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파시즘의 정의

종종 정독하는 역사학자 Bret Devereaux의 블로그에서 글 번역해봅니다. 기계의 도움을 받은 거친 초벌번역이니,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하신 분들은 위의 링크를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대선 1주일 남았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될 분들이 있다면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자에게 허락을 받았습니다)


오늘 한 번 파시즘의 정의를 살펴보고, 이런 질문을 해보려고 합니다 – 짐작하셨겠지만 – 과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후보가 파시스트냐란 질문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업 정치 평론가로 전향하겠단 선언도 아니고, 이 블로그 휴지기가 끝났단 소리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글은 제가 쓰고 싶었던 에세이이고, 지금 이 포럼 외에는 다른 곳에서 이걸 공개할 시간이 없었기에 여기에 발표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도널드 트럼프의 최근 공언들과 공약들때문에 시의성이 많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정치학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인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공약한 것을 실행하려 시도합니다 – 그리고 트럼프가 현재 공공연하게 공약하는 것들은 실로 암울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분석하려는 질문의 요지를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저는 미국 공화당이 파시즘당인지 묻는 것이 아니며 (대체로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당신이 파시스트인지 논하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당신이 그렇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파시즘이라는 이념을 통상 사용하는 용례 (‘내가 싫어하는 것’)보다 더 정밀하게 사용하여, 그 맥락에서, 도널드 트럼프 본인의 발언과 행동을 놓고 볼 때 그가 파시스트의 정의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게 단순한 슬로건이나 단문 형식의 구호를 넘어서서, 세부사항까지 검토한 긴 글 형식으로 말입니다.

당장 일부 사람들은 제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에 대해 분노하고 “네 바닥에 나오지 말아라”라고 요구할 것이란 것을 압니다. 이에 대해 저는 투키디데스의 말, 역사와 역사가의 목적이란 “미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과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며, 인간사에서 미래는 과거를 반영하지 않더라도 닮을 수밖에 없다” (투키디데스 1.22.4)을 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 바닥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세금 정책이나 장기적인 국가간 전략의 역사적 함의를 논하고 싶지만, 지금 치르고 있는 이 선거는 그런 부분이 쟁점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과거 이런 류의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듣는 것이 거북하고 듣기 싫다면, 폴리비우스의 답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간에게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에 대한 지식이다”(폴리비우스 1.1.1).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교정해야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Reichstag_fire

1933년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일반적인 대화에서 사우론 암흑군주와 같은 수준의 악의 대명사가 되었기에, 인간사와 우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탈신비화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악당의 모습으로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후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많은 징후가 있었지만, 그들은 뿔달린 괴물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마법사가 아닌 인간이었기에, 사람들이 왜 그토록 어리석게도 이들에게 권력을 맡겼는지 –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관련자들이 파멸에 이르렀는지 – 물어보는 것이 가치가 있습니다.

전간기 독일(즉, 바이마르 독일)의 정치는 복잡하고 불안정했으며, 이것을 모두 논의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것입니다. 제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몇 가지 사항입니다. 첫째, 히틀러가 결코 유권자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포퓰리스트 권위주의자들에게 흔한 일입니다 – 항상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통상 자신들의 지지자들만을 대변할 뿐이며, 이들은 거의 항상 과반에 미달하는 집단입니다. NSDAP(즉, 나치당)는 1932년 7월 선거에서 37%의 득표율을 얻었을 뿐이고, 11월 선거에서는 33%로 득표율이 떨어졌습니다. 두 선거 모두에서 나치당의 득표율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공화파 중도 정당들(사민당SPD + 중앙당; 7월 34%, 11월 32.3%)과 비슷했고, 좌파의 총합(사민당SPD + 공산당KPD, 비록 KPD는 모스크바의 지시에 따라 나치당 대신 SPD를 견제하는데 집중했지만)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1933년 3월, 나치 돌격대원들이 거리에서 정치적 반대자들을 공격하고 반대파 신문들을 폐쇄하고 있을 때조차도, 나치는 겨우 43.9%의 득표율을 얻었을 뿐입니다.1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인들의 과반수가 그의 목표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요 지도자들, 특히 프란츠 폰 파펜이 히틀러의 끔찍한 수사들을 잘 다스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자들 때려잡는 곤봉으로요. 나치당이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933년 초기에 그들은 극단적인 수사들을 좀 자제하는 모양새를 취했는데, 특별히 히틀러의 총리 지명을 위해 재계 지도자들과 협상하며 반기업적 수사를 죽였습니다. 반유대주의적 수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지만, 독일의 군주제지지 보수우파(폰 파펜은 ‘자유주의 보수주의자‘가 아닌 반反민주주의적, 반反공화주의자였습니다)가 참고 같이 갈 수 있는 수준까지 목소리를 죽였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죠.

편한 핑계가 생기자마자 – 2월 제국의회 의사당 화재, 의회 회기가 아니었기때문에 정부 기능엔 아무런 영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던 사건이었지만, 이걸 기화로 히틀러는 먼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설득하여 제국의회 화재 칙령을 통과시켰고, 이를 통해 주요 정치적 자유를 중단함으로써 야당을 탄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칙령을 통해 KPD(독일공산당)와 SPD(사회민주당) 의원들을 많이 잡아가뒀습니다. 그 다음 1933년 3월 수권법을 제안하죠. 많은 야당의원들이 투옥된 상태에서, 통과를 위해선 보수 우파 가톨릭 중앙당의 지지만 있으면 되었습니다. 그는 중앙당의 존속 보장과, 가톨릭의 종교적 자유 보호, 자당 소속 공무원 직위 보장, 그리고 무엇보다 수권법은 비상한 상황에만 적용되는, 한시적인 법안이라는 점을 약속해서 법안 통과를 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그것도 거짓말이었습니다.

