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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1/15 왕의 남자 (2)
  2. 2006/01/14 이(爾) (3)
  3. 2006/01/08 왕의 남자
조선왕조실록 예종, 성종실록과 연산군일기편을 읽었다(바로 아래 blog참고).

흥미롭게도 "김처선"이라는 환관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어, 해당 기사가 실린 연산군일기의 연산11년 4월 1일조를 검색해봤다(인터넷의 힘! 인터넷으로 국역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걸 이제사 알았다-_-).

환관(宦官) 김처선(金處善)을 금중(禁中)에서 죽이고, 아울러 그 양자 이공신(李公信)도 죽였다.

전교하기를,

“내관(內官) 김처선이 술에 몹시 취해서 임금을 꾸짖었으니,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고 그 집을 못 파고 그 본관(本貫)인 전의(全義)를 혁파(革罷)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김처선의 친족은 칠촌까지 김계경(金季敬)의 예에 따라 정죄(定罪)하고, 그 부모의 무덤도 다른 죄인의 예에 따르라.”

하고, 어서를 정원에 내려,

“아비가 임금을 꾸짖은 〈죄로〉, 그 자식에게까지 미침이 옳은가? 빨리 숨김없이 대답하라. 내가 잘못 시행하지 않았음은 증거가 환관(宦官)들에게 있거니와, 술 취한 중에 잘못 죽임은 임금으로서 차마 하지 못하겠다.”

하매, 승지들이 아뢰기를,

“처선의 죄는 용서하지 못할 바이오니, 그 자식에게 미친들 무엇이 불가하리까?”

하였다.

처선의 죄는 바깥 사람들이 알지 못하나, 사람들이 말하기는 ‘왕이 처선에게 술을 권하매, 처선이 취해서 규간(規諫)하는 말을 하니, 왕이 노하여 친히 칼을 들고 그의 팔다리를 자르고서 쏘아 죽였다.’고 한다.

【원전】 13 집 692 면

【분류】 *왕실-궁관(宮官) / *사법-행형(行刑) / *가족(家族)


박시백씨는 표현으로 보아 팔다리가 짤릴 때까지 간언을 그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로보아 연극에선 없었지만 <왕의 남자>에서 나타난 처선의 캐릭터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말로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지만.

아래는 중종반정 1주일 전(연산 12년 8월 23일) 연산군이 갑자기 연회에 눈물 흘리며 앞날을 예감한 내용. 장녹수는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어쩌면 이준기 감독이 마지막 장면 (황천길 남사당패 장면 말고...)에서 연산, 장녹수, 그리고 장생,공길 장면에서 참고했던 기사는 아래가 아니었을까.

내거둥이 있었는데, 왕이 후정(後庭) 나인을 거느리고 후원(後苑)에서 잔치하며 스스로 초금(草笒) 두어 곡조를 불고, 탄식하기를,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는 것

하며, 읊기를 마치자 두어 줄 눈물을 흘렸는데, 여러 계집들은 몰래 서로 비웃었고 유독 전비(田非)와 장녹수(張綠水) 두 계집은 슬피 흐느끼며 눈물을 머금으니, 왕이 그들의 등을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불의에 변이 있겠느냐마는, 만약 변고가 있게 되면 너희들은 반드시 면하지 못하리라.”

하며, 각각 물건을 하사하였다.

【원전】 14 집 66 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간단히 박시백씨의 시각으로 요약한 조선왕조실록 편을 보면서 알게된 점/느낀 점 간단 정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중종반정을 주도한 이른바 '공신'들이 연산조에 어떤 위치에 있던 인물들인지 이제사 처음 알게 되었다. <왕의 남자>에서 묘사하는대로 절개있는 선배들이 일으킨 것이라고 보기에는 가담한 자들의 면면이 참 어이없다. 어쩌면 박정희때의 김재규도 그런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연산은 그 이전 성종대, 그리고 사실 단종, 세조 때의 사건들을 살펴보지 않고는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것 같다. (물론 그 위로도 계속 올라가는 일이겠지만)

맨날 조의제문, 조의제문으로 외우다보니 弔 의제 文 으로 끊어야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조의를 표한다는 것 같잖아-_-

기록문화, 우린 조선시대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는걸까?

마지막으로 연산군이 남겼다는 시 한 수.

명예를 구하느라 수고하지 말고 모름지기 자주 술에 취하여라. 이 세상 한 번 떠나면 황천객을 면키 어렵나니

莫就勞名釣, 須行醉酒頻。 一成辭世去, 難免九泉賓。

-연산 12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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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rspiegel에 들어갈 내용은 아닌데, <왕의 남자>의 원작 희곡이 이 연극이기에 여기에 등록한다.

