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할 길] (The Road Less Travelled), 신승철, 이종만 옮김 (열음사)



0.

옛날에 몇몇 선생님들로부터 들은 "자신의 의식/무의식을 분석한다"라는 행위가 프로이트에 의해 정식화된 이후 개인/사회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견해를 존중한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적에 정신분석학입문서들을 읽고 나 또한 꽤 많이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득이 될 수 있는지는 비교대상(control)이 없으니 영영 확인할 길이 없겠지만, 알게모르게 내 마음의 세계 한 구석에 이런 식으로 분석하고 원칙, 또는 더 분명하게는 역설들을 찾아내는 작업들에는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스타노비치의 [심리학의 오해] 속의 강력한 주장들을 굳이 끌고 오지 않더라도 정신분석학자들이 수집한 사례들로부터 도출한 결론들을 일반화하는 것은 심각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사실 "너무" 어렸을 적에 읽은 프로이트의 여러 개념들이 야기한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은 정신분석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다양한 분파들의 소산이) 굉장히 특수한 문화적인 산물이라는 것을 공부를 통해서 알고, 또 마음으로 깨닫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러고나서도 한 선배가 선물해주신 정신분석학자들의 책들(주로 폴 투르니에의 책들이었다)을 소화하기 쉬웠던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조언을 구할 상황이 온다면, 난 사례들이 제시된 책보다는 아마도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등 에리히 프롬의 책들을 먼저 추천할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은 경험을 나누기 전에 내 과거 전력을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 서두에 담는다.

1.

이 책은 친구로부터 성탄절 선물로 받았다. (조금 우습지만, 다른 책을 선물로 삼았는데 번역이 너무 안 좋아서 막판에 이 책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원래 추천하려고 했던 책은 아니었다"라는 추가정보가 책을 받을 때부터 있었던 셈이다)

정신과 의사의 상담에 기초하여, 인간 정신의 문제에 대해 이론을 전개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고 처음에 반려되었고, 나중에 뉴욕 타임즈에 소개되어서 나중에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은 이 책을 가리켜 "self-help manual"의 시초로 여기고 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정신과 의사"가 쓴 책으로 이미 폴 투르니에의 책들에 익숙해있던지라, 책을 처음 받았을 때 투르니에의 책들을 읽었을 때봐 비슷한 독서경험을 예상했다. 하지만 역시 저자가 달라서 결국 전혀 다른 독서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처음 읽기 시작할 때, 마침 선물 준 친구가 이 사람이 일종의 "이중생활"을 살았던 것으로 구설에 올랐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는 말을 해준데서 비롯되었다. 그 짧은 말 외에는 선물한 친구도 모른다고 해서 저자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결국 내 독서습관으로는 흔치않게, 책 다 읽기 전에 저자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갖게 된 셈이다.

스캇 펙 박사는 2005년에 사망했는데, 그의 부고기사는 그의 모습을 꽤나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 그리고 그의 후속저작들에서, 인간이 사랑안에서 스스로를 규율하고 삼가하며 성장해야한다고 설파하면서, 온갖 게으름과 탐닉, 방탕함으로부터 벗어나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제 책에서 스스로 어떻게 그런 방탕함으로부터 벗어났는지도 소회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 책을 쓰기 전이나 후나, 술과 담배, 그리고 외도 등에 쩔어 살았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이 책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벌어들인 돈으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중생활'이라고 할만한 것은, 한 쪽으로는 여러 저서들에서 주장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단체도 조직하고 노력하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저런 생활을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인할 순 없지만) 최소한 후속 저서들에서는 스스로 그런 방종을 끊지 못함을 고백했으니까, "사기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

폴 투르니에의 책들을 접하면서, 그 동안 별로 신뢰하지 않았던 사례조사(case study)를 종합한 의사의 독창적 이론이 일상생활에서 지침으로 삼을 수 있고 또 구태의연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꽤나 호소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그의 책들을 읽고 난 끝에 내 생활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동기를 얻을 수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과 교우하면서 종종 그 틀을 이용해 상황을 분석하고 또 적합한 해답을 찾아나갔다. 실상 "상황을 분석하고, 더 깊은 원인을 추정하며, 그래서 일반적인 해답을 찾아나간다"라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끄집어내어 활용한 것은 그의 책들을 읽고 나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에 이 책은 책에 써진 이론, 당위로 생활을 변화시키고 또한 지침, 조언으로 삼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어려운지를 실감하는 경험이 되었다. "말(이론)"이 얼마나 그 사람과 유리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더 큰 위선에 이를 수 있는지를 읽었다. 책 한 장 한 장 내 생활태도의 변화를 촉구하는, 생활의 준거로 삼을 수 있는 이론을 접하며 무릎을 치고 "이거 그럴듯한데, 나(너)도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공감, 동기유발이 될 때마다, 바로 이 문장들을 제일 처음 접했을 저자가 이런 호소력 있는 말을 따라 생활을 변화시키는데 실패했으며, 더더욱 많은 변명들("난 예언자지 성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함) 속에 위선의 길을 택했다는 사실이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즉, 이 글자들을 읽으며 순간적으로 공감하고 동기유발되는 감정에 속지 않고, 그 의도하는 생활의 변화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는 면에서, 이 책읽기가 꽤 유용했다. 덩달아 폴 투르니에를 비롯해 내가 짐짓 내 생활에는 제대로 적용하지도 못하면서 쉽사리 내뱉곤 했던 생활의 지침들, 가치관들도 함께 도마에 올려놓아 신나게 볶아볼 수 있었다.