3개월 내에 모든 정치 정당들 – 그러한 보장을 받았던 중앙당을 포함하여 – 이 해산됐습니다. 첫 강제수용소는 그보다 빠른 3월에 설립했고요. 물론 ‘임시’ 조치들은 모두 영구화되었고, 일단 적들을 숙청한 후에는 그의 동맹자들도 숙청하기 시작했죠.

그보다 10년 전 벌어진 무솔리니의 권력 장악 과정은 물론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를 공유합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들의 집권 전까지 선거에서 성공적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이 참여했던 국민블록(Blocco Nazionale) 연합은 1921년 선거에서 겨우 19%의 득표율을 얻었을 뿐입니다. 대신, 1922년 10월, 무솔리니는 3만 명의 파시스트 무뢰배들과 함께 수도로 행진하여 정부 해산을 요구했을 때 당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부는 국왕(이탈리아는 당시 입헌군주제였습니다)에게 이 행진 해산 승인요청을 했지만, 빅토르 엠마누엘 3세 국왕은 파시스트들을 통제할 수 있고, 질서 회복과 사회주의자들 단속에 유용할 것이라고 믿어 이를 거부했고, 되려 무솔리니에게 정부 구성권을 줍니다.

이에 무솔리니는 의회에 자신에게 독재권력을 부여하는 법안 통과를 요구했습니다 – 딱 1년만이죠, 딱 1년만 전권을 주면 그 다음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집권한 후에 무솔리니는 자신의 파시스트 폭력배들인 검은셔츠단(Squadristi)의 폭력을 묵인했습니다. 자코모 마테오티(역주: 당대 이탈리아 사회주의 정치인)가 이 폭력을 고발했을 때, 그는 납치, 살해당했습니다. 무솔리니의 검은셔츠단에 대한 지지는 이들이 활개치며 반대파에게 폭력을 휘둘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테오티 살인자 중 세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무솔리니는 빅토르 엠마누엘 3세가 즉시 이들을 사면하도록 했습니다2. 폭력과 협박에 힘입어 다음 달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당이 선거에 압도적 승리를 보장하는 선거 제도 개정안, 아체르보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선거법안 통과를 위해 폭력과 협박을 동원했죠. 1925년 12월에 이르면, 무솔리니는 사실상 이탈리아의 민주주의 체제를 해체했고, 자신의 지위에 권력을 집중시키고 자신을 제거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두 가지 핵심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파시스트들은 다른 적(주로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하여 파시스트들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순진함 때문에만 권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보수 정치인들(미치 매코넬이나 린지 그레이엄 같은 유형)과 보수적인 기업 지도자들(일론 머스크 같은 이들)은 장래의 폭군이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고, 교육받지 못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러한 인물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통제할 수 있고, 더 ‘온건한’, 더 ‘기업 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리고 틀렸죠. 많은 이들이 자기의 어리석음에 목숨을 대가로 내놓아야했습니다(빅토르 엠마누엘 3세는 그의 왕좌로 대가를 치렀습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지도자가 되면서 폭군으로 변한게 아닙니다 – 처음부터 약속했던대로, 폭력적인 독재자가 되었고 – 그들의 나라를 완전하고 철저한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이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전혀 은밀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투쟁』은 대놓고 그런 소릴 하는 책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추종자들에게는 폭력을 약속하면서도 잠시 동맹을 맺는 이들에게는 말을 돌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권력만 주면 아무도 해치지 않겠다고(당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약속하는 파시스트를 경계하십시오 – 왜냐하면 그것은 물론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일단 이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들을 막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파시스트들이 민주적 절차와 법치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 그들은 집권 전에 이미 공개적으로 그렇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 일단 권력을 잡으면, 그들은 정부의 모든 권력을 자신들을 권력에 유지시키는 기구로 전환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하여 민주주의에서 독재로의 전환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22년 10월에 행진했고, 23년 11월에 선거법을 뜯어고쳤으며, 24년 12월에 이르러선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허울조차 버렸습니다. 딱 2년이 걸렸습니다. 히틀러는 더 빨랐죠: 1933년 1월에 총리로 임명되었고, 그해 3월까지 헌법상의 보호를 중단하고 아무런 근거없이 통치했습니다. 단 3개월에 일어난 일입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권위주의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순간은 권위주의자가 집권하기 **전**입니다. 일단 집권하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하고, 상당한 수준의 폭력 없이는 (그리고 상당한 폭력을 동원해도) 이들을 권좌에서 내리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바로 이 점때문에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됩니다. 대부분의 정치이념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결과로 판단하는 전략을 채택할 수 있습니다: “현 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한번 기회를 주고 그들이 더 잘하는지 두고보자. 만약 시원치 않으면, 다음에 다시 투표로 물러나게 하면 된다.” 하지만 파시스트와 다른 권위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다음 기회란게 없을 수 있기에 이 전략이 실패합니다: 파시스트들의 행동이 그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분명히 할 때쯤이면, 그들을 투표로 물러나게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시스트들이 말하는 것과 그들이 약속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고, 무엇보다 정치적 폭력과 권위주의에 대한 그들의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우파가 파시즘이란건 아닙니다 (좌파의 모든 것이 권위주의적 변형인 공산주의인 것이 아닌 것처럼요). 로널드 레이건은 파시스트가 아니었고, 조지 H.W. 부시나 조지 W. 부시, 존 매케인이나 밋 롬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자유주의 전통 내의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여기서 ‘자유주의’는 옛 제퍼슨-로크-워싱턴의 의미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은 파시스트가 아니지만, 걱정스러운 수의 사람들이 파시스트들과의 동맹을 통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프란츠 폰 파펜의 실수를 반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악마의 거래에서 승리하는 것은 오직 악마뿐입니다.

