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생명체도 대사작용 등 생체작용을 하건만, 많은 에너지와 또한 시간, 자원이 병증에 소요되어 그 활기를 잃었다고 볼 수 있다.

병듦을 구분하는 방법이 몇 있다고 배웠다. 면역계가 병듦을 알아차리지 않은 초기상태, 병듦을 알아차리고 제거하려고 애쓰는 상태, 지속적으로 애쓰지만 병증이 그대로 있어 만성인 상태, 그리고, 서서히 포기하는 상태, 그렇게 나누는 것이 한 구분법이 될 수 있겠다.

왜 그럴까? 내가 배운 면역학에서는, 왜 어떤 이는 병을 이겨내고, 어떤 이는 병에 굴복하는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지 않다. 다만, 교활한 병원체와 숙주 사이의 끊임없는 수싸움만 묘사할 따름이다.

치료법은 어떠한가? 때론 좀더 자극을 주어, 결연히 병원체에 맞서도록 돕는 방법 (사후 백신투여법 정도가 이에 해당될 것 같아), 또는 병원체의 위치를 한정지어 이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 병원체를 중화시키는 방법, 그런 온갖 종류의 치료법들이 떠오른다.

그 전에 왜 문제가 생겼는지를 깨달아야할지도 모르겠다. 저 깊은 곳에, 무엇이 문제인지, 그림자 속에 어떤 문제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지 조금만 짐작할 뿐이다. 사실, 병이라는 것도 상호작용에 의해 생긴 것이다 - 병원체는 숙주가 제시한 기회를 포착할 뿐. 그리고 살짝 우리의 시각을 비틀면, 바로 숙주가 제시한 기회를 포착하는 그것을 우리가 '병'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면역학이 묘사하는 세계는, 얼핏 보면 숙주에게 대단히 불리한, 이미 끊임없이 변화하는 병원체에게 성채를 함락당할 운명의 시스템이 보이지만, 기실, 바로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인간의 지성이 종말을 꽤 늦춰주고 있다는 함의(또는 희망)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병의 가장 깊은 단계의 그림은 그런 희망, 지성을 절박하게 요구한다. 무너지고 또 무너져, 만성을 지나 조금씩 뒷걸음친다는 두려움이 들 때, 그리고 대개의 병증이 그렇듯, 규율을 잃어버린 각 부분들은 마치 생존을 기어이 증명해야겠다는 태세로 요란하게 대사를 하고, ê·¸ 단말마들은 병원체들에게 또다른 기회로 다가와 후퇴를 재촉한다. 위기이되, 차분한 반추가 없을 때 남는 것은 그저 뱉어내지 못한 - 병원체들에게 먹힌 -  비명들뿐이다.








스스로 돌이켜보건데, 지금 나는 병들어있다.

끊임없이 분투한다고 하지만, 서서히 늪에 빠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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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1 0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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