상할지 모르지만 이는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아니었다. 조치는 1월 23일 새벽 2시에 내려졌지만, 공식적으로 오전 10시 이전까지 시행되지 않았고, 따라서 8시간동안 조치를 미리 들은 이들이 자기 차를 갖고 고속도로를 통해 탈출할 수 있었다.
우린 이 시점에 시를 탈출한 이들 중 상당수 – 일부 예측에 따르면 거의 백만명이 탈출했다고 한다 – 가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시로부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어서 치료를 받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한시 출신 환자들이 이를테면 상하이에서 성공적으로 치료받고 퇴원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이 짧은 봉쇄령 발표와 실제 시행 사이의 구간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우한 봉쇄령의 다른 측면은 그 성급함이다. 심지어 봉쇄가 이뤄진지 며칠이 지난 이 시점에도,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지 않았는데, 이를 통해 볼 때 발표 이전에 그 어떠한 준비도 없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봉쇄령이 시행되기 전에 떠난 백만명의 이재민들은 어디에 머물고 도와야하는가? 봉쇄기간동안, 식량, 식수 및 다른 기본적인 필수품들은 시민들에게 어떻게 공급해야하나? 의료진들은 적절한 치료를 위해 의약품 및 다른 필수품들을 어떻게 공급받을 수 있는가? 당국은 긴급한 수송 – 이를테면 의료진들의 이동이나 환자들의 병원 이송을 위한 수송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법과 질서는 어떻게 유지하는가? 당국은 이들과 많은 다른 긴급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하지 못했다.
이런 답변이 없는 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저 한 도시 전체가 끊기고 막힌 것이다. 방역이란 것은 그저 천백만명의 사람들이 도시에 갇힌 것 다름이 아니다. 그 누구도 어떻게 질서가 유지되고 어떻게 우리가 생존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게 후베이성 성도, 우한의 상황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이런 식으로 봉쇄당한 다른 도시들이 나빴으면 나빴지 상황이 덜할 것 같지 않다. 봉쇄된 14개 도시 중에, 계획이나 준비와 관련해서 달리 말할만한 사항이 있는 도시는 하나도 없다. 이들 또한 암흑속에서, 마치 고립된 섬처럼 집에 있는 무력한 삼천오백만명의 시민들일 것이다.
이런 조치의 결과는 이미 분명해지고 있다. 우한시에서만 이미 생필품 부족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물가는 통제불능상태에 이르렀다. 1월 23일 아침 봉쇄가 시행되었을 때, 정오에 이르러 야채 가격은 이미 급등했고, 500그람당 일부 품목은 수백 위안의 가격이 되었다. 당일 오후에 이르러선, 많은 슈퍼마켓들이 동이 나버렸다. 다행히, 춘절을 맞이해서 각 가구들이 생필품들을 쌓아놓는 시기이긴 하다. 허나 공급이 재개되지 않으면, 조만간 많은 가구들이 식료품 부족을 겪을 것이다.
다른 주요 문제는 주요 병원 및 일선 의료진들의 방호기구들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쓰나미같은 환자들을 대하고 있다. 후베이의 가장 좋은 병원 – 예를 들어 통지병원이나 Xiehe 병원조차 이런 기본적인 문제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일부 경우, 일선 의료진들은 지난 금요일 춘절 식사 –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식사 – 조차 못했다. 이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방호복이 일회용이어서 벗을 때마다 버려야하는데, 마스크마저 주말에 동났기때문에 의료진들이 마스크를 벗지 않았기 떄문이다. 더 심각한 상황은 일선 의료진들이 이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피로 속에 지쳐가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란 것이다.
또다른 이슈는 거의 백만에 달하는, 우한시를 벗어난 주민들이 사실상 거주할데도 없는 난민 신세라는 것이고, 다른 지방정부 및 지역민들의 불안감때문에 공격받을 것이란 점이다. 일부 경우에, 이들은 바이러스를 더 퍼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고, 다른 경우에, 이들은 난민들 및 환영받지 않은 사람들로써 심각한 취급을 받을 것이다.