어떻게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시행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들을 들으시고, 그들이 한쪽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쪽 입으로는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한 청중에게는 폭력을 약속하고 다른 청중에게는 그들의 수사를 누그러뜨립니다. 하지만 자유의 전통 안에서 말하는 정치인들은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초에 폭력을 약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약속, 언론의 자유 중단 약속, 정치적 적들을 박해하겠다는 약속에 귀 기울이고, 그런 소리 하는 것들을 들을 때 정말 그럴 것이라고 믿으십시오.

https://en.wikipedia.org/wiki/March_on_Rome

자, 이제 우리의 주요 질문에 대해 논할 시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무엇을 약속하고 있으며 그는 파시스트입니까?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물론 전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가장 오래 재직한 비서실장(그리고 은퇴한 해병대 장군)인 존 켈리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트럼프의 정책이 시행되는 것을 보기 위해 일했고 아마도 그 중 많은 것에 동의했을 것입니다만, 도널드 트럼프가 파시스트이며 “확실히 독재자적 접근방식을 선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다른 전직 트럼프 보좌관들도 공감하는 입장이며, 트럼프의 전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턴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다만 볼턴은 트럼프가 진정한 파시스트가 되기에는 너무 우매愚昧하다고 덧붙였습니다(참고로 더 영리한 사람들이 무솔리니와 히틀러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었습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트럼프가 직접 선택한 국방장관으로 일한 제임스 매티스(역시 은퇴한 해병대 장군)는 그를 “우리 헌법을 조롱하는 자”라고 묘사했습니다. 그의 다음 국방장관인 마크 에스퍼도 이에 동의하며, 파시스트의 정의를 찾아보면 “트럼프가 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시절 합참의장이었던 마크 밀리는 그를 “뿌리 끝까지 파시스트”라고 묘사했습니다. 트럼프가 직접 선택한 전 부통령은 그를 지지하기를 거부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1월 6일에 제가 행사한 헌법상의 의무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트럼프가 펜스에게 선거를 훔치라고 요구했고 펜스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을 공손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실제로, 전례 없이 많은 수의 도널드 트럼프의 가장 가까운, 직접 선택한 보좌관들과 조언자들이 그를 지지하기를 거부했으며, 많은 이들이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위험하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습니다. 그 어떤 대통령에게 있어서도 그토록 가까운 참모나 관료가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트럼프의 참모들 중 거의 절반이 그렇게 거부했습니다.

물론, 남들이 하는 말을 어찌 믿겠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직접 선택한 사람들, 도널드 트럼프와 긴밀히 일한 사람들이라도요. 자, 도널드 트럼프 자신과 아마도 그가 선택한 부통령후보 J.D. 밴스가 한 말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해봅시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입니까?

정의가 필요하겠죠. 파시스트란 무엇인가. 이 정의가 의미가 있으려면 파시즘은 “내가 싫어하는 정치”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여러 정의가 있지만, 우리는 영어 사전의 간단한 정의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a populist political philosophy, movement, or regime (such as that of the Fascisti) that exalts nation and often race above the individual, that is associated with a centralized autocratic government headed by a dictatorial leader, and that is characterized by severe economic and social regimentation and by forcible suppression of opposition

"(1) 국가와 종종 인종을 개인 위에 높이는 포퓰리스트적 정치 철학, 운동 또는 체제(파시스티와 같은)로, (2) 독재적 지도자가 이끄는 중앙집권적 독재 정부와 연관되며, (3) 엄격한 경제적·사회적 통제와 (4) 반대파의 강제 진압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우리는 트럼프의 수사와 그의 약속들을 이러한 관점들에 비추어 평가할 수 있습니다:

  1. 국가와 종종 인종을 개인 위에 높임

-> 해당됨

  1. 독재적 지도자가 이끄는 중앙집권적 독재 정부와 연관됨

-> 해당됨

  1. 엄격한 경제적·사회적 통제

-> 해당됨

  1. 반대파의 강제 진압

-> 해당됨(Check)

자, 이를 통해 볼 때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입니까? 본인이 한 말로 판단하자면, 그렇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당신에게 도널드 트럼프가 파시스트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 그리고 거의 다른 어떤 점에서도 아닌 – 도널드 트럼프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에 제게 도널드 트럼프가 파시스트인지 물었다면, 저는 아니라고 했을 것임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20년 10월에도 아니라고 했을 것입니다. 권위주의적 성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파시스트는 아니라고 했을 것입니다.5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수사는 변했고, 그것도 모든 차원에서 그를 확실히 이 범주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파시스트가 되었고, 그가 우리에게 그것에 대해 말할 때 – 우리는 그를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전적 정의는 너무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이 사용할 만한 더 신중하고 자세한 정의가 있어서, 그것을 기준으로 이데올로기로서의 트럼프주의가 파시스트인지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트럼프주의는 파시즘의 한 형태인가?