듣던대로 연극 자체도 훌륭했다. 그렇고 그런 영화판 복제품을 만들지 않고 강렬한 영화를 만든 것이 더 돋보이게 되었다. 말 그대로, 연출가 (또는 감독)이 바라본 작품은 (사실과의 정합성 여부를 떠나서) 전혀 다른 데 있다. <왕의 남자>에서 물론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어렴풋이 연극의 태도를 복원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연산군일기의 기사들로부터 다양한 에피소드와 짜임새를 처음 짜낸 상상력은 온전히 연극에게 돌아가야할 것 같다.

서양의 일리아드, 오딧세이에 대응되는 고전은 차치하고, 조선왕조실록을 읽지 않는다면, 결국 50년도 안 된 신생국가의 시민으로 남기밖에 더할까. 고전은 고사하고 한문도 못 읽는데, 비록 만화책이지만, 책 두 권(ISBN:8958620617 ,ISBN:895862079X)은 읽어봐야겠다.


ps : 그나저나, <왕의 남자>의 돌풍에 배우 이준기의 (말하자면) '꽃미남 신드롬'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같은 성이 아니니 짐작하기 어렵지만, 확실히 여성분들 중 많은 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몇몇 남성친구들이 살짝 또는 노골적(개인적인 세계관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인 동성애코드 때문에 싫어하는 것도 특이했다. 개인적으로는 감정이입이나 동일시가 안 되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역겨울 정도는 아니었다.

pps :

티켓링크나 인터파크에서 표를 구할 수 있다. 1월 7일부터 1월 30일까지 앵콜공연을 하는 중이다. 영화 <왕의 남자>를 봤다면, 티켓을 제시하면 30%를 깎아준다. 연극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에서 하는데, 꽤 큰 극장이었음에도 주위를 잠깐 둘러봤을 때 만석이었다. 박물관 구경을 한 뒤에 간단히 저녁 요기를 하고 연극을 보는 것도 괜찮겠다.

연극 이(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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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ice 2006/01/15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긴급결정' =P

  2. 케이 2006/01/15 0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 책을 말하는건지 모르겠소.. 클릭하니 '검색어 (으)로 하여 검색된 도서가 없습니다.'뿐이구려;;
    -_- (덧붙여 사진은 어디 간거요..쿨럭;)

    윗분 인터파크보다는 티켓링크에 좌석이 더 많이 배정되있다는 점 참고하세요 ^^ 극장 용 홈페이지에서 바로 예약하실수도 있고요. 극장 용 디자인이 된 표를 받으시려면 티켓링크는 피하셔야 합니다~ (티켓링크는 회색의 밋밋한 표를 찍어서 줍니다;; 인터파크는 모릅니다만; 극장 용 표 받은 분들의 표를 보고 살짝 부러웠습니다 ~_~;)

    • nobody 2006/01/15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 계정의 tattertools가 attach기능이 제한되어서 수동으로 올리도록 프로그램을 약간 개작했는데 문제가 생긴듯 싶소. 다시 올립니다.

연산 11년 12월 29일자.

전교하기를,

“《주례(周禮)》에 방상씨(方相氏)가 나례를 맡아 역질을 쫓았다면 역질 쫓는 것과 나례가 진실로 두 가지 일이 아닌데, 우리 나라 풍속이 이미 역질은 쫓았는데 또 나례를 하여 역질을 쫓는 것은, 묵은 재앙을 쫓아버리고 새로운 경사를 맞아들이려는 것이니, 비록 풍속을 따라 행하더라도 오히려 가하거니와, 본디 나례(儺禮)는 배우의 장난으로 한 가지도 볼 만한 것이 없으며, 또 배우들이 서울에 떼를 지어 모이면 표절(剽竊)하는 도둑이 되니, 앞으로는 나례를 베풀지 말아 옛날 폐단을 고치게 하라.”

하였다.

이보다 앞서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아뢰기를,

“전하는 요·순(堯舜) 같은 임금이요, 나는 고요(皐陶) 같은 신하입니다. 요·순은 어느 때나 있는 것이 아니나 고요는 항상 있는 것입니다.”

하고, 또 《논어(論語)》를 외어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

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한 데 가깝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

【원전】 14 집 33 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 *풍속-풍속(風俗) / *보건(保健) / *역사-고사(故事) / *신분-천인(賤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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