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천 칼럼의 원제목은 "박근혜의 항명"이다. 하지만, 미디어법과 관련된 박근혜의원의 행동, 그리고 예상은 (교수의 주장대로) 큰 변수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7항에서 그가 말한 인권위원장의 자기표절에 대한 부분이야말로 눈에 번쩍 뜨인다.

(이 게시판에 자주 방문하시는 분들께는 링크를 따라 읽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 ··· ion%3D01

7. <한겨레>는 이렇게 썼다. "국회도서관에 올라 있는 현 위원장 논문 21편 내용을 살펴본 결과, 1998년 학술지 <비교사법> 제9호(한국비교사법학회 발행)에 실린 '무효'라는 제목의 논문과 2002년 <법학논총>(한양대 법학연구회 발행)에 게재한 '무효에 있어서의 대항력의 문제'라는 논문은 제목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내용의 논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논문의 서론을 비교해 보면, 2002년 발표한 논문은 1998년 논문의 서론에서 첫 문단을 제외하고 이어지는 네 문단, 에이포(A4) 용지 1쪽 반 분량을 그대로 옮겼고 마지막 문단에 여섯 문장을 덧붙였을 뿐이며 11쪽 분량의 본론은 12개 문장을 새로 썼을 뿐, 나머지 부분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면서 "각주의 위치와 내용까지 동일해 사실상 같은 논문이라고 볼 수 있으나 출처나 인용 표시는 없었다"고 했다.

7.1 이 보도가 맞는다면, 이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자기표절이다. 논문에서 인용한 전거를 밝히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다른 사람의 공로로 발견된 지식을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가로채면 안 된다. 자기가 쓴 글이라도 다른 곳에 이미 발표된 글이라면 그 점을 밝혀야 이번에 발표하는 글이 마치 새로운 것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방지할 수 있다. 둘째, 상호확인을 통한 지식의 진보와 공유를 위해서 원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주어진 논문에서 주장되는 내용을 스스로 파고들어 확인할 수 있도록 편의를 최대한 제공하기 위함이다.

7.2 현병철 교수의 경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조차 대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거론하는데, 이는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은 소치다. 전에 발표한 자신의 논문을 부분적으로 몇 문장만 손을 봐서 다른 곳에 발표하더라도 출전만 표시하면 문제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전에 발표한 내용을 다시 (물론 출전을 밝히고) 사용할 수 있으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는 『위키백과』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a 두번째 저작을 통해서 새로이 기여하는 내용을 위한 바탕으로서 종전에 발표한 내용이 다시 개진될 필요가 있을 때.
b 새로운 증거나 논증을 논의하기 위해서 종전에 출판한 내용이 다시 제시되어야 할 때.
c 두 출판물이 겨냥하는 독자층이 워낙 달라서 공표하려는 내용을 전하기 위해서는 재출판이 불가피할 때.
d 저자가 느끼기에 전에 발표한 내용이나 방식이 아주 좋아서 다르게 말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을 때.

7.3 현병철 교수의 논문들은 중복의 정도로 볼 때, a와 b에는 해당할 수가 없고 c나 d만이 정당화 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비교사법』의 독자층이 한양대 『법학논총』의 독자층과 "워낙" 다르다고 보기는 어려울 테니까, 결국 내용이나 발표방식이 완벽해서 다르게 말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항만이 남는다. 내가 보기에 저 논문은 "완벽"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데, 혹시 그렇게 볼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현병철 교수 본인은 완벽해서 고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지 않고, "각 논문의 논지가 다르기 때문에 이전 논문에서 필요한 부분을 갖다 쓸 수 있"고 "새 논문에 이전 논문을 원용했다는 점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7.4 전체 길이 14쪽 분량의 논문에서 문장 21개를 새로 써서 논지가 달라질 수는 없다. 따라서 "논지가 다르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을 갖다 썼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새 논문에는 이전 논문을 원용했다는 표시가 없다. 그러므로 "표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도 사실일 수가 없다. 나아가 이와 같은 경우는 설사 출전표시를 했더라도 자기표절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 똑같은 논문을 서로 다른 두 개의 학술지에 실은 행위를 지식의 공유, 심화, 발전, 전파를 위해 정당화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순전히 업적을 부풀리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7.5 현병철 교수는 인권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인권위원장으로 마땅치 않다는 비판이 있는데, 나는 그가 과연 일반적으로 법학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법률지식이나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같은 논문을 두 개의 학술지에 싣고, 더구나 그 일에 관해 대답하는 태도에서 그는 표절이 뭔지, 자기표절은 뭔지, 업적을 참칭하는 행위는 뭔지 등에 관해 기초적인 이해도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문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금세 사실이 아니라고 드러날 주장을 펼쳤다.

7.7 이 분을 기어이 중용해야겠다면 차라리 검찰총장을 맡길지언정 인권위원장에는 완벽한 부적격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정상상태라면 검찰총장도 맡아서는 안 되겠지만, 이 정권 아래서 검찰은 정상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하물며 인권위원장은 전혀 비슷하지도 못하다. 인권이란 세세한 사정에 관한 치밀한 분석력이 없이는 감지할 수가 없는 주제다. 표절이 뭔지, 자기표절이 뭔지도 분간을 못 하는 사람이 공권력과 개인의 기본권 사이에서 미세한 균형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확인이 필요 없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
마지막에 방동천 교수는 이렇게 맺는다.

이것이 자기표절의 사례로서 명백한 사회적 판정을 받는다면, 우리 사회의 정직한 미래를 향해 커다란 주춧돌 하나가 될 것이다.

이게 자기표절의 사례로 명백한 사회적 판정을 받는대신 그대로 묻혀버린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얼마나 무너질지(또는 무너져있는지?) 또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질 것 같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옛날에는 모호한 두려움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큰 용기를 내어 뭔가 아주 작은 지식이라도 "기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 일인지 매일 실감하는데, 정말 이런 것도 "관행"으로 넘어가면, 대한민국 지식인, 교수"사회"에 대해서 물을 수 밖에 없다. 마치, "일부 교회때문에 내가 속한 교회도..."라는 말로 종교"계"의 수준이 면피될 수 없는 것처럼.

트랙백 주소 :: http://www.nobodylab.net/blog/tt/trackback/957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