그리고 실제로 그런 정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파시즘의 분류법은 움베르토 에코가 그의 에세이 “원류 파시즘”에서 제시한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학자들이 좋아하는 대부분의 것들처럼, 이것은 복잡하고 약간 모호합니다. 에코는 파시즘이 반지성적이고 근본적으로 감정적(합리적이기보다는)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모호한’ 집합이며 쉽게 분류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에코가 지적하듯이, 파시즘이라는 집합은 “abc bcd cde def”와 같은 시리즈와 비슷한데, 여기서 모든 요소들이 분명히 하나의 종류를 이루지만 현실에선 핵심 요소들이 이리저리 재조합되어 있어 파시즘을 이루는 분명한 필수조합을 식별하기는 대개 쉽지 않습니다.

자, 독자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모호한 정의가 싫으시면, 위로 스크롤해서 트럼프의 수사들을 훨씬 더 딱딱한 정의에 견주어 어떤지 보시면 됩니다.

어쨌든 이러한 모호성때문에 에코는 단일 정의 대신 14개의 요점을 제안하는데, 이것들이 집합적으로 파시즘의 ‘유형 집단’을 구성합니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파시즘으로 인정되기 위해 모든 요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더 많은 기준을 충족할수록 그 정의에 더 확실히 부합합니다. 마찬가지로, 개별 요점들도 모호하거나 경계선상에 있을 수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누적된 적합성입니다 – 결국, 대부분의 이데올로기들은 이러한 속성들을 사실상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속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몇 가지 더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실제로 그 틀에 꽤 잘 맞습니다. 우리는 파시즘/비파시즘의 경계선을 어디에 그을지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지만, 먼저 그 기준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유는 곧 분명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단순히 ‘트럼프’ 자신만이 아니라(그것은 위에서 다뤘습니다), 그를 둘러싸고 형성된 이데올로기인 트럼프주의, 그의 운동을 말합니다. 트럼프 자신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아무도 혼자서는 통치할 수 없습니다 – 그는 행정부를 구성해야 할 것이며(그리고 그는 확실히 기존의 공화당원들로는 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입니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트럼프와 그의 동맹자들을 움직이는 이데올로기, 예를 들어 헤리티지 재단이 수천 개의 이력서를 검토할 때 찾고 있던 종류의 세계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내 목표는 외부인들이 트럼프주의를 어떻게 보는지가 아니라, 트럼프와 그의 (현재) 측근들이 자신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기반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을 그들이 스스로 한 말을 통해 이해하려고 합니다.