3.

허나 책은 출판되어 독자들에게 읽히는 순간 저자로부터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용 자체로 곱씹어볼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제시되고 있는데, "정직"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원칙이 되어야하는 이유 (p.87), 그리고 악의 근원이 "게으름"이라는 저자의 독특한 견해들(p.396)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오레테스의 신화도 흥미로왔다.

책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사랑"에 대한 논증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반복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웠지만, 자주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건 요즘 반쯤 숙성(또는 씹어) 나온 수많은 "호소문"격의 책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이 책이 1970년대에 출판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1956년 [사랑의 기술]과의 시차도 그리 크지 않으니) 독창적이지 않다고 뭐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여 있는 역설적 상태는 깨어있을 때에도 반쯤 잠들어 있고 잠잘 때에, 또는 잠들고 싶어할 때에도 반쯤 깨어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깨어 있다는 것은 싫증을 느끼지 않기 위한, 또는 싫증내지 않기 위한 조건이다. 사실상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 싫증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생활의 주요 조건의 하나이다. 내면적인 게으름을 피하기 위해, 수용적, 축적적 형태로든, 자신의 시간을 단지 낭비하는 상태로든, 하루 종일 자신의 눈과 귀로 느끼고 사고하는 있는 것은 사랑의 기술의 실용에 불가결한 조건이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황문수 역, p.148

(강조는 내 임의로 한 것이다. 스캇 펙씨의 책의 핵심적인 주장과 연관되는 구절)

4.

그가 젊은 시절 힌두교와 불교에 심취해있었다는 설명은 책에서도 드러났다. 그래서 이 책이 정말 "기독교적"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좀 있다. 몇몇 부분에서는 "기독교로 포장된" 힌두교 짬뽕 신비주의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논증이 책 전체의 신뢰나 호소력에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다. (마지막 4부 일부에서만 그렇게 느꼈다)

덧붙여, 이 시대 사람들, 그리고 틀림없이 지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진화와 열역학제2법칙에 대한 "환상" (언제 이 얘기는 많이 공부한 뒤에 할 기회가 있을 것임. 그 때 잊지 않다면 여기에 링크해야겠다) 또한 이 책에서도 다시 반복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과학하는 사람으로서 '목적론적 세계관(teleostic view)'이 강세라는 것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사람의 일상생활에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수많은 역설이 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뒤에도 그런 것 같다. 저자의 위선적인 모습 때문에 꽤나 이 주장의 호소력에 흠집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게으름과 무의식적인 자기변명들에 민감하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1.

언제나 책은 "다 읽은 다음에" 후기를 올리는데, 뭔가 효과적으로 읽는 도중의 경험을 기록한 수는 없을까? 일반론이야 있을테고 (중간중간에 메모하고 정리하기), 훌륭하게 그 목적을 수행하는 R과 같은 친구도 있지만, 허구한 날 '정리할 것' 목록이 늘어나기만하는 게으른 나를 변화시킬 궁극의 논증 말이다! 근면하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Dilige et quod vis fac-당신이 사랑할 수 있고 부지런하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중략)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총에 저항하는 주된 이유는 힘을 남용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가운데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원하는 것을 하라."는 부분이 아니라 "근면하라."는 부분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어린이나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어른다움에 따르는 자유와 권력이 우리들의 것임을 알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과 자기 훈련은 별로 하지 않으려 한다. (후략)

<아직도 가야할 길> 스캇 펙, 신승철, 이종만 옮김 p. 441-442





p.s. : 이 서평에 에리히 프롬이 쓴 어떤 구절이 생각이 나는데 찾을 수 없어서 오랜만에 [사랑의 기술]과 [소유냐 존재냐]를 다시 펼쳐들고 찾아봤다. 다행히 일전에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에서 봤다고 생각하고 기어이 못 찾은 심리학실험꼴이 되진 않고 결국 문구를 찾았지만(그리고 결국 내가 기억하는 인상과 다른 인상의 문구라는 것도 깨달았다!), 검색, 저작권 그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짧은 생각들마저 "소유"하려고 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소유냐 존재냐]로부터 또 환기받는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록해놓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소외된 기억행위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종이 위에 옮겨놓음으로써 나는 그 정보를 소유하기에 이르며 - 그것을 머릿속에 새겨놓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기록한 것을, 그러니까 기억하고자 하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나는 그 지식을 소유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중략) 이러한 사실은 읽고 쓰는 기술이, 특히 그것이 체험능력과 환상을 위축시키는 대상을 읽는 데에 쓰이는 경우, 흔히 주장되듯 천부의 은총만은 아니라는 점을 유추하게 하는 엄연한 실례이다."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차경아 역, p.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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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을 잘 모른다. 사람들이 그 흔적을 찾고, "JSA"에서 그 음악이 전해내려올 때도.