봉쇄령이 내려진 우한시는 이미 유령도시란 느낌이다. 연말연시에, 폭죽소리도 들을 수 없고, 수십년간 이 도시에 살았지만 폭죽소리 없이 지나간 것은 정말 처음이다. 전체 도시는 조용하다. 대개 꽉 들어찬 도로들은 비어있고, 공공장소는 아예 접근할 수 없다. 누구도 회합하지 않고 있고, 어떤 공공활동도 불가능하다. 원자화된 개인들로써, 우리 집에 틀어박혀서, 텔레비젼을 보면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다.
이런 고요한 침묵속에서, 공포가 퍼지고 있다. 고위 관리들은 분명히 두려움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이거다. 봉쇄령이 떨어진 다음에, 이들은 아무런 비상계획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추후 계획에 대해서도 발표한 바가 없다. 지난 금요일 결정적인 시기에, 후베이성 병원의 어떤 의료진에게도 격려차 식사를 하던 뭐든 한게 아무것도 없다.
이들은 이렇게 하는 것만이 일선 의료진들을 격려하고, 이 불쌍한 도시에 갇힌 수백만 인민들에게 힘이 되준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용기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비겁함에는 이유가 있다. 왜냐면 두려움을 강화시킬 예들이 이미 널려있다. 1월 22일, 후베이성 상무부 부상 Huang Mouhong (黄谋宏)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판정을 받았다. 이 발표 이전에, 베이징으로부터 우한에 날라와서 이 질병이 “예방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다”라고 말한 Wang Guangfa는 베이징으로 돌아간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실상, 성급 및 시급 정부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보는데, 결국 거의 임시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이 비겁하고 무능한 정부들은 사실상 전시상황이 된 이 시점에서 책임을 질 요량이 없다. 이렇기에 대중은 깊은 우려와 불확실성에 잠겨있다.
1월 22일, 후베이성 국영 일간지 언론기자 Zhang Ouya (张欧亚)는 거의 분명 정신줄을 놓고 온라인에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한시는 당장 지도자들을 갈아치워야한다. (武汉必须当机立断换帅了)” 짧은 시간 동안 이 열변은 온라인을 달궜다. 마치 변이하는 바이러스처럼, 다른 밈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태어났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어로 guānzhuàng bìngdú (冠状病毒)라고 불리우는데, 동음이의어로 “official virus” (官状病毒) “벼슬아치바이러스”로 불리우며 정부와 지도층들의 비겁함과 무능을 성토하는 말이 되었다.
이런 식의 촌철살인 풍자에 씁쓸한 웃음을 억제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중국의 안정지향적 정치환경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다. 이 나라에선 그 어떤 것도 억제될 수 있다. Zhang Ouya의 온라인 성토는 금방 지워졌고, 후베이 매일 일간지 그룹의 당 지도부는 시당에 Zhang Ouya의 “잘못된 발언”에 “깊은 사과”를 한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한 해당 언론사는 Zhang Ouya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적절한 조치”에 돌입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시점에, 전염병이 발생한 우한시 Huana 수산시장에 대한 조사를 하는 와중에, Caixin Media의 Xiao Hui (萧辉) 기자가 4명의 보안요원에게 구타를 당했다. 중국의 가장 저명한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 Wang Heyan (王和岩)는 우한 료진 감염사례를 검증하기 위해 의사들과 접촉했으나 이들과의 면담이 거부되었다. 중국 질병 통제 예방 본부는 “의료진은 그 어떤 조건에서도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으며, 정보를 누출하지 말 것. 익명으로 보도하겠다는 기자의 약속에도 절대 인터뷰하지 말 것”이라고 명령을 내렸기때문이다.
내일은 어떨까? 여기 우한에서, 천백만명의 시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 극적 조치가 아니라, 투명성 그리고 실질적인 조치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