  1. 전통의 숭배, 특히 이상화된 과거의 다양한 반복을, 심지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들조차도 결합하는 혼합주의적 전통주의. 트럼프주의의 핵심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분명히 향수적이면서도 혼합주의적입니다 – 미국이 언제 위대했는지, 어떻게 그곳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기 때문에6, 청취자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집단을 제거하거나 원하는 변화를 되돌리는 것을 스스로 채워넣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전환점이 세계화와 깨어있음이었나요(터커 칼슨의 주장처럼), 아니면 미국의 ‘기독교 정체성’ 상실이었나요(많은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혹은 여성 참정권이었나요(J.D. 밴스의 후원자인 피터 틸의 주장처럼), 아니면 자녀 없는 고양이 아줌마들이었나요(J.D. 밴스 자신의 주장처럼), 아니면 실제로 독립선언서의 아이디어였나요(트럼프주의 지식인 패트릭 디닌의 주장처럼). 에코가 지적하듯이, 그 혼합주의적 구조는 파시즘에서는 정상적인 것입니다(반면 다른 전통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은 종종 덜 혼합주의적이고 어떤 전통을 따르는지에 대해 더 구체적입니다). 해당됨(Check).
  2. 근대성의 거부, 특히 에코의 생각으로는 “계몽주의, 이성의 시대를 거부하는 것… 이는 근대적 타락의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위 단락의 예시들을 쉽게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 여성 참정권을 한탄하고, 현대 국제 무역과 현대 문화(‘깨어있음’이든 단순히 미혼이고 자녀가 없는 여성들의 존재든)를 한탄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성 거부는 트럼프주의의 지적 분파에서 ‘반자유주의적’ 또는 ‘탈자유주의적’ 움직임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 에이드리언버뫼울 Adrian Vermeule, 커티스 야빈Curvis Yarvin (J.D. 밴스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인물들; 밴스는 자신을 “탈자유주의자“라고 묘사했습니다)과 이미 언급한 패트릭 디닌Patrick Deneen과 로드 드레허Rod Dreher (현재 탈자유주의적 헝가리에서 자발적 망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드레허는 J.D. 밴스를 긍정적으로 “미국의 오르반주의“를 대표한다고 묘사하는데, 이는 공공연히 반자유주의적 권위주의 헝가리의 통치자(역주: 다음 글 참고)를 가리킵니다) 같은 사상가들 말입니다. 이 사상가들에게 있어서, 미국의 실험이 잘못된 시점은 FDR의 뉴딜이나 오바마의 대통령직이 아니라, 건국 당시, 심지어 건국 이전입니다: 문제는 자유주의 자체였습니다. 존 로크가 주창하고 우리의 건국 문서에 담긴 개인의 자유라는 이상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주장은 트럼프의 유세 연설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 않지만, 자신을 지식인으로 여기고 공공연히 탈자유주의자인 J.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것은 트럼프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이 요소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해당됨(Check).
  3. 행동을 위한 행동의 숭배, 이는 에코에게 있어 실제로는 지성주의, 사고나 고려의 거부, 전문가, 지식인, 대학에 대한 경멸을 의미합니다: 생각하며 주저하지 말고 그저 결행하라, 그리고 사고하는 자들을 증오하라. 여기서 물론 우리는 트럼프가 자신의 “직감”을 자신의 조언자들보다 더 신뢰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구의 두뇌보다도” 더 신뢰한다고 말이죠. 또한 그가 팬데믹 동안 자신의 전문가들과 다투는 습관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J.D. 밴스가 “대학들이 적”이라고 선언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해당됨(Check).
  4. 반대는 곧 반역. 이는 도널드 트럼프란 개인에 대한 우려로 거부하는 Charlie Sykes, Mitt Romney, David French, Liz Cheney, Dick Cheney, Jonah Goldberg, Bill Kristol, Adam Kinzinger 등과 같은, 이 문제 말고는 가장 완고하고 원칙적 보수주의자들을 이 운동이 대우하는 방식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피즘이 내부의 반대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당에서 쫓겨나거나 보수지(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와 같은)에서 추방되었습니다7. 현 시점에서 트럼프 집권 때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는 매우 보수적인 공화당원으로 남아있고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집회보다 해리스 집회에서 더 따뜻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리즈 체니는 해리스와 마주 앉아 해리스후보와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트럼프는 자신을 결국 지지한 니키 헤일리와도 선거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해당됨(Check).
  5. 차이에 대한 두려움. 이는 버락 오바마가 외국에서 태어났다는 거짓 주장으로 시작하여, “무슬림 금지” 약속으로 발전했고, 아이티 이민자들에 대한 거짓말과 이민이 “우리 나라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이는 비전통적인 성별 표현에 대해 깊은 적대감을 보이는 운동이며, 물론 이는 더 많은 미국인의 가족 패턴이 자신의 것과 같아야 한다는 밴스의 신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해당됨(Check).