오랫동안 배 타고 건너온 선물들을 붙잡고 잠도 잊은 채 노래에 귀기울인다. 박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가사에 귀기울이는 노래는 오랜만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할까. 그리고 유약함을 넘어 나침반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친구여, 고맙네.




비가 내리면 음...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비가 내리면 음...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음...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 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음...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바람이 불면 음...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바람이 불면 음... 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음...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음...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음...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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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에, "Secret Santa"라는 글씨와 함께 실험실에 박스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냥 뭐하는건가 싶어서 넘어갔는데, 랩미팅 바로 직전에, 실험원생이, "너도 끼겠냐?"라고 묻더라. 로마에 왔는데 로마 사람들이 하는 거 한 번쯤은 해보고 살자하는 주의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뭔지 모르지만 하겠다고 했다(이 같은 주의로 방금 전 술 마시러 가자고 하는 전화 그냥 가겠다고 했다. 알코올 하나도 못 마시면서-_- 뭐 어떻게 되겠지).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에서 하던 마니또와 비슷하게 각자가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을 3개 정도 적어내고($20 미만), 박스에서 하나씩 꺼내서 받는 사람 모르게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다(물론 적어낸 것과 다른 선물을 준비해도 된다). 대강 여기까지가 설명을 들은 끝에 알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종이 쪽지를 받았다. 3가지를 적어내기라. 뭘 적어내야할지 몰랐다.

그래서 첫번째로 적은 게 "후라이팬"이었다. (Fried Pan을 Frying Pan으로 친절하게 옆에 있는 대학원생이 고쳐줬다. 하긴 Pan을 굽는 것도 아니고. 일본식 '후라이팬'에 Fry Pan은 아닌 것 같고 하면서 속은게 문제) 여기 오면서 한국인에게 $50에 인수한 식기류+식탁세트 중에서 제일 문제가 많은게 비교적 큰 후라이팬이었다. 바닥이 볼록 튀어나와있어서 기름이 가장자리로 모였고, 그래서 요리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렇다고 작은 후라이팬에다가 달걀 하나 넣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사려던 참이었는데, "이런 거 적어도 돼?"라는 물음에 사람들 웃는 것을 뒤로 하고 써놨다.

두 번째로 적은 건 "토스트기"였던 것 같다. 아니었나. 잘 기억이 안 난다. 옆에서 $20에 후라이팬 살 수 있으면, 토스트기는 $10 안쪽으로도 산다는 얘기에 썼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빵도 안 먹는 판국에 무슨 토스트기냐 해서 안 적어뒀던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하게 기억 안 난다.

어쨌든 어찌어찌 두 개까지는 썼는데 마지막게 생각이 안 나서, 랩미팅 때 쪽지들을 다시 나누기 바로 직전에 "미국에 처음 온 외국인이 꼭 봐야할 책 한 권"이라고 적어놨었다.

내가 그 때 뽑은 사람은 크리스마스 분위기 CD를 적어놨던 것 같다. (다른 두 가지는 기억 안 나는게, 쪽지를 넣어둔 플래너를 잃어버려서 - 이건 나중에 얘기하자) 그래서 나름 사야할 CD를 물어서 구입하고, 포장도 종이로 하고, 어쨌든 humble하게 packing해서 오늘 살짝 물건더미에 놓았다.

오늘 보니 선물을 개봉할 때는 처음에 한 사람이 선물을 개봉하고, 누가 준비했는지 맞추고, 결국 선물을 준비한 사람이 자신의 선물을 개봉하고, 그런 식으로 그래프를 그리는 식이었다. 누가 준비했는지 알아맞추는 게 내 생각보다 중요했던 것 같다. 내가 준비한 CD를 받은 실험원은 맞추지 못해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장황한 변명을 늘어놨는데, 약간 어색했다. 사실 나도 못 맞췄는데. 내 선물을 준비해주신 분은 지금 로테이션 도는 지도교수님이셨다. 약간 말이 잘 어긋나고 전달이 안 되어서 그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죄송했는데, 선물 준비해주신 것에 감사했다. (감사드렸는데 또 전달이 안 된게 아닌가 살짝 걱정된다)

내가 받은 선물은 다음과 같다.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로 벌써 두 권의 책을 선물받아서, 비록 어디 안 가고 휴일에는 조용히 있을 예정이지만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고맙습니다.

p.s. : 사실 설마 후라이팬을 사주겠냐 하는 심정이었는데, 약간은 또 이상한 사람으로 찍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번 로테이션 실험실도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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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body 2006/12/15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옆방 교수가 "너 그걸로 오믈렛 만들 예정이냐? zebrafish 한 번 구워먹어보자. zebrafish entree 어때?"라고 물었다. 이런 농담은 이해는 가는데, 반응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2. yh 2006/12/17 0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먹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