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ver 21

목요일날, 실험실에서 여름방학동안 간단히 실험을 배우러 온 중국계 학부 1학년생(19살) 친구가 한참 사수인 중국인 박사과정생(5년차, 1979년생)이랑 얘기하더니, 갑자기 나한테 와서 “제일 돌아가고 싶은 나이”를 묻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되물었다. 그게 무슨 얘기냐고. “지금까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상승기, 가장 높은 상태에 있는 시기에 대해서 사람들끼리 얘기했는데, 대개는 21살이라고 하는데, 지금 사수는 18살이라고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영어 해독능력이 딸리지만, 아마도 대강 “인생의 황금기를 언제로 보는지?”라는 물음 정도일게다.

조금 대화하다보니, 대강 이제 내년 1월쯤 만 스무살이 될, 이제 내가 보기에는 참 앳띤 (허허…내 나이 얼마나 먹었다고… 하지만 정말 어려보였다) 여학생이 스물한살을 설레어하니까, 꼭 꼬아 답하길 좋아하는 실험실 “병장”님께서, “아니다, 니 황금기는 이미 지나갔다”라고 하며 놀렸나보다. 여기에 제법 조리있게 반박하기를,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스물한살만큼 팽팽 돌아가는 시기가 없고,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꼬아 얘기하는 실험실 병장님 빼고) 모두 “다시 스물한 살, 즉, 그만큼 팽팽 머리를 굴리고 몸도 뻗어가는 시기”를 그리워한다고. 그렇게 가벼운 말싸움이 한 벤치를 건너 나한테까지 왔다.

뭐라고 답할까. 사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지도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영어로 답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 대체 난 가져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싱싱한” 청춘 앞에서 그냥 질문에 숙고하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답했다.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21살이든, 18살이든, 인생의 한 단면을 뚝 짤라서 그리워하고 그러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왜냐하면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내 21살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그 맥락 속에서 재구성된거니까. 네가 물어본 사람들 중에서 21살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답하는 것을 들어봤니? 아마도 다들 21살을 한참 지난 이들이 회고하는 와중에 말한 것들일 걸.
물론 나도 인정해. 나도 21살에 가슴 설렐 정도로 지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충만해있었어. 하지만 그만큼 그 때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불안감도 본능적으로 느꼈던 시기였던 것 같아. 지금이야 기왕에 여기까지 걸어왔기때문에, 그 때의 활기찬 기억들만 남아서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삶이라는 것 그 각각의 단면이 다 의미있는 것 아니겠어. 괴롭고 힘들었던 시기,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스러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게 내 있는 그대로의 항해의 일부, 지나가야할 표지들이지, 거기에 머물 일은 아니잖아. 심지어 만약 ’21살’인 그 상태로 계속, 영원히 살라고 한다면, 적어도 나한텐 끔찍할 것 같아.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로, 가장 충만하기에, 가장 전력으로 쥐어짜며 달려야할테니까.”

……아마 연구실에서 왕따되지 않을까.

p.s. : 그 질문을 받고 제일 먼저 떠오른 기억은 <걸리버 여행기>의 Balnibarbi국의 struldbrug이었다. 물론 이들은 노화를 피할 수 없었지만, 한참 숙고하지 않고 답하고 난 뒤에, 정말로 인간이 “늙지 않고” 줄곧 그 상태에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끔찍한 생각이 먼저 드는걸까.

This entry was posted in Happen To.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