  6. 좌절된 중산층에 대한 호소. 이는 전체 운동에서 가장 잘 기록된 부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들이 보여주듯이, 트럼프와 트럼피즘의 핵심 지지층은 반드시 가장 가난한 미국인들이 아니라, “뒤처진 지역의 엘리트… 잘 살지 못하는 지역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지위의 부재가 아닌 지위 상실을 두려워하는 유권자들로, 이는 보트 퍼레이드와 다른 값비싼 정치적 헌신의 과시에서 드러납니다. J.D. 밴스는 “포퓰리스트이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 이러한 호소에 대해 매우 명시적이며, 중산층의 좌절감의 원인이 자유무역과 이민이라고 주장합니다8. 해당됨(Check).
  7. 음모에 대한 집착. 트럼프의 초기 부상에서 큐어넌의 두드러진 존재감과, 이후 이를 대체한 2020년 ‘도둑맞은’ 선거에 대한 근거 없는 음모론을 고려하면 이 또한 쉽게 확인됩니다. 후자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퍼뜨리고 있으며, 이는 그의 핵심 측근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음모론적 사고는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이 우크라이나의 비밀 서버에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과, 물론 오바마의 시민권에 대한 출생지(birther) 음모론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때로는 이러한 음모론들이 트럼프에 의해 공개적으로 홍보되고, 때로는 그를 중심으로 응집되지만, 이는 이전에 좌파 성향이었던 음모론조차 트럼프의 이데올로기 진영으로 쏠리게 되는 “괴짜 재정렬“을 만들어낼 정도로 항상 존재합니다. 해당됨(Check).
  8. 영원한 적의 상상할 수 없는 강함/약함. 이는 복잡한 개념이지만, 파시즘은 동시에 너무 강한(따라서 파시스트 강자의 힘으로 물리쳐야 하고, 그들의 지속적인 존재는 지속적인 동원과 권위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는) 동시에 퇴폐적이고 약한 ‘적’을 만들어냅니다: 나치는 유대인들이 인종적으로 열등하고, 약하고, 비겁하다고 보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세계의 가장 강력한 모든 국가들을 비밀리에 통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피즘에서 이의 가장 명확한 버전은 ‘딥스테이트'(때로는 ‘늪지’)입니다. 이는 트럼프가 물리쳐야할 만큼 강력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당선을 막을 만큼 강력하지 않은 존재로 묘사됩니다. 또는 정부 관료, 학계, 언론인들의 혼합체로 자주 규정되는 ‘워크이즘’과 ‘급진 좌파’일 수도 있습니다(커티스 야빈 – J.D. 밴스가 인정한 영향을 준 인물 – 은 이를 “대성당”이라고 부르고 언론인들과 학계로 정의합니다)9.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기만적으로 강하면서도 약한 적은 그저 모호한 “그들“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만들어진 적은… 실제로 그저 유대인들입니다. 해당됨(Check).
  9. 삶은 영구적인 전쟁. 에코가 말했듯이, “삶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투쟁을 위해 삶을 사는 것”입니다. 특히 트럼피즘이 외부 정복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에 이를 파악하기는 더 어렵지만(살라자르(역주: 포르투갈의 독재자)와 프랑코(역주: 스페인의 독재자)를 보면 이는 실격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이 모티프는 트럼프의 “우리는 너무 많이 승리해서, 여러분이 승리에 지칠 수도 있고, ‘승리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니다, 우리는 계속 승리해야 하고, 더 많이 승리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라는 말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더 넓게 보면, 2016년 트럼프의 승리와 4년간의 대통령직이 해결하기로 했던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지 않습니다. 결국 2020년에도 장벽은 건설되지 않았고, 늪지는 배수되지 않았지만 (역주: 워싱턴 기득권층의 부패는 일소되지 않았지만), 이는 실패의 징후가 아니라 더 많은 투쟁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트럼프의 수사 – “우리는 지옥에 갈 것처럼 싸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지옥처럼 싸우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나라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는 정치를 투쟁으로 규정합니다(물론 많은 정치적 수사가 이렇게 합니다만, 이는 제게 짜증나는 일입니다). 더 넓게 보면, 트럼피즘이 본질적으로 놀랄 만큼 다양성을 지닌 국가에서 현대성과 다원주의 사회의 힘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사실상 모호한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투쟁을 요구합니다. 해당됨(Check).
  10. 약자에 대한 경멸. 도널드 트럼프는 장애가 있는 기자들을 좋아하지 않고, 포로가 된 군인들을 좋아하지 않으며, 부상당한 군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의 연설은 대신 강함을 보여줄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의 반대자들을 약하다고 공격합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자신이 매우 똑똑하다(‘정신적으로 강하다’고 할 수 있죠)고 주장하면서, 그의 반대자들은 ‘낮은 IQ‘(‘정신적으로 약하다’)를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반영하듯, 그의 지지자들은 나이 들고 다소 비만인 트럼프를 실제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날씬한 문자 그대로의 강자로 묘사하는 엄청난 양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더 넓게 보면, 이는 연민에 대한 파시스트적 경멸 – 약자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태되어야 한다 – 로 이어져 난민 대우, 외국 원조가 “어리석다”는 믿음, 그리고 일반적으로 미국이 어떤 국가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또는 도널드 트럼프)이 구체적인 이익을 받을 때만 그 국가를 돕는 거래적인 외교 정책 비전으로 확장됩니다. 해당됨(Check).
  11. 영웅주의 숭배. 이는 아마도 14개 항목 중 가장 덜 발달된 요소이지만, 여기에서도 우리는 예시가 없지 않습니다. 카일 리텐하우스Kyle Rittenhouse를 영웅적 인물로 격상시킨 것(전 대통령과의 만남과 청년 지향 보수/트럼프주의 조직인 터닝-포인트 USA의 강연 투어 포함)이 명확한 예시로 보입니다. 하지만 훨씬 더 강력한 예시는 1월 6일 ‘정치범들’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신화입니다. 트럼프는 국회의사당 내부에서 장벽을 돌파하려다 총에 맞은 애슐리 배빗Ashley Babbit을 칭찬하고, 체포되어 범죄 혐의로 기소된 이들을 “전사들”, “양심수들”, “믿을 수 없는 애국자들”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J6 교도소 합창단”과 함께 “모두를 위한 정의“라는 제목의 “성조기”를 녹음했고, 이를 일부 집회의 오프닝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는 1923년의 실패한 나치 쿠데타인 ‘뮌헨 맥주홀 폭동‘이 나치 신화에서 신성한 사건이 되어, 신입 대원들이 폭동 때 들고 다녔던 깃발인 블루트파네(혈기)를 만져야 했던 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해당됨(Check).
  12. 남성다움(마치스모), 에코가 지적했듯이 이는 “여성에 대한 경멸”과 “비표준적 성적 습관에 대한 비난” 모두를 포함합니다. 마치스모는 악명 높은 액세스 할리우드 녹음(“그들을 잡아…”)에서부터 여성들에 대한 긴 목록의 대상화하는 발언들, 그리고 물론 성희롱과 성폭행의 긴 역사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의 페르소나의 지속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의 행동 이상입니다. 이는 이데올로기의 일부입니다: 터커 칼슨은 최근 트럼프의 권력 복귀를 “아빠…그리고 그는 화가 났다”가 집에 와서 “네가 나쁜 어린 소녀였고 지금 강력한 체벌을 받게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으로 특징지었는데, 이는 단순히 이 비유를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트럼프 대통령직의 장점이 좋은 일을 할 것이라는 점이 아니라, 단지 칼슨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점이라는 것을 주목하세요). 칼슨은 2022년 “남성의 종말” 다큐멘터리처럼 이런 식의 발언을 계속해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밴스가 자녀가 없는 여성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한 발언들 –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더 사회병리적”이고 “가장 정신이 나가있고 가장 정신병적”이며, 폐경기 이후 여성의 전체 목적”은 손주를 키우는 것을 돕는 것이라는(밴스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동의한) 발언 등이 있습니다. 해당됨(Check).
  13. 선택적 포퓰리즘: 파시즘은 ‘인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일부 인민만을 대변하며 민주적이고 다수결 원칙을 따르는 시스템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대신 지도자가 공동의 의지를 전달하는데, 이는 실제 인민의 투표와 모순되더라도 인민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집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반복적으로 자신이 대다수의 – 종종 닉슨의 구절인 “침묵하는 다수“를 빌려와서 – 미국인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며, 그의 군중 규모를 강조하지만, 아직 한 번도 득표율에서 승리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근접하지도 못했습니다. 선거인단 74표와 일반투표 4.5% 차이로 2020년 선거에서 패배했음에도, 그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렇게 주장했고,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파시스트적 이념적 틀에서는 투표자가 아닌 지도자가 인민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작동하려면,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진정한 미국인’이 아닌 것으로 인민에서 제외되어야 하며,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들이 투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이는 트럼프와 연계된 헤리티지 재단이 메아리치고 있지만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물론 정치적 반대를 ‘진정한 애국자들’이 아닌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매우 기꺼이 하고 있습니다. 해당됨(Check).
  14. 뉴스피크, 에코는 이를 단어의 의미를 바꾸는 것, 종종 그것들을 뒤집는 것으로 식별하지만, 더 넓게 보면, 저는 에코가 여기서 오웰이 그의 유명한 구절에서 요약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은 당신에게 당신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은 증거를 거부하라고 말했다. 그것이 그들의 최종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명령이었다.” 따라서 1월 6일 폭동 참가자들은 “양심수(정치범)“이 되고, 174명의 경찰관이 부상당한 폭동 자체는 “사랑의 날“이 되며, 트럼프가 명백히 패배한 선거는 “도둑맞은 선거”가 되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그의 근소한 승리(일반투표에서는 패배했음에도)는 “압도적 승리“라고 묘사됩니다. 소박한 취임식 군중은 역대 최대 규모가 되고공식 사진들이 이에 맞춰 편집됩니다. 허리케인 도리안의 경로에 대한 잘못된 진술(알라바마를 강타할 것이라는)은 지도에 매직으로 수정을 가해서라도 ‘사실’이 되어야 했습니다. 해당됨(Check).

14개 항목 중 14개가 모두 해당됩니다. 일부는 다른 것들보다 더 명확하고 강한 정합성을 보이지만, 모든 요소가 상당한 정도로 존재합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이는 예를 들어 14개 중 10개나 12개를 충족하는 정권도 여전히 일반적으로 파시스트로 간주될 수 있는 종류의 분류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트럼피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준에서 트럼피즘은 14개 모두를 충족합니다.

따라서, 네, 이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스펙트럼 상에서 그것이 속한 곳을 사실의 문제로서 식별한다는 의미에서 파시스트로 정당하게 정의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입니다.

1932년

그러므로,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입니다. 그는 반대파에 대한 폭력적 탄압과 같은 파시스트적인 일들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트럼피즘’이라고 부른 그가 이끄는 이데올로기적 운동은 이 이데올로기의 가장 일반적인 분류법의 모든 점에서 부합하며 매우 분명하게 파시즘의 한 종류입니다.

이런 분석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먼저, 공화당 전체가 파시스트이거나 트럼프의 모든 지지자가 파시스트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합니다. 저는 공화당원이나 트럼프 지지자들 많이 알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의 성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왜 ‘코를 막고’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것을 고려하는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들의 거의 대부분은 이것이 마지막 라운드가 아닐 것이며, 4년 후에는 이러한 문제들, 이러한 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공화당원으로 트럼프를 교체할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들은 정책, 세율 등의 측면에서 다음 선거를 위한 입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그러한 사고방식에 대해 경고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았듯이, 그것이 파시즘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우리가 보여주었듯이,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 운동을 이끄는 파시스트 지도자입니다. 그의 첫 임기에서, 트럼프의 행정부는 지금 그의 진정한 본성에 대해 공화국에 필사적으로 경고하려 하고 있는 위에서 인용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고 제약받았습니다 – 그들은 두 번째 임기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트럼피스트 파시스트 운동의 일부인 헤리티지 재단은 지난 4년 동안 연방 공무원(정치적, 임의 임명직이 아닌)의 거대한 부분을 해고하고 트럼프의 충동이 그렇게 제약받지 않도록 현대 미국의 브라운셔츠들로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수천 개의 이력서를 검토하며 준비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대통령으로서, 트럼프는 – 그가 약속했듯이 – 1월 6일 폭동 참가자들을 사면하여 그의 폭력적인 거리 군인들을 다시 거리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는 사전에 검증된 브라운셔츠들로 채워진 법무부를 ‘반대’ 언론에 대항하도록 – 그가 위협했듯이 – 돌릴 수 있으며, 동시에 그를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소유주들의 플랫폼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그가 사면을 약속한)이 그의 정치적 라이벌들을 위협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묵인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의 정부는 불법 이민자들을 위한 거대한 구금 캠프를 설치하고 – 아마도 ‘우연히-의도적으로’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선호하는 집단들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원류-파시즘”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누군가가 세계 무대에 등장해서 ‘나는 아우슈비츠를 다시 열고 싶고, 검은 셔츠들이 다시 이탈리아 광장을 행진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면 우리에게는 훨씬 더 쉬울 것이다.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라고 경고한 것을 감안할 때 현재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실제로 지금, 우리가 보고 들을 눈과 귀만 있다면 트럼프주의는 정말 그렇게 단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해합니다. 사람들은 백주대낮에 그런 소릴 듣고, 믿고 싶어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이러한 시도가 필연적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미국 시스템은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이탈리아 왕국보다 이런 종류의 장악에 훨씬 더 회복탄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복탄력적이라는 것이 면역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 그러한 시도는 성공할 수 있으며, 설사 실패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결국, 파시스트들은 거의 폭력 없이 권력에서 물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 이 파시스트는 지난번에도 비폭력적으로 물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어느 시점에서든, 어느 누구에 의해서든 이것이 폭력으로 이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듯이, 반대파를 폭력으로 이기려고 함으로써 ‘스타시스'(정치적 폭력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 를 ‘이기려는’ 시도는 단지 사회 구조를 찢어놓을 뿐인 패배하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아직 1933년이 아닙니다. 아직은 1932년입니다: 기차가 아직 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파시스트의 권력으로 가는 길을 폭력 없이, 단지 투표로 막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나서 4년 후에 우리는 새로운 지도력의 새로운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 미국의 정치적 의견이 변화하는 방식을 고려하면 거의 확실히 새로운 보수적 지도력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정당이 어떻게 되어버렸는지에 경악한 보수주의자들을 위해, 저는 당신이 그토록 강하게 동의하지 않는 카멀라 해리스에게 투표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만큼이나 보수적인 동료 시민들이 트럼프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입장을 취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트럼프는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해 군대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해리스는 그녀의 내각에 공화당원들을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절대로 민주당원에게 투표할 수 없다면, 다른 이름을 적어 넣거나 투표용지 상단을 비워두세요. 하지만 이것에 당신의 이름을 서명하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그 시점부터, 당신은 외면하기로 선택할 수는 있지만, 당신이 몰랐다고는 결코 다시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10 그리고 지금 당신은 많은 이유와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만약 당신이 이 파시스트에게 당신의 이름을 서명하고 그 결과로 파시스트 정부가 권력을 잡게 된다면… 당신의 많은 이유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프란츠 폰 파펜이나 빅토르 엠마누엘 3세 또는 나치당이나 블로코 나치오날레 투표자들이 무엇을 걱정했는지 또는 그들의 중요한 이슈가 무엇이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파시스트 정부가 권력을 잡자… 그들은 파시스트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 대해 중요했던 전부였습니다.

당신에 대해 그것이 중요한 전부가 되도록 하지 마세요. 이 지난 세기에 우리가 최소한 무언가는 배웠으며 과거의 실수를 끝없이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세요.

  1. 물론 의원내각제 제도하에서, 과반 자체는 드문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33년 11월에 이르러 나치당이 다른 모든 당을 불법화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에 이르는 그 어떤 시점에서도 이들이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만합니다. 과반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일당독재의 길을 향해 갔습니다. ↩︎
  2. 덧붙여, 이 지점에서 ‘그놈이그놈’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가 1월 6일 폭동 가담자들을 사면하겠다는 약속과 민주당이 조지 플로이드 시위 중 폭력행위자들을 기소하기를 꺼리는 것이나 다 그게 그거다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의 문제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이든대통령은 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를 비난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폭력 시위자에 대한 기소를 중단하지 않았고 계속 조사하고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민주당 집권 주정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뉴욕의 민주당 시장, 밥 메넨데스 상원의원, 헨리 쿠엘라 하원의원, 그리고 물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을 포함하여 법을 어길 때 정치적 우군들을 기소할 의향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근거들을 보면 피장파장 논리는 무너집니다. 한 후보는 자신의 지지자들의 범죄를 사면하겠다고 약속하고, 다른 후보는 동등하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합니다. ↩︎
  3. 트럼프가 이민자들이 강력범죄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씁니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미국태생보다 이민자들이 훨씬 낮은 강력범죄율을 보여줍니다. 나치 혈통주의가 유태인들을 중상모략한 것처럼, 이런 인종주의 또한 거짓말에 근거해있습니다. ↩︎
  4. 여기서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라면, 이런 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 이 법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재판 없이 추방시키겠다는 것입니다. ↩︎
  5. 솔직히 말하자면, 제 평생 동안 도널드 트럼프를 제외한 어떤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도 파시스트나 공산주의자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시는 히틀러가 아니었고 (그의 외교 정책이 항상 좋지는 않았지만), 오바마는 스탈린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런 단어들을 쉽게 던지는 사람이 아니며, 그런 적도 없습니다. ↩︎
  6. 실제로, SNS에서 트럼프 지지하는 우익계정들 사이에서조차 대체 이 이상적인 과거란 것인 고대 로마였는지, 십자군전쟁시절이었는지, 1950년대였는지, 1980년대였는지, 1990년대였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습니다. 유일하게 이들이 동의하는 것은 그 이상이 현재가 아니라는 사실 뿐입니다. ↩︎
  7. 이를 해리스 바이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좌파들, 리버럴들, 심지어 반트럼프 공화당원들이 현재 민주연합에 속해있는 것과 비교해보십시오. ↩︎
  8. 이 점에 동의하는 경제학자들은 드뭅니다. ↩︎
  9. 야빈Yarvin의 글은 링크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아니면. 이 팟캐스트가 그의 이데올로기를 잘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
  10. William Wilberfor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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